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서예-五體의 연변(演變)
서예는 문자를 씀으로써 이루어지는 평면 도형 예술이다.
문자는 부호로서 어떠한 사실을 나타내고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수단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것이 결승(結繩) 이었든지 도화(圖畵) 문자였든지 갑골 문자였든지 간에 손으로 그리거나 쓰거나 또는 칼로 새겨진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가장 단순하게 표현된 상징적인 그림 이었으며 부호형식으로부터 가공미화(加工美化) 되고 나아가 규율화(規律化),
장식화(裝飾化), 예술화(藝術化)되어져 '문자를 미화한 예술'이라 인식되어진 것이다. 서예는 문자 학자들에 의해서 형(刑)과음 그리고 의지가 연구되고 서가들의 신미에서부터 글씨 예술로서의 형식미와 특유한 서예 규율이 정립되었다.
인원 문자의 발달엔 청과 관련이 있으며 문자에 발달과 벤처는 곧 신령의 충족과 미적 요구에 의해 변환하였다.
즉 다변화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좀 더 간편하고 쉽게 쓰기 위한 것과 좀 더 아름답게 갖고자 하는 미적 로고가 어우러져 갑골문에서 대전 소재 돼서 대전에서 소전 소전 예서 예서 예서 예서 잠초 그리고 그 이후 해서 행서 금 초로의 변천이 그것이며 지금 중국에서 간자 체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한문 서에는 대문자가 사용되면서부터 오랜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꾸준히 가꾸어지고 연구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문서예의 특징은 문자의 서체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서체를 대별하면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서는 가장 오래된 서체로서 예서 이전에 기록된 모든 문자를 통칭하는 말로 은(殷)의 갑골문(甲骨文), 주(周)의 금문(金文)을 비롯, 진(秦)의 시황제 때 이사(李斯)가
통일한 소전(小篆)을 포함한 문자체를 말한다. 그 중 소전은 원필이며 획의 굵기도 동일한 것이 대부분이다. 가로획과 세로획은 수평. 수직이고 상하 좌우의 간격이 일정하다. 자형은 대체로 상하로 길고 타원형으로 대칭을 이루며, 글씨 크기가 고른 것이 특징이다.
★★예서는 진대(秦代) 이후 서사 속도를 필요로 함에 따라 문자는 서사에 편리한 실용적인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전서의 장식적이고 복잡한 권위적 형식에서 벗어나 붓의 특징을 잘 살린 예서가 나타났다 이는 진시대 말에 나타나서 한대(漢代)에 발달한 서체이다. 이 예서는 크게 파책이없는 고예(古隸)와 파책이 있는 팔분(八分)체 나눌 수 있는데, 고예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 비가 대표적이며 팔분체는 한나라 시대의 예기비,
사신비, 을영비, 장천비, 조전비 등이 대표적이다.
예서는 대체로 방필이며 획의 굵기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형은 약간 납작하고 한 글자에서 잠두와 안미가 함께 나타나는 획이 중복 되지 않는다.
★★해서는 한나라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 , 당 대에 이르러 완성된 서체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방형의 정자체이다. 해서는 표준 또는 규범이 되는 글씨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욕조해서(六朝楷書)와 당해서(唐楷書)로
구별된다 장맹룡비(張猛碑)를 대표로 하는 육조해서 해서는 방필을 특징으로 하기에 매우 힘차고 강인한 느낌을 주며, 당해서는 구양순(毆陽詢)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과 안진경(顔眞卿)의 근례비(勤禮碑)로 대표되는데 안정되고 정교한 결구로 반듯한 자형을 이루고 있다.
★★행서는 후한(後漢) 이후에, 해서를 조금 변형시켜 쓰기에 간편하고 쉽게 하여 사용함으로써 세간에 유행하게 되었다.
행서는 초서의 방종함과 해서의 근엄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니 해법(楷法)과 초법(草法)을 융합시킨 글씨체라 할 수 있다.
행서는 다른 글씨체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쓰는 법칙이 해서에 가까우면 행해(行楷)라고 하고, 방종함이 많아 초서에 접근하고 있으면 행초(行草)라고 부른다. 당나라 서예가인 손과정은 "달리고 변하는 것을 때에 맞게 하는 것이 행서의 요령이다." 하였으니 행서는 해서 보다 비교적 자유롭고 간편한 글씨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행서가 해서와 초서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신축성이 크고 변화가 많은 것은 해서와 초서의 운필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붓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해서 법을 따르고 붓을 움직일 때는 초서의 법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점과 획은 서로 호응을 이루고 붓은 멈췄으나 기운은 연결되고 있고 필 획은 침착한 것을 주로 하고 연결 부분은 가볍고도 가늘게 하여 눕고 우러러보고
기대고 빠른 획을 이용하여 생동감을 나타낸다. 행서는 진나라 때에 가장 흥성하였는데 그 중에서 왕희지(王羲之) 종요(鐘繇), 왕헌지(王獻之), 장지(張芝) 등이 유명하며 왕희지는 서성(書聖)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후 당에 이르러 구양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 ,안진경(顔眞卿), 이옹(李邕), 등이 등장하였고, 송대에 이르러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미원장(米元章), 채군모(蔡君謨) 등의 행서가 후세에 추종을 받고 있다
행서의 실용적 가치와 예술적 효과는 다른 글씨체에 비교하여 상당히 우위에 있으며 지금까지도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여 줄곧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있다.
★★초서(草書)
넓은 의미의 초서는 어떤 글씨체에 초서의 기운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전서에 기운이 들어 있으면 이것은 초전(草篆)이라 하며, 예서에 초서 기운이 들어 있으면 이를 초예(草隸)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서.예서 .해서 .행서 와. 더불어. 글씨체의 한 종류로 취급하고 있다. 초서는 장초(章草), 금초(今草) 광초(狂草)의 세가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한나라 초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통용되었던 것은 초예로서 초서의 기운이 있는 예서였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장초가 되었다. 한(漢)말에 와서는 장지(張芝)가 장초 중에 아직 남아있는 예서의 필획을 제거하여 위아래 글자의 필 세를 연결시키고 맥락을 통하게 하여 금초를 만들었으니 일반적으로 이를 초서라고 한다.
당(唐)에 이르러 장욱(張旭) 회소(懷素) 등이 금초에다 방종함과 획을 빙빙돌려 연결하는 필세를 더 하여 자형의 변화를 꾀하고 붓의 흔적을 없게 하였으니 이를 광초라 한다. 초서가 한자의 결합 간락 채라는 것은 이미 아는 바 그대로다
각 시대에서 맡은 역할과 서사상의 요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고 도태(淘汰)와 세련(洗鍊)을 거쳐 몇 개의 형(形) 으로서 정착한 것이다. 한자가 가진 일자일의(一字一義)와 그 상징성은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듯하다. 표현하려고 하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는 그저 간략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문장을 쓸 때의 사고의 속도나 미적 요구에서도 어느 정도의 복잡함을요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읽는 쪽이나 쓰는 쪽의 입장에서 맞춰진 것이 해ㆍ행ㆍ초 삼체이다.
초서는 간략체의 한계(恨界)로서, 이 이상 간략하면 이미 문자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거기에 곡선이나 유동감을 주로한 독특한 선미가 생기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간략해서 아주 닮은 형태나 아주 같은 것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으므로 이 점을 생각하면
해서나 행서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쓸 필요가 있다. 글씨의 아름다움은 종류에 따라 각양 각색이지만, 초서의 아름다움은 붓의 속도와 흐름에 의한 유동미와, 여러 가지 자태(姿態)와 그 전개(展開)에 의한 변화미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소수의 다행은 변화가 많고 일정하지 않다. 이른바 동태(動態)이다. 이것은 사람의 춤추는 모습에 비유될 수 있으니 자태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해도 사람으로서의 골격이나 지체(肢體)의 비율까지는 바꾸지 않는 것과 같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