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가 판을 짜고 기초를 다졌다면, 그 판 위에서 조씨 가문의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사마씨 천하를 완성한 인물들이 바로 사마의의 두 아들,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형제입니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일으킨 '고평릉의 사변(249년)' 이후 차례로 권력을 승계하며 실권을 쥐었습니다. 성격도, 스타일도 완전히 달랐던 두 형제의 발자취를 요약해 드릴게요.
### 1. 형 사마사(司馬師) : 냉혹하고 치밀한 무결점의 지배자
사마사는 사마의의 장남으로, 아버지를 가장 쏙 빼닮은 **차가운 천재이자 무서운 실력자**였습니다.
* **비밀 사병의 기획자:** 고평릉의 사변 때 낙양을 순식간에 장악했던 '3,000명의 정예 사병'을 음지에서 조직하고 관리한 인물이 바로 사마사였습니다. 거사 당일, 동생 사마소는 긴장해서 잠을 못 잤지만 사마사는 평소처럼 숙면을 취했을 정도로 강심장이었습니다.
* **황제 폐위의 결단:** 아버지가 죽은 뒤 전권을 잡은 사마사는 자신을 제거하려던 위나라의 3대 황제 조방을 거침없이 폐위시키고 조모를 새 황제로 세웠습니다. 황제마저 갈아치울 정도로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 **허무한 죽음:** 사마사는 눈에 큰 종기(암 또는 중증 염증)를 앓고 있었습니다. 서기 255년, 관구검과 문흠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을 직접 진압하러 나섰다가, 문흠의 아들 문앙의 야간 기습에 너무 놀란 나머지 **눈 위의 종기가 터져 튀어나오는 치명상을 입고 현장에서 병사**하고 맙니다.
### 2. 동생 사마소(司馬昭) : 야심을 감추지 못한 폭주 기관차
형 사마사가 후사 없이 갑자기 죽자, 권력은 자연스럽게 동생인 사마소에게 넘어갔습니다. 사마소는 형보다 감정적이었고, 자신의 야심을 숨기지 못해 수많은 트러블을 일으켰습니다.
> **"사마소의 마음은 길가는 행인도 다 안다 (사마소지심 노인소지, 司馬昭之心 路人皆知)"**
> 당대 위나라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말로, 사마소가 황제 자리를 찬탈하려 한다는 것을 온 천하가 다 알고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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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에서 황제를 살해하다 (조모 살해 사건):** 사마소의 안하무인 격 행보에 분노한 4대 황제 조모가 참다못해 궁중의 시종들을 이끌고 "사마소를 치겠다"며 궁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때 사마소의 심복인 가충과 성제 등이 **황제를 길거리에서 칼로 찔러 죽이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마소는 배후로 지목되어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었지만, 공포 정치로 이를 짓눌렀습니다.
* **촉나라 멸망의 주역:** 조모 살해 사건으로 떨어진 명성을 만회하기 위해 사마소는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등애와 종회를 보냈고, 결국 서기 263년 **유비가 세운 촉한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공로로 그는 '晉왕(진왕)'의 자리에 오르며 찬탈의 비단길을 깔았습니다.
### 3. 사마사 vs 사마소 한눈에 비교
| 구분 | 형 사마사 (208~255) | 동생 사마소 (211~265) |
|---|---|---|
| **성향** | 냉정함, 침착함, 은밀함 | 호방함, 과시형, 야심가 |
| **최고 업적** | 3,000 사병 양성, 고평릉 사변 성공, 황제 조방 폐위 | **촉나라(촉한) 멸망**, 晉왕 등극 |
| **결정적 사건** | 관구검의 난 진압 중 눈 종기가 터져 사망 | 황제 조모가 반발하자 길거리에서 시해함 |
| **역사적 결과** | 사마씨의 독재 체제를 공고히 다짐 | 위나라를 사실상 멸망 직전까지 밀어붙임 |
### 결말 : 아들이 거둔 최종 과실
사마소 역시 형처럼 황제 자리에 직접 오르지는 못하고 서기 265년에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사마소가 깔아놓은 완벽한 판 덕분에, 그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아버지가 죽은 그해에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 조환에게 선양을 받아 **진(晉)나라를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280년, 남은 오나라까지 멸망시키며 마침내 삼국시대의 최종 통일을 이뤄내게 됩니다.
즉, 사마사와 사마소 형제는 **사마씨 왕조의 실질적인 기둥이자 뼈대를 세운 위나라의 진짜 파괴자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