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년 마지막 송년 주일입니다. 누구든 한해를 마감하게 되면 “ 참!~ 세월빠릅니다.~ 한해가 훌쩍 지나갔어요~~” 이처럼 시간을 말하곤 합니다. 며칠 전 친구목사와 함께 은퇴하신 선배목사님을 만날 일이 있어 강진을 가는 중에 차안에서 참 세월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구려~~ 욥기의 말씀을 인용하며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욥7:6) 그렇습니다. 실을 짜는 베틀의 북이 돌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빠른가를 보셨다면 베틀의 북처럼 한해가 빠르구나~~~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정말 그렇게 느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러브스토리 이야기는 아가서 라고 한다면 한 사람을 지독히 사랑했던 짧은 사랑의 이야기를 몸으로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입니다.
창세기 29장을 보면 야곱이 잔 깨로 형이 받아야할 축복권을 가로챈 것을 알고 에서는 분노합니다. 야곱은 이를 알고 하란 삼춘집으로 도망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삼촌집에서 잠시 사는데 외삼촌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 두 딸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둘째 딸 라헬을 보고 첫 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어느 날 외삼촌에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 라헬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 라반은 고이 키운 라헬을 아무 댓가 없이 줄 수 없다며 7년을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날부터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겠다는 오직 일념 하나로 7년을 며칠처럼 열심히 일했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만을 위해 수고할 때 성경은 야곱의 마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그렇습니다..... 야곱은 오직 라헬 만을 바라보며 긴세월 7년을 며칠처럼 생각하고 주어진 일이 힘들고 고달퍼도 오직 사랑하는 라헬만을 위해 7년을 며칠로 생각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본문 8절 시작을 보십시오 사도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사랑하는 자들아”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베드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감람산에 가는데 곁에 계신 예수님이 홀연히 하늘로 승천하시는데 순간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웠습니다. 어찌보면 그순간은 베드로에게는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 그냥 멍하게 서 있는데 바로 베드로가 천사의 음성을 들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행1:11) 이 멧세지가 베드로에게는 너무나 생생했고 잊을수가 없이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하신 우리 예수님 언제 오실까 그러나 현실은 핍박과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오실것이다. 내일도 안오시면 다시 모래 오실 것이다.~~~~그런 기다림으로 하루를 천년처럼 간절히 기다리며 사랑하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도로써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핍박이 날로 더 심해지고 주님의 오심이 더디자 주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4절....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있다 하니....... 라고하며 불신의 마음을 가진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들도 주의 약속이 더디는 것을 보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순수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적지 않게 미혹의 길로 빠져 실족하고 유혹받는 일들이 나타 나는 것을 보고 베드로 사도는 이런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도들에게 편지 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시간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8절을 다시 읽습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루에 하루씩 더하여 천년이 되는 우리 계산법과 달리, 하나님은 천년을 단 하루처럼 여기십니다. 또한 하루를 천년처럼 참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처럼 하루 24시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건으로 시간을 계산합니다.
그래서 시편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사도베드로는 하나님의 시간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여기 '하루가 천년 같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초대교회 성도가 지금 당하고 있는 핍박과 고초 괴로움을 당하는 모습을 주님이 바라보시는 마음은 너무 안타깝고 초조해서 그 마음이 마치 하루가 천년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은 길게만 느껴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라는 말의 의미는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영혼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안타까운 시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심판의 날이 임박해 오는데 회개하지 않은 영혼들이 그것을 알지못하고 천망지축 날뛰며 세상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깝게 여기시며 한 영혼이라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주님은 조금 더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가 방주를 예비해놓고 기다리는 때가 120년이었던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방주에 들어올 것을 강권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주님의 시간은 고난을 향한 사랑의 아픔이 있는 시간이요, 참고 또 참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랑의 인내가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영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의 재림이 진정한 역사의 끝임을 잊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0-11절중반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그렇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우주의 끝이요, 다시는 회복할 기회도 없고 뉘우치고 회개할 기회도 없는, 구원의 날인 동시에 심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 날에 모든 것이 이처럼 녹아버릴 텐데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시간을 깨닫고 잊지 않고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1-13절)
첫째는 거룩한 행실로 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거룩한 행실로 살아야 합니다. 그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레위기 19:2b....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거룩한 행실로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기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 마땅히 가져야 할 생각, 마땅히 행하여야 할 행동,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심판의 날에 나의 모습을 주님앞에 보여질 때 거룩한 세마포를 입는 거룩한 행실로 살았다며 주님이 말씀하신다면 그이상 바랄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둘째는, 경건함으로 살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행실은 경건함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경건속에서 거룩한 행실이 묻여있습니다. 나눌수 없습니다. 그런데 경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이요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배의 경건함을 의미합니다. 지금 말세 지말에 하나님은 바르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드리는 자세로만 세상에서도 살아가면 곧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며 바라보는 자로써 경건함의 연습입니다.
이 땅에서 이렇게 예배의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가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밖에 없기 때문에 늘 연습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사모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사모하라는 것입니까?....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믿음은 사모하는 자세에서 그 성도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모함은 간절함이 포함됩니다. 그냥 기다림이 아닙니다. 간절함이 가슴으로 다가와야 하겠습니다. 마라나다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22:20절 말씀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주님재림을 사모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앞에 있는 자연적인 시간은 지나가면 과거의 시간으로 마감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유효의 시간입니다.
왜요!~~~ 주님을 위해 살았던 삶이기에 지나간 시간도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은 기다리며 살아 갑니다. 그래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차원놓은 시간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앞에 있는 현실의 시간들이 힘들고 어렵지만 여기에 매여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붙들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분명한 주의 강림 약속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소망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