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8월29일~9월7일(목)의 일기는 컴퓨터 클릭을 잘못하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다.
2017년9월8일(금)맑음
오후에 대구 관오사로 가다. 오후4시경 대구백화점 11층 스카이라운지에 앉아서 지우스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봉선사 객실에 묵고 있는 각범 수좌로부터 비보가 들려왔다. 명고스님이 돌연 입적했다는 것이다. 평소 지병이 있어 근근이 버텨왔는데 이번 하안거 동안 힘든 시간을 잘 지내 오다가 해제하고 한 달 사이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신심을 통제하기 힘들어 수행자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수행자는 세상의 짐이 되기보다는 세상의 선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지만, 명고스님이 그렇게 가신 것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망연자실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눈을 감는다. 광제선사와 동초선사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다. 지우스님 만나 차를 나누고 절로 돌아오다. 명고선사여. 오고감이 어찌 이리도 빠르고 급작스러운가? 스님이 웃을 때는 세상이 연꽃으로 피어났건만 스님이 아파서 떠날 때는 절대고독 속에 쓸쓸히 가셨음이라. 떠날 자리를 정하고 산 속으로 걸어가는 마지막 걸음 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비감했으랴.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운악산이 엎어지고 바닷물이 솟구치는 듯 비장감이 파도친다. 그대 먼저 가시니 우리 뒤따라가리다. 하얀 연꽃을 밟고 가시어 진리의 땅에서 다시 만나길.
2017년9월9일(토)맑음
오전에 미얀마 노동자들이 보시하여 장만한 포교당 건물을 보러 지우스님과 함께 가다. 위세이타 스님과 그의 상좌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200명가량의 미얀마 불자들은 불심이 돈독하여 각자 한 달 월급을 몽땅 보시하여 2억에 가까운 돈을 마련하여 주택가의 건물을 매입했다고 한다. 돈을 벌려고 먼 타국에 온 처지의 노동자로서 한 달 월급을 통째로 보시한다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불자들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미얀마 불자들의 신심을 보여주는 일이라 감동적이다. 그런데 미얀마 노동자들의 모임을 이끄는 지도법사이신 위세이타 스님이 본국에서 설법하러 다니면서 모은 보시를 보탰다는 것이다. 그 신도에 그 스님이고, 그 스님에 그 신도들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를 사랑하고 승가를 보호한다. 미얀마 승가는 불자를 사랑하고 보호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가 불교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의 불교와 대비되면서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회가 있다.
오후2시에 관오사 초기불교 공부모임이 시작하다. 고운사 화엄불교대학원장이신 등현스님이 강의해주시다. 참석하신 스님들 간의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상수멸정sanna-vedayita-nirodha-samapatti과 멸진정nirodha-samapatti의 명칭이 다르게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vedayita와 vedana의 차이는 무엇인가? 五蘊오온의 각 지분 사이는 연기적 관계인가, 아니면 인연관계에 있는가? 만약 연기적관계에 있다고 본다면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 사이의 생멸과정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고익진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오온의 각 지분 사이는 연기로 볼 게 아니라 인연으로 설명해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더 타당성이 있지 아니한가? 비상비비상처정에서 sanna샹냐와 sankhara상카라의 역할은 무엇인가? 상수멸정에서 vinnana위냐나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상수멸정과 nibbana닙바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는 명고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하러 봉선사로 올라가야 하기에 오늘 공부는 일찍 마치자고 했다. 스님들이 동의하여 6시경에 마무리했다. 마침 통도사 극락암에서 일연스님이 차를 가지고 관오사에 들렀기에 선일스님과 동승하여 봉선사까지 장거리를 운전하는 노고를 감수하셨다. 밤길을 달려 봉선사 보림선원 객실에 피로해진 해골을 눕히니 밤 11시다.
2017년9월10일(일)흐림
봉선사 선원 객실에서 아침을 맞는다. 해제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마당에는 풀이 나있고 객실은 어질러져 있다. 각범스님 방에서 차를 나누면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듣다. 9시에 봉선사 본사 큰 마당에서 명고선사 영결식이 봉행된다. 따뜻한 눈길로 마주하던 그 얼굴이 영정사진이 되어 제단에 놓여있는 걸 보니 삶과 죽음이 손바닥 뒤집는 사이라는 걸 보여준다. 금성스님이 명고스님의 행장을 낭독하고, 스님의 유체를 제일 처음 발견한 강주 정원스님의 영결사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눈물을 참을래야 참을 수 없어 가사에 눈물이 떨어져 얼룩진다. 이렇게 가시려고 그렇게 다정했습니까? 월운스님의 제자들의 문도회장이신 鐵眼철안스님이 유언을 소개한다. <유언: 몸이 너무 아파요. 남긴 것은 스님들이 나누어 가지세요.> 단 두 줄이다. 구질구질한 말이 없다. 있는 그대로 느낌만 말했다. 몸이 너무 아파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독백이다. 나는 그의 소리 없는 독백에 귀먹고 눈멀어 따뜻한 대답 한마디 해줄 수 없었다. 스님들이 흔히 말하길 올 때도 혼자서 오고 갈 때도 혼자가 간다지만 이렇듯 무심하고 냉정하단 말인가? 가장 외롭고 괴로운 때를 겪는 스님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各自圖生각자도생이라 죽든지 살든지, 모두 저 혼자 알아서 수단껏 살아가라는 것인가? 스님들끼리의 정이란 이렇듯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인가? 스님은 유품으로 보따리 두 개를 남겼다. 한 개는 상좌인 서호스님에게, 한 개는 종정이신 진제선사께 드리는 것이다. 스님은 평소 진제선사를 존경하며 따랐다. 죽기 일주일 전에 종정스님을 찾아뵈었는데 큰스님께서 자기 슬하에 와서 지내라 하셨다고 한다. 명고스님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짐을 싸러 봉선사로 내려온 후 자기 방에 칩거하던 중 돌연 입적한 것이다. 末後말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스님의 속가 누나와 여동생이 슬피 운다.
다비는 천마산 보광사에서 봉행하다. 연화대에 스님의 법구가 안치되자 수좌스님 여덟 분이 불붙이는 막대기를 들고 연화대에 불을 붙인다. 맏 사형 되는 철안스님이 “스님, 불 들어갑니다!” 고 외친다. 삽시간에 불이 붙으면서 누런 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오른다. 곧 붉은 불길이 치솟아 연화대를 삼킨다. 불의 날카로운 혓바닥이 하늘을 핥으면서 진실을 토로한다. 너희들 인간들이여, 삶과 죽음이 불꽃사이에 있나니, 살아 있을 때 온전히 살아라. 죽음은 삶속에 이미 깃들어 있었는데 너희가 무지하여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을 생각하는구나. 죽음이 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죽음이 오기 전에 죽음을 보고 알아야지, 이제 너무 늦었다. 살아생전에 죽음을 보고 죽음을 알라.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온 메시지이다. 명고스님은 갔다. 1994년부터 알고 지내던 가슴이 통했던 도반은 영영 갔다.
2017년9월11일(월)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피곤하다. 오후에 해성과 명성보살님과 공양을 같이 하다. 모두 명고스님의 입적을 슬퍼한다. 저녁 강의 <삶속에서 열반을 실현하다>라는 주제로 이야기 하다. 우리의 관심이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주변에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생명들의 몸짓을 알아차릴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의 편안에 갇혀있는 동안 사라져간 이웃과 생명이 그 얼마인가? 가까이는 세월호의 아이들과 멀리는 파괴되어가는 지구환경까지 모두 우리가 눈을 뜨고도 보지 않고, 귀를 열어놓고도 듣지 않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의 무관심과 냉담함은 얼마나 잔인한가?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인연이라면, 우리 불자들은 누구보다도 인연에 민감하고 깨어있어야 할 터인데도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틱낫한 스님께서 말하기를 불자의 가슴은 세상의 고통과 항상 연결되어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고통을 살피지 못하고 도우지 못한 미안함에 용서를 빌어야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대가 보살의 원력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리라.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부조리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자임하고 자신의 할 일을 다 못했다며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보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군가 아파한다면 나도 당연히 그 아픔을 느껴야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의 무자비와 무지와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을 반성해야 한다. 내 눈이 내 앞만 보고 있는 사이 꽃들은 떨어지고 나비도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떠나가고 시간도 흘러간다. 정든 것들이 흩어진 뒤 홀로 남은 자신을 바라보겠지. 나를 바라보아줄 눈은 어디에 있을까? 아일랜드의 5인조 보칼그룹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I`ll see you again을 들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다시 강의를 계속하여 마무리 하다.
2017년9월12일(화)맑음
오전에 요가 수련을 같이 하다. 요가 8지칙을 설명하고 요가 동작을 수련하다. 동중정, 정중동을 체험하면서 동정간에 sati를 유지한다. 요가 수련으로 근접삼매까지 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 Tapas svadhyaya isvara pranidhana kriya yoga. 열정을 가지고 내면을 응시하며서 진리를 파지하고 심신을 정화하는 요가를 수련하라. 부처님께 드리는 예경으로 시작해서 회향기도로서 마무리하다. 크리슈나다스Krishna Das(1947~ )의 챈팅을 들으면서 쉬다. 연경보살님이 점심 공양을 보시하여 함께 공양하다. 선원으로 돌아와 히비스커스 차를 마시고 헤어지다.
저녁에 위빠사나 수행하다. 사념처에 대해 설명하다. 에카르트 톨레Eckhart Tolle(1948~ )가 어떻게 우울증에서 자유로워졌는지를 이야기 해주다. 보면 사라진다. 바라보면 벗어난다. 바라봄이 변화를 일으킨다. 바라봄 attention의 묘술이다.
첫댓글 스님께서 마음 통하셨던 도반님을 보내신 그아픔을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저희들은 스님이 너무 걱정이 되어 무사히 오시기만 기다렸습니다.
스님!
명고스님께서 원력이 무엇이었을까요?
못다하신 그원력을 힘을 모아 성취하시도록 기원해봅니다.
부디 아픔없는 세상이 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어느해 여름 무더운 오후,- 수정사 공양간 마당 앞에서 반팔 런닝 바람으로 급하게 뛰어오시다 저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저는 합장, 스님은 놀라시고-명고스님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원담스님 덕분에 이번생에 스님을 만나서 인연되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공부를 안한 탓에 스님뵈러가면 변변찮게 할말은 없었지만 그저 뵐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습니다.스님들 냉정하신거야 알지만, 어찌그리....스님의 선택앞에 아무말도 할수가 없습니다.그래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원담스님...
명고스님...감사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모든 인연에 충실하지 못해 눈물이 납니다. 모든 연기로 연결되어 있는 일체중생의 아픔을 다 품지 못해 눈물이 납니다. 그런 마음을 내지 못해 눈물이 납니다. 명고스님...안녕히 가십시오...환한 웃음이 머리속에 쨍쨍합니다. _()()()_
세상의 오지였던 금성산 골짜기.
하늘이 깻잎 한 장 만큼만 보이던 수정사.
그 낮고 작은, 오두막 같던 주지실.
달빛에 젖던 그 밤, 소쩍새 맑게 울던 밤.
원담스님,
명고스님,
일광스님,
일진스님...
다담 나누시던 그 밤.
어느 신선들께서 잠시 머무셨나요.
꿈이었던 걸까요.
그리운 꿈이였어요.
그리운 분들.
따뜻한 차를 우려서 보온병에 담아 저희들 멀리서 왔다고 사랑과 정성담아 주시던 명고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했었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면서 반겨주시는 모습이 아직도 가득한데... 눈물이 나네요.
모두에게 특별했던 명고스님.
저에게 천일기도 큰숙제를 남기시고 정말정말 열심히 히루도 빠지지않고 천일기도 마치게해주신명고스님.
다음생에 또 인연이 이어질꺼라 믿습니다.
인연이 여기서 끝이 아니기에 감사한마음 담고 정신바짝 차려야겠습니다.
기적이 있다면 명고스님의 다정함이 가득한 미소를 다시한번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