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일 흙날(자연속학교 다섯 째날)
날씨 : 아침나절은 맑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비올 듯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저녁 10가 가까워오며 비가 온다. 바람이 크게 분다.
4월 30일, 5월 1일 이틀 아이들도 선생들도 자연속학교를 아주 빡빡하게 보냈다. 만만치 않은 이틀을 보내고 오늘은 넉넉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시간이 넉넉하다 보니 마음도 넉넉해진다. 수만리 들국화마을 마을회관에서 바라다보는 안양산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텃밭 일에, 축구에, 무등산 오르기에 아이들과 함께 한 옷들에서는 쉰내가 폴폴 난다. 오늘 아침나절 공부는 빨래와 글쓰기다. 내일 집에 갈 것인데 오늘 뭐 할라고 빨래를 하느냐고 아이들이 묻는다. 물론 어제 빨래를 하는 것이 가장 알맞기는 했으나 긴 산오르기로 아이들이 많이 지쳐있었다. 바지런한 친구들은 함께 빨래를 하지 않아도 때때로 빨아 입을 옷이 있고 가방에서도 상큼한 냄새가 나지만 많은 아이들은 쉰내 가득한 빨래를 그대로 비닐봉지에 모셔두었다. 그대로 가방에 담아가면 입지 않은 옷이나 가방도 빨아야 할 터. 모둠을 나눠 빨래를 하기로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마을회관 잠집에서는 남자 어린이 여자 어린이로 나눠 빨래를 하게 되었다. 성범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그동안 자연속학교에서 익힌 빨래 비법을 전수한다.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고 동생들이 비누칠을 해주면 발로 밟고 강산이는 헹구고, 아이들은 서로 도우며 빨래공부를 한다. 아이들 모습엔 평화가 스며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여자 어린이들이 빤 빨래에서는 꽃향기가 나고 남자 어린이들이 빤 빨래에서는...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 지우는 어찌나 꼼꼼히 동생들에게 빨래를 가르치는 지, 지우에게 배운 1학년들은 또 그와 같은 모습으로 다음에 동생들에게 빨래를 가르치겠지^^ 형에게서 동생으로 이어지는 삶, 보고 있음 저절로 어머니 미소가 오른다. 산들 산들 봄바람에 빨래를 말리기 위해 짜는 것만은 전기의 힘,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아이들이 한 빨래를 모아 탈수기에 돌리고 아이들이 자연속학교 돌아보기 글을 쓰는 동안 수인이가 널었다. 수인이는 맑은샘학교 모든 아이들의 빨래를 널었다. 엄청 많은 빨래임에도 투덜거림 없이 눈앞에 펼쳐진 안양산 모습을 배경으로 흥얼흥얼 즐거운 소리를 내며 빨래를 털고 널고 넉넉한 6학년이다. 그런데 뒤돌아 권진숙 선생님에게는 조금 짜증을 부렸다는 뒷이야기도... 하하.
낮공부는 5.18 민주화운동 공부이다. 높은 학년들은 자연속학교에 오기 앞서 미리 우리나라 알기 시간에 공부를 하고 왔다. 낮공부열기에서 미리 공부한 것을 높은 학년들이 발표하고 1학년들은 무슨 말인가 잘은 모르지만 앞서 공부한 4.19와 비슷한 것이구나! 감을 잡는다. 차를 타고 국립묘지로 가는 길 인웅이와 윤태가 고단한지 작은 다툼이 있다. 지도 검색을 잘 못했는지 가고 보니 국립묘지가 아니라 5.18기념공원이다. 전선생님이 운전한 차는 이미 국립묘지에 닿아있고 상미선생님과 호준 선생님이 운전한 차는 “여기가 아닌가벼”를 외치며 다시 차를 돌렸다. 국립묘지에 닿으니 2,3학년 아이들은 기다림에 조금 지친 얼굴이다. 5.18 민주혁명이 일어난 광주에서 민주화를 위해 목숨받쳐 싸운 님들을 생각하며 기념탑 앞에서 묵념을 하고 묘지를 돌아보았다. 어린이 체험관에 들러 짧게 살피고 모둠마다 태극기를 하나씩 받고 3~6학년은 5.18 만화영화를 보러 들어가고 1,2학년은 남아 자유시간을 가졌다. 낮은 학년을 위해 만든 영상이라고는 하지만 미리 살펴본 바로는 1,2학년에게는 알맞지 않아보였다. 역시 보고 나온 다른 선생님들도 1,2학년에게는 알맞지 않은 영상이라 해서 1,2학년은 보지 않았다. 역사는 기억해야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과거를 제대로 알고 기억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질 않길 바란다. 하지만 5.18을 무섭게 슬프게만 기억하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한 그날의 정신을 밝게 기억하고 이어가길...
어린이 체험관에서 준 태극기는 아이들에게 애국가를 떠올리게 했고 기념관 앞에서 어린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크게 불렀다. 6학년 유하가 가족행사가 있어 먼저 가게 되었는데 유하를 찾아온 유하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얼음과자를 선물하셔서 우리 아이들은 사흘 내내 얼음과자를 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얼음과자도 초콜릿이 들어간 빠삐코, 다른 아이들은 모두 행복한 얼굴인데 우리 은후는 시무룩하다. 은후는 음식 알러지가 있다. 코코아, 우유, 견과류. 그러다보니 많은 새참을 못 먹을 때가 많다. 첫날 얼음과자도 코코아 빠삐코였는데. 못 먹는 은후 마음도 그것을 지켜보는 내맘도 편치 않다. 그 때 떠오른 것이 어제 산오르기 하고 나서 하나 남은 딸기 빠삐코, 물론 다 녹아 주스가 되었지만 그걸 들고 “은후야, 이거 냉장고에서 쉬원하게 해서 줄게. 그때까지 참고 갈 수 있지?” 그러자 은후 얼굴이 환해진다. 돌아와 냉장고에 빠삐코를 넣었다고 은후를 살짝 불러 부엌에서 주었다. 은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에요.”한다. 새참 준비할 때도 아이들을 잘 살펴야겠다.
어느덧 자연속학교 마지막 날 첫날 잠자리에 들며 눈물 방울들을 보이고 둘째 날도 잠간 눈물을 보이던 여자어린이들 넷은 깔깔공연을 보더니 웃음보가 터졌다. 정말 웃다가 숨넘어간다는 말이 맞는듯하다. 낮 동안 열이 조금 올랐던 유민이도 저녁이 되어가면서 몸이 조금 나아졌다. 자연속학교 오기 전에 돌아가며 아팠던 1학년들은 자연속학교에 와서는 크게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저녁마다 인웅이가 기침이 심했고 어젯밤부터는 오제도 기침이 심하다. 준섭이는 약간 미열이 있더니 토하기도 했다. 다행히 길게 가지 않고 다시 밥을 먹는 준섭이가 대견하다. 1학년들이 미리 아팠다면 2학년 우철이는 자연속학교 내내 몸이 안좋다. 열이 오르고 기운을 잘 차리지 못한다. 조금 나아진 듯 하다가도 조금 움직이면 다시 열이 오른다. 우철이에게는 매우 아쉬운 자연속학교가 될 것 같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생각보다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든다. 하루를 엄청 신나게 논 때문일까? 조금 전까지 웃던 녀석들이 자리에 누워 몇 번 뒤척이다 보면 코고는 소리로 함창을 한다. 가끔 뿡터지는 방귀소리는 양념이다. 함께 밥먹고, 함께 놀고, 함께 씻고, 함께 자고, 함께 빨래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방귀를 트는 우리는 한 식구이다.
첫댓글 ㅋㅋㅋ 감동하고 웃고.. 아이들의 일상에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