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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Scene 14. The Chaser /추적자/
오후의 햇살이 제국 재상의 집무실 창으로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제국 재상 로드릭 폰 케네스 후작은 들고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
며 오후의 햇살을 즐겼다.
"흐음. 늙으면 아무래도 따뜻한게 그리워지는 법이라니까. 자네도 들
지 않겠나? 애쉴리."
재상의 심복이자 친구인 애쉴리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재상은 스스
로 늙었다고 얘기하지만 그가 늙었을 리가 없다. 그가 늙는 것은 그가
죽은 다음이나 될 것이다. 애쉴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르나스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응? 아아."
그제야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지만 아마도 재상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 뿐일 것이었다. 제국 재상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전쟁은 확대될걸세. 그리고 지리하게 끌게 되겠지. 일단은 말이야."
"동부연합 벨라는……"
"벨라. 그러고보니 일레인에게 상을 주어야 겠군. 정말 훌륭히 잘 해
냈어. 이왕이면 우리도 그 대륙 동부 국가 연합이라는 데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제국 재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자식이 자
랑스러운 일을 해 냈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제국에 압력을 행사하려 할 것입니다. 알바로아에서의 전면적인 철수
를 요구하겠죠."
"그런데도 과연 전쟁이 확대되고 장기전으로 갈 것인가 하는 말이지?
애쉴리."
애쉴리는 재상을 바라보았다. 재상은 뭔가 재미있는 말을 해 주는 것
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직접적인 전투는 아마 줄어들겠지. 하지만 외교협상은 오래 걸리는
법이고, 지금처럼 국경문제라면 더욱 그 끝을 알 수 없다네. 그리고
동부연합 벨라와의 국경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제국은 동부연합에 속
한 모든 나라와 준 전시체제로 들어가게 되는 거야. 카르나스는 그걸
노리겠지. 비록 그가 처음 그리던 그림과는 조금 달라졌겠지만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가 전시 동원령을 전 제국으로 확대할까요?"
재상은 빙긋 웃었다.
"당연히 나라도 그럴걸세. 귀족 권리장전에 의하면 제국 총기사단장은
전시(戰時)에 모든 귀족들의 생사여탈권까지 가질 수 있네. 그런 무소
불위의 절대권력이 굴러들어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나? 후훗."
애쉴리의 얼굴에 일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
다. 그는 그대로 서서 재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카르나스라는 애송
이에게 절대권력을 쥐어주기 위해 일부러 일레인을 보낼 제국 재상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밤이 길면 꿈도 길지. 꿈이 길어지면 헛된 것들 또한 많아지는 법이
라네, 애쉴리."
재상은 찻잔을 들었다. 그의 얼굴은 향기로운 차가 그를 미소짓게 했
지만 그가 지금 음미하고 있는 것은 단지 차의 향 만은 아닌 듯 했다.
"아, 그리고 이번 벨라 결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앙피시아의
엘마이러라고?"
"네. 그녀가 일레인의 숨은 조력자였던 듯 싶습니다."
"흐음. 가능한 얘기지. 그녀가 앙피시아를 되찾으려면 가장 확실한 방
법 중의 하나일 테니까. 물론 성공한다면 말이지만. 그나저나……"
재상은 애쉴리를 돌아보았다.
"나라를 잃은 공주가 3년이나 넘게 숨어 지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동
부 국가 연합을 결성하다니, 뒤를 봐주는 세력이라도 있는 건가?"
"지금 조사중입니다."
애쉴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재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곧 시선을
거뒀다. 어차피 애쉴리가 알아서 잘 해줄 것이다.
"아, 그리고 그때 앙피시아의 엘마이러와 함께 사라진 퍼플스타는 이
번에 같이 나타나지 않았나?"
"지호, 말입니까? 태후가 끌어들였던……"
애쉴리는 지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재상은 애쉴리의 말
을 정정했다.
"태후가 세운 꼭두각시였지."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만 같이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신경쓰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글쎄……"
재상이 손을 들어 턱을 어루만졌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이네. 그에 대한 본가(本家)의 움직임도 조금
심상치 않은 듯 하고……"
애쉴리의 표정에 일순 긴장이 스쳤다. 본가가 움직일 정도라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본가까지 움직임에 나선단 말
인가?
"그럼, 혹시……"
"으음. 아마도…… 섀도우 블레이드가 나섰으니 별 탈이야 없겠지만
문제는 바로 그 섀도우 블레이드라네."
"지크힐트 입니까?"
재상의 얼굴에서도 조금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재상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가주(家主)께서 그를 감싸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
아. 차칫하면 분열의 소지가 될 위험도 있고……"
재상은 빈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싸늘하게 식은 찻잔은 더 이상
의 온기를 전해주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은은한 향이 떠돌고 있었다.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재상의 마지막 말은 마치 향기처럼 애쉴리의 귓가를 떠돌았다. 재상은
애쉴리에게 말했다.
"그 지호라는 사람의 소재를 전력을 다해 파악하도록 하게."
"그가 문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입니까?"
애쉴리의 질문에 재상은 슬쩍 미소를 떠올렸다.
"글쎄? 아직 확실한 건 아냐. 그저 감(感)이랄까…… 하지만 단지 우
연이라기엔 그와 관계된 이름들을 너무 자주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드
네. 어쩌면 그가 기회가 되어 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애쉴리는 깊이 허리를 숙여 재상의 명을 받들었다. 애쉴리의 눈은 평
소답지 않게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긴장 보다는 어떤 희열
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 * *
"앙피시아의 엘마이러가 드십니다."
문간에 서 있는 시종장의 목소리와 함께 알현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
고 단순하지만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아이리스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녀의 뒤로 문이 닫히고 부드러운 음악 속에 아이리스는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제국과 흡사하게 꾸민 알현실 내부는 꽤 화려했다. 도저히 제국 옆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허술한 듯 보이기도 하는 장식들과 조명들은 이것들이 단
지 흉내낸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제국의
격식을 그대로 따른 이 알현식이 그렇듯이.
"전하를 뵈옵니다."
아이리스는 우아하고 단정한 몸짓으로 흠잡을데 없이 완벽하게 국왕에
게 드리는 예를 표했다. 그녀의 그런 단정한 예법이 만족스러웠는지,
혹은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단 위의 국왕은 그리 얼굴이 밝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국왕은 번들거리는 피부에 유달리 튀어나온 아랫배
를 가진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고급 옷과 빛나는 장식들로 자신을 가
리우고 있는 전형적인 초로의 왕족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키가 작은 편이 아니라서 조금 나아보였다.
그는 조금은 탐탁찮은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흐음. 내 그대의 제안에 대해 한동안 충분히 숙고(熟考)해 봤소만…
…"
아이리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국왕이 이런 문제를 숙고(熟考)씩
이나 했을리가 없다. 그가 한 것이라곤 그의 귀에다 듣기좋은 말을 속
삭여주는 아첨꾼들이 하는 말에 웃어대거나 혹은 국사에 영향을 미치
는 귀족들의 반응을 살펴본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이 나라가 버텨가
고 있는 것은 실제로 이 나라를 지탱해 나가는 숨은 실세가 있기 때문
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요? 전하."
"아니, 뭐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네만……"
"전하."
뭔가 질질 끌려고 하는 것 같은 왕의 말을 끊은 것은 듣기에도 기분좋
은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귀한 손님께서 곤란해 하시니 편히 말씀하시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말을 꺼낸 것은 국왕 옆에 앉아있던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어찌보
면 미혼의 아가씨로도 보일 법한 나이였지만 수수하고 완숙미를 나타
내는 화장과 화사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드레스가 그녀의 품위를 잘 나
타내 주고 있었다.
"허, 빈(嬪)께서는 너무 마음이 좋아서 탈이오. 본디 외교란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오. 하나 빈(嬪)께서 그렇게 말씀하
시니 내 그렇게 하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국왕의 얼굴에는 흐뭇한 표정이 역력했다. 국왕이
빈(嬪)이라 일컫고 있는 이 여자는 말하자면 국왕의 후궁(後宮)이었
다. 국왕은 비록 그녀를 빈(嬪)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모
든 면에서 죽은 왕비를 대신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후궁으로 들어와 단기간에 국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왕
실의 안주인으로 자리를 굳힌 여인. 현명하고 통찰력있는 조언으로 국
왕의 일을 돕는 그녀는 이제 귀빈(貴嬪)이라 불리우며 왕가의 실세로
인정받고 있는 린 에이드리언이었다.
몇몇 귀족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리고 제국의 압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란을 거듭하던 이 나라가 요 몇 년사이 안정을 유지하며
나름대로 내실을 다져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녀, 린 에이드리
언의 힘이었다.
아이리스는 국왕 옆에 서 있는 린 에이드리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
냈다. 그녀도 아이리스를 보며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마치 주변
이 환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좋은 미소였다.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동부 국가 연합 벨라의 회원국 자격을
정식으로 신청하는 바이오."
국왕의 목소리와 함께 아이리스는 깊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
녀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빈(嬪) 마마. 손님들께서 오셨습니다."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에
게 말을 건 시종에게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아, 들어오시도록 해요."
시종은 고개를 깊이 숙여 예를 표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리스 일행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이리스와 함께 있는 것은
여사제 에반제린, 그리고 일레인과 덩치, 엘런까지 일행들 전부였다.
테라스에 앉아있던 여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린 에이드리언 입니다. 바쁘실텐
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셨군요."
"아닙니다, 마마. 저희를 초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이리스는 마주 고개를 숙여 감사의 예를 표했다. 알현식이 끝나고
난 뒤 아이리스는 린 에이드리언에게서 정식으로 초청을 받았다. 의아
한 것은 그녀가 일행 전부를 정식으로 초청한 것이다.
신분을 따지지 않고 전부 왕궁으로 공식초청을 한다는 것은 의외의 일
이었다. 그러나 왕궁의 실세인 그녀의 초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이제
갓 생겨난 신뢰관계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에 아이리스는 초청을 승
낙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생길 문제를 대비해 일레인에게 부탁해서 기본적인 왕실예법
을 덩치와 엘런에게 알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덩치였다. 지금도 옆에서 엘런이 옆구리를 쿡 찌르자 그제서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리 앉으시죠. 곧 차를 내 올 것입니다."
일행은 그녀의 말대로 하얀 탁자 둘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왕궁에
처음 들어와 보는 덩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런식으로 둘러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신기한
것은 어쩔수 없었던지 옆에서 엘런이 쿡쿡 찌르는 데도 별 반응이 없
었다. 덕분에 옆에 앉은 엘런의 얼굴만 점점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쿡."
린 에이드리언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덩치의 행동에 신경을 쓰던 일레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더
니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아얏! 왜 꼬집고 그래."
"쉬, 쉿!"
엘런과 일레인의 입에서 동시에 나지막한 소리가 다급히 튀어나왔다.
덩치는 한 손으로 옆구리를 문지르다가 그제서야 자신을 향한 시선을
발견한 듯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잖아도 일행 중에서 눈에 띄는
덩치의 그런 모습이 더 우스꽝스러웠는지 린 에이드리언은 이제 고개
까지 돌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례를 했군요."
한동안 웃음을 참던 그녀는 손수건으로 살짝 눈 가를 찍어내며 일행에
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일행을 쳐다
보았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바랬지만 아무도 못하던
일을, 바로 여러분들께서 해 내셨어요. 여러분들이야말로 정말 영웅이
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영웅분들을 제가 모시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랍
니다."
"마마. 과찬이십니다. 저희는 단지……"
아이리스의 말은 린 에이드리언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면서 끊어졌
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께서 컨웨이 성을 죽음에서 구하신 것과 성
산 벨라를 오르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셀러다인을 중심으로 동부 국
가 연합을 결성하게 하신 것은 정말로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예요. 더
구나 제국 귀족 출신으로서 연합 결성에 나서주신 일레인 양과……"
그녀는 일레인을 돌아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일레인은 흠칫
했다. 자신이 제국 귀족 출신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제국
재상의 뜻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동행하는 것으로만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눈앞의 그녀는 일레인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조국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동부 연합 벨라를 일으켜 주신 앙피시아의
엘마이러님께는 정말 무엇이라고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어요. 물론
……"
그녀는 아이리스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여사제 에반제린에게 시
선을 돌렸다.
"사제의 몸으로써 동부 연합의 중심이 되어주신 에반제린 견습사제님
께도 마찬가지예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여사제 에반제린은 살짝 놀란 듯 했
다. 그러나 덩치와 엘런 만큼은 아니었다.
"이글아이 용병단의 두분께도 정말 감사드려요. 덩치님, 그리고 엘런
님."
아이리스는 살짝 안색이 굳어졌다. 빈이라는 그녀가 일행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이리스 일행을 반겨준 것은 성녀(聖女)에 대한
소문과 동부연합 벨라에 대한 소문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마
녀, 혹은 죽음의 기사단에 대한 소문과 같이 섞여 있었다.
공포와 기대가 섞인 소문들은 때로는 터무니 없는 얘기를 낳기도 했고
옛 영웅의 모험담 같은 노랫말이 되어 떠돌기도 했다. 그런 소문의 주
인공인 아이리스 일행은 당연히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아이리스는 그
러한 점들을 적절히 이용해서 동부 연합 벨라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리스 일행에 대해, 하다못해 동부 연합 벨라에 대한 정확
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비록 빈(嬪)이라 불리
우기는 하지만 일개 후궁에 불과한 여자가 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 차가 나왔군요."
어느새 시종 몇이 차가 담긴 커다란 쟁반을 들고 옆에 다가와 있었다.
시종들이 간단한 다과를 그들 앞에 내려놓는 동안 잠시간의 침묵이 감
돌았지만 곧 주변은 은은한 차 향기로 감싸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차
와 달콤한 과자가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고 있는데, 린 에이드
리언이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한 분이 부족하신 듯 하군요? 그분은 함께 오시지 않으셨나
요?"
아무말 없는 분위기가 어색했던 듯 조금 안절부절 하던 덩치가 생각없
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아, 지호는 지금……"
쨍.
날카로운 소리가 덩치의 말을 끊었다. 마치 어색했던 공기를 일순간에
깨버리는 듯한 소리였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돌
아갔다.
"아, 이런.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했군요. 뭐라고 하셨죠?"
린 에이드리언이 부드러운 미소를 띈 얼굴로 말했다. 그 편안한 표정
은 마치 지금 일어났던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
러나 그녀 앞에 번져있는 찻물은 결코 아무때나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실수의 결과는 아니었다.
첫댓글 감사^*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