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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장, 멀어진 부부사이
미현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집안 살림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매달린다.
그동안 세희가 너무나 집안을 잘 보살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없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주부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세희의 눈썰미가 남들 못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살림을 맡긴다 해도 손색이 없는 주부의 솜씨였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까탈스럽고 꼼꼼한 세희의 성품을 알고 있는 미현이었지만 집안 구석구석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제 미현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다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을 한다.
미현은 자신의 건물에 들려본다.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물의 상가들을 유심하게 살펴본다.
이대로는 집안에서 살림만 하기에는 세미의 뒷바라지가 힘들다는 생각이다.
세미는 이제 새로운 악기도 구입을 해 주어야 하고 다시 좀 더 낳은 선생님을 찾아 새롭게 지도를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세미를 위해서 유학도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세미를 위해서라도 자신이라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세미 생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세미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건물을 살펴본다.
벌써 몇 년을 손을 대지 않았던 건물의 외형 또한 낡고 초라해 보인다.
우뚝 우뚝 솟아있는 주변의 큰 건물들에 비해서 오 층짜리 건물 자체로도 초라해 보이지만 손질을 해 주지 않은 건물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다행히 상가 요지로서는 아주 최적의 위치라는 것을 빼고 나면 정말 보잘 것이 없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미현은 수중에 남아 있는 현금을 생각해 본다.
그 현금으로는 감히 건물을 손질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미현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세영과 의논을 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세영아!
나하고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니?“
아침을 먹으면서 미현은 세영에게 운을 뗀다.
“네!
어머니가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지요.“
우진은 못 들은 척 밥을 먹으면서 두 사람의 말을 듣는다.
”그래!
고맙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 알고 있지?“
”네!“
“어제 잠시 둘러보니 몇 년을 손을 대지 않았더니 영 초라한 것이 너무 볼품이 없더구나!
그래가지고 어디 세입자들이 장사를 할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다.“
”아!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시고 싶으신거죠?“
”그래!
새롭게 단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너와 상의하고 싶다.“
“어머니!
그런 문제라면 저 보다는 아버지가 적격이신 것 같네요.
안 그래요?“
세영은 아버지를 보면서 동의를 구한다.
세영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전에 없이 아버지에게 무척이나 냉랭하고 찬바람이 도는 모습을 보이신다는 것을 수없이 느껴오던 세영이었다.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사이를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모른 척 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글쎄다!
네 어머니가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아버지!
그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이것이 어머니 개인의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집안 문제고 아버지가 적극 나서셔야만 하는 일이 아닌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지금이라도 그 건물을 둘러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살펴보고 나서 결정을 하겠다.“
세영은 아버지의 활기찬 음성을 듣고 어머니를 보면 눈을 찡긋해 보인다.
미현은 그런 세영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진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우진은 미현의 말이 없음을 미현이 승낙하는 것으로 믿고 집을 나선다.
처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낸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미현은 차라리 모른 척 해 버린다.
그렇게라도 무슨 일이든 맡아서 해 준다면 미현으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미현은 필요한 말 이외에는 우진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있었다.
방에 이부자리도 각각 따로 펴고 잠을 자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부부였다.
그러나 미현은 이제 남편이라는 생각보다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우진을 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진은 그런 미현의 행동을 아무런 말도 없이 고스란히 받아드리고 있었다.
미현의 닫힌 마음이 쉽게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은 아내에게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무엇이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뜻하는 대로 하려고만 했었다.
아내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현의 상처는 생각보다 너무나 큰 것이라는 걸 우진은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자신은 남편으로서 미현에게 이미 권위를 잃었다는 걸 깨닫는다.
우진은 자신이 그동안 그 건물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그 건물을 오랫동안 손을 보지 못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내가 가보기 전에 자신이 미리 가서 보았더라면 아내와 단 둘만의 좋은 이야기 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자신이 어떻게 하든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그 건물을 새로 보수 공사를 맡아서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아내의 말대로 건물을 너무 보기 흉하게 낡아 있었다.
우진은 하루 종일 건물 내부와 외부를 꼼꼼하게 관찰을 한다.
우선 낙후된 전기시설들을 모두 교체해야만 했고 바닥재도 모두 바꾸어야하고 외관 역시 낡고 떨어져 나간 곳을 손을 보아야만 했다.
우진은 며칠을 전문가를 대동하고 세밀하게 관찰을 한다.
생각보다 보수공사가 상당히 많았다.
군데군데 보수를 할 바에는 세영의 말대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러나 자금이 문제였다.
세입자들과 많은 상의도 해야 하고 그들의 의견도 들어야만 했다.
“여보!
군데군데 보수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는데 당신 생각을 듣고 싶소.“
”리모델링을 하면 좋겠지만 자금이 문제지요.
지금 수중에 그만한 자금이 어디 있어요?“
”........................“
우진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면 얼마 정도는 마련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수중에도 그만한 자금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아내의 말대로 건물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는다면 융자금을 갚아나가기에 허덕일 것이다.
그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가 생활비로 충당이 된다는 것을 우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진은 며칠을 고심을 한다.
아내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멋지게 모든 일들을 처리하고 싶다.
우진은 처음으로 형제들을 찾아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아쉬운 말을 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진이다.
이제 처음으로 형님과 동생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가 계신 형님 댁으로 간다.
심여인은 우진의 모습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지난번 같지 않고 눈동자가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기에 좋은 것이다.
심여인은 모처럼만에 아들 삼형제를 보면서 마음이 흐뭇해져 온다.
다들 제 각각의 몫은 하고 있는 아들들이다.
우진의 눈동자도 다시 살아나고 생기가 있는 모습을 보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소의 안도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우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용건을 꺼낸다.
오층 건물의 리모델링에 대한 세부적인 설계도면을 꺼내놓고 설명을 한다.
형과 아우는 우진의 설명을 관심을 가지고 듣는다.
“이 건물을 다시 이렇게 리모델링을 해 놓으면 지금보다 임대료도 더 받을 수 있고 상가지역으로서는 최적지라서 다시 임대를 하겠다는 점포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형님!
공사비를 좀 빌려달라고 이렇게 왔습니다.“
”내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심여인은 우진의 말을 듣고 나선다.
“네 형제들이 공사비를 빌려주어 건물이 새로 태어난다고 하자.
그 다음에 넌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을 해 봤니?“
우진은 어머니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한다.
“네!
이제는 이렇게 맥 놓고 이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는 없지요.
애들 엄마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건물에 상가 하나를 제가 가게를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가게를 운영한다고?”
“네!
스포츠용품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유명한 브렌드의 스포츠용품은 선호도가 아주 높아 장사도 잘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스포츠용품이라고 해서 운동복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갖 스포츠용품이나 남성 여성용품 레저복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집 사람과 함께 하기에도 아주 좋은 가게이기도 하고요.“
”세영 어멈이 하겠다고 하던?“
“좋다 싫다, 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싫다, 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반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세영 어멈이 찬성을 한다면 그 비용은 내가 마련을 하마!
모자라는 것은 네 형제들을 설득해서라도 이 어미가 마련을 할 테니까 우선 세영 어멈의 허락을 받도록 하거라!“
심여인은 어디까지나 며느리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
어머니 말씀대로 네 안식구에게 먼저 허락을 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도 건물의 공사대금과 네가 가게를 여는데 필요한 모든 경비를 책임지고 마련해 줄 것이다.“
우진의 형이 어머니의 말에 동조를 한다.
“사실 말이지 네가 사업에 실패를 하고서도 지금까지 형제나 집안에 아무런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제수씨 덕분이 아니냐?
그런 제수씨의 마음을 네가 잘 이해하고 다독여 주지 않으면 세상 어느 여자가 남자를 믿고 살아갈 수 있겠니?
난 말을 하지 않았다마는 세상에 제수씨 같은 사람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의 배 아파서 낳은 자식들을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사랑으로 감싸 안고 키우기가 쉬운 일인 줄 아니?“
“..........................”
우진은 형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다.
“우리가 가끔씩 하는 말이다마는 그래도 넌 처복이 있는 사람이다.
제수씨가 너를 만나 마음 편안하게 살아온 적이 있었니?
네가 세미 엄마의 일로 회사와 집안을 거의 돌보지 않고 있을 때만 해도 보통의 여자였다면 그때 네 곁을 떠났을 것이다.
제수씨 같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 고통을 받으면서 네 곁을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니?“
“할 말이 없습니다.”
우진은 솔직히 아내의 고통을 인정하고 있었다.
“우진아!
남자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봐야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왜 몰라?
더구나 넌 이미 한 번의 결혼을 실패한 사람이 우리보다 그런 사실들을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 제수씨가 아무런 일도 없이 털고 일어나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고 있니?“
“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머니께도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니셨다면 아마 집 사람이 지금도 심한 고생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집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시고 돌봐주셨기에 그 사람도 마음을 잡고 일어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을 한다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다시는 네 안식구를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
어머니인 심여인은 아들의 마음이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와 주었음을 확인하면서 기쁜 마음이 된다.
예전의 아들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참으로 인정이 많고 정이 넘치는 아들의 성품이었다.
우진은 그렇게 어머니와 형제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건물의 리모델링을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잠시 아내와 나누던 점포 이야기를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와 형제들의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이다.
아내의 결정이 없이는 아무것도 자신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또 다시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진은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이 모두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간 뒤에 미현과 마주 앉는다.
“당신과 할 말이 있소!”
“...........................”
미현은 그저 우진을 바라볼 뿐이다.
“여보!
지난번에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문제요.
이번 공사가 끝나면 점포 하나를 쓰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오?“
“기억해요!”
“당신이 아직 아무런 답변을 해 주지 않아서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그곳에 스포츠용품을 취급하는 점포를 할 생각이오.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소.“
“내가 꼭 허락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그렇소!
이제는 모든 일에 당신의 허락을 받아서 하고 싶소.“
“........................”
미현은 우진을 한동안 바라본다.
“왜 그래야 하는 것인가요?”
“여보!
우리 가정을 위하고 또 당신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점포를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오.“
“나와 함께라니요?”
“이제 아이들도 다 크고 잔잔한 손이 갈 일이 없지 않소?
더구나 세희가 급하면 집안 일손을 돕고 있으니 당신이 집에만 있다는 것이 갑갑하고 또 다시 당신 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신이 무엇인가를 하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것이오.
이 가게를 운영하면 당신과 둘이서 손을 잡고 열심히 해 나갈 계획이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렇소!
다시는 당신에게 그 어떤 고통도 주고 싶지 않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당신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서도 뻔뻔스러웠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소.
나를 용서하고 다시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되겠소?“
우진은 진심을 다해 미현을 설득한다.
아내와 이렇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하기는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난 다음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우진은 아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아내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을 해 왔었다.
미현 또한 그런 우진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큰 사업만을 하던 사람이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것도 자신과 함께 해 나가기를 바라고 모든 결정권을 자신에게 맡긴다는 태도에 미현의 마음은 조금씩 우진을 향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수고하심에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