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스승
내 인생의 참 스승님은 주님이신 예수님 한 분 뿐이시지만,
학창시절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스승님들을 생각하며
추억을 더듬어 본다.
1. 초등학교: 김광수 선생님
김 선생님은 나의 초등학교 5~6학년 담임선생님 이셨다.
고학년 때인 5,6학년은 이성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을 가졌고
라이벌 의식도 생겨날 때라
특별한 점은 없는 선생님이셨지만
성적을 잘 받으려고 노력했기에 내 뇌리에 남아있다.
항상 조용히 말이 없으셨고 매를 드신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름이 춘원 이광수와 같아
왠지 글을 잘 쓰시는 문학 선생님 같은 느낌만 있었다.
주일이면 2킬로 쯤 떨어진 곳에 있는
저수지로 낚시를 가시곤 했다.
저수지를 가시려면 우리집 앞을 지나가시는데
풀과 소 외양간에서 나온 거름을 쌓아서 만든
우리집 퇴비더미에서 지렁이를 잡아가셨다.
그때 부모님과 인사하면서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특별히 내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선생님은
6학년 여름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방과 후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지않고 곧바로 집에와서
홀로계신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거드는 모습을 보시고
선생님 추천으로 군수효자상을 수상케 하신 분이다.
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창회가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학교에 찾아가 김 선생님을 만났다.
당시 교실에서 동창회를 하고 회장 선출을 했는데
옆에 앉아계신 선생님은 어렸을 때 모습이 아니었다.
좀 작아 보이시고 많이 연로하셨다는 생각 뿐…
서울에 있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실패한 후
무시험으로 고향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지만,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1년 상을 마칠 때까지 어머니 농사일을 도우며
마을회관에서 밤에 야학(한문공부)을 하며 재수를 했다.
그때 배운 한문이 학창시절 내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고문시험에서...
지금도 가끔씩 종이에 적어보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한다.
2.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 박** 선생님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 만큼은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군요.
저는 용천초등학교 졸업생 *** 스테파노 입니다.
2년 전 이맘 때 메일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를 알아보실까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인상착의를 말씀하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 후 한번 만수동 성당을 찾았는데
마침 꾸르실료 피정지도를 가셔서
만나 뵙지 못하고 아쉬움을 안은 채 돌아왔지요.
그 이후 가끔 선생님으로 신부님으로 기억은 했지만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매년 용천초등학교 동창회(체육대회, 친목모임 등) 때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
정말 그 당시 선생님들은 존경받는 분들 이었지요.
작년 여름에는 대천 요나성당에서
오산 주임신부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현 이성효 리노주교님)
수원가톨릭 대학에 강의도 하신다고 하며,
책 번역 차 오셨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는 데
횟집에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었고,
신부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즈음은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 란
충격적인 말이 자꾸만 떠 오릅니다.
참 스승을 만나기가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참 평화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는 행운아 들이지요.
정말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선생님은 비록 1년이란 짧은 기간 우리와 함께 하셨는데
많은 추억을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젊고 패기있고, 운동을 잘 하시고,
여름에는 나무그늘 밑에서 이야기도 잘 해주셨지요
(무서운 이야기, 낭궁동자 등)
하지만 엄할 땐 엄하게 다스리셔서 무서워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뿅"하고 자취를 감추셨고,
우리의 기억에서도 점차 멀어졌지요.
그런데 3년 전 동창회에서
인천교구 신부님으로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청학동 성당으로 소임지가 바뀌었더군요.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이 실려있는데 언제 사진인지는 모르지만,
학창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웃으시는 모습이 꼭 같네요...
증명사진 정도의 사진인데 프린트해서
제 책상에 붙여놓고 보면서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청학동 성당은 신설본당인 것 같아 많이 힘드실 것 같지만
추진력이 있으시니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신부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언제나 떠올리면 가슴 깊은 곳에
형님과도 같았던 선생님의 그 따스함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살아가면서 기쁨을 줍니다.
이런 날에야 감사 인사 전할 수 있는 저 죄송함이 앞서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나의 선생님!
2003.5.15 스테파노 올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선생님 답글 2003/05/20
사랑하는 *** 군에게,
이제 같이 늙어가는 *** 군에게 호칭을 어찌할까 싶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신설성당을 자원해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군이 이메일 보낸 시점에는
최종 마무리 단계에서 반갑게 받아보고 이제야 답장을 씁니다.
어제 새 성당 새 사제관에 입주했습니다.
인터넷도 이제 연결됐습니다.
내가 봐도 아담하고 예쁜 성당입니다.
언제든지 인천에 올 기회가 있으면 들려주기 바랍니다(032-832****).
많이 변했겠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사제생활 중에도 **국민학교가 교사생활의 전부이기에
**국민학교 때의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신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신부님이 학교 교사였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가 봅니다.
축구 육상 코치도 했다면 믿기지 않는 표정이고
더구나 마스게임까지 지도했다면 웃고 맙니다.
가을철에 벼 이삭을 주워 축구공 배구공을 샀던 일,
학교 실습원에서 고구마 등을 재배하던 일,
어려운 아이들에게 문구류들을 사주던 일,
아픈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수원 도립병원을 다녀오던 일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나이가 19세였으니 요즈음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시골학교 어려운 살림에 성장하던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소리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중에 몇몇은 학업에 성공한 친구들도 있어 가끔 소식이 옵니다.
내겐 부끄럽지만 보람이 됩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뒤
로마에서 성서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뒤
인하대에서 문학 박사학위도 받고
서울 가톨릭신학대 인하대 성심여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본당사제로 어느새 3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60세가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니 사제로 잘 늙어가길 기도합니다.
언제쯤 제자들이 여럿이 모일 기회가 있으면 불러주기 바랍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럼 또 소식 주기바라며
건강하고 재미있는 삶 가꿔나가길 빕니다.
2003.5.20 *** 드림.
며칠 전(2023.3.6) 박 신부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은퇴하시고는 연락처를 알지 못했는데, 인터넷 카페에
국민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신부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이 댓글을 주셨습니다(23.01.21)
'박찬용 신부님이 올해 팔순이시네요.
지금은 은퇴하시어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사십니다.
메일 주소를 올려 주시면 신부님의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신부님 개인 번호는 없고 식복사님 전화로 연락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내 이메일을 알려드렸는데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려는 순간 이 메일이 왔습니다.(2월 17일)
캐나다에 살고 계신 분으로 여러사정으로 늦게 알려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신부님이 금년 8순 이라는 말, 식복사 전화번호,
신부님 자택 주소등을 알려 주셨습니다.
저도 마늘작업에 경황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3월 6일에야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신부님은 너무도 반가와 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집필하시고, 피정강론도 자주 하시고, 성경강의도 하셔서
평일에는 저녁 5시 경에야 들어오시고
주일에는 집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8순잔치는 아들신부 20명이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팔순(4월)에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국민학교 단톡방에 신부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축하메시지 동영상을 촬영하여 단톡방에 올리면
그것을 종합 편집하여 신부님께 보내드리자는 말과 함께~
그리고 단톡방 개설한 친구에게 연락이 되는 친구가 더 있는지 묻자
추가로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여자 동창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지않아 내 소개를 한 메시지를 보냈더니
모르는 전화라 받지 않았다며 반가워 했습니다.
몇 명의 여자친구와 한 명의 남자친구도 알게되었습니다.
새로이 알게된 친구들은 무척 반가워했고
그들도 축하메시지를 보내겠다고 했지요.
인천 부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함께 신부님을 찾아뵐 계획이라 합니다.
몇 차례 경험한 일이지만 정말 세상좁다는 것을 느낍니다.
신부님도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냐고 물으셔서
캐나다 자매님 이야기를 했더니 역시 놀라시더군요.
새로운 국민학교 친구들도 알게되었고
신부님 연락처도 알게되어 신부님을 고리로
옛 추억으로의 여행도 한 층 업그레이드 된 느낌입니다.
친구들이 공통으로 기억하고 있는 신부님은
우리가 잘못 했을 때 앞줄부터 차례차례 회초리로 때리시고는
우리들 잘못을 선생님 잘못이라고 하며
맨뒤에 덩치가 큰 친구를 골라 자신을 때리라고
스스로의 종아리를 걷고 맞으시던 모습입니다.
김광수 선생님은 돌아가셨고
박 신부님은 팔순을 맞이하셨지만
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두 분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고
영육간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