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卒 婚. ★
일본에서는 지금 ‘소쓰콘(そつこん)’이 유행이다. 소쓰콘은 한국어로 졸혼(卒婚), 즉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혼은 아니다.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이혼도 별거도 아닌 이 새로운 형태의 결혼 생활은 비단 이웃 나라의 이색 풍경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와 비슷한 형태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가 느는 추세. 100세 시대, 달라진 결혼 생활 방식을 생각해본다.
졸혼은 일본에서만? 우리도 이미 시작.
‘36년간 결혼 생활을 해온 60대 일본인 부부. 자식들이 독립해서 집을 나가자, 각자의 삶을 찾아 3년 전에 졸혼했다. 남편은 시골에서 농사짓고, 아내는 도시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며 따로 산다. 부부는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같이 식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지내지 않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CNN 방송에 소개된 일본의 한 졸혼 부부 이야기다. 졸혼은 일본에서 2004년 <소쓰콘을 권함>이란 책이 출간되며 처음 알려졌다. 그 후 일본 유명 개그맨과 가수가 방송에서 졸혼을 선언해 화제를 모았고, 최근엔 일반인 사이에서도 졸혼이 유행처럼 퍼지는 중이라고 한다. 졸혼은 ‘부부가 결혼의 의무에서 벗어나 부부 관계는 유지하되, 각자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서로 안 보는 것은 아니다. CNN 방송에 소개된 부부처럼 평소에 연락도 자주 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서 같이 지낸다.
즉 결혼 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면서 생활만 따로 하는 일종의 합의된 별거다. 서로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담을 쌓고 사는 별거나 법적으로 결혼생활을 끝내는 이혼과는 다르다.
‘졸혼’이라는 용어만 없었을 뿐이지 남편은 시골에서, 아내는 도시에서 사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이혼하지 않고 따로 사는 부부 모습이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이혼하고 충분히 각자의 삶을 살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굳이 혼인 관계를 유지하며 따로 사는 걸까?
한국노인상담센터 센터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황혼 이혼은 노인 빈곤을 불러올 공산이 크고, 이혼을 바라보는 남들 시선도 부담스럽고,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며 “이런 위험이 있는 이혼보다 따로 살면서 각자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 나온 결혼 생활의 새로운 방식이 아닌가 싶다.”고 그 배경을 분석했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면 함께 살지 않으니 쇼윈도 부부, 즉 무늬만 부부인 관계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냐? 외도를 자유롭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은퇴한 분들을 보면 한 사람은 시골에 가서 산다고 하고 한 사람은 도시에서 산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누군가는 양보해야 해결되는데 오래 살았으니 따로 살아보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고 부정적인 시선에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일본의 졸혼 부부나 그와 유사하게 사는 한국의 부부를 보면 대부분 원만하고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너무 심한 갈등 상황에 있는 부부라면, 떨어져 각자 사는 졸혼도 한 가지 해법이 된다.”며 “특히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 생활 기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향후 노년기에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하나의 묘수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이 같은 결혼 생활 방식에 대해 남성보다 여성이 좀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2014년 기혼 여성 대상 설문조사에서 56.8%가 ‘졸혼을 원한다’고 답했고, 졸혼 시기로는 ‘은퇴 후’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한 결혼 정보업체에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7%가 ‘졸혼에 긍정적이다’라고 답했는데, 특히 여성(63%)이 남성(54%)보다 더 긍정적이었다.
오랜 결혼 생활 동안 가정과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여성의 경우 졸혼 문화를 긍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졸혼이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서도 결혼 생활의 한 방식으로 인정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각자 사는 부부의 다양한 결혼 생활 방식들.
< 졸혼 이야기 1. 일주일에 이틀만 따로 사는 부부.>
교사로 재직 중인 50대 초반의 김희순 씨는 한 달 전부터 금요일과 토요일에 남편과 따로 산다. 1년 전부터 목공에 빠진 남편이 집에서 가까운 용인에 작업실을 얻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휴일이면 공방으로 직행하는 남편을 보고, 먼저 제안했다”며 “자녀들도 대학생이어서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은 주말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남편의 취미 활동에 빼앗길 순 없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라고 말했다. 남편과 일주일에 이틀을 따로 살기로 결정하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기간은 6개월, 평일엔 목공 금지, 일요일 저녁은 가족이 함께, 한 달에 한 번 가족이 작업실 방문하기 등이다. 나만의 작업실을 갖게 된 남편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지 않아도 공방에 갈 때마다 가족에게 미안했던 그였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오히려 남편보다 김 씨가 더 만족한다. 김 씨는 “처음엔 허전할 줄 알았는데, 나만의 자유 시간이 생긴 기분이다”라며 “평소 보고 싶었던 뮤지컬과 연극을 관람하고, 대학 동창들과도 자주 만나고,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니 삶이 재충전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틀 동안만 안 볼 뿐인데 부부 사이도 더 애틋해졌다는 것. 지금과 같은 생활 방식을 결정하기까지 김 씨는 자유를 줬다가 남편이 딴짓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컸지만, 기우였다고 한다. 그래서 애초 6개월로 정한 남편의 특별한 외박 기간을 좀 더 늘려볼까 고민 중이다.
“졸혼은 이 시대의 문화적 트렌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새로운 가족 개념의 탄생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했고, 특히 2차 베이비붐 세대 (1968~1974년)까지 은퇴를 시작하면 졸혼의 사례는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졸혼 이야기 2._한 지붕 아래 각방 부부 취미 홀릭> 부부 김영석, 박주연 씨.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영석, 박주연 씨 부부는 한집에 머물되 각자의 공간을 구축해 ‘함께 또 따로’의 삶을 살고 있다. 은퇴 후 사진 동호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김영석 씨는 방 하나를 온통 ‘사진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카메라 3대, 모니터 2대, 포토 프린터를 비롯해 각종 렌즈와 삼각대까지…. 많을 땐 한 달에 두세 번씩 출사를 다니는 그는 각종 공모전 검색과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아내 박주연 씨는 요즘 알공예에 빠져 있다. 알공예란 타조알, 달걀 등을 조각 또는 장식하는 활동인데 책상에 앉아 섬세한 작업을 하다 보면 몇 시간이고 집중하게 된다. 그녀의 방에는 그간 만든 작품과, 각종 물감, 작업 도구가 가득하다. 외동딸이 출가한 후 방 하나씩을 꿰찬 부부는 마치 동굴에 들어가듯 각자의 방에서 자아실현도 하고 재미도 느끼며 살고 있다. 물론, 함께 TV를 보거나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 계획과 근황을 나누는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말이다.
< 졸혼 이야기 3._아지트로 가는 남자> 50대 공무원 김병수 씨.
경기도 모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52세 김병수 씨는 퇴근 후 ‘나만의 아지트’로 가는 날이 많다. 그의 아지트란 시골 마을에 올린 2층짜리 컨테이너 박스인데, 1층엔 침실 겸 작업실이, 2층엔 시골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그는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거나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 그냥 머물다 출근하는 날이 반이라는 김 씨는 이런 ‘두 집 살림’에 대해 “아내의 이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아내와의 사이는 무척 좋죠. 하지만 집에서는 그림을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10년 전, 이 공간을 짓고 내킬 때마다 찾아오고 있어요. 저한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처음엔 이런 일상을 좀 못마땅하게 여기던 아내도 이젠 그러려니 해요. 저 역시 아내의 외출이나 여행에 대해 터치하지 않죠. 이런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윤활유가 되는 것 같아요.” 식물에게 환기가 필요하듯 부부 사이에도 숨 쉴 틈이 있어야 한다는 그는 지금의 삶에 무척 만족하는 듯했다.
< 졸혼이야기 4. 화요일만 외박하는 남자.> 은퇴한 60대 부부 김종수, 오영실 씨.
경기도 이천에 사는 60대 김종수 씨는 20여 년 전부터 매주 화요일 아침 남양주에 있는 친구의 세컨드하우스에 간다. 남편이 말없이 집을 나서도, 그날만큼은 아내 오영실 씨가 “어딜 가냐”고 묻지 않는다.
그곳이 어딘지, 누구를 만나는지, 거기서 어떻게 보내는지 알고 있어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누가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7~8명의 친구들이 그곳에 모여 바둑을 두거나,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라며 “가장 마음 편히 찾는 오래된 친구들의 힐링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집주인이 없어도 친구 대표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 이날 모임은 지금까지 단 한 주도 쉰 적이 없다고. 은퇴 이후, 이 모임이 곧 취미 생활이다. 또한, 이날만큼은 아내에게 ‘외박해도 좋다’는 그린 라이트를 받았다. 아내는 “이 모임이 2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것이 남자들 관계가 돈독해서만은 아니다.”라며 “부부끼리는 물론 자녀들 일도 함께 치르고,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부부 동반 모임도 하며 꾸준히 교류해와서 아내들이 흔쾌히 남편의 화요일을 인정해준다.”라고 말했다. 결혼 생활의 신뢰가 허락한 매주 화요일의 특별한 외박이다.
“이혼과 달리 졸혼은 자녀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없으며 주변 시선에도 신경이 덜 쓰인다.”며 “당사자의 자존감이 존중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설명했다. “졸혼을 마냥 가족의 ‘해체’라고 할 수는 없다.
졸혼 부부는 분명히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 살아가는 다양한 양태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할수 있다.
한편 졸혼은 “자녀와 배우자의 응원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방적인 졸혼 선언은 자칫 이혼의 수순으로 갈 수 있는 위험도 있다는점을 명심해야한다." “상처가 있다면 치유하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한 후에 가족의 동의와 함께 건설적인 부부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편이 좋다.”고 권유할수있다.
가끔 방송에서 나이든 부부가 따로 사는경우 혼자여행하는 경우들이 방송되기는하나 굳이 졸혼이라는 이름을 부치지는 않는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졸혼이 번져나갈 수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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