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네.”
(2테살 2,14)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의 여정 중에 한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질문합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이 질문 자체가 부정적 대답을 유도하는 듯 느껴집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질문했을까? 사실 똑같은 물음을 다르게 질문할 수도 있었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구원 받을 사람은 많습니까? 이처럼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제기할 수 있었음에도 이 사람은 이렇듯 부정적으로 질문합니다. 왜 그랬을까? 오늘 복음의 첫 부분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에서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믿음의 자세에 관하여 가르치셨다고 전합니다. 곧 이 사람은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와 구원에 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듣고, 또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구원을 얻기가 쉽지 않음을,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구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겠구나라고 여기며 이 같은 질문을 체념한 듯 던진 듯 보입니다. 그의 이 같은 마음이 그의 질문에서 여실히 느껴집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이래서야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나 같은 죄인은 구원을 꿈도 못꾸겠구나라며 체념한 듯 그리고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던진 질문에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듯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좁은 문. 오늘 복음의 핵심 단어를 꼽으라면 바로 이 단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 넓고 광활해서 누구나 쉽게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비좁고 불편해서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 들어가기를 꺼리는 좁은 문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다는 사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바로 그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지난 주 우리가 계속 반복하여 들었던 복음의 말씀, 곧 깨어 준비하고 있는 충실한 종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면 주인이 문을 걸어 잠근 후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주인을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문을 두드리는 우리들을 모른 채 할 것이라는 그 비극적 결말을 냉혹하게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구원을 이미 보장받았다고 교만하는 이들이 오히려 구원에서 배제되고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 여겨지던 이들이 동서남북에서 몰려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선포하십니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실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에게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원칙이 무너지고 순서가 무시되면 도대체 체계는 어디 있으며 그런 무원칙의 게임의 룰을 따라 함께 할 이들이 누가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첫째라고 안심할 수도 없고 지금 꼴찌라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는 어찌 보면 모두가 피해자이자 희생자가 될 이 게임의 룰을 도대체 누가 반기겠는가? 그런데 이 룰을 반길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꼴찌인 사람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희망의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첫째를 먼저 말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을 우선 말씀하십니다. 곧 지금 꼴찌인 너희들,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라. 너희가 첫째가 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차원에서, 다시 말해, 지금 첫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관심 대상이 아니며, 지금 꼴찌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관심대상이며 예수님의 이 말씀이 향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꼴찌 그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환호성을 올렸을 사람은 바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그 사람. 구원받을 사람이 적은 현실 속에서 자신은 아마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 절망하던 그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희망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된 이 같은 희망의 모습을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전합니다. 테살로니카 2서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가 차지하게 되었네.”(2테살 2,14)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이가 비록 그 질문을 던질 때에는 절망 속에서 있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듯이 우리 역시 복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절망뿐인 우리 삶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하게 되리라는 사실. 오늘 복음환호송은 오늘 복음이 전하는 진리를 이 같이 설명해 줍니다.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헛된 희망을 꿈꾸며 지금의 좌절의 삶을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허황된 거짓 희망이 아닌,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 임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대하고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며 주인은 종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삶이 바로 주님께 상을 받는 삶, 꼴찌가 첫째 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전해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10월의 마지막 날 오늘 하루의 삶을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여러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서 첫째가 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