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골드라인 풍무역에 내려서 실습장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 몇 도인지 보았더니 영상 1도 입니다. 어젯밤에는 영하의 날씨였나 봅니다.
무심코 길을 걷는데 입안이 달달해지면서 과자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평소에 과자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다 싶어 시선을 따라가보니 빼빼로며 스틱과자 상자들이 편의점 바깥에 즐비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입니다. 스틱과자의 날. 편의점의 유혹을 뿌리치고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날씨가 너무 춥고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습니다. 10시까지 가면 됩니다.
여름에 한창 더울 때는 30도까지 올라갔는데 30도 차이가 이렇게 큽니다.
아침에 텃밭을 가다 더울 때는 곧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는데 오늘은 너무 추우니 따뜻한 곳에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서리가 내렸나? 그럼 '상강'이 지났을까 하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10월 24일이 상강이었습니다. 서리는 한참 전에 내린 모양입니다. 그럼 상강 다음에는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입니다. 11월 8일이 입동이니 입동도 벌써 3일이나 지났습니다. 아직 저는 농부가 안된 모양입니다. 도시 생활의 습관을 못벗어났습니다. 11월이 되면 의례 겨울이 왔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날씨를 잊고 사니 겨울이 되어서도 겨울인지 몰랐습니다. 이러면 농사일이 힘듭니다. 지금 이 시기에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울이 온지도 모르다니...
검색을 하다보니 오늘이 스틱과자 먹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농업인의 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996년부터 정부가 기념일로 지정해서 매년 기념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11월 11일일까? 흙 토(土)자가 한자로 십(十)과 일(一)로 이루어져 있어서 11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흙은 농업과 생명의 근간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정말 기념식은 하는 것일까요? 빼빼로에 밀려난 농업인의 날입니다. 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도시에서 흙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시멘트나 보도블럭으로 한줌의 흙이라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거리 정비사업의 목표입니다. 도시는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편리해지지만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도시 농부'와 '도시 텃밭' 사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법률도 정해져 있으니 더욱더 강화하여 자연을 도시 안으로 끌어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입동이 지났으니 다음은 눈이 조금 내린다는 소설입니다. 소설은 11월 22일이니 앞으로 10일 쯤 지나면 흰눈이 내리고 온 천지가 얼겠습니다. 농작물은 그 전에 모두 수확을 하든지 비닐 등을 씌워서 한파를 막아야 겠습니다. 밭의 수확물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한파 준비를 하고 양파, 마늘 등 겨울 작물을 심고... 거두어 들인 수확물을 말리고, 절이고, 보존하고... 농부들이 정말 바쁜 이 때이니 그 노고를 기념하여 정부에서 이날,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지정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1996년은 김영삼 정부 때인데 새삼 그 때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카페를 나와서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약 20분 정도 걸어가는 길이 여유롭습니다. 논밭 한 쪽으로 길게 뻗은 수로에는 이제 물이 바닥입니다. 여름에는 물이 찰랑찰랑 차올라 넘칠까 걱정했었습니다. 봄날 멋있게 뻗어 올라 붉은 꽃을 피웠던 명자나무는 겨울 추위에 쭈그러들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조금 걸으면 또 다른 명자나무가 나옵니다. 금년 봄에 Y자 모양의 작은 줄기에 단촐하게 꽃을 피웠던 이 명자나무는 이제 보니 신세가 매우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이 나무를 죽일 셈인지 큰 장화를 한쪽 가지에 걸어놨습니다. 올 봄에 커다랗게 붉은 꽃을 피워 냈던 곳입니다. 그래도 뽑히지만 않는다면 내년 봄에 남은 한쪽 가지에서 또 붉은 명자나무 꽃이 피겠지요.
가는 길에 보이는 텃밭은 이리저리 바쁩니다. 어떤 텃밭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배추 20kg에 4만원에 팝니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파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무를 자가용에 싣고 있습니다. 또 다른 텃밭은 이미 갈무리가 다 끝나고 고구마 순을 잔뜩 뒤집어 쓴 채 겨울 잠에 들어갔습니다. 호박덩쿨은 이미 어젯밤 겨울 추위에 힘을 잃고 축 늘어졌는데 푸른 호박만 싱싱하게 뒹구는 곳도 있습니다. 열매가 아직 다 여물지 못했는데 이파리며 줄기가 얼어버렸으니 이제 끝입니다.
실습장 텃밭에 도착했습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가능하면 오늘 하루에 모두 수확해서 다 가져가야 합니다. 아니면 먼길을 또 와야합니다. 우선 가을 작물 텃밭으로 갔습니다. 무를 캤습니다. 다행이 얼지는 않았습니다. 팔뚝 만한 것 2개와 주먹 만한 것 2개를 얻었습니다. 당근을 캤습니다. 땅이 말라서 그냥 뽑히지 않습니다. 호미로 땅을 팠습니다. 15cm 정도되는 당근 10개, 그보다 더 작은 당근을 15개 정도 수확했습니다. 이렇게 수확해보니 당근을 솎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같습니다. 잘 솎지 못한 당근들은 서로 밀집해서 크기가 새끼손가락 보다 작습니다. 당근이 서로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고 최대한 넓게 자라도록, 정말 뻥 뚤리게 솎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름 작물 텃밭으로 갔습니다. 텃밭 한쪽의 1m x 1m 넓이의 공간이 붉은 색의 돌산 갓으로 빽빽합니다. 크게 자라지 않았으나 20cm 이상 씩은 자라 모두 수확하면 양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다른 텃밭의 갓은 40-50cm 정도까지 자란 것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큰 것들을 부러워하니 그 텃밭을 수확하던 동기분이 자기가 수확한 것 중 일부를 주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오히려 작게 자란 갓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위로하는 말일까요? 갓을 수확하다 보니 갓 사이에 상추가 보입니다. 지난 주에 남겼던 상추들이 갓의 크기에 밀려 햇빛도 못 받고 더 쪼그러 들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있으니 다행입니다.
갓을 수확하면서 같이 배우는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돌산 갓은 갓 김치용이 아니다. 김장용이고 갓 김치용은 녹색의 청 갓이다."
"아니다. 아무 것이나 갓 김치를 만들 수 있다."
서로 이견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모두 잘 알지 못하니 정답을 모르고 논의가 끝났습니다. 다음에 김장 수업 때 전문가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겠습니다.
수확한 작물을 꾸기꾸기 배낭에 집어 넣고 또 쇼핑백에 넣고 있는데 비닐하우스 안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우스 안에 심은 고추를 수확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우스 안에는 붉은 빛이 나는 태양초 고추를 비롯해 피클용 고추 등이 가득 있었습니다. 10여명이 달라 붙어 수확해도 끝이 없습니다. 집에 가져가는 것이 걱정되었으나 일단 또 다른 쇼핑백 하나에 가득 따서 담았습니다. 실습장 밭에 심은 고추는 청양고추와 미인고추였는데 이 태양초 고추는 정말 마음에 듭니다. 붉은 색깔이 고추가루용 그것입니다. 국산 고추가루는 시장에서 사면 한 움큼에 1만원, 2만원합니다. 태양초 고추를 심으면 그야말로 필수 작물의 자급자족입니다. 그런데 하우스 안에서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벌레 하나도 먹지 않고 병해도 들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숙제입니다.
이렇게 해서 금년도 농부학교의 농사 갈무리는 끝났습니다. 물론 제가 받은 제 텃밭의 갈무리입니다. 아직 공동 밭에는 김장 수업을 위한 배추며 무, 갓, 쪽파 등이 자라고 있습니다. 다음 김장 수업 때 또 이곳에 와야합니다. 아직 작별할 때는 아닙니다. 정이 많이 든 농부학교 실습장 텃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