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十 離色離相分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佛(불)을 可以具足色身(가이구족색신)으로 見不(견부)아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하 如來(여래)를 不應以具足色身(불응이구족색신)으로 見(견)이니이다 何以故(하이고)오 如來說具足色身(여래설구족색신)이 卽非具足色身(즉비구족색신)이요 是名具足色身(시명구족색신)이니이다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如來(여래)를 可以具足諸相(가이구족제상)으로 見不(견부)아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하 如來(여래)를 不應以具足諸相(불응이구족제상)으로 見(견)이니 何以故(하이고)오 如來說諸相具足(여래설제상구족)은 卽非具足(즉비구족)이니 是名諸相具足(시명제상구족)이니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를 구족한 육신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한 육신으로 볼 수 없사옵니다. 왜그러냐 하오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구족한 육신이 곧 구족한 육신이 아니라, 이름이 구족한 육신이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구족한 몸매로 볼 수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한 몸매로 볼 수 없사옵니다. 왜 그러냐 하오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몸매의 구족은 곧 구족이 아니옵고 그 이름이 몸매의 구족이기 때문이옵니다.』
第二十 離色離相分--색상을 여의다
[科 解]
모든 부처님은 다 무위법을 증득했기 때문에 부처라 하는 것이고 상호를 성취했기 때문에 부처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거울이 아무런 티도 없어서 모든 물건을 비칠 수 있는 이치와 같이 여래의 법신은 필경은 육신이 아닌 것이며 따라서 상호로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상호 두가지가 부처 아닌 것도 아니어서 법신을 여읜 것도 아니므로 여래는 색신이 아니라 법신이란 뜻으로 「색신이 아니라」했고 또한 색상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이름을 구족할 색신 . 구족할 제상이라 한다』고 하셨던 것이니 색상을 여읜 법신의 여래를 말씀한 대문이란 뜻으로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인 것입니다.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佛 可以具足色身 見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色身見 何以故 如來說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解 義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냐, 부처님은 가히 구족색신으로 볼 수 있느냐. 32상과 80종호가 구족한 그런 색신으로 부처님을 볼 수 있느냐.』 『아니옵니다.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거룩한 몸의 구족한 모습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옵니다. 왜 그러냐 하오면 여래께서 구족색신이라고 설명하시는 것은 곧 그게 구족색신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거룩하셔서 눈썹사이에 백호상(白毫相) 금빛으로 된 몸이나 머리 위에 열 길의 광명이 항상 따라 있는 등의 거룩한 32상이나 80종호는 그것은 오직 육체적인 것이고 현상적인 것으로 구족한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구족색신이라 말씀하신 것이옵니다.』
그것은 물질로 있는 것이고 환으로 있는 것이므로 그런 내용은 참으로 구족한 게 아니고 이 말 듣는 이 마음자리만이 참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환으로 부처님을 보려고 해선 안됩니다. 부처님께서 구족색신이라고 설명하신 것은 그게 사실로 있는 구족색신이 아니고 불생불멸하는 구족색신이 아니므로 아무리 부처님의 몸일지라도 물질적 요소를 갖추면 있고 흩어지면 없고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신(法身)만이 상주불멸(常住不滅)하고,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은 다 우리 중생 몸뚱이나 한가지로 생멸합니다. 그러니 환으로 봐서도 그렇고 모양으로 설명되는 것은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의 존재이므로 그런 것으로는 부처님 비슷한 것도 볼 수 없습니다.
[原 文] :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可以具足諸相 見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諸相見 何以故 如來說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
解 義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를 가히 구족제상으로 볼 수 있느냐.』 아까는 몸뚱이를 말한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 묘하게 생긴 온갖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는 뜻이니 이것은 좀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뜯어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수보리존자는 『안될 말씀이옵니다. 여래를 구족제상으로는 볼 수 없사옵니다. 왜 그러냐 하오면 부처님께서 눈은 어떻고 코는 어떻고 살결은 어떻고 손가락 발가락은 어떻고 낱낱이 모두 설명을 하셨는데 그런 구족상이란 참말로 있는 구족상이 아니옵니다. 참말로 눈이라고 할 만한 눈이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렇게 생긴 눈은 없고 그렇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도 없사옵니다. 그런걸 구족한 상이라 하옵니다.』
그렇게 별로 오래지 않은 왜정 때 한량으로 잘 놀고 하던 분이 출가했는데 이 이는 저녁 9시가 되어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릅니다. 육자배기도 하고 온갖 노래를 밤새도록 하는데 아침에 깨어나면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것도 심리학적으로 전부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전혀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닌데 몸뚱이 저 혼자는 그렇게 못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몸이 아무리 거룩해서 광명이 나고 금빛으로 빛난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육신 그것은 물질에 불과하고 허깨비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니 그러므로 그 색상(色相)을 가지고 부처님을 볼 수는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중생들은 색상에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과학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는 법에도 걸립니다. 그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다」하면 중생들은 그 말에 떨어지기 때문에 그 말에도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겉모양이 좋다고 눈에 걸려 넘어지고 귀에 걸려 넘어지고 맛에 걸리고 몸에 걸리고 전부 이럽니다. 그래서 자꾸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십니다. 우리의 신념 . 사상이 확고부동해지고 어떤 방해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술 보면 마시고 싶은 사람은 벌써 술에 걸린 사람이고, 남녀끼리 서로 만나면 좋아지고 싶은 사람은 여자한테 걸린 사람이니 그러면 그 마음에 벌써 애착이 있어서 인과가 있는 사람이므로 인과를 초월한 무괘애(無罣碍)가 아닙니다. 술에도 밥에도 옷에도 남자한테도 여자한테도 명예에도 돈에도 무엇에도 뜻이 없고 세상 만사에 뜻이 없는 것이 그게 무괘애입니다. 이것을 잘못 해석해서 고기 생기면 고기 먹고 안 생기면 억지로 먹으려고 할 것도 없으며, 술도 생기면 마시고 안 생기면 안 먹고 이런 것을 무괘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한테 하면 말씀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게 먹은 게 안 먹은 거고 사람을 죽여도 죽인 게 아닙니다.
그러니 화엄경(華嚴經) 53 선지식 가운데 어떤 보살은 국왕인데 선재동자가 그분을 한 번 만나 보니 아주 폭군이 돼 가지고 말 한마디만 잘 못해도 목을 베고 하루에도 수백명을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선재동자가 보니 도무지 선지식이 아닌 것 같아서 「아무래도 마귀굴로 내가 잘못 찾아왔구나.」하고 의심하다가 먼저 선지식으로부터 「그렇게 의심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법을 물으라.」는 당부를 재차 듣고 할 수 없이 들어가서 절을 하고는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무량삼매를 깨달을 수 있는 큰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래 놓고 보니 참말로 선지식임을 깨닫고는 「그 중생 제도하는 데 가지가지 방법이 있겠지마는 어째서 보살님께서는 그렇게 사람을 쉽게 죽여야 되겠습니까.」그러니까 그 보살님이 웃으면서 「너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내가 살인 안 하는 사람이다. 내가 금생 뿐 아니라 내생에도 과거에도 백천만생을 돌아다녀도 개미 한 번 밟아 본 적이 없느니라.」 「그러면 지금 이렇게 살생을 하시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일년만 해도 사람이 여러 수십만명이 죽는데 그래도 안 죽였다 하시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것은 모두 내 화신이다. 내 화신이 남의 집 아들로 태어났고 딸로 태어났고 그래서 80년전에 태어나서 지금 80세가 된 것도 있고 그러하니라.」
시간 . 공간을 초월한 자리니까 그 보살님으로 봐서는 지금 곧 하고 앉아 있는 건데 우리가 보기에는 남의 집 아들이 80년 되었으니까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그 보살이 그렇게 화신을 보내서 역사적인 인간이 되어가지고 일만 저지릅니다. 부모한테 불효하고 국가에 위법하고 탐진치 해탈 안 하면 그걸 잡아다가 사정 없이 목을 베어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중생들이 비린내나는 피가 푹푹 쏟아지는 것을 보도록 만들은 눈가림입니다. 그러니 이게 다 환입니다.
불 보살님 경계에서는 이와 같이 마음이 색상(色相)을 다 떠나 있기 때문에 육신이나 현상계를 자유자재로 전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 색상이 아닌 말 듣고 생각하고 하는 주체, 마음자리인 법신을 확실하게 깨달아서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를 참으로 본다는 것은 곧 자기의 법신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32상 80종호(種好)를 가지고 알 수 없으니 그것은 법신의 그림자이고 마음의 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