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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3의 3번째 작품인 [오빠가 돌아왔다]가 이번 연극열전 기획에서 차지하는 기능은 연극열전2의 [늘근 도둑 이야기]쯤 될 것입니다. [늘근 도둑 이야기]는 연극열전2에서 가장 장수한 작품이었고 가장 관객점유율이 좋았으며 재미있다는 소문에 선예매가 가장 잘 된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연극열전2에서 가장 고민없는 작품이기도 했죠. 몇 년 만에 재공연되면서 이야기는 약해졌고 의미는 희석됐으며 시대착오적인 구성을 과감히 제거하는 대신 아무것도 채워넣지 않고 닳아빠진 곁가지만 잔뜩 추가해서 전개는 밑단 빠진 헐렁한 바지처럼 여며주는 맛이 없었어요. 대신 엉성한 구성을 눈치 못 채게 할만큼 조여놓은 빠른 호흡 때문에 휘발성 강한 유머포인트는 효과적으로 먹혔죠. 배우들의 멋부리지 않은 과도한 개인기와 고민없는 유쾌함 덕에 연극열전2의 선두주자로써 압도적인 바랍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줬는데 연극열전3에선 [오빠가 돌아왔다]가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 것 같아 보입니다. 실제로 초반몰이는 괜찮았죠.
연극열전2는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기획이었지만 그해 연극 시상식에선 철저히 무시당하며 스타캐스팅에 짓눌린 일시적이고 상업적인 이벤트 상품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죠. 그닥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나름 소신을 갖고 연극예술의 발전을 위해 좋은작품 발굴하고 의미를 새기고자 노력했던 취지에 비하면 업계의 시선은 가혹한 편이었습니다. 흥행이 잘 됐기 때문에 단점이 두드러졌을 뿐 연예인 캐스팅은 연극열전 뿐만도 아니었고(부추긴 건 있었지만) 연극열전보다 더 가볍고 갖잖은 작품들도 수두룩했는걸요. 매체에서 비판하듯 가볍고 상업적이기만 하다 라는 비평을 들을 만한 작품도 따지고 보면 [서툰 사람들][늘근 도둑 이야기][돌아온 엄사장]정도 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심보인지 흑자성공과 별개로 예술적 고취의 결여라는 비판은 연극열전 기획에 자각을 일으켰고 연극열전3의 작품명단을 보면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알려진 배우들은 나왔지만 인맥으로 끌어들인 스타캐스팅도 자제하는 게 보였습니다.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거죠. 그렇게해서 선정된 게 [에쿠우스]와 작품인지도가 전혀 없었던 [엄마들의 수다]였고 [오빠가 돌아왔다]랑 비슷한 시점에 올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같은 정통극이었습니다.
결과는 희멀건했어요. 캐스팅은 웬만하면 정석으로 갔고 작품은 보다 깊이있고 창의적인 것을 택하는 대신 연극열전2보다 마케팅은 더 활발히 한 것 같은데 배종옥같은 유명여배우가 출연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조차도 개막 초반에만 반짝 하고 금세 시들시들해졌죠. [엄마들의 수다]는 공석이 남아돌았고요. [에쿠우스]는 이름값이 워낙 높은 작품이었으니 그런대로 지속적인 관객발걸음을 유도하긴 했지만 연극열전2의 개막작품이 보인 성과에 비하면 미약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애초 정한 각 작품의 공연기간은 연극열전2보다 길었고 연극열전2에 선정된 작품들은 연극열전1보다 공연기간이 길었죠. 연극열전3의 [에쿠우스]는 극장을 옮겨 적지 않은 기간을 잡고 연장공연을 시도했는데 이미 볼사람은 다 본 마당이라 연극열전 사업의 유명세와 선두작품이라는 책임감에 괜한 무리를 감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재 비슷한 전철을 [오빠가 돌아왔다]가 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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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2가 워낙에 성공해서 어쨌든 죽어버린 대학로 연극시장에 불씨는 만들어줬기 때문에 연극열전3에 대한 기대는 한껏 고무돼있었고 매체의 관심도 높았는데 작품마다 어째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거기다 무게를 잡고 선정한 명작들에 대한 평도 미지근했고요. 상업성을 포기하고 작품을 내세웠는데도 어째 연극열전 타이틀만 뒤집어쓰면 여지없이 얄팍해진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명작 망가지는 경우는 늘 있어왔지만 흥행과 별개로 연극열전 기획 자체가 눈에 띄는 바람에 작품자체의 불협화음도 더욱 도드라졌죠. 상황이 이러했으니 분위기 쇄신용으론 [오빠가 돌아왔다]밖에 없었습니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하는 작품이었고 연극열전2의 성공적인 단점을 모조리 끌어안은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만큼이나 그때까지 남은 기간이 더 많은 연극열전3의 차기작들을 이끌어 줄만한 바람잡이 역할을 기대한건데 예상대로 초반몰이는 좋았습니다. 프리뷰 기간 때는 금세 매진됐으니까요.
[오빠가 돌아왔다]가 처음 잡은 공연기간이 약 두달 보름 정도였는데 처음 한 달 가량은 예매율이 높았습니다. 기본 할인률 외에 추가 할인률을 거듭 만들 필요가 없었죠. 비슷한 시기에 올려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나 [에쿠우스]같이 기대치 높은 명작이나 [엄마들의 수다]같은 생소한 신작에 비하면 대중들의 반응도 훨씬 호의적이었고요. 몇몇 지나치게 가볍고 욕설난무로 불편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연극열전2의 인기레파토리가 받았던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연극열전3가 [오빠가 돌아왔다]덕에 명예를 회복하는구나 싶었는데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애초 잡은 공연 중반까지도 못 이어졌다는 겁니다.
연극열전2의 기억할만한 성공 이후 대학로에는 아류 기획이 많아졌고 관객은 여전히 수동적인데 반해 기획사들만 연극발굴에 신나합니다. 몇 년 사이 인상적인 캐스팅을 내세운 주목할만한 연극들이 많이 올려졌죠. 흥행은 뭐 하나 인상적인 파급력을 일으킨 작품은 없었지만요. 재활용이건 신작이건 작품발굴력도 높아 이름있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기생하는 볼만한 연극선정은 더이상 연극열전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습니다. 연극열전3가 안일했다는 말이 아니라 연극열전2의 경쟁력은 결과적으로 일시적인 착시효과였다는 겁니다. 연극열전3의 분위기는 연극열전1과 비슷하죠. 연극열전1은 적자를 낸 기획이었지만 타격이 큰 편은 아니었습니다. 연극열전3의 관객동원력도 처참한 수준은 아니니 어쩌면 이번 연극열전3의 미지근한 반응이 정상인것이고 연극열전2가 기형적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연장공연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사업적으로 봤을 때 큰 손실은 보지 않을거란 판단하게 결정한 것이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1~2주도 아니고 본 공연기간 만큼이나 되는 기간을 잡고 [에쿠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뒷심 한참 딸리는 낮은 예매율에도 불구하고 연장공연을 공지했을 때 의아했던 게 사실입니다. 처음 잡은 공연기간도 국내 연극 평균 공연 기간보다 많은 편이었데 과연 쉬지도 않고 같은 극장에서 넉달 넘게 올라가는 연극의 수요층이 꾸준할까 싶었던거죠. 이미 [오빠가 돌아왔다]는 연장공연 결정하기 훨씬 전부터 갖가지 할인이벤트로 낮은 예매율을 타파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연장공연 들어가면서 그나마 대중에게 친숙한 주연배우들도 대거 교체됐고요.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는 차치하고 사전예매율에 대한 싹이 보이지 않는 공연을 어쩌자고 일정을 늘렸을까요. 작품에 대한 혹시 모를 잠재력을 감지했던걸까요. 무리하게 일정을 벌려 작품을 살리고자 한 노력은 가상합니다만, 공연 후반부에 접어든 [오빠가 돌아왔다]의 현재 상태는 비참합니다.
사방팔방에서 예매가 가능한 이 공연은 인터파크에 동숭소극장의 절반 이상 되는 객석을 할당했는데 예매가 거의 안 되고 있거든요. 5월 이후론 연극부문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월간예매율 순위 20위권에도 못 들어갔습니다. 지난 달부터 되는대로 1만원짜리 티켓을 마구마구 뿌리고 있는데 이 정도의 상황이면 무료공연 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객석엔 관객이 가득찼더군요. 공연 보러 가는 날 오전에 200석도 안 되는 소극장 공연에 인터파크 한 곳에서만 잔여석 확인을 했는데도 90석이 넘게 남아돌고 있었던 공연이었는데 100번째를 넘어서고 있는 비지정석 대기번호 관객이 기다렸다 차례로 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많은 관객이 전부 현장구매자는 아닐테고 연극이 영화처럼 편한 시간대에 볼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정말 초대권 관객 모으는 수완은 국내 공연계 최대 미스테리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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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작품세계가 달갑지 않지만 그보다도 김영하란 작가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연극 [오빠가 돌아왔다]는 그닥 관심있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전 김영하 특유의 자기도취가 견디기 힘들어서요. 그런게 작가 인터뷰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데 글은 잘 쓰는 것 같지만 김영하의 나르시시즘을 감수하고 보는 건 고역이더군요. 몇 권 읽다 말았죠. 이 사람이 쓴 영화 평론도 별로 도움될만한 수준을 보장해주지 못했고요. 작가니까 글이야 유들유들하게 풀어냈지만 영화 평론에서 바라게 되는 전문성은 부족했습니다. 하긴, 작가의 영화 평론은 평론이라기 보단 영화를 매개로 한 산문이죠. 김영하 본인도 그걸 인정했고요. 작가 치곤 영화에 해박하긴 합니다. 장르불문하고 이 사람이 쓴 활자매체에 호감을 못 느껴서 한동안 피하다가 이제는 관심조차 끊어버리고 싶은데 자꾸 김영하 원작 각색물이 나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네요. [퀴즈 쇼]도 그래서 결국엔 완독했고 [오빠가 돌아왔다]도 연극열전 작품이고 해서 챙겨봤죠.
원작을 읽어봐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이 단편소설이라 서점 가서 한번에 읽을 수 있었어요. 분량도 짧고 내용도 간소해 부담없이 술술 읽히더군요. 30페이지도 안 되는 단편인데 전개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원작은 오빠의 여동생이자 아빠의 되바라진 중학생 딸인 경선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해체된 가족의 봉합을 딸의 시점에서 우화적으로 그렸어요. 꿍꿍이가 분명한 어른용 동화죠. 김영하는 모두가 드세고 결핍된 정서로 심리적으로 함몰 직전에 놓여있는 한 가족구성원을 다루면서 이들의 뗄 수 없는 혈육의 정을 징글맞게 그려냈습니다. 누구하나 고분고분하지 않고 지고는 못배기는 악다구니를 쓰지만 그 안에 수줍게 숨긴 인정과 잃어버린 가족품에 대한 갈망을 무너진 가부장제를 뒤로한 채 대안가족의 형태처럼 묘사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김영하가 [오빠가 돌아왔다]를 통해 말하고 싶은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입니다. 아버지는 아무런 발전도 개선도 못하고 끝내 도태되고 말죠.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가족구성원이 망가지고 해체되는 모든 원인은 무능력한 아버지 때문이고 이 폭력적이고 무기력한 술주정뱅이 패배자는 끝내 가족들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찾고자 발악하지만 돌아오는 건 어느날 몰라보게 장성해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도깨비처럼 나타난 가출한 아들의 응징이고 집을 나갔던 아내의 과격한 반사입니다. 늙고 쇠력해진 아버지는 입만 살았지 누구에게도 찍소리 못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가 젊었을 땐 마누라 두들겨패고 아들 두들겨패도 기고만장했지만 상황이 역전된거죠. 그런데도 상황파악 못하고 여전히 귄위만 내세웁니다. 결국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고 그저 가족 사진의 병풍역할로 무너지고 맙니다. 이미 무너진지는 한참이지만 오빠가 돌아오고 아내가 돌아오자 기정사실이 된거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다른 이들은 다시 뭉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실질적인 노력을 하는데 반해 아버지는 알량한 귄위의식만 부여잡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김영하는 이런 식의 가부장의 고질병은 한국사회의 병폐이며 이런 정신상태는 가족, 나아가 우리사회의 평화와 화합에 아무 쓸모도 없는 썩은 사상이라는 것을 극대화 된 가족캐릭터를 통해 그리고자 합니다. 가족이니까 포용은 하겠지만 가장의 자발적인 개선의지가 없다면 가족구성원으로 대접해줄만한 가치가 없다는 거죠.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끌어가기 위해선 오빠로 대변되는 인물을 통해 가족을 먹여살릴만한 능력(돈)과 정신적 지주로서의 믿음직한 장악력으로 평등하고 공평하게 인솔하는 것이 올바른 현대사회의 가족형태라는 것을 우화적인 전개를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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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도 소설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원작이 어른용 동화의 탈을 쓰고 다소 낯간지러운 1인칭 화법으로 전개된다면 연극은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고유의 색을 덧입혀 선명한 자욱을 만들어냅니다. 전반적으로 원작보다 낫습니다. 이 작품은 2008년도에 '극단 신명나게'에서 유영길 각색, 연출로 이미 올려진 적이 있는데 이번 연극열전3에선 고선웅 각색, 연출로 재단장을 했습니다. 이럴 땐 판권관계가 어떻게 되는건지 궁금하네요. 작가가 생존해있는데 2년 사이로 같은 원작을 둔 연극이 다른 극단에서 올려지고 있는건데 이래도 되는건가? 원작자가 판권을 거저 내주진 않았을텐데 말이죠. 별 얘기가 안 나오는걸 보면 서로서로가 판권 때문에 핏대 세우지 않고 유하게 넘어갔나봅니다.
원작이 분량도 적지만 줄거리식으로 전개됨에도 구성이 몇 개 안 돼요. 간단하죠. 가출한 오빠가 몇 년 만에 애인을 대동하고 돌아와서는 아빠를 제압하고, 오빠가 돌아오자 엄마도 돌아오고 언쟁과 실랑이를 벌이다 어느 화창한 주말에 화합의 의미로 가족끼리 야유회 갔다 오면서 모처럼만에 가족애를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극은 여기에 인물을 새로 추가한다던지 없는 이야기를 짜낸다던지 하지 않고 소설을 모범적으로 따라가고 있지만 소설과 완전히 차별화 된 각색을 통해 개별작품으로써 성공적인 각색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가 바로 고선웅 각색, 연출이었죠. 같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이렇게 다르게 뽑아낼 수 있다는 걸 고선웅이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각색을 정말 잘 했어요. 고선웅의 키치 정신이 창작시나리오처럼 발휘됐죠. 특히 고선웅 특유의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독백 느낌의 대사톤이 각 인물에 자연스럽게 붙어 극에 신명나는 추임새를 넣어줍니다. 고선웅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재밌게 즐길 수 있을겁니다. 언제나 고선웅 작품이 그랬듯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온 몸을 움직이며 강렬한 움직임을 선사하고 말장난과 반어법과 시침 뚝 떼는 과격한 유머를 격렬하게 쏟아내 진이 빠질 때까지 이야기를 밀어부칩니다. 연장공연에 합류한 오빠 역의 김호진이 고선웅 특유의 대사톤을 자연스럽게 못 맞춰서 오빠 역이 많이 약해진 게 흠이지만 역시 연장공연에 합류한 서현철이나 넉 달 동안 중간하차 없이 강행군을 펼치는 나머지 배우들은 매우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극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고선웅은 전형적인 가족캐릭터를 극대화시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캐릭터는 멀티맨이 소화하는 1인 다역까지 모든 배역이 스테레오 타입니다. 미운 시누이, 얄미운 올케, 무능력한 아버지, 억센 어머니, 듬직하지만 약간 철이 없고 남자다움에 겉멋 든 똥폼 오빠. 모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설정인데 이런 캐릭터를 최대한 단순화 시켜 극적으로 정형화시키자 특징없는 뻔뻔한 인물구축은 극속에서 마구잡이로 튕겨 나가 날카롭게 부딪히고 이런 막나가는 인물들의 미친 광기는 쾌감을 선사해줍니다. 그 결과 원작과 동일한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원작에 없는 흥겨움과 키치적인 재미를 얻을 수 있었죠. 딱 극 중반까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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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반까지 간략한 원작의 내용을 빠짐없이 담으면서도 각색자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전개였지만 너무 전개가 빨라 후반부에 어떻게 하려고 속도를 이렇게 키우는 걸까 우려됐습니다. 원작은 작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이었고 원작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한다면 극 초반의 호흡은 정상이 아니에요. 원작과 같이 단막극으로 진행한다면 모를까요. 걱정대로 중반 이후부터 호흡이 흔들렸고 한번 호흡이 흔들리자 전개는 점점 늘어지고 끝날 무렵에 불필요한 감상주의는 언제 끝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더군요. 고선웅의 고질병은 소재도 참신하고 그리는 방식은 기발한데 반해 후반부가 쳐진다는 겁니다. 중반까지는 괜찮아요. 그러나 작가가 끝내야 할 시점에 자꾸 머뭇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오빠가 돌아왔다]도 오빠가 핸드폰 셀프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끝냈어야 했습니다. 그때 관객들도 극이 끝났는 줄 알고 박수를 치기도 했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시점이었죠. 이미 야유회 가서 회를 먹니, 탕을 먹니 식당 주인과 반복되는 입씨름을 할 때부터 조짐이 안 좋았는데 후반부에 밑도 끝도 없이 빠진 감상주의를 그나마 구제해주는 건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작가가 인물들을 놓아주질 않아요. 작가가 작품에 대한 정 때문에 결국엔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아니라 도리어 끌려가면서 갈수록 재미없는 동어반복에 상황만 칙칙하게 만들죠.
극중 야유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작품의 절반에 해당되는데 야유회 장면부턴 아예 넋놓고 있습니다. 그때부턴 무대연출이고 뭐고 고민도 없어보여요. 그냥 가족들의 대화에만 집중하는데 이 대화가 이야기 전개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의미를 남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이 가족은 야유회를 가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오빠를 주축으로 또다른 대안가족같은 형태를 보여준 뒤이기 때문에 후반부는 뭔가를 던질 게 아니라 깔끔하게 완성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이야기를 부여잡은 바람에 불필요한 3막이 됐고 나중엔 지치고 따분해진 술주정뱅이의 고성방가처럼 들릴 정도죠. 포문은 활기있게 인도해 객석을 들썩이게 하더니 후반엔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를 느끼게 합니다. 공연 후반부에 본건데도 극 중반 이후의 산만한 전개 때문에 꼭 프리뷰 공연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오빠가 돌아왔다]를 전 참 재밌게 봤습니다. 보기 전에 너무 가볍기만 한 작품이라는 평이 많아서 공연 보기를 주저했었죠. 가볍고 욕설 난무하는 대학로 연극에 아무 흥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해서 굳이 그런 류의 코미디를 볼거면 한국조폭영화를 보면 봤지 대학로까지 가기엔 시간낭비, 돈낭비라고 생각했었어요. [오빠가 돌아왔다]는 연장공연 들어가기 전에 두번이나 예매취소했던 공연이라 공연을 안 봐도 될만한 이유가 많았고 연장공연 들어가고 난 뒤엔 원하는 배우로도 볼 수가 없어서 더욱 봐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주말에 영화건 공연이건 뭐 하나라도 봐야할 일이 생겼는데 관심있던 작품이었고 친구랑 가볍게 볼만한 작품이 싸게 풀렸길래 겸사겸사 본거죠.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봤으니 기대를 갖고 원하는 캐스팅으로 예매했을 때 취소하지 않고 봤다면 더 좋았겠단 아쉬움이 듭니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소문처럼 욕설난무의 저질코미디도 아니었고 연출자의 개성이 물씬 풍겨나온 흥겨운 가족코미디로써 제 역할을 충분히 완수한 작품입니다. 산만한 후반부가 원할하게 흘러갔다면 훌륭한 코미디가 되었겠지만 못난 코미디가 더 많은 대학로에서 이 정도 간소한 규모를 가지고 이 만한 완성도의 재미를 보장해주는 것도 흔한 건 아닙니다. 그런면에서 상대적인 만족감이 큰 작품이었죠.
- 원래는 이문식, 이신성 조합으로 보려고 했어요. 잘 붙지도 않은 일정이라 이문식, 이신성으로 보려면 일정 조절하는 것도 일이었는데 결국엔 물건너갔군요. 예매사이트 취소수수료 방침이 바뀌어서 이제는 걸핏하면 취소하는 일이 줄어들 것 같아요. 한편으론 다행이에요. 여태까지 공연 취소했던 대부분의 이유는 공연장 가기 귀찮고 피곤해서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