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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사기열전 15.맹상군(孟嘗君) 열전
잠실/맥(조문희) 추천 0 조회 51 14.08.19 16:0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고전에서 배우는 지략과 처세>

 

  

 

 

사기열전

評譯 김치영

  

15.맹상군(孟嘗君) 열전


맹상군(孟嘗君)의 이름은 문(文), 성은 전(田)이다. 문의 아버지는 제(齊)나라 위왕(威王)의 막내아들이며 선왕(宣王)의 이복동생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이다. 전영은 추기(鄒忌), 전기(田忌)와 함께 장군으로 활약하여 위(魏)나라를 도왔고 한(韓)나라를 공격했다.

성후(成侯 성 땅의 제후)인 추기는 전기와 더불어 왕의 총애를 다투었고 결국 성후가 전기를 모함하기에 이르렀다. 전기는 이를 두려워해 제나라 변방을 공격했으나 패하여 도망갔다. 마침 위왕이 죽고 선왕이 즉위했는데, 전기가 모함을 받은 사실을 알고 다시 불러 장군으로 삼았다.

선왕 2년, 전기와 손빈(孫?) 그리고 전영이 함께 위(魏)나라 마릉(馬陵)을 공격해 빼앗고, 위나라 태자 신(申)을 사로잡았으며, 장군 방연(龐涓)을 죽였다. 선왕 7년, 전영은 한나라 소후(韓昭侯)와 위나라 혜왕(魏惠王)을 만나 맹약하여 두 나라가 제나라에 복종했다.

이듬해 선왕 9년, 전영은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왕이라고 칭하자 초나라 위왕이 전영을 꾸짖었다. 이듬해 초나라가 서주에서 제나라 군사를 공격해 패배시키고, 전영을 추방하려 했다.

전영이 장축(張丑)을 시켜 초나라 위왕을 달래니 마침내 없던 일이 되었다. 전영이 제나라에서 재상으로 있은 지 11년 만에 선왕이 죽고, 민왕(齊?王)이 즉위했다. 민왕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전영을 설(薛)에 봉했다.


전영에게는 아들이 40여 명이나 있었는데, 문(文)은 그중 천한 첩에게서 5월에 태어난 자식이었다. 전영이 문의 어미에게 “키우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어미가 몰래 거두어 길렀다. 문이 장성하자 그의 어미가 아비인 전영을 만나게 했다. 전영이 노하여 그 어미에게 물었다.

“내가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아이를 키운 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러자 문이 나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5월에 태어난 아이를 키우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이는 키가 문설주 높이와 같아지면 장차 그 부모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문이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은 하늘에서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문설주에서 받는 것입니까?”

전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이 다시 물었다.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무엇을 걱정할 것이며, 또 문설주에서 운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높이를 계속 올리면 누가 그 높이를 따라 클 수가 있겠습니까?”    전영이 말했다.

“그만 해라.”


얼마 후 문이 한가한 틈을 타서 아버지 전영에게 물었다.

“아들의 아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손자라고 한다.”

문이 다시 물었다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현손이라고 한다.”

문이 물었다.

“그럼, 현손의 손자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전영이 말했다.

“그건 알 수 없다.”

이어 문이 말했다.

“제후께서는 제나라의 세 명의 왕을 섬기며 재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영토를 넓히지 못했습니다. 개인은 만금의 부를 쌓았지만 문하에는 어진 이가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에 장수의 집안에는 반드시 장수가 나고, 재상의 집안에는 반드시 재상이 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제후의 후궁들은 무늬 있는 고운 명주옷을 입고 있지만, 찾아오는 선비들은 짧은 바지도 얻어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인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반찬을 함부로 남기지만, 선비들은 술지게미도 얻어먹지 못할 처지입니다. 지금 제후의 창고에는 저장한 것이 남아돌아 알지도 못하는 자에게 주려고 하는데 그것은 국가의 재정을 손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이 이상하다고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문의 총명함을 알게 된 전영은 문을 예우해 집안일을 돌보게 하고 빈객들을 접대하게 하였다. 그러자 빈객들이 날로 모여들어 문의 명성이 제후들에게 알려졌다. 제후들이 그 소식을 듣고 설공(薛公) 전영에게 문을 태자로 삼으라고 추천하니 전영이 그것을 허락했다. 전영이 죽으니 시호를 정곽군(靖郭君)이라 했다. 문이 그 뒤를 이어 설의 영주가 되니, 이가 바로 맹상군(孟嘗君)이다.


맹상군은 찾아오는 빈객들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천하의 선비들이  모여들어 식객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귀천의 구분 없이 누구든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했다.

맹상군이 손님을 대접하며 담소를 나눌 때에는 병풍 뒤에 항상 기록하는 시종이 있었는데, 맹상군이 손님에게 살고 있는 곳을 물으면 그 주소를 기록했다. 손님이 돌아가면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그 집을 찾아가 예물을 전해주었다.

한번은 맹상군이 손님과 저녁밥을 함께 먹고 있을 때였다. 손님이 갑자기 불빛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를 내는 것이었다. 주인과 손님의 음식이 같지 않다고 자리를 떠나려 하는 것이었다. 맹상군이 일어나 자신의 밥그릇을 손님 것과 비교해 보이니 손님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찌르고 죽었다. 이로 인해 선비들이 맹상군을 추종하여 더 많이 몰려들었다. 맹상군은 손님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잘 대우했다. 그로인해 손님들은 자신이 맹상군과 친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경양군(涇陽君)을 제나라에 볼모로 보내놓고 맹상군을 만나기를 청했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니, 빈객들이 모두 가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러자 소대(蘇代)가 나서서 말했다.

“오늘 아침 제가 밖에서 돌아오는데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오면 그대는 장차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흙 인형은 ‘나는 흙에서 태어났으니 무너져도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만약 하늘에서 비가 오면 그대는 떠내려가 어느 곳에서 멈추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맹상군께서는 가고자 하시니 만약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흙 인형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 않았다.


제(齊)나라 민왕(?王) 25년, 또 다시 논의되어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갔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자 신하 중 누군가 나서서 말했다.

“맹상군은 현명한 제나라의 왕족입니다. 만약 그를 진나라의 재상으로 삼는다면, 그는 반드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나중에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소왕은 그 말을 받아들여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도리어 맹상군을 가두고 죽이려고 작정했다. 위험에 처한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소왕이 총애하는 첩에게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애첩이 대답했다.

“그럼 저에게 답례로 맹상군이 가져왔다는  흰 여우 가죽 옷을 주십시오.”

그 무렵 맹상군은 흰 여우 가죽옷이 하나 있었는데 값이 천금이나 되고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라 진나라에 들어와 소왕에게 이미 바쳤던 것이다. 맹상군이 난감해하며 자기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가장 말석에 앉아있던, 개 짖는 소리를 내어 도둑질을 하던 자가 말하였다.

“소인이 횐 여우 가죽옷을 훔쳐올 수 있습니다.”

그는 그날 밤 개의 흉내를 내어 진나라의 궁중 창고에 들어가 흰 여우 가죽옷을 훔쳐 가지고 왔다. 맹상군의 부하가 그것을 애첩에게 바쳤다. 애첩이 소왕에게 간청하니 맹상군을 풀어주었다.

맹상군은 성을 나오자마자 우선 출입증의 이름과 성을 바꾸고 말을 타고 달려 관(關 국경)을 벗어나려 했다. 한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도착했다. 그와 같은 시각에 소왕이 맹상군을 풀어준 것을 후회해 다시 그를 찾으니 이미 떠나고 없었다. 소왕은 즉시 부하들을 시켜 말을 타고 그를 쫓게 했다.

함곡관은 닭이 울어야 사람들을 통과시키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맹상군은 혹시라도 진나라 군사들이 추격해올 것을 두려워했다. 그때 맹상군 일행 중 하나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다른 닭들이 따라 울었다. 그로 인해 무사히 빠져나갔다. 잠시 후 추격해 오는 진나라 군사들이 보였지만 그들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진나라 사절단으로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를 내는 이 두 사람을 포함시켰을 때 모두들 수치스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곤란을 겪었을 때 이 두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니 빈객들이 모두 그 두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맹상군이 조(趙)나라를 지날 때 그곳 평원군(平原君)이 깎듯이 맞이했다. 조나라 사람들이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자 몰려나왔다. 하지만 모두들 깔깔대며 웃으며 말했다.

“키도 크고 늠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작고 못난 사람이구만!”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난 맹상군은 수하의 부하들을 시켜 수백 명을 칼로 베어죽이고 한 고을을 전멸시키고 돌아갔다.

제나라 민왕은 맹상군을 진나라로 보낸 것은 자신의 부덕한 소치라 여기고 있던 터라 맹상군이 돌아오자 재상으로 삼고 국정을 맡겼다.

맹상군은 진나라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벼르고 있던 터에, 한나라, 위나라와 동맹을 맺어 초나라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를 마저 치려고 하였다. 서주(西周)로 옮긴 주나라 황실에서 군사와 식량을 빌리려하자 소대가 나서서 말했다.

“지금 제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와 연합해 초나라를 공격한 지가 9년입니다. 완(宛)과 섭(葉)의 북쪽을 빼앗았지만 그건 도리어 한나라와 위나라를 강하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진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 두 나라를 더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남쪽 초나라에 대한 근심이 없고, 서쪽 진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그건 오히려 제나라를 가볍게 여기게 하는 위태로운 일입니다. 맹상군께서는 진나라와 깊이 협력하시고 서주에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함곡관에 도착하시거든 진나라를 쳐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강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나라는 초나라 회왕(懷王)을 풀어주어 화친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진나라는 자기 군대를 다치지도 않고 동국 땅을 가지니 받아들일 겁니다. 그래서 초나라 왕은 풀려나면 반드시 제나라에 고마워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크게 번성하지 않는 한 서쪽의 삼진은 제나라를 귀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맹상군이 이야기를 듣고 대답했다.

“좋소!”

이때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갔는데, 진나라가 그를 억류하자 소대가 나서서 유세하니 진나라는 회왕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이 되니 그의 부하 위자(魏子)가 맹상군의 봉읍 세금을 맡게 되었다. 봉읍을 세 차례나 다녀오면서도 한 차례도 세금을 가져오지 않았다. 맹상군이 그 까닭을 물으니 위자가 대답했다.

“어진 사람을 만나 제가 그에게 주었습니다.”

맹상군이 화내며 위자를 물러나게 했다.

몇 년이 지나 누군가 제나라 민왕에게 맹상군을 헐뜯는 상소를 올렸다.

“맹상군이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민왕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게 된 맹상군은 마침내 달아났다. 그러자 부하 위자로부터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받은 그 어질다는 이가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가 상소를 올렸다.

“맹상군은 반란을 일으킬 인물이 아닙니다. 제가 죽음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하고는 왕궁 문 앞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맹상군의 결백을 증명했다. 민왕이 이에 놀라 행적을 조사해 물어보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시 맹상군을 불렀으나 병을 구실삼아 사직하고 설 땅에서 노년을 보내고자 청하였다. 민왕이 그것을 허락했다.


그 뒤 진나라에서 도망쳐온 장군 여례(呂禮)가 제나라 재상이 되자 소대를 핍박하였다. 소대가 맹상군에게 일러 말했다.

“주최(周最)는 제나라에서 신임이 매우 두터웠는데, 제나라 왕이 그를 쫓아냈습니다. 지금 친불(親弗)의 말을 듣고 여례를 재상으로 삼은 것은 진(秦)나라와 관계를 맺고자 함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친불과 여례는 중용될 것입니다. 친불과 여례가 중용되면 제나라와 진나라는 반드시 맹상군을 가벼이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조나라를 공격해 진나라가 위나라와 화친하게 하고, 주최를 불러들여 후하게 대우하고, 또 제나라 왕의 신임을 회복하여 천하의 변화를 막으시는 것이 낫습니다. 제나라가 진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천하는 제나라로 모일 것이고 그러면 친불은 반드시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 왕은 누구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맹상군이 그의 계책을 따르자 여례가 맹상군을 해치려고 했다.


이에 맹상군이 두려워 진나라 재상인 위염(魏?)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듣자니 진(秦)나라는 여례를 앞세워 제나라와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제나라는 천하의 강국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주변국들이 가볍게 여길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여례는 반드시 두 나라의 재상을 겸할 것이고, 이것은 재상께서 여례를 귀중하게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후에 제나라는 틀림없이 재상을 원수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재상께서는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제나라가 깨지면 내가 나서서 땅을 빼앗아 재상에게 봉하겠습니다. 제나라가 깨지면 진(秦)나라는 삼진(晉)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니, 그러면 재상을 중용해 진(晉)나라와 관계를 맺으려고 할 것입니다. 진(晉)나라는 진(秦)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니, 반드시 재상을 중용해 진(秦)나라와 관계를 맺으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 제나라가 깨지지 않는다면 여례는 다시 등용되고 재상께서는 틀림없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자 재상 위염이 진나라 소왕에게 건의해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자 여례가 달아났다.


후에 제나라 민왕은 송(宋)나라를 멸망시키자 더욱 교만해졌다. 이어 맹상군을 제거하려고 했다. 맹상군이 두려워 위(魏)나라로 도망갔다. 위(魏)나라 소왕(昭王)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고 진(秦)나라, 조나라, 연(燕)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쳐서 무너뜨렸다. 민왕은 달아나 거(?) 땅에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제나라의 양왕(襄王)이 즉위하자 맹상군은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양왕은 맹상군을 두려워해 그와 화친하였다. 후에 문(文)이 죽으니 시호를 맹상군이라 했다. 맹상군의 여러 아들들이 서로 자리를 다투었으나 제나라와 위나라가 그들의 봉읍인 설 땅을 멸망시켰다.


초기에 풍환(馮驩)은 맹상군이 빈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짚신을 신고 와서 그를 만났다. 맹상군이 말했다.

“선생은 먼 길에서 오셨는데,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풍환이 말했다.

“선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가난한 이 몸을 의지하려고 왔습니다.”라 했다.

풍환이 빈객으로 머문 지 10일이 지나서 맹상군이 집사에게 물었다.

“그 손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집사가 대답했다

“풍환은 매우 가난해 다만 칼 한 자루만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떼 풀로 얽어 멘 것입니다. 그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칼아! 돌아가자. 식사에 생선 반찬이 없구나.’라고 투정만 합니다.”

그러자 맹상군이 그를 좋은 방으로 옮기게 하고 식사에도 생선 반찬을 놓게 했다. 5일 뒤에 다시 집사에게 똑같이 물으니 집사가 대답했다.

“풍환은 여전히 칼을 두드리며 노래만 합니다. ‘칼아! 돌아가자. 나가려고 해도 수레가 없구나.’라고 블평뿐입니다.”

맹상군이 그를 크고 좋은 방으로 옮기게 하고 외출할 수 있는 수레를 타게 하였다. 5일 뒤에 다시 물으니 집사가 대답했다.

“풍환은 또 칼을 두드리며 노래만 합니다.‘칼아! 돌아가자. 집이 없구나.’라고 불평만 해대고 있습니다.”

그러자 맹상군이 언짢아했다.

그후 1년이 지나도록 풍환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맹상군은 그때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설 땅에 만호(萬戶)를 봉읍으로 받았다. 그의 식객은 3천 명에 이르러 그 봉읍의 세금으로는 식객들을 대접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설 땅의 백성들에게 돈을 대부해주었다.

1년이 되자 돈을 빌려간 많은 사람들이 이자를 제 때 내지 못했다. 그러자 맹상군이 집사들에게 물었다.

“누가 빌려준 돈을 거두워 올 수 있겠는가?”

식객 집사가 대답했다.

“대사(代舍)에 묵고 있는 풍환이 다른 재주는 없으나 말을 잘하여 제격인 줄 압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그 일을 청했다.

“선생께서 책임지고 빌려준 돈을 거두어주기를 원합니다.”

풍환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풍환이 설 땅에 도착해 맹상군에게 돈을 빌려 쓴 사람을 다 불러 모아 이자 10만 전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많은 술과 고기를 준비해 돈을 빌려간 사람을 다 모았다. 이자를 낸 사람도 오고, 이자를 낼 수 없는 사람도 오게 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이자를 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기한을 정해주고, 너무 가난해 이자조차 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 증서를 받아서 불태워버렸다. 풍환이 말했다.

“맹상군께서 돈을 빌려준 까닭은 가난한 백성들이 본업(本業)에 힘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자를 받는 까닭은 빈객들을 대접할 것이 없기 때문인데, 이제 부유한 사람은 기한을 정해주고, 가난해 사람은 증서를 태워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마음껏 음식이나 드십시오. 이러한 주인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러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두 번 절했다.


맹상군은 풍환이 대부증서를 불태웠다는 소식을 듣고 노하여 풍환을 불러들였다. 풍환이 도착하자 맹상군이 말했다.

“내 봉읍의 수입은 적은데 백성들의 대부분은 오히려 때가 되어도 그 이자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빈객의 식사대접이 부족할까봐 선생에게 청해 그것을 책임지고 거두게 한 것입니다. 들으니 선생은 돈을 받아 많은 고기와 술을 갖추고 증서를 불태웠다고 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풍환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고기와 술을 갖추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 모일 수가 없으며, 여유가 있는 사람과 부족한 사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기한을 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독촉해도 이자만 늘어날 것이고 그러다가 마음이 급해지면 달아날 것입니다. 만약 급하게 독촉해서 받을 수 없다면, 위로는 맹상군께서 이익을 좋아해 선비나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아래로는 백성들로부터 맹산군이 빚을 독촉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명성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빚 증서를 불태운 것은 받을 수 없는 계산을 버린 것이니 그로인해 설 땅의 백성들이 맹상군과 친하게 되고 그 명성을 드러나게 하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을 의심하십니까?”

그 말을 듣자 맹상군은 손뼉을 치면서 옳다 하고 도리어 풍환에게 감사를 표했다.


맹상군의 명성이 높아지자 제나라 왕은 이웃나라의 비방에 현혹되어 맹상군을 쫓아냈다. 그러자 모든 빈객들이 맹상군이 파면되었다고 여겨 발길을 끊었다. 이때 풍환이 나서서 맹상군에게 말했다.

“저에게 진나라에 갈 수 있는 수레를 빌려주시면 반드시 제나라에 중용되게 하여 이전의 봉읍보다 더 많은 것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맹상군이 수레와 여비를 준비해 그를 보냈다. 풍환이 진나라 왕을 만나 말했다.

“천하의 선비들이 진나라에 오는 것은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하려는 계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나라에 오는 사람은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이 두 나라가 지금은 양립해 있지만 천하의 패자는 둘이 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이에 진나라 왕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하겠소?”

풍환이 대답했다.

“왕께서도 역시 제나라가 맹상군을 파면시킨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제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든 사람은 맹상군입니다. 지금 제나라 왕이 비방을 듣고 맹상군을 파면시켰으니 맹상군은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반드시 제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그가 제나라를 배반하고 진나라에 들어오면 제나라의 실정을 진나라에 모두 다 이야기할 것이며, 그러면 대왕께서는 제나라를 얻을 수 있는 계책을 듣게 될 것이고 따라서 천하의 패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급히 사자를 시켜 예물을 싣고 가서 은밀히 맹상군을 맞이하십시오.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 만약 제나라가 이를 알고 다시 맹상군을 등용한다면 천하의 패자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진나라 왕이 크게 기뻐하여 수레 10승(乘)과 황금을 가득 보내 맹상군을 맞이하게 했다.

이어 풍환은 진나라를 떠나 사자보다 먼저 제나라에 도착해 왕에게 유세했다.

“천하의 선비들이 제나라를 찾는 것은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하려는 계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제나라와 진나라는 서로 다투는 나라로 진나라가 강하면 제나라는 약하게 되고 제나라가 강하면 진나라가 약하게 됩니다. 그러니 두 나라 모두가 천하의 패권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제가 가만 들으니 진나라에서 사자를 보내 맹상군을 모셔가려 한다고 합니다. 맹상군이 가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가게 되면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천하의 패권을 거머쥐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제나라에 위험한 일이오니 왕께서는 진나라의 사자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맹상군을 다시 등용하시는 것이 옳은 줄 아뢰옵니다. 그러면 맹상군은 기뻐하며 다시  받을 것입니다. 강한 진나라가 어찌 남의 나라 사람을 재상으로 맞이하겠습니까?  왕께서는 반드시 진나라의 책략을 끊어야만 합니다.”

제나라 왕이 대답했다.

“알았소.”

그리고 사람을 시켜 국경주변을 살펴보게 했다. 진나라 사자의 수레가 제나라의 국경으로 들어오려 한다고 보고하자 왕이 황급히 맹상군을 불렀다. 재상의 지위를 회복시켰고 옛 봉읍의 땅에 천 호를 더해 주었다. 진나라의 사자는 맹상군이 다시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수레를 되돌려 돌아갔다.


맹산군이 다시 재상에 올랐다는 소식에 빈객들이 찾아왔다. 그러자 맹상군은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빈객을 대접함에 실수가 없었던 것은 풍환 선생께서도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파직되는 것을 보고 나를 저버린 자들입니다. 이제 내가 풍환 선생 덕분에 다시 그 지위를 얻었지만, 식객들은 무슨 면목으로 나를 찾아온단 말입니까? 만약 다시 나를 보러 오는 자가 있다면 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고 말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풍환이 말고삐를 메어놓고 수레에서 내려와 절을 했다. 그러자 맹상군이 물었다.

“선생이 식객들을 대신해서 사과하시는 것입니까?”

풍환이 대답했다.

“식객들을 대신해서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맹상군께서 말을 실수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릇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맹상군이 대답했다.

“나는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풍환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사물의 필연적 결과이며, 부유하고 귀하면 선비가 많고, 가난하고 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맹상군께서는 아침에 시장에 모이는 사람들을 혹시 보셨습니까? 날이 밝으면 어깨를 비비고 다투며 시장으로 들어가는데, 날이 저문 뒤에는 사람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시장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것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맹상군께서 지위를 잃었을 때 빈객들이 다 떠나갔는데, 이것을 가지고 원망하면서 일부러 빈객들의 발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예전처럼 빈객들을 대우하시기 바랍니다.”

맹상군이 두 번 절하며 대답했다.

“삼가 그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일찍이 설(薛) 땅을 지난 적이 있는데, 그 마을은 대체로 흉포한 젊은이들이 많아 추(鄒)나라나 노(魯)나라와는 달랐다. 그 까닭을 물으니 ‘맹상군(孟嘗君)이 천하의 협객과 무뢰배를 불러 모아 설 땅에 들어온 자가 대략 6만여 호(戶)에 이르렀다.’고 했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맹상군은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스스로 즐거워했다고 하는데, 그 이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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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8.19 18:20

    첫댓글 여기서 손빈은 손자볍법의 손무(손자)의 5대 손이고 방연은 손빈과 손자병법을 같이 연구하던 친구인데 친구 손빈을 배신하고 죽이려 음모를 꾸며 무릎아래 양다리를 잘리게 하고 후일 다리가 없는 손빈이 적국의 책사가 되어 공격하자 처참히 배패하고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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