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글/송악
장안의 화제 속에 TV연속극 ‘뿌리깊은나무’가 종영이 되었다.
구중궁궐 후궁들의 암투를 다루던 여느 사극들과는 판이한 내용으로 모처럼 수작을 본지라 여운이 길게 남는다.
소름끼치도록 리얼한 임금 이도역의 한석규, 소이역 신세경의 절제된 연기, 카리스마 넘치는 무휼 조진웅, 추노 이후 또다시 빛을 발한 강채윤의 장혁, 음험한 악인 가리온 정기문역의 윤제문을 비롯, 이신적의 안석환, 조말생의 이재용, 심종수의 한상진 등등 중견배우들의 높은 연기력 또한 드라마의 수준을 높였고, 세종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꽃미남 송중기도 합격점 이상을 얻었다는 평이다.
허나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력만으로 그토록 인기를 누렸겠는가.
훈민정음 반포 전 7일간 집현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룬 이정명이 쓴 역사추리 소설원작을 재창조한 김영현과 박상면, 두 극작가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궁궐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싼 음모, 한글을 창제하여 온 나라에 반포하려는 임금 이도와 그를 도우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세력, 즉 글자의 반포를 막고 성리학을 바탕으로 왕권을 제한하는 재상총재제(현대의 내각제와 흡사함)를 만들었던 삼봉정도전의 사상과 이상을 관철시키려는 밀본이란 반대파 사이의 대립 이야기를 매우 짜임있게 풀어내었다.
비밀조직 밀본의 본원인 정기준은 백부인 삼봉선생의 유훈을 받들어 사대부를 중심으로 조선의 체제와 질서를 지키고, 혼란의 씨앗이 될 요망한 훈민정음의 반포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겠다는 것이다.
세종 이도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에게 백부인 삼봉선생과 자신의 일족이 제거당했으니 뿌리 깊은 원한을 품는 것이야 이해가지만 정기준은 정도전이 추구했던 사상을 오해하고 있는 점이 많다.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에서 호를 얻었다는 그 문제의 인물 삼봉정도전에 대해 간략히 주목해본다.
고려 말 이색의 문하에서 충효와 예를 바탕으로 한 성리학을 배운 정도전은 동문수학한 포은정몽주와 특히 뜻이 맞아 부패한 고려사회를 성리학적 이상향으로 개혁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나 현실적 벽에 막혀 수없는 좌절과 고난을 겪기도 한다.
후에 이성계와 손잡고 역성혁명을 주도하면서는 정치적 동지였던 정몽주와도 정적으로 변한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새 왕조를 건국하려했고 정몽주는 고려 왕조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정몽주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낙마사고를 당한 틈을 타 정도전을 귀양 보내지만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유배생활중 목격한 노비와 하층민들의 참상에 분노한 삼봉은 그것이 곧 역성혁명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사대부들만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겠다.
조선국창업의 일등공신 삼봉은 시문 잡저 군사 정치 경제 법률 건축 지리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석학으로서 한양성과 경복궁의 건설 및 각 전각들의 이름을 짓는 등 조선건국의 디자이너요,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해주는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경연제도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제도 등을 핵심으로 왕권을 제한하고 현대의 내각제와 흡사한 재상총재제 즉, 영의정을 수반으로 하는 정치제제는 매우 발달된 제도임을 알겠다.
3차에 걸친 요동정벌을 계획하므로 명나라황제 주원장의 경계위험인물 1호로 찍혀 소환명령을 받았었고, 신진사대부와 개국공신들의 사병제를 개편하는 등 개혁정책으로 조준을 비롯한 개국공신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신덕왕후 소생 이방석을 세자로 추대하려한다는 음모를 받아 1398년 태조7년에 이방원의 습격으로 남은의 별장에서 살해당했다.
계급 없는 사회, 종교가 없어도 청렴한 성리학의 이념으로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하는 민본위주의 사회를 꿈꾸었던 그의 사상은 이후 조선역사에서 왕권을 무력화시키는 붕당정치로 나타나고, 그를 추종한 후학들은 기득권을 지키는 보수로 변하여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유교의 본질도 차별사회는 아니다.
공자도 서얼 태생이었다. 적서와 서얼은 물론이요 반상의 차별이 없는 사회로 되돌리려한 많은 노력들도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조선국 최고의 임금이요 민족사 최고의 성현이었던 세종대왕! 걸출한 성군이 탄생되었던 시대적 배경과 그 분의 수많은 업적 중 최 정점에 있는 한글!
남의나라 글에 매이면 정신도 사대주의에 빠지는 법! 쉬운 우리글을 만들어 우리의 얼을 지키자는 그 깊은 세종대왕의 뜻을 만분지일이라도 안다면 결코 어뤤지교육 따위는 지양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나라의 주권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매국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요, 친일 친미주의자들이 설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글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의미와 오늘날 우리들이 지켜야할 의무와 사명감!
여전히 뿌리가 깊은 나무라야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2010년 12월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으로부터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 42년간 최장수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국가원수의 반군에 의한 사살, 33년간 집권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대통령의 항복 등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선 지금도 민주화바람이 식지 않는다.
이 와중에서도 북한의 3세대에 걸친 세습을 뻔히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이 어찌 편하겠는가.
우리 역시 멀고 힘든 민주화의 여정 끝에 좀 일찍 매를 맞을 수 있었고, 서울의 봄을 노래했었음을 상기할 뿐이다.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금년에는 특히 20년 만에 온다는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러야 하는 해이다.
닥쳐올 4월의 19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는 각 정당들의 판짜기가 요란하고, 12월의 18대 대통령선거를 대비하는 잠룡들의 꿈틀거림도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를 가장 완벽한 제도라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투표할 수 있음은 얼마나 축복인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에 맞서 청춘을 바친 김근태선생의 별세 비보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과 투옥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시다 아직도 한참 일할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의 소중한 주권 투표권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기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에 반해 ‘디도스’란 저열한 수단으로 신성한 투표행위를 방해하는 현대판 ‘밀본’ 불순무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섭고 부끄러운 일인가.
드라마 말미에 신분을 낮추고 엎드린 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한가놈’의 정체가 ‘한명회’로 드러나는 반전이 있다.
훗날, 세조의 왕위찬탈을 도와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그의 붓 끝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살생부의 주인공 한명회!
작가는 도대체 무슨 의도와 어떤 암시로 그런 반전을 연출했을까?
정치보복만큼은 절대로 절대로 사라져야할 악습이다.
다가오는 양대 선거판 모두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의 장으로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메타도우, 금권, 관권, 색깔론, 지역감정조장과 편승, 따위의 비루한 전략들을 펼치는 후보자는 철저히 응징하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뿌리깊은나무’를 심고 싶다.
우리들의 손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는 유권자다.
첫댓글 우와~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십니다..가끔 드라마를 본 저는 큰 감동도 재미도 못느끼며 세종역이 너무 약하고 여리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아는만큼 보인다고 저는 아는게 없어서 별 감흥이 없었겠죠? 이번에 시상식에도 뿌리깊은 나무의 배우들이 많은 상을 받았죠. 감탄하고 갑니다.
..... 이름하여 퓨전 사극! 임금의 권위를 팽개치고 천민출신 똘복이나 소이와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제기럴 빌어먹을"을 연신 뱉어내는 캐릭터가 바로 임금 이도였지요.
두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인까지 제거당하는 무서운 정치판을 생생히 목격하고 상왕 태종의 철권앞에 숨죽이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성군으로 태어나는 멋진 캐릭터 세종임금을 연기해낸 한석규 짱!
저도 새해에는 드라마와 함께할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 봅니다
우리세대가 지나고 후세들에게 본이 되고 후세들이 잘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 돌아가고 있는 악습들을 보면 차암 걱정입니다
저도 소망합니다
다음 선거전은 잘 보고 들을수 있는 눈과 귀를 가졌으면 하고~
TV를 누군가 바보상자라고 했다지요?
전 자주는 아니지만 즐겨 보는 바보입니다.
뉴스와 시사와 특히 코미디와 풍자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금일 화요일 저녁 100분시사토론에, 어떤사람이 패널로 나온다고 메일이 왔네요.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넙~~~~~~~~~~~~~~~~~~~~~~~~~~~~~~~~~~~~~~~~~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