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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고려에서 요동을 자기 땅이라 주장한 이유에 대한 제 생각..
주현 추천 1 조회 1,005 14.04.06 19:3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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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4.06 19:53

    첫댓글 이게 드라마 스토리가 되어야 하는데 대세는 매국노 스타일이니
    정리 잘해주셨네요. 알차게 보고 갑니다

  • 14.04.06 20:29

    한족 반란 세력을 토벌하기위해서 고려군 이천명이 원에 파병되었을때,
    요동에 들러서 고려유민을 징발하여 고려군에 편입시킨 결과 병력이 10배로 늘어났죠...2만대군이 되어 원나라 본토로 들어가 한족들과 싸웠죠.
    요동은 엄청나게 많은 고려인들이 있어서 오늘날의 연변과 같은지역이었죠... 요동이 고구려와 발해와 연고가 있었고, 공민왕때 일시적으로 점령한 적도 있었고
    1374년에 요동에 사는 고려출신 요동 군벌들이 고려에 투항하겠다고 편지를 보낸 점을보면
    아예 고려와 요동은 아무런 연고권이 없다고 볼수는 없죠...조선초기만 해도 요동에 사는주민들의 상당수가 조선과 관련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니 ,,,

  • 14.04.06 20:38

    오늘날의 연변에 조선족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그게 한국 땅이라고 볼 수는 없듯이 단순히 유민들이 많은게 고려와 연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죠. 공민왕때는 진짜 일시적으로 점령했을 뿐이니 이걸로 연고권 주장도 억지이고.

  • 14.04.06 22:35

    @데스사이즈 그럴 수도 있죠. 전 또한 요동정벌론이 현실성이 없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러나 그걸 떠나서 고려가 강대국이었다면, 요동을 먹을때,이런 요소들이 좋은 명분을 줄 수 있다는것입니다.
    자기 옛땅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고려주민들이 대거 살고 있다는 점, 한때 요동 군벌 일부가 고려에 투항하려고 했던 점, 공민왕때 일시적으로 점령했고 자기네 땅이라고 선포했다는 점, 그외에 심양왕 일도 있으니
    고려와 연고 있다는게 명나라가 요동에 연고 있는 것보다 훨씬 높죠..결국 힘의 논리로 따져서 명나라가 요동을 먹은게 현실인 점이죠..

  • 14.04.06 23:59

    @튜어니즘. 그렇죠 비슷한 예로 충렬왕부터-공민왕까지의 '혈통'은 중앙아시아에서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썰'을 풀고 폭풍을 일으키고 다녔던 양반이었다면 엄청 부러워 했겠죠.........

  • 14.04.06 21:11

    딱 크킹2의 클레임 명분이네요 ㅎ

  • 14.04.06 23:55

    저 같은 경우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대원제국'이라는 중앙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쌓이고 쌓였던 모순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다시 재정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 였다고 봅니다.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도 '명분상' 원의 옛 제도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고, 그에 반발한 고려측에서 '우리가 오히려 요동의 주인이다' 식으로 역대응 한 것이며, 그 안에 심양왕제도가 어느정도 작용을 한 면도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뭐 요즘으로 치면 '독도는 일본꺼! 뭔소리냐 오히려 대마도까지 한국꺼다!'식의 고려말 ver 정도?(자매품으로 센카쿠는 일본영토! 헛소리 즐 류큐도 원래는 우리 중국꺼였음도........)

  • 14.04.07 00:22

    이에 더해서, 주원장의 '철령위는 원나라 땅이었으니 원나라 계승한 우리꺼'의 클레임 주장과 비슷한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철령위에 대응하는 주장으로 요동정벌을 내세운 거겠죠. 실제로 논리구조도 '철령위는 원나라 땅이었으니 원의 정당한 계승자인 우리꺼'와 '요동은 심왕의 것이고 고려왕이 심왕의 정당한 계승자이니 요동은 우리꺼'는 대응되는 식이구요.

  • 14.04.07 01:09

    원래 클레임은 법적 문제로 해결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실제 유럽에서 클레임은 법적인 효력이나 중재보단 국가대 전쟁으로 대결 한 후 결과가 갈렸습니다. 그렇다고 전쟁에서 진 나라가 그 클레임을 포기했냐 아니죠.. 대대손손 그 클레임을 물려줍니다. 그게 친손 외손 처가 할것없이 서로 클레임을 주장하는 이유가 한편의 전쟁이 일어나지만.. 대게 한번 주장한 클레임을 철회한 나라는 없습니다.

  • 14.04.07 20:48

    원명 모두 고려를 고구려의 후예국으로 인식했습니다. 1370년 공격 때도 기샤인테무르 토벌 외에, 본래 우리 땅이었는데 원황실과 장서관계가 되어 관할권을 양보한 땅의 범주에 요동도 들어간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심양왕이라는 게 요동 전체를 관할하는 관작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최영의 의도는 심양정벌이 아니라, 무력도발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실제 이 이후 명이 요구를 철회하기도 하구요.
    최영은 젊은시절 원나라 반란진압하던 경험이 독이 된듯, "요동공격이면 원나라가 강성(?)한 시절에도 15000으로 성공했는데, 혼란스러운 원명교체기에 50000으로 못할 게 뭐야?" 약간 이런 마인드였던 거라고 생각되네요 ㅋㅋ

  • 14.04.07 20:49

    우왕의 경우 명의 철령위 요구 이전에도 요동을 공격할 의사가 있었음이 고려사절요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자신의 계승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명에 대해 무력시위를 할 의사가 그 이전부터 있었고, 최영이 고려의 전권을 쥐게 되고 명이 직접적으로 영토할양을 요구하자 터져나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요동이 일시적으로 비었다는 보고에 우왕이 기뻐했다는 것도 이 공격이 명과의 전면전-요동정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물론 우왕은 원의 관복을 입으라고 명하거나, 북원과의 협력을 꾀하는 등 당시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14.04.07 20:51

    이성계가 요동의 정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나하추 등 요동의 원나라 군벌들이나 북원정권의 정세 역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고, 행정-군사적으로 잘 정비된 명나라의 요동권역을 뚫고 들어간 후에 서달이 지휘하는 수십만의 북원 원정군과 싸워야할 거란 점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 차라리 지금 말고 나중에 하자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우왕의 고집으로 요동정벌이 결정되자 나라가 망할 거 같다고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이해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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