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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말씀/ 히브리서 11:8-19 요절/ 히브리서 11:12 | 2026. 3. 29 | |
| 부활특강 |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지난 2월에 있었던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 가장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장면은 여자 스노우보드 하프파이프 결승전 이었습니다. 최가온 선수는 1차에서 크게 넘어지고 2차도 실패했지만 3차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녀는 1차에서 넘어지고 어디가 부러진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이건 내가 7살 때부터 원했던 올림픽이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하며 다시 힘을 내 도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최가온 선수는 우리나라 올림픽 설상종목 메달리스트의 여자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아브라함도 여러 한계 상황 속에서 부활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아브라함의 부활 믿음을 배우고 우리도 하나님의 인정과 상급을 받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부활 믿음으로 본향을 사모했습니다(8-10, 13-16).
8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에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어느 날 하나님은 75세 된 아브라함에게 우상과 죄의 세력이 만연한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동시에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에게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할 것이며, 그를 복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창12:1,2). 일흔 다섯 살이면 고향을 떠나기 어려운 나이입니다. 젊었을 때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사람들도 이 나이에는 정착하여 삽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네가 가야할 땅은 갈대아우르에서 서남쪽으로 1,500km 쯤 떨어진 가나안 땅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창12:1). 그런데 아브라함은 ‘주여, 저에게 아내와 조카와 식속들과 가축들이 있는데 어찌하여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떠나 가라고 하십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그 곳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에 땅에 도착하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라와 함께 남은 평생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마주한 현실은 한 평의 땅도 소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브라함은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그 땅에 장막 곧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또한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이삭과 야곱은 ‘우리는 MZ세대, 알파 세대’라며 장막문화를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몇 백년 후에 후손들이 이 땅을 소유하고 산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가 불편하고 힘들게 살면 무슨 의미가 있냐며 약속의 땅을 떠나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대를 이어 장막에 거하며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10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이 땅의 삶을 전부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삶이 끝나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에 가서 살 것을 바라 보았습니다. 당시 가나안 족속들은 성을 짓고 살았습니다. 성은 안전하고 편리하고 이사 걱정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어린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빠! 우리도 자주 이사 다니는 장막 말고 성에 살면 안 되나요?’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아들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진짜 좋은 성이 하늘에 예비 되어 있단다.’ 아브라함의 부활 믿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 곧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16).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기뻐하시고 그의 모든 허물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출3:15)라고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칭찬 중에 최고의 칭찬입니다. 하나님은 부활 믿음을 가지고 하늘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새 예루살렘 성을 예비해 주십니다.
히브리서의 1차 독자인 히브리 기독교인들은 당시 동족 유대인들의 조롱과 박해를 받아 회당에서 쫓겨나고 가족의 계보에서 지워지기도 했습니다. 유대 사회의 상권에서 배제되고 직업을 잃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극심한 가난 속에 던져졌습니다. 또한 로마 황제는 기독교를 ‘불법 종교’로 낙인찍어 신자의 가산을 몰수하고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피해 살던 집을 떠나고 이방 땅에 거하며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저자는 부활신앙으로 본향을 사모한 아브라함을 증거함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도 믿음으로 장막에 거하며 외국인와 나그네처럼 살았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영원히 살 것처럼 더 큰 집, 더 좋은 차를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관심과 대화의 주제가 어떤 성 곧 어떤 아파트에 살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부분의 청년들은 물질에 대한 집착에 빠지거나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요 장차 부활할 것을 믿을 때 천성을 사모하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후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예비하신 성이 있음을 알려주고 부활의 믿음을 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부활 믿음으로 많이 생육하게 되었습니다(11-12).
11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아브라함이 부르심 받은 지 24년 되었을 때, 사라 나이 89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사라를 통해 자식을 낳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민족의 약속을 주셨으니 지금쯤 최소 7명의 자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여종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이 전부였습니다. 사라는 이미 폐경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나이는 거의 100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실제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저 웃음만 나왔습니다(창17:17, 창18:12). 그런데 저자는 ‘그들이 황당해하며 웃었다’라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잉태할 힘을 얻었다’라고 증거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순간의 반응에 주목하시기보다 삶 전체를 지탱하는 믿음을 보고 평가합니다. 또한 여기 ‘잉태’라는 말은 단순한 임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산부인과에 가면 의사는 임산부가 서른 다섯 살만 넘어도 노산이라고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100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90세의 할머니 사라가 자녀를 가지는 것, 10달 동안 품는 것, 출산하는 것 모두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셋째 형을 낳고 8년만인 서른 아홉에 저를 가지셨는데 제가 예정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되어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물며 사라는 어떻겠습니까? 사라는 ‘내가 폐경 된지 오래 되었는데 과연 임신이 가능할까?’, ‘설령 임신이 되었다고 10달 동안 잘 품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낳으려면 엄마 몸이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여기는 의료시설이 좋은 성도 아니고 떠돌아 다니는 장막인데 혹시나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온갖 의심이 밀려왔을 겁니다. 하지만 사라는 의심이 들 때마다 약속대로 이루시는 미쁘신 하나님 곧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때 ‘잉태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 ‘힘’은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임하자 100세 된 아브라함, 단산한 사라는 생명의 능력을 덧입어 약속의 자녀를 잉태하고 낳게 되었습니다.
이 부활의 믿음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여기 한 사람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대표해서 쓴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가능성 제로인 한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셀 수도 없는 많은 후손이 생육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참으로 권능의 하나님, 약속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한 사람의 믿음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당시 히브리 성도들은 나 한 사람이 믿음으로 산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며 회의에 빠지기 쉬웠습니다. 고생만 하고 아무 영향력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많은 후손을 생육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한 사람 그리고 소수의 신자들을 통해 핍박 속에서도 복음이 전해지고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영적 후손들이 생육하게 되었습니다.
평신도 목자들은 감당해야 할 십자가들이 많고 대학생들은 이제 자식이나 조카 벌이 될 만큼 세대차가 많이 납니다. 이 나이에 전도하고 일대일 양을 얻어 한 생명을 낳고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를 캠퍼스 목자로 부르시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생명과 부활의 하나님을 믿을 때 잉태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한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나이 때문에 너는 할 수 없다는 속이는 사탄에게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양 섬기기 딱 좋은 나인데’ 하며 새 힘을 얻어 한 생명을 낳고 키워낼 수 있습니다.
김마가, 베키 목자님은 아브라함과 사라 가정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줄기차게 캠퍼스 복음역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여러 양들이 왔다 갔지만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캠퍼스목자의 삶을 삽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양들을 붙여 주시고 생육 번성하는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지난 주 바이블까페에 아버지 김마가목자님과 아들 김재성 형제님이 메신저와 소감 강사로 쓰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림대 개척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 희망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였습니다. 개강 초 간단한 설문지와 간식을 만들어 열심히 양들과 관계성을 맺고 일대일에 초대하였습니다. 동역자님들의 지원으로 한 양이 바이블 까페에 오고, 저도 바이오메디칼 한 형제와 일대일 약속을 잡았을 때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그 형제가 친구 만나러 가는 바람에 일대일이 펑크가 나자 힘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 부활의 믿음을 배우고 새 힘을 얻고 개척의 희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에게서 가능성을 찾지 않고 부활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전도와 일대일에 줄기차게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부활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17-19).
17-19절은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은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약속의 자녀 이삭이 청소년 쯤 되었을 때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는 모두 태워 드리는 제사인데, 자식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몰록’을 숭배하는 암몬족속에게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하시니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났습니다. 삼일 길을 가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러 종들은 나귀와 함께 기다리게 하고, 나무는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갔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차마 ‘번제 할 제물은 너다’라고 말할 수 없어서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그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급히 아브라함의 행동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22:12)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발견케 하시고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런 불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창17:19). 그런데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산으로 3일 길을 이동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부활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하고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 큰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시고자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축복으로 주신 것들인데 때론 그것을 바치라고 하실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 의심하는 마음이 들수 있습니다. 자신이나 배우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녀가 아프거나 사고를 치기도 하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나올 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랑과 헌신으로 섬겼던 양이 굿바이 하기도 합니다. 히브리 성도들도 불과 같은 시련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 받고 축복 받아야 하는데 현실의 삶에서는 고난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습니까? 부활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신 부활의 능력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부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때에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고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서 하나님께 드리고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불같은 시험을 능히 통과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크고 진정한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부활의 계절인 봄이 되었습니다. 이 봄에 우리 모두 아브라함의 부활 믿음을 본받아 부활 권세를 덧입어 한 생명을 낳고 키우는 영적 부흥의 새역사를 힘차게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성을 사모하는 순례자의 삶, 불 같은 시험도 통과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김베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