서울시가 뉴타운·재개발 출구전략의 대안으로 제시한 소규모 정비사업 방식이 현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소규모로 사업이 진행돼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 확충이 어려운데다 노후주택을 수선하는 방식으로는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한계가 있어서다.
서울시가 소규모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방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수익성 자체가 워낙 낮아 대안사업을 도입하는 사업장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11일 업계와 서울시에 따르면 뉴타운과 재개발이 해제된 지역 중 주거환경관리사업 도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22개 구역에 불과하다. 이중 19개 구역은 계획을 수립하거나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고 나머지 3개 구역에서만 주거환경관리사업이 마무리된 상황이다. 뉴타운·재개발 해제 지역 중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곳은 아직 한곳도 없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은 공공이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과 공동이용시설의 정비를 담당하고 노후주택의 신축 및 리모델링은 주민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이다. 노후주택 수선에는 융자지원 등의 혜택이 제공되지만 주민이 공사와 관련된 비용을 대부분 부담해야해 사업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뉴타운·재개발이 해제된 148개 구역 중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적용돼 사업이 완료된 곳은 마포구 연남동 단독주택 재건축 해제지와 성북구 장수마을 재개발, 구로구 구로동 111번지 일대 주택 재건축 구역 등 3곳이다. 정비계획이 수립 중인 19개 구역을 더해도 뉴타운·재개발 해제 구역 중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적용된 곳은 전체의 15%에도 못 미친다.
낡고 오래된 주거지역의 도로와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최고 7층 높이의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도 낮은 수익성이 걸림돌로 지목되며 현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2012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이후 제도가 도입된지 3년째를 맞았지만 아직까지 실제 현장에 적용된 사례는 한건도 없다.
서울시가 가로주택정비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조합설립과 융자지원 △미분양 주택 매입 △SH공사 참여 추진 △업무 전담부서 신설 등의 4대 지원책을 내놨지만 수익성 향상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의 경우 30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용적률을 확보한 뒤 일반분양에 나서도 수익성 문제가 항상 불거진다"면서 "7층 이하의 저층 아파트를 짓는 사업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과 관련된 수익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미분양이 발생했을 경우 서울시가 주택을 매입해주기로 했지만 공공임대 가격으로 미분양을 해소하는 것으로는 수익성 향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규모 정비사업이 사업성 문제로 제도 안착에 어려움을 겪자 뉴타운과 재개발이 취소된 일부 지역에서는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재건축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뉴타운 사업이 취소된 창신4구역은 주민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 도시환경정비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며 인근 창신2구역(옛 창신11구역)도 뉴타운 해제 이후 재개발 사업으로 환원하고 정비구역지정을 위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소규모 방식의 대안사업으로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주거의 질을 끌어올리기가 힘드니 전면 철거방식의 개발을 다시 도입하는 게 낫다고 주민들이 판단한 것이다.
창신동 L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소규모 방식의 대안사업도 좋지만 재개발·재건축이 꼭 필요한 지역도 있다"면서 "도로 등 기반시설이 열악한 창신4구역은 주민들의 개발의지가 강해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강북권을 중심으로 전면 철거방식의 정비사업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업계 관계자들은 뉴타운·재개발이 해제된 사업장으로 이같은 추세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성 문제로 대안사업에 대한 주민들 반감이 생겨나고 있는데다 뉴타운이 해제된 곳에서 재개발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비사업 전문 변호사는 "뉴타운 사업은 지구지정이 해제되더라도 주민 과반 이상의 동의만 있으면 도정법에 따른 민간 정비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서 "주거지역의 슬럼화가 계속되고 있는 강북권을 중심으로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는 현장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