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269
동봉
0985외로울 고孤Solitude
0986더러울 루陋Narrow
0987적을 과寡Little
0988들을 문聞Hear
꾸러우꾸아원孤陋寡闻gulouguawen
-고루하고 과문하여 앎이적으면-
(몽매하여 남의비방 들을수밖에)
0985외로울 고孤Solitude
외로울 고孤 자는 꼴소리 문자며
이들 자子 부수에 획수는 총8획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나타내는 아들 자子와
소릿값을 나타냄과 동시에
적다는 뜻의 오이 과瓜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려서 아버지 어머니를 여의고
의지할 곳 없는 아이로서 고아의 뜻입니다
외로울 고孤에 담긴 뜻은
1. 외롭다, 의지할 데가 없다, 떨어지다, 작다
2. 멀다, 고아로 만들다, 버리다, 벌하다
3. 저버리다, 배반하다, 고루하고 무지하다
4. 불쌍히 여겨 돌보다, 염려하다, 어리석다
5. 고아, 나랏일을 하다 죽은 이의 자식
6. 늙어 자식이 없는 사람, 홀로, 하나, 외따로
7. 벼슬 이름, 나, 왕후의 겸칭, 단독 등입니다
외로울 고孤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單 : 홑 단/오랑캐 이름 선
孑 : 외로울 혈
獨 : 홀로 독 자 따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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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고정희·시인, 1948-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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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6더러울 루陋Na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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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누추함이여!
이중기
홈실댁은 아연 경지에 닿아버렸다
먼 나라 참깨 콩 고추 사다
집에 것과 섞어
강호의 뭇 고수들 몰려오는
영천장 가서
손수 지은 농사라고 내놓은 난전이 발칙하다
대번에 신원조회 끝내버린
일급 고수들
중국 물로 지었소?
어째 좀 그렇고, 하면
이 양반이 되놈 접방 살았나
조선팔도 황사바람 안 분데 어디 있던기요
촌 할마이 장사라고 깔보지 마소
그딴 값에 넘기고 손 털기엔 내가 너무 젊소
더러는 눌변으로
발칙한 세상사를 혀 차는
저 할마시 뒷모습이 갸륵하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 가계를 안다
함부로 눈 흘기지 못할 누추함이여
육두문자 끝에 터지는 서러운 파안이여
등 뒤에는
실직한 아들 둘이
범 아가리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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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울 루/누陋 자는 꼴소리 문자며
좌부방阝에 획수는 총9획입니다
언덕의 뜻을 나타내는 좌부방阝과
소릿값 더러울 루㔷가 만나 이루어졌습니다
이 더러울 누陋에 담긴 뜻으로는
1. 더럽다, 천하다
2. 못생기다, 추하다
3. 신분이 낮다
4. 볼품없다
5. 작다, 왜소하다
6. 궁벽하다
7. 좁다, 협소하다
8. 거칠다
9. 숨기다, 은닉하다 따위입니다
더러울 누陋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㔷 : 더러울 루의 옛 글자
汚 : 더러울 오/구부릴 우/팔 와
鄙 : 더러울 비/마을 비
穢 : 더러울 예
褻 : 더러울 설 따위가 있습니다
0987적을 과寡Little
적을 과寡 자는 꼴소리 문자며
갓머리宀 에 획수는 총14획입니다
집, 집안의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와
소릿값을 나타내는 동시에
의지할 데가 없다는 여름 하夏의 변형인
머리 혈頁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집안에 의지할 사람이 적은 사람으로
나중에 적다의 뜻이 되었습니다
이에 담긴 뜻으로는
1. 적다, 수량이 적다, 작다, 약하다
2. 돌보다, 돌아보다
3. 홀어머니, 과부, 늙은 과부
4. 타국 왕에게 자기가 섬기는 임금을 가리킴
5. 타국 왕 앞에서 일컫는 왕의 겸칭
5. 과인, 왕후의 자칭
이 적을 과寡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些 : 적을 사
少 : 적을 소/젊을 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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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상과부 속 터졌네
석란 허용회
해 설핏 기울어 가는 오후
운문사 가는 길
어느 황톳집 텃밭에
가랑이 벌고 있는 봉선화 자태가 안쓰럽다
쪽빛 바다를
배영으로 건너던 고추잠자리가
봉선화를 보더니 고추밭에 돌아 앉았다
봉선화는 태어난 자리
평생 그 자리에서
다듬이질 소리
밤마다 가슴으로 품어야 했다
님의 손끝 닿으면
보듬어 주려고
오롯히 감춰둔 속 내
농익은 육즙
이제
더 이상의 기다림이 급하다
봉선화의 아니무스가 발동했다
사타구니 벌겋게 달아오른 봉선화는
키발 짚고
고개 빼고
종종종 거리더니
시주승 목탁 소리에 움쭉
아차 !
툭-, 툭툭-, 투두둑-
청상과부의
여문 외로움이 쏟아져 내리자
어깃장 웃음 입에 문
잠자리의 꼬랑지가 후끈후끈 벌겋다
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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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노래寡婦歌
북망산천 머다 해도 방문 앞이 북망이라
북망산천 바래가며 짠 대닢을 벗을 삼고
송중으로 올을 삼고 만첩산중 깊은 골에
두견새 슬피 울고 사람없는 공산 진티에
외로운 이 내 몸을 어느 벗이 날 찾으리
아이답답 내 일이야 우리 부모 날 키울 제
좋은 가문 가려내어 반벨도 좋은 곳에
집안도 흥성하고 남자도 준수하고
자정있는 우리 부모 좋은 날을 가려 받어
스물 두폭 채일 밑에 네모 반듯 조지상에
장닭 암탉 마주 놓고 은촛대와 놋촛대에
우리 양인 마주 서서 청실홍실 더 놀 적에
백사화락 굳게 맺어 시든 가슴 황금되고
검은 머리 백발되고 만수무강 하쟀더니
십년 시월 모다시고 영 이별이 되었고나
0988들을 문聞H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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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문如是我聞
정호정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에 보니 놀랍다
제 모양을 갖춘 알타리무우
드물게 싹을 틔운 씨앗이
떡잎을 피우고
본잎을 피우고
잎들이 맥없이 늘어졌을 때에도
나는 어쩌지 못했다
산 밑에 있는 밭에
물을 길어다 줄 수도
물기 없는 땅에 거름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에 보니 놀랍다
알타리무우가 솜털뿌리를 거느리고 있다
산지사방 물을 찾아
양분을 찾아 헤맨
갈게손이 된 어미손을 거느리고 있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에 보니 알겠다
죽을 고비에서도
제 모양을 가꾸고 있었음
제가 들은 말을 새기며
알뿌리를 앉히고 있었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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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문聞 자는 꼴소리 문자로
귀이변耳에 획수로는 총14획입니 다
듣다의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와
소릿값 문 문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소리가 귀로 들어가다의 뜻이고
마침내 '들리다'로 정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담긴 뜻으로는
1. 듣다, 소리가 들리다, 알다, 깨우치다
2. 소문나다, 알려지다, 소식을 전하다
3. 방문하다, 냄새를 맡다, 묻다, 질문하다
4. 아뢰다, 알리다, 틈을 타다, 기회를 노리다
5. 견문, 식견, 소식, 소문, 명성, 명망
6. 식이 있는 사람 따위입니다
들을 문聞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闻 : 들을 문의 간체자
䎹 : 들을 문의 옛 글자
䎽 : 들을 문/울릴 성과 같은 자
聆 : 들을 령
聆 : 들을 영
聽 : 들을 청 자 따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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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과누문孤寡陋聞
동봉東峰
1. 고孤
어려서 양친을 여읨이 고孤입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으시니
이보다 더 외로운 외로움孤이 있겠습니까
장년杖年의 나이에 올랐으나
자식이 생기지 않음이 고孤입니다
자식의 인연이란 소중하여
부부의 인연으로도 쉽지가 않습니다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
등 긁어瓜줄 자녀孑가 없음이 고孤입니다
2. 과寡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니
남은 아내는 과부寡婦가 되었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자더니
아내가 먼저 저승길로 떠나고
남은 남편이 과부寡夫가 되었습니다
과부寡婦란 말은 들었으나
과부寡夫란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요
남편이 떠나간 뒤 뒤따르지 않은 아내를
미망인未亡人이라 부르듯이
아내가 떠나간 뒤 남아있는 남편도
함께 죽지 못한 사람未亡人일 것입니다
3. 누陋
불구不垢 = 더럽지도 아니하고
부정不淨 = 깨끗하지 아니하며
불생不生 = 생하지도 아니하고
불멸不滅 = 멸하지도 아니하며
부증不增 = 늘어나지 아니하고
불감不減 = 줄어들지 아니하네
깨끗하고 더러움의 실체가 있을까요
생하고 멸함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늘고 줌이란 게 과연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세계에 연연한 까닭에
생멸이 있고 증감이 있고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을뿐입니다
눈의 세계를 벗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부처와 중생 경계를 가르는 척도일 것입니다
4. 문聞
하나님의 말씀說이 있기 이전에
하마 예수님의 들음聞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이 있기 이전에
이미 중생의 들음이 먼저 있었습니다
들음이 말씀보다 먼저인 곳에
거기에 진정한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관음의 설법 이전에 선재의 들음이 있었습니다
들음은 봄보다 분별이 적습니다
봄Sightseeing에서 봄觀은 빛光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분별을 내게 마련입니다
단풍철에는 내장산 화담숲이 볼거리가 많고
눈내리는 계절에는 설악이 으뜸입니다
단풍지고 눈 내리기 전이라면
아름답던 화담숲 내장산도 볼 것이 없습니다
들음은 봄보다 분별이 적습니다
눈감고 앉아 자연의 소리를 듣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어느 계절이 좋던가요
봄 여름이던가요
가을 겨울이던가요
눈 감고 듣는 소리는 빗소리조차 명곡입니다
들음聞이 적으寡면 고루孤陋합니다
고루하면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음은 철이 덜 든 정신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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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제목이 '고루과문孤陋寡聞'이 아니고
어찌하여 '고과누문孤寡陋聞'이냐고요?
고孤가 부모와 자식의 외로움이라면
과寡는 짝없는 외로움인 까닭이고
누陋가 보이는 세계를 표현함이라면
문聞은 들음의 세계를 나타낸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는 곧 '섞임문화'요
시를 쓴 시인의 마음 잣대일뿐입니다
저우씽스는 자신을 나무랍니다
양우띠梁武帝의 미움을 사 죽을 고비에서
회생의 과제로《千字文》이 주어집니다
주어진 과제를 가까스로 이수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학덕을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내가 진작에 많이 들었더라면
이렇게 고루하지는 않았을 텐데'라고요
저우씽스의 겸손을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학문하는 자의 귀감이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셋째도 겸손입니다
11/21/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