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 행복길
손 원
설명절은 최대의 명절로 민족 대이동이란 표현을 써 왔다. 코로나19가 있기까지는 그랬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휩쓴지 세 번째 맞이하는 설명절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도로 소통이 괜찮은 편이었다. 한 때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는 보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명절이면 주요 고속도로 주행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걸린다고 할 뿐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도로사정이 그간 현저히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설과 추석은 온 가족이 모이는 가족화합의 날이기도 하다. 특히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뵈러 객지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뜻 깊은 날이다. 부모님은 오랫만에 아들 손주를 볼 수 있고 때로는 새로 태어난 손주를 안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고향을 찿는 이유중의 하나다.
민족 대이동의 현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80년대까지만 해도 고향길을 오갈 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명절을 앞두고 역이나 고속버스터널은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당시는 차표도 예약이 아닌 현장 발매 위주여서 창구는 수 십미터 줄을 서야했다. 요행히 표를 구해도 좌석수와 관계없이 사람을 태우다보니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처럼 빽빽하게 사람을 태웠다. 앞 뒤 사람끼리 가슴과 등이 붙을 정도의 숨막히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견뎌야 했다. 고향에 가는 기쁨으로 그 쯤은 흔쾌히 감내하며 경유지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했다. 거기서 고향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고역을 치루고 밤이 되어야 기진맥진 고향집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90년대부터는 승용차 보급이 급속히 늘어나는 바람에 대중교통에서 승용차로 비중이 높아져 갔다.
명절을 앞두고 고속도로는 차량홍수를 감당하지 못하여 구간구간이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 차량은 거북이 걸음을 했다. 서울~부산간 평소 다섯시간 걸리던 것이 열시간 넘게 걸릴때도 있었다. 고향의 부모님은 출발 시간을 상기하며 온종일 목이 빠지라고 마을입구를 바라보셨다. 밤 늦게나 새벽에 나서서 비교적 수월하게 도착한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동승한 가족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수 십 년간 명절때 고속도로는 제역할을 못했다.
최근의 상황은 어떤가?
사통팔달 쭉쭉 뻗은 고속도로는 명절 때 차량홍수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가용 승용차로 가족이 편안하게 고향을 오간다.
전국망 고속도로 건설은 국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국회의원들의 감초와도 같은 공약이기도 했다. 다소 무리한 도로건설 공약일지라도 지역민을 등에 업고 강력히 추진하여 성과를 내어 자신의 치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너도나도 이런 공약을 남발하다시피 한 결과 전국토 고속도로망 확충은 급물살을 타 전국이 두 시간 생활권으로 변모했다. 국토의 대동맥이 생겨나 다행스럽기는 하나 한정된 재원의 과다 투자로 인한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복지사업이 후 순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제 대단위 국토건설사업이 대부분 마무리 되었고 복지분야에 치중하게 되었다. 실제로 복지분야가 국가예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복지국가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어 무척 다행스럽다.
고향길을 편하고 시원하게 달릴 수 있어 만족스럽다. 고향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져가는 것만 같다. 이제 고향을 찾아 애정을 심고, 고향정을 가득 담아 오도록 하자. 고향에 가면 가슴 속에 커다란 항아리를 품고 가보자. 출발 때 그 항아리는 텅빈 항아리로 고향의 정을 채워 돌아 올 요량이다. 고향집에 도착하여 저만치 서 있는 부모님께 손주가 달려가 안 긴다. "아이구 내 새끼, 많이 컸네."라며 안아준다. 부모님의 따뜻 한 정을 한바가지 항아리에 채운다. 방안에 들어서자 허기질 세라 며칠 전 사 온 미꾸라지로 정성껏 끓인 어머니표 추어탕 한 그릇은 사랑의 온정 한 바가지를 또 채운다. 이튿 날 새배에 축복의 덕담을 수 없이 퍼 담자 품은 항아리는 거의 차 올랐다. 집 나서자 참깨, 들깨, 고춧가루, 마늘, 간장..., 바리바리 싼 보따리가 터렁크에 가득찬다. 품속 항아리가 턱 없이 적을 정도로 과분한 양이다. 고향서 가득 채운 온정의 항아리를 가슴속에 간직하면 생활에 활력을 갖는다. 차디찬 객지생활에 따뜻한 품속 항아리는 온정의 소금이 된다. 항아리가 완전히 비워지기 전에 고향 갈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고향마을 도착 시 까지 비교적 먼 길을 오너드라이버가 되어 신나게 달려 보는 것 또한 고향가는 묘미가 되고 있다. 고향을 다시 찾을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와 설렘은 한 해 내내 지속되고 있다.(2022.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