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석정도
사실적 묘사와 과감한 생략…같은 풍경 다른 느낌
파도가 부딪는 기묘한 바위와 정자 ‘총석정’
총석정(叢石亭)은 북한 지역 동해안에 있습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강원도 통천군에 속해 있지요. 이곳에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기둥 모양으로 솟아오른 바위들이 신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육각형의 바위 기둥은 현무암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일부러 깎아 세운 듯 크기나 높이가 비슷한 탑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바위 기둥은 똑바로 서 있는 것,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것, 주저앉은 것 등 여러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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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 정선, 1711년, 비단에 수묵 담채, 36.0 cm ×37.4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총석정은 원래 정자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이 일대의 바위들을 일컫는 말로도 통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의 경치는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넓은 바다, 수평선 끝에서 떠오르는 해, 바위 기둥들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들은 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습니다.
옛날 신라 시대에는 화랑들이 이곳에 와서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동국여지승람’이라는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술랑ㆍ남랑ㆍ영랑ㆍ안상이 이곳에 와서 놀았으므로, 이곳의 바위 기둥들을 일컬어 사선봉(四仙峰)이라 하였습니다. 화랑들은 이곳에 와서 놀았던 일을 글로 써서 정자 옆 비석에 새겨 놓았으나, 지금은 비문이 닳아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정선(1676년~1759년)은 여러 점의 총석정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 왼편 그림은 그의 나이 서른여섯에, 오른편 그림은 여든에 그린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젊은 시절 그림답게 비교적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절벽을 때리는 파도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집니다. 벼랑 끝의 정자와 비석, 앞바다의 섬은 그 이름까지 친절하게 써 놓았습니다. 네 개의 바위 기둥은 원래 비슷하지만 조금씩 그 높이를 달리하였습니다. 답답하지 않게 변화를 준 것이지요. 이와 달리 오른쪽 그림은 과감한 생략이 돋보입니다. 복잡한 바위 기둥들을 다 그리지 않고 딱 세 개만 그렸습니다. 크고 작고, 굵고 가는 변화가 분명합니다. 여기저기 늘어선 섬들도 보이지 않고, 기울어진 돌기둥들 대신에 솔숲을 그려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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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 정선, 1755년, 비단에 수묵 담채, 18.0 cm ×12.8 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
한 화가가 그린 똑같은 풍경 그림인데, 그 바위 기둥이 하나는 넷이고, 하나는 셋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이는 그대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린다고 해서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화가가 어떤 대상을 본 순간, 그 느낌을 소중히 살려 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림 속 대상의 갯수나 크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에서, 바위 기둥을 다 그리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그림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자, 이제 총석정에 전해 오는 이야기 하나 들어 볼까요?
총석정 근처 외딴집에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만날 싸우기만 하더니 마침내 아주 헤어지기로 하였습니다. 제각기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섰습니다. 두 사람이 총석정 언덕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그만 서지 못 할까!”
갑자기 들리는 호통소리에 두 사람은 돌아섰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바닷가에 서 있던 돌기둥 두 개가 움직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들 둘이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다니, 이제부터 우리랑 사는 게 어떨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두 개의 돌기둥은 멋진 미남과 미녀로 바뀌었습니다. 부부는 기뻐하며 각기 새 짝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새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아침에 깨어난 부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젯밤에는 분명히 새 짝과 새 집이어서 기뻐했는데, 깨어 보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다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또 호통소리가 났습니다.
“잘 듣거라. 하늘이 정해 준 배필이니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부부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총석정 아래에는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바위 기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돌기둥을 부부바위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사이좋은 부부처럼 나란히 서서 천년만년 변함 없는 금실을 자랑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