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파란 잎사귀가 퍼져 있고
그 사이사이 진달래색 자잘한 꽃송이
주변으로 빈 곳을 채우는 개나리색 꽃잎들
색채 조합이 예뻐서 단숨에 사버린
내 여름 치마
허릿단 밑으로 넓은 주름 앞뒤로 넣어
시골말로 차리차리 매끈하게 내려와
분잡스런 칼라에 비해 날씬하게 보인다
나는 젊을 적이나 시방이나
꽃 칼라 옷을 좋아하지만
외모나 신체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입어 보지는 못했다
어디 꽃 칼라만 그리했겠는가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초록색
연두색 녹색 미색 베이지 등등
밝은색이 들어간 옷은 무조건 노!
언제나
검은색 회색 곤 색
세 컬러로만 걸치고 살았다
대신 집에서 허드레로 걸치는 것은
한풀이라 하듯 오색찬란한 색으로
걸치고 산다
꽃무늬 몸빼
수박색 티 쪼가리
개똥참외 색의 홈드레스
빨강 꽃봉오리가 달랑거리는
슬리퍼
사실 나의 속 마음은
세상의 화려한 것은 모두 내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입고 싶고
걸고 싶고
꿰고 싶고
신어 보고 싶고
하나 내 꿈일 뿐
정작 붉은색 푸른색
금빛나는 강렬한 색채 앞에 서면
뛰는 가슴만 부여잡고 황홀한 듯 쳐다만
볼 뿐이다
타고난 열등감인지
자동으로 키운 열등감인지
세상 모든 튀는 것들은 나의 보잘것없은
존재감만 부각시킬 뿐이라는 자격지심이
발동해서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던 갈등의
젊은 시절도 빛처럼 지나가고
나도 늙은이 대열에 쓸쓸히 서 있게 된
이즈음 나도 색채에 자신감을 얻었으니
놀랍다
칼라플한 옷을 사 입는 것이다
눈에 확 띄는 옷만 고르는 나를 내가
신기하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은 걸
어쩌나
이제
검은색 회색은 노! 라고
저 꽃무늬 치마를 사던 올봄의 어느 날
소녀처럼 설레이던 감정
내가 저렇게 생긴 꽃무니치마를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입지 않고 곁에만 두어도
좋을 거 같아서 망설임 없이 사 버린 것이다
젊은 날 우연히 세계 여행 명장면만
모아놓은 책을 뒤적이다 눈에 띈 한 장면
베네치아 물의 도시
창가에 서서 배를 향해 손짓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실루엣 그녀가 입은 꽃무늬 긴치마
금발에 날씬한 그녀의 허리를 차르르 휘감고
내려오는 꽃무늬 치마의 핏 여성스런 너무도
귀여운 그녀의 모습
발밑으로 찰랑거리는 물
베네치아 도시에 깃든 낭만의 감성에다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라니
그보다 내가 꼿혀 버린 것은 그녀의 치마
그 꽃치마였다
날씬한 허리에 큰 수고 없이
두르고 나온 듯한 그럼에도 너무도 아름다운
꽃 무늬 치마
70에 꽃 치마를 사다니
그토록 오랜 세월 참았던 꽃치마라곤 해도
어떻게 입을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간 요렇게 조렇게 입어 봤으면 하던 젊은 시절
혼자 상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문제 없다
흠..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밭쳐 입어 보고
그리고 검정색 흰색으로 차례차례
깔 맞춰 입어 봐야지
이왕이면 베네치아의 그 소녀처럼
단순한 티셔츠 한 장으로 멋을 내면 일품이지만
나잇살이 온 몸뚱이에 켜켜이 늘어져 있는
7순의 할미는 그저 뱃살 등살 가릴 풍덩한
윗도리가 제격이제
허나 그뿐이다
치마는 한 번도 입지 못한 채로
옷걸이에 걸려 봄을 나고
여름을 넘겼다
가을이다
꽃무늬도 낙엽과 함께 사라지 듯
거품 속에서 꽃잎 하나하나 살살 문질러
맑은 물에 행궈낸다
이제 치워 두려고
손세탁했다
그냥 갖고 싶었던 것인데
이렇게 가졌으면 되었지 뭐
내년 후년에도
입을 날 있을까
없을 거 같다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꽃 치마
운선
추천 3
조회 347
24.09.06 14:09
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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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치마에 담긴 소망과 설렘이 소박합니다.
자신을 위한 작은 행복을 찾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입지 않더라도 마음속의 꽃은 언제나 피어 있지만
입으면 더 좋지않을까요...
그렇지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