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 손원평 / 은행나무
전작 [아몬드]가 너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기 때문일까? 손원평이라는 이름을 목록에서 보는 순간 대여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예진 몰래 어린 송아지를 팔아 버린 아버지가 건넨 선물 꾸러미에 들어 있던 프리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예진이 주변을 정리한 후 방문한 완구점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프리즘이 예진의 발에 떨어져 고통을 안겨준 뒤로 프리즘과 예진과의 인연이 다한 줄 알았는데, 프리즘과의 재회는 그가 벌려놓은 상처들을 봉합하면서 이루어진다. 이제 그의 삶의 내면은 깊어진 것인가!
어쩌면 인생은 프리즘을 통해 펼쳐진 세상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한 세상의 색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알아가면서 세상의 참 아름다움이란 펼쳐진 형형색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품어내는 가지각색의 색이 서로 어울리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리라. 내가 하나의 프리즘이며, 프리즘으로 살아갈 때 나의 인생과 나와 연결된 인생이 풍만하게 채워지고 그럴 때 우리는 참사랑을 맛보게 된다.
연인인 듯 연인이 아닌 듯, 부부인 듯 부부가 아닌 듯이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작가는 잘라내라고 주문한다. 변화를 꾀한다면 정리하라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변화시켜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버리고 잘라내는 것이었다. 59
나를 깎고 다듬어야 프리즘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스펙트럼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복잡한 사정을 듣고 담담하게 무의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판단하지 못하면 일이 복잡하게 된다. 지혜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필요 없이 읽을 수 있는 연애소설이다.
산산조각 난 마음을 들키는 것보다 차라리 오해받는 편이 나았다. 18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짝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61
성서에 소금과 빛이 되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런데 소금이나 빛도 그 쓰임새가 바르지 않으면 주변에 아픔과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적극적이지만 타인은 위해서는 보다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소설과는 관계없는 생각을 해본다.
잡학 하나, 우리가 무지개 색을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으로 구별하고, 어릴 때는 그렇게 그리곤 한다. 하지만 무지개 색은 몇 개로 한정하여 말할 수 없다. 사람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랑도 미움도.... 오늘도 내일도......
첫댓글 단순 연애소설 같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손평원 작가도 백작가와 함께 관심대상으로 일단 접수했습니다. 늘 좋은 작가들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단순하게 표현했나요?
작가와 book Latte님께 죄송....
@평상심 아니에요! 댓글을 단다는게 제가 읽지도 않고 감히 평하는 무례를 범하고 말았네요. 제가 죄송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