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연정사는 지난 호에 소개한 하회마을의 원지정사(遠志精舍)와 이웃하고 있어서 찾아가기가 쉽다. 이 정사는 서애(西厓)의 형님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이 1583년(선조 16년)에 건립하여 서재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1583년은 선생의 나이 45세였고 진보현감으로 재직하던 때였는데 모친의 병환을 이유로 관직에서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사는 마을의 서북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화천 건너 겸암정사(謙菴精舍)와 부용대(芙蓉臺)를 마주 보고 있다. 당호는 부용대 절벽 아래의 심연을 빈연이라 부른 데서 연유한 것이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빈연정사에서는 화천의 물길과 부용대의 절벽 그리고 겸암정이 손에 잡힐 듯 마주 보인다. 소개하는 그림은 동래 정씨 정원용(鄭元容)과 풍산 류씨 류철조(柳喆祚)가 1828년 화공 이의성(李義聲)에게 의뢰하여 안동 도산서원에서 예천 지보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의 명승 8곳을 그려 8폭 병풍으로 만들어 나누어 가진 것인데 그중 7폭에 하회를 남겼다. 하외도(河隈圖)는 주산인 화산과 마을을 감아 도는 화천 그리고 마을의 경관·가옥배치·풍속 등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2백 년 전의 마을 모습을 잘 보여준다. 종택인 양진당과 충효당 그리고 와가(瓦家)에 딸린 초가의 배치, 하회 16경에 나오는 강섶의 바위들, 나룻배와 섶다리(홍교), 서애와 겸암이 우애를 다지기 위해 서로 왕래했다는 부용대의 ‘층길’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 지금은 물속에 잠겼지만, 전설로만 전해오는 “안 씨가 피 천 석을 수확했다던 섬들”, 만송정의 솔숲과 더불어 행주형의 풍수지리적 단점을 비보해주는 조산(造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정사에서 보이는 만송정 솔숲은 하회 16경 중 5경으로 송림제설(松林霽雪)을 노래하고 있다. 펑펑 쏟아지던 눈이 개인 후, 만송정 송림에 쌓인 하얀 눈과 이와 조화롭게 어울리는 소나무의 푸른 빛, 파란 하늘, 푸른 강물, 그리고 건너편에 보이는 부용대 절벽을 눈으로 아스라이 그려내고 있다. 천년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듯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나룻배의 묘한 기운과 초가지붕 위로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 내민 굴뚝에는 저녁밥 짓는 연기 아련히 피어오르고, 마실 다녀오는 어르신의 옅은 기침 소리에 반갑게 꼬리치며 달려오는 강아지가 한없이 정겨운 목가적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빈연정사
겸암 선생은 빈연정사를 서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선생은 이곳에 조그만 연못을 파고 연꽃도 길렀다고 전하는데 현재 연못은 보이지 않는다. 정사의 전면 담장에 부설된 일각문으로 들어서면, 앞쪽과 우측에 마당이 있고 좌측에 모서리가 배치되어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 1칸에는 온돌방을 앉히고 오른쪽 2칸은 대청마루로 꾸몄다. 온돌은 사방에 문호가 달렸으며 대청 쪽에는 분합들문, 전면에 띠살분합, 측면과 후면은 각 칸마다 외여닫이를 달았다. 대청의 전면 2칸은 문호 없이 개방되고 옆면과 뒷면 각 칸에는 판장분합문이 달려 있다. 기둥은 모두 모난 기둥이나 대청 전면 중심기둥만은 둥근 기둥이다. 기둥 사이에는 대청이 7척, 온돌이 8척으로 온돌 칸이 좀 더 넓게 잡혀 있다. 홑처마에 지붕은 팔작이고, 정자 주위에 토담을 둘렀다.
측면에서 본 빈연정사
류운룡(1539∼1601)의 본관은 풍산으로 자는 응현(應見)이며 호는 겸암이다. 중영(仲郢)의 아들로 퇴계(退溪)의 문인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과거를 포기하고 도학 공부에 주력하였다. 음사(陰仕)로 전함사별좌에 제수되었고 인동현감, 광흥주부, 한성판관을 역임하였다. 임란 때에는 류성룡(柳成龍)의 간청으로 윤허를 받고 귀향하여 가족을 이끌고 피난하였으며, 전후에는 풍기군수, 원주목사를 지냈다. 저서로 『겸암집(謙菴集)』이 남아 있고, 화천서원과 우곡서원에 제향되었다.
대청에서 바라보는 후원
하회마을에 있는 원지정사와 빈연정사는 겸암, 서애 두 분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빈연정사에서 보여지는 선비의 검소함과 절제된 아름다움은 건물에서 보여지듯 살던 이의 품격과 정신자세를 대변하는 듯하여 자연스럽게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 감동은 강 건너 옥연정사와 겸암정사로 흘러간다.
빈연정사에서는 주말마다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도체험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