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낙랑군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요서지방인 북경 동쪽지방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백제가 낙랑과 말갈에 시달렸다고 기록된 말갈의 정체는 고구려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백제가 야금야금 먹어치운 마한은 학계에서 말하는것 처럼 지금의 충청 전라도 지방에 있었다고 보지않는다. 결국 멸망한 마한의 잔여세력이 남부로 이동하였다면 모를일이다.
학계에서도 충청남도 공주 수촌리에서 발굴된 마한의 수장이라고 일컬은 목곽묘 및 석실묘도 상당한 부장품은 결국은 3~4세기때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마한의 수장것이라기 보다는 먼후손의 것으로 지역의 세력가로 보여진다.
온조왕6년(BC13)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侵軼疆境, 少有寧曰.况今妖祥屢見, 國母弃, 勢不自安. 必將遷國. 予昨出巡, 觀漢水之南, 圡壤膏腴. 冝都於彼, 以圖久安之計.”
나라의 동쪽에 낙랑군이있고 북쪽에 말갈이있다. 강토가 자주 침략당하여 정세가 불안하고 모후까지돌아가시니 나라를 옮겨야겠다.한수의 남쪽을 보니 토양이 비옥하여 장차 도읍을 옮겨 안녕을 구하여야 하겟다.
온조왕13년 (BC6)
八月, 遣使馬韓, 告遷都. 遂畫定疆埸, 北至浿河, 南限熊川, 西窮大海, 東極走壤.
8월에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을 알렸다. 마침내 국토의 영역을 확정하였으니 북으로는 패하(浿河)에 이르고, 남으로는 웅천(熊川)이 경계이며, 서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으로는 주양(走壤)에 이르렀다.
이병도가 획정한 패하가 현재의 황해도 예성강이라는 비정은 맞지않는다. 기록에 나오는 탕정성을 웅천주에 소속된 온양으로 비정한 것도 영토이동개념으로 합리적이지 않다. 운영자는 웅악주가 있는 요녕성 금주 지방으로 본다.
온조왕24년 (6)
二十四年, 秋七月, 王作熊川柵. 馬韓王遣使責讓曰,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其待王不爲不厚. 冝思有以報之, 今以國完民聚, 謂莫與我敵, 大設城池, 侵犯我封疆, 其如義何.” 王慙, 遂壞其柵.
“왕(온조)이 처음 왔을때 발 디딜 곳이 없어 내가 동북쪽 100리의 땅을 내주었는데…이제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이 모여들자 ‘나와 대적할 자 없다’고 생각해…우리 강역을 침범하니 이 어찌 의리라 하겠는가
온조왕26년 (8)
二十六年, 秋七月, 王曰, “馬韓漸弱, 上下離心, 其勢不能又.儻爲他所并, 則脣亡齒寒, 悔不可及. 不如先人而取之, 以免後艱.”
“마한은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다. 우리가 아닌 다른 나라가 병합하면 순망치한 격이니 우리가 먼저 치는 편이 낫다.”
온조왕26년 (8)
冬十月, 王出師, 陽言田獵, 潛襲馬韓. 遂并其國邑, 唯圎山·錦峴二城, 固守不下.
왕이 사냥한다 겉으로 말하고 군사를 일으켜 마한을 몰래 공격하였다. 그 국읍을 병합하였지만 원산과 금현성만이 함락되지 않았다.
온조왕27년 (9)
二十七年, 夏四月, 二城降. 移其民於漢山之北. 馬韓遂滅.
원산성과 금현성이 항복하자 그 백성을 한산 북쪽으로 옮겼다. 마한이 이내 망하였다.
온조왕은 사냥을 빙자하여 군대를 일으켰으며, 이듬해(AD 8년) 마침내 마한을 멸망시킨다. 이것이 삼국사기에 나온 백제의 흥기와 마한의 쇠망에 관한 기록이다. 한산을 지금의 서울지방으로 보고있는 학계의 비정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틀어진다. 백제가 서울에 있다가 패한 마한세력을 서울 이북으로 보낸다?
결국 한산이 서울이라면 백제는 그이북에 있다가 망한 마한세력을 남쪽으로 쫒아 보내는것이 옳다. 그래야 마한이 지금의 충청 전라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할수 있는것이다.
온조왕34년 (16)
三十四年, 冬十月, 馬韓舊將周勤, 據牛谷城叛. 王躬帥兵五千討之. 周勤自經. 腰斬其尸, 并誅其妻子.
마한의 장수 주근이 우곡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왕이 병사5천을 이끌고 토벌하였다. 그시체의 허리를 자르고 처자는 목 베었다.
왕이 직접 5천군사를 이끌고 진압작전을 하였다면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반란이라고 보여진다.
온조왕36년 (18)
三十六年, 秋七月, 築湯井城, 分大豆城民戸居之.
탕정성을 쌓고 대두성에 민호를 나누어 살게했다.
마한은 백제가 강성해지면서 점차 그 영역이 축소되면서 그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보는게 합리적이다.
심제.
첫댓글 나라의 동쪽에 낙랑(군)이 있고... ? => 나라의 동쪽에 낙랑(국)이 있고.....
여기에 나타나는 말갈은
북부여 말기부터 순노 땅의 남부 즉 남옥저를 가지려고 애쓰던 그 말갈로서
汗水 및 黃河 및 엄리수의 최하류지역 등에 흩어져 살기를 시작한 말갈로
온조 당시의 말갈은 <추모경>에 기록된 바로 그 말갈일 것으로 봅니다.
카페지기님! 새해에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