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가족계획이 국가적 필수 사업이던 시절이 있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뿐 아니라 공공장소나 거리 곳곳에 벽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가족계획 표어가 붙어 있었다.
지나친 인구 증가를 걱정한 정부는1962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을 실행하는데 이 제도는 1996년 인구 억제정책을 완전히 폐지하기까지 34년 간 펼친 정책이다.
표어 변화 과정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는데 시행 초기에는 표어가 비교적 순했으나 80년대 들어서는 더욱 강력해진 정책 탓에 표어도 아주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60년대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70년대 초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70년대 후반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80년대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가족계획 정책이 가장 강력했던 80년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주기도 했는데 조건은 당일 수술을 받으면 바로 예비군 훈련이 면제되었다.
그때는 예비군 훈련도 교육 기간이 길었기에 충분히 당근 정책이 될 수 있었다. 제대하고도 몇 년 간은 4박 5일 동원훈련을 받아야 했으니 왜 유혹을 느끼지 않을 것인가.
내 선배 중에도 몇 명 그렇게 정관수술을 받았다. 군대 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엔 예비군도 군기를 제대로 잡던 시절이었다.
지각을 한 예비군을 연병장 한쪽에 몰아 넣고 목봉 체조를 시켜도 군말 없이 따라야만 했다.
어느 날 훈련을 받기 위해 쪼그려 앉아 대기를 하고 있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이 단상에 올라 와 가족계획 운동을 강조했다.
연설이 끝난 후 간부 하나가 정관수술을 받는 사람은 훈련을 면제한다며 희망자는 앞으로 나오라는 말에 선배 하나가 일어서며 말했다.
"아우야, 나 먼저 간다. 너는 부디 좋뺑이치는 수고 좀 하고 오너라."
격세지감이란 말을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국가가 되었다.
지구상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1명 아래인 0.7명이라니 이대로 가다 가는 조만간 인구 소멸 국가로 전락할 위기다.
*브레이브 뉴 휴먼/ 정지돈 소설/ 은행나무/ 2024
이 소설은 미래의 대한민국 이야기다.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아 다니는 에어 택시가 나오는 걸 보면 50년 후인지 80년 후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인구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양육출산부를 신설해서 인구 소멸 국가를 면하기 위해 인공 자궁에서 아기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아무리 애를 낳으라고 온갖 당근 정책을 펴도 여성들이 호응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시행한 것이다.
기증 받은 정자와 난자를 체외 수정한 후 마치 캡슐처럼 생긴 인공 자궁에 착상을 시켜 아기를 키우는데 그렇게 태어난 인구가 무려 800만 명이다.
소설에서는 이런 사람을 체외인이라고 부르는데 팔목에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바코드를 심어 일반인과 구별을 한다.
체외인들은 여러 가지로 차별을 받는데 일반인과는 결혼을 할 수 없는 법도 그중 하나다. 소설이 이대로만 흘러가면 재미가 없다.
일반인 남자가 체외인 여성을 사랑하면서 줄거리는 흥미롭게 흘러간다.
그 일반인 남성의 아버지는 출산 정책의 주요 임무를 맡고 있는 엘리트 고위 관리다.
아들은 체외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 여성은 심사를 통과해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외에도 여러 체외인이 나오는데 친모를 찾아 나섰다가 생물학적 어머니의 신고로 잡혀 가는 사람도 있고 체외인들이 차별에 분노해서 폭동을 일으키는 등 소설은 시종 독자를 가슴 졸이게 만든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소설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인공 자궁 센터, 일명 아기농장은 총 열 두개이며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다. 그 중 동두천 아기농장은 평택, 양평, 문산 아기농장과 함께 수도권 체외인 생산을 담당한다.
아기농장은 누구나 견학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아기농장을 방문하진 않는다. 아무도 전쟁기념관을 가지 않듯,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기농장을 피했다. *소설 일부 발췌
젊은 작가답게 정지돈의 기발한 상상력은 소설 곳곳에서 빛을 발휘하는데 마치 SF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아니 SF소설이라고 해도 되겠다.
내가 보기엔 소설 제목에 들어 있는 브레이브(brave)는 형용사로 쓰든 동사로 쓰든 간에 희망적이기보다 한국의 미래를 비꼬는 역설적 단어다.
한국은 34년 동안 강력하게 산아제한을 하는 가족계획 정책을 펼친 후에는 방향을 바꿔 출산 장려 정책을 28년째 펼치고 있다.
각종 불이익까지 주면서 낳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 낳더니 이제는 온갖 혜택을 주면서 제발 애 좀 낳으라고 싹싹 빌어도 출산율이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한국은 아기농장을 개설하지 않고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던 차에 이 소설을 읽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임신과 출산은 도덕과 윤리의 마지막 보루다>고 했다. 예전에 아이들 많은 가정은 셋집 구하기도 힘들 만큼 눈총을 받았으나 지금은 애 많이 낳는 사람이 바로 애국자다.
첫댓글 산아제한 정책을 편지가 엊그제 같은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얼마전 조사에 의하면
젊은이들이 직장을 가지지않은 이유가
그냥 놀고 싶어서..라지요
젊을 때 땀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놀기에만 열중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인구 증가 문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지요..
젊은이가 직업이 있어야지
결혼하든 말든 할게 아닙니까 ㅠ
자발적 실업자도
어찌보면 도전의 끝이 안보이니 포기한 젊은이들일까요?
일부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고시원이든 독서실이든 수많은 젊은이들은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많을거니까요
@정 아 외국인 노동자에게 빼앗기는 일자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힘들지만 땀의 가치를 느끼는 젊은이들 키우지 못한 사회적 책임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예전 세대보다는 요즘이 취업하기가 힘들긴 하나 봅니다. 예전에 상고생들은 고3 때 직장이 정해졌었고 대학도 4학년 2학기에 취업을 하기도 했었다지요.
어쨌든 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이가 젊은이들이기에 그들에게 애 낳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애 키우는 환경이 너무 힘들다고 하네요.
울 카페의 모범생 모렌도 선배님 평온한 밤 되시길요.ㅎ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불꽃이 튀면 탄생되는 체내인과 달리
출산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정자/난자 기증 받을시 선별 과정을 거치는 체외인의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소설대로라면...
MBTI 로 서로 잘맞는 유형을 분류하듯이
서로 잘 맞는 DNA 조합도 구성하여 홈쇼핑에서 광고 할 듯도 하구요....
ㅎ 뱃등님이 마치 이 소설을 읽은 듯 예언을 비스무리하게 하셨습니다.
소설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스포일러 때문에라도 너무 세세히 말하기가 좀 그렇긴 합니다만 각종 출산 정책이 나오긴 합니다.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장면도 있는데 그건 나중 읽을 사람에게 양보해야겠지요.ㅎ
120년 전에 인큐베어터가 처음 나왔을 때 신의 영역을 침범한 괴물상자라고 성직자들이 강력 반발했다던데 지금은 버젓한 의료기구로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ㅎ
도덕과 윤리의 마지막 보루
거기까지 건들기야 하겠습니까
sf소설 영화도 황당한듯 했던것들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걸보면
심히 우려스럽지만요
그부분을 건들기전
국경 부수기부터~^^
오랜만에 엄청 반갑습니다
ㅎ정아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전에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일들이 실제 현실화된 것들이 있기에 먼 훗날 아기농장도 어찌될지 알 수가 있겠는지요.
어쨌거나 이 소설 읽으면서 제발 생기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루 아침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출산율이 올라가 1명 정도만 넘어도 그런 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격세지감이지요.
울 딸도 애 안낳고 둘이서만 잘 살겠다니~~
에효^^
불과 30년 전까지도 산아제한을 했던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래서 세상 일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하긴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러하지만요.ㅎ
아기농장이라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유현덕님,대상수상을 축하합니다.
네, 소설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아기농장이란 명칭이 저도 아주 특이하게 들렸습니다.
한국인의 집단 지성은 분명 선을 넘지 않는 윤리적 공감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온뒤님 감사합니다.
내 자식 세대까지 출산이니 부양이니 하지 저학년 손자 세대나
이제 태어난 세대에 가서는 이런 말들이나 할런지요
다 다음 세대에 가서는 식단부터 패스트 푸드로 바뀐다는데
거기까지 저희들이 알겠습니까 알아도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앞으로 세상은 아무도 모르지요 우리는 곧 전설이나 옛 사람 그림자로나
남을런지요 ㅎㅎ
인구가 부족하니 이제 외국인 일손을 빌리지 않으면 시골농장이나 중소제조업은 아예 돌아가지가 않을 지경입니다.
외국인이 혐오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론 없어선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될 것이고 미리 선행 정책을 펼쳐야만 후유증이 덜하지 않겠는지요.
출산율 감소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게 한 소설이었답니다. 운선님 고운 밤 되세요.ㅎ
60년대는 무턱대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면한다가
표어였었지요^^ 이제는 아이를 낳아달라고
사정하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론 남한 3천만이 적당하다봅니다
인위적 개입보다는 자연적으로 조절하는게
좋은것 같습니다
아하~ 저도 나중에 그 표어 문구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거지꼴을 못 면하는데도 그렇게 많이 낳았는데 세월이 바껴 아무리 당근책을 써도 별 효과가 없으니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난감할 뿐입니다.
우리보다 출산율이 높은 유럽 국가들도 출산율 감소를 그대로 두지 않고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장려정책을 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가 바로 국가를 유지하는 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유럽은 우리처럼 인구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힘들어도 미래를 봐서
인구는 조절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어느정도여건이 되면 적정한 인구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
급 흥미땡기는 소설책입니다.
바로 구입해서 읽어볼 예정입니다.
울딸은 애국자..ㅋㅋ
90년생인데...공부만 하다 바로 결혼
지금 초2.초1.어린이집..딸 아들 딸...
셋이나 낳아서
절 일찌기 손주셋딸린 할머니로
만들어줬거든요~~
그리고..경단녀로 전락하기 무서워
다시 전공살려 이제사 취업...
요즘 살맛 난다하니...너무 이쁜 딸이지요?
(에효...결혼할때는 괘씸하기 그지 없더니
지금은 천만 다행...또 다행입니다.)
효도도 하고 애국도 하고.....ㅋ
ㅎ 저한테는 이더님의 이 글이 급 반가움 땡기는 댓글입니다. 그 엄마에 그 딸일 테니 안 봐도 애국자에다 효녀임은 확실하네요.
아이 셋을 둔 엄마로도 자랑스러운데 취업까지 해서 경제활동을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전공 살린 커리어우먼으로 잘 해낼 거라고 봅니다. 엄마로서 자식이 열심히 사는 것만큼 큰 효도가 어디 있을까요.
이쁜 손주들도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이더님의 인생 후반전은 분명 풍요로울 거네요.
멋진 가족을 응원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