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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5:11~14 하나님의 목적
"멜기세덱에 관하여는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여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음으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오늘 우리는 초보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약 시대 이후부터 교회는 건물로 지어진 예배장소로 말하지 않고 있으며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는 그리고 초보적인 교회는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교회)들을 가르치는 어떤 자는 어떤 자를 말합니까?
우리는 우리를 가르쳐주는 대상을 회중교회에 목사를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으로 그를 가르치는 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인 제가 저를 솔직하게 표현을 한다면, 목사는 분명 먼저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 있으나, 늘 실수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제자 중에 가롯유다처럼 범죄 할 수도 있는 존재로 봅니다.
그리고 목사는 하나님의 뜻(영혼 구원)을 따라 교회의 질서를 위해 돕는 자로 세운 종일 뿐,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인은 목사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소개하는 자여야만 합니다.
마치 신랑을 알아 신부에게 신랑이 어떤 분인지를 신랑의 실체를 바르게 알려줘서 신부가 듣고 바르게 알아 영접할 수 있도록 돕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사명이라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성경에 근거하여 경험한 근거로 소개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소개하는 자가 그 신랑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있지 못 하거나, 또는 소개소(건물교회당 장소)를 잘 만들어놓고는 관리하는 일에 치우쳐서 정작 신랑을 소개하는 일보다는 다른 것에 치우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개자의 학벌이 좋다거나 규모가 크다거나 이름이 나서 훌륭하다거나 인기가 있다 거나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신부에 입장에서 얼마든지 미혹 거리가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단순하게 학벌이나 다른 세상이 인정 할 만한 어떤 것을 가진 것을 훌륭한 (목사) 것으로 여겨 추종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목사를 그렇게 훌륭하게 만드신 하나님이 중요하지 그 목사 따라다닌다고 참 신랑을 만나고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목사도 언젠가는 변질될 수도 있고, 죽어 없어질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우리의 목표가 항상 신랑 되실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나와 함께 하실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소개자로서, 자신이 만난, 또 자신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고 있는 그대로 알려줌으로 사명을 다하면 되는 것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그 종의 권위가 떨어지느냐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바른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들은 오히려 더 존중하고 사랑하여 그 하는 일에 함께 협력하게 됩니다.
그런 종을 무시하는 신자가 나온다면 아직 뭘 모르는 어린 신자이든지 아니면 가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초보적인 교회(영적 거듭났으나 아직 어린 상태의 사람)는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못 먹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젖과 밥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젖은 씹지 못하고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밥은 씹어서 자신이 직접 소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목사의 설교는 목사 자신이 먼저 말씀을 먹고 연구하고 해서 성도들에게 먹이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보편적으로 젖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젖은 먹기는 쉬우나 그것을 먹는 자는 힘을 쓰기는 어렵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농사 짖는 일군은 밥을 먹어야 힘을 씁니다. 그러므로 젖을 먹는 사람은 아직은 일을 못 합니다.
오늘날 교회(목사나 거듭나 장성한 자)가 해야 할 일은 구원이 필요한 자들을 거듭나도록 예수를 구원자 되심을 알게 하는 일을 통하여 거듭나게 하고 거듭난 어린 자들을 잘 자라도록 말씀의 양식을 먹이는 일로 돕는 것인데, 이 돕는다는 것을, 교회 건물의 화려함이나 교회 운영을 잘하는 것으로 잘못 방향을 잡아서 교인들을 칭찬해주고, 추켜 주고, 상품이나 조건을 내걸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심리를 이용하고 자극하여 거듭나게 함이 아닌 종교 생활을 잘하게 하는 자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건물 교회를 만들어 놓고 기독교 TV에 신문에 우리 교회가 우리 목사님이 ...자랑하며 광고 하는등 그런일에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교회가 시끄럽고 사회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고전 3:2~3)절을 보면 초보적인 사람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교회로 들어와 거듭난 영적인 새 생명의 사람이 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장성하기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주님 당시에 유대인들처럼 종교인으로 살면서 그분이 주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영의 양식으로 먹을 수 없다면, 즉, 못 알아듣는다면, 우유나 젖을 먹는 어린아이로 초보적인 신앙으로 살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모여있으니 시기와 분쟁을 가지고 있기에 다툼이 일어나고 교회의 좋지 못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아직 젖을 먹는 상태의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보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은 주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 번째 초보적인 사람은 히브리서 6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히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갈지니라.”
초보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매주 죽은 행실을 회개하여야 한다며 가르치거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에 대하여 한거 또하고 .... 반복하여 배우고 가르치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 다음의 성장의 과정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초보적 교회의 특성은 성경을 억지로 푼다는 것입니다.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억지로’로라는 헬라 단어 '스트레블로오' 를 보면, ‘교묘하게’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같은 성령에 가르치심으로 풀어지게 되어있어서, 성경 말씀을 먹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여야 합니다. 깨달음의 은혜를 구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양식(떡)을 여러 곳에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4:4절에서 보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라는 말씀과 마태복음 6:11절에 '일용할 양식'도 아르토스(떡)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양식과 일용할 양식은 요한복음 6장의 생명의 떡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떡은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양식은 곧 말씀이며 그리스도로 자동적으로 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풀면 하나도 무리가 없습니다. 왜....성경 자체가 떡에 대해서 자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중에는 일용할 양식을 어떻게 풀고 있습니까? 육신의 떡도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되고.....
그렇게 말하는 근거로 요한복음 6장에서 보면, 오병이어를 가지고 분명히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를 누구 삼으려고 쫓아다녔습니까? 자기들의 먹거리를 해결해줄 임금 삼으려고 쫓아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때 요6:27절에서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너희가 나를 찾는 목적이 육신의 떡이 아니라 영생의 떡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에서 예수가 육신의 떡도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교인들을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다른 방향으로 잘못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목사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까? 먼저는 사람들이 먹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받음, 곧 세상 것을 얻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은 것으로 잘 못 알고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그런 식으로 풀어놓고 보면, 이 (영의 양식)떡 때문에 이 떡을 잘못 알고 믿는 사람들이 이 떡에 관한 문제 때문에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떡을 잘못 알고 잘못 먹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이 그 사람들에게 이루어지지 못해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혼은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그것을 지금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장후반부에서 마지막으로 말을 합니다.
(벧후 3:16-18)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벧후 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아전인수식풀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경은 사적인 상식이나 견해로 풀면 안 됩니다. 자기 머리나 생각 속에서 풀면 아전인수식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해석되어야 합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 신비한 것들을 다 찾으시고 조사하실(통달의 뜻) 수 있으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6:19~ 에 기록 된 보물에 대하여도 살펴보면, 보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헬라단어 데사우로스)
‘보물’이란 단어는 ‘쌓아 두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화의 개념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화를 재물(물질)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보화를 헌금으로 생각을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서 그 보화가 하늘에 쌓아진다고 인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거듭난 하나님 나라 백성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보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보화를 그리스도 자신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영원한 새 생명의 사람 되게 하는 분이시기때문에 새 생명을 보화처럼 여기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화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보화인 사람은 보화가 그리스도로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보화로서의 가치성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는 자연히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이 보화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보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정확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본문의 보물을 세상 재물로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이어지는 24절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지금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개념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보화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토록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이 보화를 세상 재물로 푸는 자들이 있어서 혼란케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자들인 것입니다.
하늘의 보물과 땅의 보물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못 이해 하는 사람은 재물을 하나님 섬기듯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 마음 안에 재물이 보물이면 그 빛이 어두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곧 나에 대해서......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면 반드시 거기에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목사는 여러분이 말씀 속에서 스스로 그리스도, 말씀, 생명을 발견하기까지 이끌어주고 안내해주고 중매를 잘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종들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중매가 끝났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랑에게 보내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보적인 교회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문제만이 잃어나는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어른으로 장성한 자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수시로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양식을 말하면서 사사로이 풀어주는 거짓 선생들이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보혜사(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간구하여 깨달음으로 말씀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상고하다 보면, 양식이 보화가 말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발견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은 생명을 만나게 하는 중매 장이 노릇을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잘 배우십시다. 잘 가르칩시다.
거듭난 후 어린 아이의 상태로 머무르지 않고 점점 자라서 장성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장성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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