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출33:1-11)
갈등
1. 출애굽기 내러티브 52번째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인생사에서 최대 변화의 시점입니다. 노예 신분에서 자유인-그것도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거듭났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내산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하며, 율법을 주셨어요. 율법은 딱딱한 성문법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 그 나라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토라입니다.(사랑의 관계에서 출발) 오늘 본문 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시내 산을 출발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해 주셨던 땅-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 산을 떠난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터닝 포인트-새 분기점-가 되었듯이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계명을 받은 것을 어떤 이들은 결혼식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식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실제 결혼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가 세상 어떤 관계보다도 친밀한 사이-신뢰 관계를 필요한 사이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시내 산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면서 2절,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낼 것이라고 약속하셨어요.
2.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동행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시고, 대신에 하나님의 사자-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이었어요. 시내 산을 떠나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서먹했어요. 결혼식을 마친 뒤 얼마 안 되어 관계가 틀어진 부부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의 근원을 아셨습니다. 언제나 그러시지만 정확한 판단과 지혜가 그에게는 있으십니다. 3절,“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율법을 주시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본성이 어떤지 확인하셨습니다.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어요. 목이 곧다는 말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에요. 말에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갑니다. 이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고삐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당겨도 말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목이 곧은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듣지 않는 교만한 모습을 의미해요. 이스라엘이 어쩌다, 신혼 초와 같이 행복해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흐트러지고 말았을까요?
갈등 심화
3.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지금 풍전등화와 같이 아슬아슬하였습니다. 그런데 7절 이하에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는 신혼을 완전히 즐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이 거하는 진영과 멀리 떨어져 회막을 하나 지었어요. 이것은 성막이 아니고,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하던 특별한 공간으로 이었어요. 모세가 이곳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갖는 것을 알았던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그들이 거하던 진에서 나와서 이 회막으로 모였습니다.
모두가 움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앙모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물을 일이 있는 자를 말해요.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하나님께 다 묻지는 않아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회막으로 갈 때에, 자기 장막(텐트)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섰습니다. 이 회막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셨습니다.(8-9절) 구름 기둥이 내린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냈습니다.
4. 불기둥도 그렇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멀리 각자 장막에서 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는 이 장면을 전하며 성경은,“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표현했어요.(1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함과 달리, 모세와는 이처럼 친밀하게 지내셨어요. 모세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이 말씀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오늘 우리는 어떻게 적용하며 살 수 있을까요?
실마리
5. 오늘 본문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완전한 인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이것을 알면 하나님과 만남과 교제가 쉬워져요. 하나님의 전능하심, 전지하심, 위대하심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분은 우리와는 너무 거리가 멀리 계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태도와 모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것을 쉽게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와 상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어요. 우리가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로서 우리와 상통하는 것은 신뢰 관계로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동행하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였던 일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는 시간이 성스럽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순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크게 진노하게 하셨어요.
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는 길에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가 그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자, 이스라엘의 마음이 급해졌어요. 4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모두가-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않았습니다. 몸을 화장하고 꾸미지 않고 겸손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진멸하려고 하셨지만, 모세가 자기 생명을 내놓고 중보기도하여 이것은 면했어요.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한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우상숭배적 요소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셨어요. 하나님은 이 명령을 하시면서,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다고 선언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준엄하신 말씀을 듣고서야 장신구를 떼어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변화된다는 것이 이처럼 어렵습니다. 세상 다른 종교의 신들이라면 이스라엘은 진멸되고 말았습니다. 이데 반해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는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최상의 모습입니다.
7.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과 모세의 교제 모습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갈망하는 이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이만큼 자란 모습이에요. 리더도 모세와 같이 부름을 받은 후 자라가야 해요. 리더가 자라가는 모습을 보면, 그 리더를 따르는 이들의 마음이 평안합니다. 리더를 따라서 하면 된다는 안도감이에요. 우리 리더는 믿음직하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도 인정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존경과 신뢰를 듬뿍 받았습니다.
이상적인 리더상입니다. 신34:10,“그 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인격과 같이 모세의 인격도 상당히 자랐어요. 물론 모세가 끝까지 완전한 것은 아니었어요. 므리바 물 사건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요단강 건너편에서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런 한계성이 있었지만, 모세는 놀라운 인생을 살다 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복음 제시
8. 모세가 회막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볼 때 생각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15:14-15,“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오늘 본문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모세가 하나님과 친구와 같이 교제함 같이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명하는 대로 행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과 모세의 인격적 관계-신뢰 관계의 형성이 이뤄진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인격적 신뢰 관계가 이뤄질 때,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도전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주님은 종-노예와 친구의 차이를 말씀하셨어요. 주인은 종에게 자기 계획을 말하지 않는다고요. 종-노예는 주인의 말을 따라 순종할 뿐이에요. 친구는 다릅니다. 친구에게는 자기의 계획을 다 알려주고 협력을 요청하듯이,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어요. 종처럼 살지 말고요.
기대
9. 오늘 금요기도회 시간에 참 좋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꼭 적용할 수 있는 귀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 신뢰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도 원하고 기다리시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비결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저도 직접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 문화나 책이나 다른 것들을 가까이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전혀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데 시간을 보내는 만큼 하나님과 교제 시간-말씀과 기도의 밸런스-을 소홀히 하면 그만큼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친밀함이란 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 중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잘 체크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이제 기도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도전을 받고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