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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척청록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풀씨
백두산의 첫째날
새벽 2시30분 대장님을 비롯한 24명의 회원들은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5시15분 용인휴게소에 들려 아침식사를 하고 영종대교기념관에서 잠시
쉼을 갖고 공항에 도착하니 7시15분이다.
혜초여행사에서 나온 현 가이드를 만나 수하물을 붙이고 비행기에 탑승
10시에 이룩하여 푸른창공을 뚫고 구름위로 1시간 45분을 날아 11시15
분에 중국 땅인 장춘공항에 착륙했다.
장춘은 국제공항이 있는 중국서 꽤 큰 도시이며 옛날엔 만주국에 속했
으며 백두산에서 가까운 곳이다.
4~5년 전만해도 장춘공항에서 연길공항까지 비행기로 바꾸어 타고 연길
에서 버스를 타고 백두산을 올랐는데 장춘서 연길까지 국내선이 없어졌다.
송강하로 가기 위해 중간서 중식을 하고 6시간을 만주벌판을 달려야한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는 옥수수 밭이 초원을 이루고 있으나 기계도 없이
인해전술로 농사를 지어 생산된 옥수수로 가축을 위한 사료로 쓰인다고
한다.
우리 일행들은 중국의 조선족 가이드를 만나 그가 이끄는 대로 코스를
옮기며 계획된 일정대로 움직였다.
2시간을 만주벌판의 고속도로를 달려 중식을 했다.
중국은 자본주의의 개방적인 열풍이 불어 고속도로를 사방으로 뻗치며
길을 다져나가고 있음이 보인다.
만주벌판인 이도백하에는 미인송이 늘씬하게 쭉쭉 뻗어 하늘을 덮었다.
여기의 미인송 또는 장백송은 한그루씩 호적이 있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고 국가가 보호하고 인정하는 나무다.
명월 저수지를 따라 구불렁 거리며 올라서는데 나무가 차로에 넘어져
있다 어제 새벽까지 천둥 번개 비가 왔다고 한다.
끝도 없이 뻗은 고속도로 위에는 청명한 하늘에 그림처럼 이쁜 구름이
걸쳐져 멋진 일기를 선보였다.
그렇게 6시간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살짝 지루함속에 송강하에서
저녁을 먹고 5분 거리를 걸어 산강호텔에 당도. 여장을 풀었다.
특급호텔은 아니었어도 그럭저럭 깨끗하게 정돈되어 편히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내일 백두산 트레킹을 위해 오늘 일찍 잠자리에 들어줘야 한다.
2009년 6월 25일
둘째날
새벽부터 좋은 일기에 맘껏 기대감이 앞서 모두들 나누어주는 도시락
을 받아 5시50분 셔틀버스를 탔다.
어제 저녁에 지나왔던 이도백하를 지나 시원하게 뻗어있는 고속도로를
달려 8시30분 장백산 입구에 도착.
간단하게 조반을 한다고 했는데 어제처럼 코스로 수없이 이지가지 먹
거리가 나온다. 장백산이라고 크게 쓰여 진 입구에는 줄을 지어 한국인
들의 행사라도 있는 듯 많은 인파들이 등산복차림으로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9시30분 다시금 기다리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다른 일행들과 섞이어 구불거리며 5호경계비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아직도 잔설이 덮혀져 있는 백두산의 풍경이 보였다.
급한 마음에 디카에 담아 보려고 버스 안에서 분주했었다.
주차장에는 버스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 틈바구니로 중국
인들은 노약자나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수입을 만들
려고 2인1조씩 가마를 만들어 경계비까지 태워다주며 꽤 많은 요금을
받는다. 은근히 공안들이 텃세를 부리듯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우린 3박4일이란 날 동안 백두산트레킹을 목적으로 왔기에 오늘의 산
행이 가장 하이라이트가 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두산은 2500m이상의 봉이 16개로 둘러싸여 있고 그중에도 중국에 7
개봉 북쪽에 6개봉이며 3개의 봉은 국경에 있으며 그중 가장 높은 봉
이 북쪽에 있는 장군봉(2750m)이다.
5호 경계비를 오르며 뒤돌아보니 넓게 펼쳐진 광활한 녹색.. 백두의
평원이 만들어 낸 신비스러울 만큼 웅장한 백두.
짙푸른 물감을 덮어 쓴 채 숱한 봉들로 둘러 쌓여진 백두의 천지가
시야에 가득 들어오며 온몸은 요동치 않고 잠시 동안 멈춰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나고 생겨진 일들 중 이렇게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찾는 사람들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허느적 거리게 만들 수 있
을까. 저 멀리 북쪽의 장군봉이 자그마하게 보여 진다.
백두산천지는 둘레가 14.4km이고 최고소심이 384m이다.
5호와 6호 경계비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중국도 나뉘어 관리한다.
5호 경계비로 오르는 계단은 1297개이며 일행은 단체사진과 개인사진
을 부지런히 찍는다
마천루 능선을 따라 걷는 사람의 모습이 바람이 불면 날릴 것 같은
위험한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움직이며 인간 띠
를 만들어 끝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왜 사람들은 자연의 작품세계 속에 자신을 세워두려고 할까?
내게는 살짝 공포감 마져 느껴진다.
청석봉에서 바라보는 천지의 조망은 눈길을 뗄 수 없게 했다.
청석봉의 절벽을 돌아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끝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길로 자그마한 돌이 굴러 떨어지며 밑에 내려가는 사람
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했다.
아슬아슬한 청석봉을 내려와 한허계곡에서 중식을 했다. 야생화화원
인가.. 위에서 조심스레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찔하다.
고산에서의 초원의 향연은 푸르름 속에 천지의 자태를 휘 감싸고
천지는 평원의 화려함을 잠시도 놓지 않고 품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진담스런 농담을 만들어 냈다.
백두산은 백번 왔다 두 번 밖에 천지를 못 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라고..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도 부르며 화산분출로 인해 형성되었
으며 70%는 강수량이고 30%는 땅에서 쏟아 오른다.
백색의 부석이 얹혀 져 마치 흰머리 같다하여 백두산이라고 부른다.
10월부터 6월까지는 천지는 보통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중식을 끝내고 잠시 쉼을 갖고 백운봉을 향해 올라야한다.
구름이 몰려오는 듯 하더니 빗방울이 약간 뿌려준다.
금방 햇살로 눈부시다가도 갑자기 급기후로 안개를 몰고 오며 갈 길과
천지를 덮어 버리는 고산의 변동 기후에 항상 긴장해야하며 완벽한
장비와 마음의 준비에 철저히 신경써야한다.
그렇게 호흡을 조절하며 난코스이며 매우 험준한 백운봉(2691m)을
향했다.
백운봉은 늘 흰구름이 감돌아 붙여진 이름인 만큼 높이 솟아올라 정상
까지 오를 수 없으므로 모두가 그냥 지나는데 어느 산악회에선지 일행
들이 오르지 말라는 말에도 아량 곳 없이 꾸역꾸역 오른다.
백운봉을 지나 녹명봉을 오를 때 대장님께서 회원들에게 말하지 말고
조용히 오르라고 말씀하신다.
소리를 치면 울려서 돌이 구를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이 우리에겐 산에 대한 겸손과 예를 알 수 있는 교훈이다.
천지를 내려다보며 녹명봉을 지나 하루 종일 구름이 걸려있다 하여 불리
우는 차일봉과 두봉우리가 솟았다고 하여 용문이라 부르는 용문봉에서
그 많은 다른 산악인들은 다 빠져 나갔다.
우리는 달문에서 내려서서 천지물가를 찾기 위해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눈이 쌓인 하구벽을 통과해야하는 아주 위험한 숙제가 남아있다.
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아이젠을 신고 가이드의 선두로 한명씩 조심스럽
게 하구벽을 내려와 천만다행으로 한명도 낙오자도 없고 사고자도 없이
무사히 내려와 공안들이 몇 명 있는 가운데 작은 틈새로 천마님과 즐거
운세상님의 받쳐준 발목을 딛고 담벼락을 넘어와 천지를 향했다
5시45분 앞에 펼쳐진 짙푸른 물감이라도 뿌려 놓은 듯 천지는 파도를 일
렁이듯 우리를 맞았다.
오전 10시30분부터 천지의 반을 돌면서 숱한 봉을 넘을 때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느껴지는 천지를 산봉 위에서 내려다보며 신비로움에 젖었었
는데 이젠 손을 뻗쳐 천지에 손을 담그며 입속에 물을 넣으며 머리도 담
구어 보며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확인해 보고픈
마음에 모두들 흥분되었다.
가슴속에 가득 차오르며 채워지는 감동을 디카에 담으며 소리도 쳐 보며
웃어도 보며 ‘천지야 내가 왔다’고 일러도 주며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천지를 품는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우리들만이 즐거운 천지의 잔치에 초대
받아 즐겨 기뻐하고 있다. 어떤 이는 가문의 영광이라고도 한다.
우리에게 감정이 없다면 삶에 희열과 나눔의 기쁨을 모르는 무감각 속에
산다면 천지는 다만 고여 있는 물 일 뿐이다.
일렁거리며 찰싹거리는 천지는 깊이와 넓이를 잴 수 있지만 생각이 있고
느낌이 있고 감정을 조절 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에게는 이 보
다 더 큰 잣대로도 저울로도 잴 수 없는 무궁무진한 깊이와 넓이를 가진
천지가 내면 깊숙이 있기에 크다는 천지도 가슴으로 품을 수 있고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힘겨움도 그리고 즐거움도 기쁨도 감당 할 수 있으리라 여
긴다. 천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서둘러 길 다란 터널을 지나 시원하고 힘
차게 떨어지는 장백폭포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자연이 일구어내는 살아있는
대 작품에 환호를 내 품어 본다.
온천지역으로 빠져나오니 온천물에 달걀을 익혀 팔고 있다 7시 27분이다.
마지막 셔틀버스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로 다시 이도백하로 이동
한 시간을 달려 고려식당에서 산천어회로 석식을 제공 받고 어제 투숙했
던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 후 살림살이 문제와 천지를 다녀온 자축파티를 위해 총무 방으로
모여 돌아가며 오늘의 소감을 한마디씩 나눴다.
우리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다른 팀들은 이룰 수 없었던 천지와의 만남과
과감한 판단력으로 이루게 해 주신 대장님의 대단하신 위력에 수고와 감
탄과 감사를 큰 박수와 함께 드렸다.
조선족 가이드인 유천은 우리들이 훈련이 잘 되어있고 잘 걷고 질서 있는
팀원임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고 한다.
2009년 6월 26일
셋째날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어제의 백두산 트레킹을 마치고 푹 쉬도록 아침의
기상이 늦었다.
6시30분에 조식을 하고 9시 셔틀버스에 짐을 챙겨 싣고 가이드의 안내로
이도백하를 지나 용정으로 향하는 길에 휴게소를 들려 장뇌와 인삼 꿀 판
매를 구경시켰으나 구입하는 회원들이 없다.
가이드의 안내로 용정으로 향하는 길에 저 멀리 일송정이 보임을 알려준다.
한그루의 소나무가 그곳에 있어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항상 그곳에 모여 애
국심을 기르며 나라를 찾기에 힘을 모은 곳이다.
그러나 당국에서 그곳에 세워진 소나무는 배어 버리고 정자를 세워 뒀다고
한다. 해란강이 내려 다 보이는 일송정을 바라다보니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은 우리의 조상들의 고통과 역경이 가슴으로 아프게 느껴져 온다.
12시15분 대성중학고를 찾았다.
반듯하게 세워진 학교는 조선아이들만 남녀공학으로 다닌다고 한다.
대성중학교 출신인 안내하는 이가 나라 일에 힘쓰는 젊은 나이에 돌아
가신 학교의 출신의 훌륭한 인물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중에도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서시에는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1시 30분 곰 사육장을 찾은 후 중식을 했다.
고추장에 김치 넣고 비벼 먹었더니 모처럼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우리의 것이 우리의 입맛을 살려준다.
맛나게 중식을 먹고 용정을 출발하여 중국에서는 도문이란 지명이 있어
도문강 이라고도 하는 두만강을 찾았다.
3시. 두만강의 물줄기는 우수를 담고 떠내려가는지 무슨 목적이 있어 흘러
흘러 가는지 줄기차게 흐른다.
동족상잔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폭도 넓지 않은 강 건너가 우리의 한민족인 북한 땅이다.
우리의 남쪽에서 자동차로 아님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북한 땅을 갈수가
없어 중국을 통해 두만강 너머의 우리민족의 사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
보게 된다.
산꼭대기에 밭을 일구었으나 농사가 되지 않아 굶주림에 허덕이는 저들의
삶의 모습이 보여진다.
두만강은 그 어느 나라에도 의미가 주워 진 강은 아니다.
다만 분단의 아픔을 겪는 우리들만이 느끼는 아픔의 강이다.
우리는 4명씩 댓목을 타고 좀 더 가까이 가보고파 북쪽 땅 가까이까지 가서
북의 풀잎이라도 우리의 것임에 한 잎 뜯어 왔다.
또한 우리의 한민족인 조선족들도 흥에 겨운지 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우리 팀들에게 손을 내밀려 춤을 권한다.
저들이 부르는 노래 가락에도 흥 보담은 애환이 가득 서려 있음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내 나라가 있으나 갈 수 없고 중국에서 이방인으로 중국의 괄시를 받으며
힘겹게 살아왔던 조선족..
셔틀버스로 연길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하기에 이른 시간이라 그 사이 발
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어제 8시간 20분을 백두산 트레킹으로 혹사당한 발과
뭉쳐진 근육을 풀며 쉴 수 있는 시간이다
7시40분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북의 어린 여자들이 곱게 한복을 입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써빙도 하며
분주히 역할을 해내고 있다.
어딜 가도 모여서 즐기고 먹고 여행하는 사람은 제다 한국 사람이다. 한국
에서 중국에 뿌리는 외화도 엄청 하리라.
음식이 우리 입에 맞게 깔끔하게 잘 나왔다.
식사를 하는 사이 20분가량 북의 여자들이 쇼를 한다
생글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춤도 추며 손님들의 손도 끌어낸다
어떤 이들은 반동가리인 나라의 아픔에 눈물을 흘린다.
딸 같은 어린아이들이 나와서 돈을 벌어야하는 책임감에 억지웃음으로 노래
해야하고 사진도 독사진은 절대 찍지 않고 20분 동안 노래하며 가사의 내
용은 안녕히 가시라는 가사다
다 먹었으면 나가라는 뜻 인가보다.
오늘은 일정의 마지막 밤 연길시에 있는 가장 좋은 호텔 국제호텔이다.
연길시는 건물이 화려하게 솟아있고 도시의 규모와 차량을 통해 부한 곳임을
느끼게 했다.
우리가 머문 국제호텔도 28층이다.
이렇게 마지막 밤을 연길서 축폭이 터지는 가운데 편히 보냈다.
2009년 6월 27일
넷째날
6시20분 셔틀버스로 장춘의 공항으로 이동했다.
아침은 도시락에 빵과 과일과 물이다.
차안에서 나름대로 먹은 후 11시25분 장춘공항에 도착
우리는 서울 가이드의 백재호 대리의 지시를 따르며 짐을 보내고 비행기를
탔다. 기내에서 중식을 하고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위해 서로가 마음의
상함이 없도록 미소를 나누며 인천공항에 도착
4시30분 삼척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버스에 올랐다.
준비한 캔맥과 음료를 나누며 대장님의 따뜻한 말씀이 있었고 몇 분들의
느낌과 소감을 들었다.
그리곤 음악에 맞춰 흥도 내면서 즐거운 분위기속에 삼척 후진 바닷가에서
회덧밥과 매운탕으로 저녁 식사를 말끔히 끝내고 삼척 죽서루에서 해산했다.
대장님께서 그동안 가정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리더자로 여러 회원들을
이끌며 위험을 무릅쓰고 더 좋은 곳을 보여주고 더 좋은 것을 먹여 주시고
또 최고의 것인 천지까지 우리에게 허락될 수 있도록 애써 주심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끝까지 집안 살림을 사느라 이것저것 신경 쓰신 총무이신 동아님과, 대장님
을 도와 선두에서 회원들을 이끌며 수고하신 천마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기회에 좋은 분들과 함께 천지를 나눌 수 있어서 청록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2009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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