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과로로 숨진 택배 노동자가 집계된 것만 7명에 이른 가운데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과로사 대책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윤미향 의원실, 장경태 의원실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책 마련 토론회’를 열고, 택배 노동시간을 과도하게 늘리는 분류작업에 지원 인력부터 먼저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송 전 평균 7시간 이상 진행되는 물품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더구나 이 작업은 무급이다. 택배업계의 임금구조는 배송 수량에 대한 수수료만 노동자에 지급하기 때문이다.
올해 코로나19로 전체 택배 물량이 평년 대비 30퍼센트가량 늘었고 다가올 추석에는 택배 물량이 50퍼센트 이상 증가한다고 예측되는 가운데 택배 노동자가 과로에 처할 위험이 더 높아졌다.
이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올해 1-8월까지 드러난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7건이었는데,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나 유족이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안타까운 사망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로사 대책위는 지난 8월 3-23일 전국의 택배 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의 68퍼센트는 노조 가입자, 32퍼센트는 비가입자이며 모두 남성으로 평균 45살, 평균 근속 기간은 7년 정도다. 소속은 CJ대한통운 78퍼센트, 롯데택배 7퍼센트, 한진택배 12퍼센트, 기타 2퍼센트다.
과로사 대책위 진경호 집행위원장은 이번 조사결과는 표본이 과소하고 노조 가입자 비중이 높아 다소 제한점이 있다면서 “노조가 있는 현장은 이미 택배사와 대리점에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하며 빠른 하차 종료 등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하고 있어 실제 대다수 현장의 노동시간은 조사결과보다 최소 1-2시간 이상 길다”고 설명했다.
10일 열린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책 마련 토론회. ⓒ김수나 기자 |
택배 노동자 주당 평균 70여 시간 일해
“모두가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먼저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0여 시간으로 나타났다. 하루 노동시간은 평균 10-13시간 정도다. 이는 2018년 기준 한국인 평균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의 2배 정도며, 현재 법정 최대 근로시간은 주당 52시간이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이나 정신질환이 생길 경우 인정되는 노동시간이 주당 60시간”으로 “택배 노동자 모두가 업무상 질병에 걸려 숨지거나 장애를 입게 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노동시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택배량이 늘면서 배송 전 무급으로 진행되는 물품 분류작업량이 크게 늘었다. 응답자들은 배송 증가율이 27퍼센트인데 반해 분류작업은 36퍼센트 증가했다고 답했다.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의 43퍼센트를 차지하는데도, 대부분 계약서에 명시 조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택배업계의 부당한 관행에 따라 택배 노동자들은 무보수 노동을 해온 것이다. 택배 노동자는 출근해서 평균 7시간 이상 무보수로 분류작업을 마쳐야 비로소 배송에 나선다.
분류작업이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장시간 노동은 식사나 휴게 시간을 보장하지 못했다. 조사 대상의 37퍼센트가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답했으며, 22퍼센트가 점심으로 빵이나 김밥 등을 차에서 먹는다고 답했다. 40퍼센트가 식사 시간이 10-20분 남짓이라고 응답했다.
지난 8월 폭우 때 모습.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회사가 재난지역의 배송을 강요하지 말고 배송차질로 인한 책임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촉구한다. (사진 출처 =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페이스북) |
택배업계 매출 늘어도 택배 노동자 월급은 최저임금 못 미쳐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2020년 2분기 영업이익은 8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7퍼센트 늘고 한진택배도 31퍼센트 오르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황에도 택배업계는 되레 호황을 맞았지만, 택배 노동자의 월급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주당 평균 70시간 이상 일해 얻는 임금은 약 450여만 원 선이지만, 택배 노동자가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차량유지비, 물품사고 비용, 운송장, 테이프 등 소모품 구입, 휴대폰 비용, 대리점 수수료 등 모든 비용을 빼고 나면 순소득은 230여만 원이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현재 최저임금은 주당 40시간 노동 시 주휴수당 포함해 월 157만 원 남짓이다. 주당 70시간을 일한다면 초과근로 수당, 심야노동 수당을 빼더라도 순소득이 270여만 원은 돼야 겨우 최저임금이 된다”고 지적했다.
주당 70시간이 넘도록 일해도 택배 노동자의 손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230여만 원이 남는다. (자료 출처 =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
폭염, 폭우 등 재해에도 작업중지 없어
예외조항 없는 택배 약관, 방임하는 원청
업무상 사고로 연간 45퍼센트가 상해 입어
조사 대상자 중 4대보험 미가입율은 건강보험은 13퍼센트, 국민연금은 40퍼센트, 산재보험은 60퍼센트이며, 고용보험은 거의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이 가운데 산재보험 가입율이 40퍼센트로 나타난 것은 응답자의 상당수가 노조 가입자이기 때문이며, 실제 고용노동부 통계로는 전체 택배 노동자 5만여 명 가운데 약 15퍼센트인 7400명 정도만 산재보험 가입자라는 것이 한인임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실직이나 직업성 질병, 사고도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폭염, 폭우 등 재난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작업중지 조항이 택배업계에서 전혀 적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운송이 주 업무인 택배 노동자에게 폭우, 폭설, 폭풍, 폭염 등은 매우 위험한 재해 요인이며 특히 이 가운데 폭우, 폭염에도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었다는 응답이 80퍼센트에 이르렀다.
이처럼 재해 상황에도 택배 노동자가 쉬거나 배송을 늦출 수 없는 이유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정한 택배표준약관에 운송물의 인도일을 명시하고, 일반지역의 경우 수탁일로부터 2일, 도서산간벽지는 수탁일로부터 3일로 규정하면서도 예외적 상황에 대한 조항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외 조항이 없는 약관도 문제지만 재해 상황에서 운송이 늦어지게 될 경우 소비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원청이 마련하면 노동자들이 무리한 운송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수입을 올리는데 급급한 운송사의 행태도 매우 부도덕하다고 말했다.
택배 노동자를 가장 괴롭히는 이들은 고객으로 조사됐다. (자료 출처 =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
배송 닦달, 언어 및 신체폭력 주 가해자는 고객
응답자 80퍼센트 “과로사, 나도 겪을 수 있어 두렵다”
조사 결과 택배 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량 외에도 고객, 대리점, 원청에게 다양한 괴롭힘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약 60퍼센트가 배송 닦달을 받았으며 가해자는 고객(45퍼센트), 대리점(32퍼센트), 원청(23퍼센트) 순이었다.
특히 지난 1년간 언어폭력 경험자는 46퍼센트에 달했으며, 가해자의 87퍼센트가 고객이다. 신체폭력이나 위협은 11퍼센트로 역시 주 가해자는 고객(76퍼센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감정노동자 보호법,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보호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이번 조사 대상 택배 노동자들은 업무상 사고로 연간 45퍼센트가 상해를 입고, 사고재해율은 26퍼센트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른 한국의 산업재해 사고재해율 0.5퍼센트보다 50배 높다.
또 응답자의 98퍼센트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고, 80퍼센트가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 많이 두렵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의 80퍼센트가 과로사, 나도 겪을 수 있어 많이 두렵다고 응답했다. (자료 출처 =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
택배 노동 현장 실태조사 및 분류작업 인력 시급
이날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대책으로 정부의 전면 특별감독 실시, 원청에 안전보건상 책임 묻기, 시급한 법률 보완과 행정지침이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사업주는 불법적 관행을 버리고 택배 노동자 과로 대책을 즉시 도입해야 하고, 국회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적용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로사 대책위 진경호 집행위원장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 제정으로 분류작업의 책임에 대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되, 먼저 분류작업에 추가인력을 즉각 투입하는 것이 택배 노동시간을 줄이는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는 지난 6월 18일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이 조속히 제정돼야 하되, 이 법안에는 표준계약서 작성 및 안전 관련 부분이 권고와 노력으로 규정해 강제성이 떨어지는 등 미비점이 있는 만큼 보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은 사용자와 종사자의 정의 및 책임 규정, 택배 노동자의 운송계약 갱신 청구권, 택배사와 대리점의 휴식보장 및 안전관리 의무 강화, 불공정 계약을 방지할 표준계약서 사용 등이 담겨 있다.
과로사 대책위원회 박석운 공동대표는 “택배는 택배기업과 택배 노동자 외에도 온 국민이 당사자”라면서 “이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가 함께 법제도 정비와 불합리한 관행 문제 등을 논의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철 국토교통부 물류산업과장은 “과로사 소식이 들리는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제도 마련”이라면서 “택배, 이륜차 등 생활물류서비스 발전 전반과 종사자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이날 “택배사들이 상당한 영업이익을 올린 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 보호, 노동현장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함에도 현실은 일어나선 안 될 과로사가 빈번하다”면서 “그럼에도 택배 없는 날 제정 같은 미온적 대책뿐인 것과 실질적 보호장치와 구조도 전무하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 신부는 “결국 기업은 택배기사의 희생을 기반으로 돈을 벌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리스도인은 불의한 현실을 고발, 대안을 제안하고, 돈과 이윤만 추구하는 것은 민족들의 올바른 발전이 아닌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인 만큼 우리가 택배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8월 기준 택배 노동자 과로사 현황> -1월 13일, 경기안산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 33살 김모 씨 과로로 숨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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