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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목표
이해인
인생(人生)의
8할(割)을 넘게 걸어왔고
앞으로의 삶이
2할도 채 안 남은 지금
내 남은
생(生)의 목표(目標)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健康)한
노인(老人)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늘어나는
검버섯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옷을 깔끔하게 입고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검약(儉約)한 밥상을 차려 먹겠다.
눈은 어두워져 잘 안 보이겠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偏狹)한 삶을 살지는 않겠다.
약(弱)해진 청력(聽力)으로
잘 듣진 못하겠지만
항상(恒常) 귀를 열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
성한 이가 없어 잘 씹지 못하겠지만,
꼭 필요(必要)한 때만 입을 열며
상처(傷處) 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다.
다리가 아파 잘 못 걸어도
느린 걸음으로
많은 곳을 여행(旅行)하며
여행지(旅行地)에서 만나 느끼고 경험했던
좋은 것들과
좋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을 실천(實踐)하는
여유(餘裕) 있는 삶을 살아가겠다.
어린 시절(時節)부터 줄곧 들어온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質問)에
이제 '건강(健康)한
노인(老人)'이라고 답한다.
나이가 들면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부자(富者)요.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행복(幸福)한 사람이요.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성공(成功)한 사람이며,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잘 살아온 사람이다.
♥ 사랑합니다 ♥
고숙자
1월 24일
이해인 수녀님의 암 극복기
2008년 6월 말, 수녀는 한 성당에서 강연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온 몸의 길이 꽉 막혀버린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해 초 화장실에서 혈변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무심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겼었다.
그러나 그날은 식은땀이 흐르며, 예삿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7월 초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대장내시경을 받던 날 의사는 이상하게 결과도 설명해주지 않고, 오늘은 바쁘니까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여느 때
같았다면 내시경 결과를 조목조목 설명해줬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총장 수녀와 원장 수녀가 그녀의 방을 찾아 암이라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수술 얘기부터 꺼냈다.
바로 입원 가방이 꾸려졌고, 그렇게 등떠밀리듯 다시 병원으로 가서야 의사에게 암이란 진단을 들었다.
“화가 나거나 진단 결과에 대한 의심이 들진 않았어요. 다만, 차가운 바위에 내동댕이 치는 것 같은
‘캔서(cancer)’라는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2013년이면 수술을 받은 지 햇수로 5년이 지난다. 정확히 2008년 7월 14일, 대장 직장암으로 30cm 정도의 장을 잘라냈다. 검사 후 바로 입원해 수술까지 채 보름이 안 걸렸다. 수녀는 얼떨결에 지나간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종양 크기는 약 5cm였다. 암세포가 림프절로도 전이된 3기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그녀의
생존율은 30% 정도였다. 대장암 수술 중 난소에서도 이상이 발견돼 한쪽 난소도 같이 절제했다. 나머지 한쪽
난소에서는 작은 혹이 발견돼 여전히 관찰 중이다.
대장암의 원인 중 주요하게 꼽는 것들이 육류 위주 식생활과 섬유질 부족, 운동 부족이다. 수녀는 대장암에 걸리고 나서 육식을 즐겨 먹었냐는 사람들의 말이 가장 서운했다고 털어놨다. 종교에 귀의해 수녀로 살아온 40년이 넘는
시간은 육식 위주의 식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대장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지자, 육식을
즐겼냐는 오해가 생겼다. 암의 원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수녀는 과일이나 채소 등 섬유질이 많은 음식보다는 밀가루 음식 등을 좋아해 섬유질이 부족했던 것, 책 읽기와
글 쓰기가 좋아 운동을 소홀히 했던 탓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어쩌면 여기에 이름이 알려지며 겪게 된 유명세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알게 모르게 더해졌을지도 모른다. 가족력은 없었다.
부정보다는 긍정, 원망보다는 감사
그녀는 수술 후 6차까지 모두 30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방사선 치료도 28번 받았다. 흔히 말하는 탈모나
피부발진 등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은 심하지 않았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시작할 무렵, 간호사와 동료 환자들이 말해 주는 부작용을 들을 때는 겁도 났다. 고통 앞에서는 성직자도 평범한 인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치료를 받으러 갈 때, 소풍 가는 기분으로 즐겁게 가자고 마음먹었다. 병원에 입원할 때면 병실에 이런저런 장식도 하고 밝은 기분을 유지하며 최대한 병원생활도 즐기려고 애를 썼다. 그런 그녀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수녀는 무려 58번의 힘들고 지난한 항암 · 방사선 치료를 큰 부작용 한 번 없이 모두 잘 견뎌냈다.
긍정적인 마음 하나로 아픔을 걷어내던 그 무렵, 수녀에게는 유독 암을 고친다는 건강식품과 민간치료센터의 유혹이 많았다. 이름이 알려진 덕분인지, 여기저기서 갖가지 좋은 식품과 무료로 고쳐주겠다는 제안이 넘쳤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좋은 음식들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너무 비싼 선물은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주치의의 지시에 따른 표준치료만 받았다.
여기에 오로지 보태어진 것이 있다면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3기 진단을 받았지만, 항문을 살릴 수 있어
인공항문을 만들지 않아도 됐던 것을 감사하고(직장암은 항문과 가까이 있어 초기라도 항문을 살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여러 수녀님들과 격려 편지를 보내주는 많은 이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투병을 시작하면서는 불안하고 두려워하기보다, 죽음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죽음을 즐겁게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죠.”
유서도 쓰고, 영정 사진도 찍어뒀다. 그때부터 무심히 보던 사물도 한층 애틋해지고, 늘 하던 일들도 새롭게
느껴졌다. 수술이나 치료 때문에 한동안 앓고 난 후에는 스스로 신발을 신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신기하게 금새 통증을 줄여주는 약이란 것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 약을
군소리없이 받아들여주는 신이 주신 육신도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 한 소절에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넘쳤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수녀는 치료 후 자신이 살던 부산의 수녀원으로 내려가 암에 걸린 수녀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위암, 자궁암,
난소암, 유방암 등 암에 걸린 수녀들과 함께 만든 이 모임의 이름은 ‘찔레꽃’이다.
“고통의 가시와 함께 있다는 의미예요. 평상시 모일 때도 ‘암환자 모이세요’라고 하기보다는 ‘찔레꽃 모이세요’하니 부르기도 좋고, 또 얼마나 예뻐요? 찔레꽃은 장미꽃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 어릴 적 누이 같고, 이모 같고,
엄마 같은 그런 꽃이죠.”
찔레꽃 모임은 서로 기도도 해주고 간식도 나누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한다. 아무래도 공통적으로 겪은 일이
있다 보니 서로 말도 더 잘 통하고 의지가 된다.
투병기간 동안 썼던 글도 발표했다. 2011년에 출간한 에세이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암치료 후 그녀는 오랜 세월 겪어온 불면증 증세가 사라졌다. 체력은 조금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감사하며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수녀의 한쪽 난소는 아직도 관찰 중이다. 더 커지지 않고 나빠지지도 않으니, 그 또한 감사할 따름이라는 그녀.
최근 그녀는 자잘한 합병증이 이어져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도 하다.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던 통풍도
두 번이나 겪었다. 때로는 어깨에 석회질이 쌓여 통증이 느껴지고,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약도 늘 먹고 있다. 그래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그렇게, 삶은 그녀의 곁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수녀는 아직도 활기차고 씩씩했다. 또 밝고 유쾌했다. 때로는 소녀 같은 에너지도 넘쳤다. 세월도, 아픔도 비껴 지난 사람만 같다. 아직도 소녀처럼 명랑한 수녀는 그렇게 나이를 잊은 채, 병마도 잊은 채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이해인 수녀의 대장암 극복기♡
이해인 수녀가 보내는 한 마디...
♤보호자에게♤
“일반인보다 죽음과 더 가까이 있는 암환자지만 그렇다고 곧 죽을 사람 대하듯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무엇보다
사랑을 담아 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환자에게♤
“병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 때문에 너무 힘들 때는 내 몸과 대화를 하며 고통을 객관화 시켜보는 것도 좋아요.
혼자 고통 속에 빠져 ‘힘들다, 아프다고’만 생각하면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이 세상 어떤 아픔보다도 힘들게
느껴져서, 더 괴롭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럴 땐 내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가만히 몸과 대화를
나눠보세요.”
~이해인 수녀~
출처: 암을 알아야 이긴다.
직장암에 걸려도 수술받고
관해가 되어 이제 팔십 노인이라니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덕인가 보다.
건강에 대한 집념이 생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이해인(李海仁): 1945년 6월 17일 생(78세)
이해인은 자연과 삶의 따뜻한 모습, 수도사로서의 바람 등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동수리 출생. 본명은 이명숙(李明淑). 세례명은 클라우디아(Claudia).
성의여자고등학교 졸럽.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학사 및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석사.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녀회 수녀이다.
1970년 월간 『소년』에 「하늘」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에서 자랐고, 어렸을 적부터 책 읽고 글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6.25 전쟁 시기 납북되었다. 어머니가 20대에 세례를 받았고, 자식들로 1남 3녀(이해인 수녀는 셋째)를 키웠는데 그 중에서 큰딸, 그러니까 이해인의 큰언니는 이해인이 초등학교 시절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으며, 이에 이해인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고모가 2명 있는데 그 중 1명도 젊은 시절 수녀가 되려 하였다고.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자신이 지은 동시를 "누가 써 준 것임에 틀림없지?"라고 믿지 못했던 담임선생의 증언(?)이나, 백일장에서 입선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글쓰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때 수도자의 길과 시인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세월이 흐른 지,
결국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2005년에 발간된 가톨릭 성경 번역에도 참여하였다. 주로 시 부분의 번역에 도움을 주었다.
불완전한 삶을 극복하고 완전한 삶을 이루려는 구도의 길을 노래한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93),
아름다운 사계절과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그려낸 『사계절의 기도』(1993),
신을 향한 수행자로서의 삶과 주제기도를 담은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었네』(1999),
자연과 일상의 모습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2000)를 발표하였다.
『내 혼의 불을 놓아』(1979), 『민들레의 영토』(1981), 『시간의 얼굴』(1989),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93), 『엄마와 분꽃』(1995),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1999), 『꽃마음 별마음』(1999),
『작은 위로』(2002), 『작은 기쁨』(2008) 등 다수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다.
이해인은 자연과 삶의 따뜻한 모습, 수도사로서의 바람 등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목록
내 혼의 불을 놓아
민들레의 영토
시간의 얼굴
사계절의 기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엄마와 분꽃
사랑할 땐 별이 되고
꽃마음 별마음
다른 옷을 입을 수가 없었네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종파를 넘어 생전의 법정과 친분이 깊다. 한국 천주교와 불교는 서로 왕래가 매우 잦으며 친분도 굉장히 두텁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에 서로 축하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인식이 서로
호의적인데다가 사제와 승려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정과 함께
혜민과 함께
대중매체에서
영화 그대 어이가리의 연희(정아미)가 적어놓은 메모에서 시 '나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극 중에서 연희가 병마와
싸우는 고통의 감정을 시를 기록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나중에 이를 발견한 동혁(선동혁)이 연희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투병을 알고 펑펑 운다.
정확히는 수도 서원을 하면서 받은 수도명이다. 태어날 당시 부모님이 지어 준 세례명은 '벨라뎃다(Bernadette)'. 수도자들은 대부분 서원 이전의 세속의 삶을 끊어낸다는 의미에서 수도명을 새로 지으면 기존 세례명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필리핀 바기오에 위치한 대학교로, 1911년 12월 1일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필리핀의 명문 대학교 중 하나이다.
두 사람은 샘터 출판사에서 다수의 저서를 쓴 문인으로서의 인연도 깊다.
종교가 다르다고 사제나 수도사, 목회자 등이 승려와 서로 감정이 안 좋지는 않다. 오히려 성품이 온화한만큼 잘
맞는 부분이 많으며 목회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스님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
재경구구회 조상환 동문이 단톡방에 올린 이해인 수녀의 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