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바둑이 제 바둑보다 잘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자꾸 훈수도 하게 되고 공연한 핀잔도 듣게 된다. ‘강대국의 흥망’이란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폴 케네디의 한국 이야기를 들으면 꼭 그런 기분이다. 이 예일대학 역사학 교수는 한·미동맹보다 한·중관계를 먼저 들먹이는 집권세력 내부의 움직임에 대해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는 한마디로 잘랐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란 거대한 코끼리에 둘러싸인 작은 동물 처지인 한국으로선 그러다가 생존까지 위협받게 될지 모른다는 충고다.
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멘델 교수의 한국 내 성장·분배 논란에 관한 지적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파이(pie)를 몽땅 나눠 갖자는 건 그 파이를 다 먹고 나선 어떻게 먹고 살지에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이다.’ 성장을 우선시하면 당장은 힘들겠지만 나눠 먹을 파이가 커진다는 생각은 왜 못하느냐는 것이다.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셰도 남의 바둑이라 잘 보이는 모양이다. ‘한국 국민들도 저(低)성장·고(高)인플레이션 경제의 고통을 4~5년간 더 체험하게 되면, 현명한 선택을 위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나눠먹자는 타령으로 GDP 1만달러 시대에 계속 눌러앉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경쟁과 불균형의 고통을 참아내고 2만달러 계단을 뛰어오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말이다.
‘신(新)지리학’ 등 도시의 역사를 주제로 화제작을 계속 출간한 조엘 코트킨 역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이 나라의 찬반 대결에서 비켜서 있는 외국인이다. ‘브라질 브라질리아, 호주 캔버라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자생력을 갖지 못한 행정수도는 다른 도시에 기대서 연명하는 더부살이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줏대로 사는 이 정권이 아무리 몸에 좋다 해도 이런 쓴 약을 삼킬 리가 없다.
그래서 나온 게 며칠 전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다. 한국은 작년(18등)보다 11단계 내려앉은 29등이다. 아시아의 경쟁 상대인 홍콩(2등) 대만(4등) 싱가포르(7등) 일본(9등) 가운데 꼴지다. 짐작대로 정부 과목은 모두 낙제점이다. 정치인 신뢰도는 104개국 중 85등, 의회 효율성 81등이다. 정부 계약 투명성, 조세 행정 부패 여부도 쭉 뒤로 밀려났다. 노사 협력 과목은 93개국 중 92등이다. 한국 뒤에 어느 못난 나라가 쭈그리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체면치레를 한 건 민간이 주도하는 IT(정보 통신)분야뿐이다. 정부는 이 성적표에 대해 ‘적극 대응하겠다’며 불만 반(半) 신음 반(半) 소리를 토해 내고 있다.
국가경쟁력 보고서가 수강생 138명 중 134명에게 1등 점수를 돌리고, 수강생 73명 전원에게 수(秀)를 나눠주는 한국의 거짓말 고교 내신(內申)만큼 후한 줄 알았던 모양이다. 희극은 꼴찌 정부가 아직도 민간 우등생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는 훈시(訓示)를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수록 상황은 비극 쪽으로 흘러간다. 엊그제 나온 올 2분기(4~6월) 아시아 주요 국가 경제성장률에서 한국은 또 꼴지를 했다. 3분기 연속 꼴지를 한 것이다. 국가경쟁력 보고서 순서대로다. 한국이 군말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쿠바 출신의 전직 교수이자 언론인인 카를로스 몬타네르는 남미(南美)의 가난·무지·쿠데타에 한(恨)이 맺힌 사람이다. 그의 절절한 외침이 담겨있는 게 ‘진짜 바보 남미인이 되는 법(Guide to the Perfect Latin American Idiot)’이란 책이다. 그 속에서 몬타네르는 실패의 원인을 밖에서, 또 남에게서 찾고, 오늘의 허물을 어제 탓으로 돌리고, 경쟁을 죄악시(罪惡視)하고, 지금 갖고 있는 걸 몽땅 털어 나눠갖자며 국민을 유혹하는 정치 지도자와 그들에게 홀린 국민이 남미를 가난과 무지와 쿠데타의 땅으로 만들었다고 외치고 있다. 우리에게도 ‘진짜 바보 한국인이 되는 법’이란 책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벌써 그걸 읽고 그걸 따라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