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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주체에 따라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피해자는 다급하다 못해 절규한다. 하지만 제3자는 너와 나를 편 가르기 하는 일이 적지 않다.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의 메커니즘을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집중호우로 곳곳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한순간에 집과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도로가 끊기며,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이 무너졌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재난은 뉴스의 한 장면이 아니라 당장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절박한 문제다.
이럴 때 정부가 피해 지역을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을 바라보는 국민의 태도다.
선진 국민은 재난을 정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느 지역이 어느 정당을 지지했는지, 어느 지방자치단체장이 누구인지, 지난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따져 피해의 크기를 판단하지 않는다. 재난 앞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보다 사람의 생명과 삶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저 지역은 누구를 찍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생각이 만약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냉소가 아니다. 공동체의 안전망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오늘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내 이웃이고, 내일 피해를 입을 사람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폭우도, 산불도, 태풍도, 지진도 투표용지를 보고 찾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재난 지원 역시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필요의 크기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긴급재난지역으로 지정된다는 것은 특혜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지역에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다. 평소 국가에 세금을 내고 법을 지키며 살아온 국민이 재난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을 때, 국가가 다시 국민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진국의 힘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복구하고, 얼마나 공정하게 지원하며, 얼마나 따뜻하게 서로를 돌보느냐에 있다.
더 나아가 국민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피해 지역을 보며 "왜 저렇게 되었느냐"고 따지기 전에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피해 규모를 보며 "우리 지역보다 큰가, 작은가"를 비교하기보다 "저곳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펴야 한다.
재난은 공동체의 민낯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고, 누군가는 성금을 보내며, 누군가는 복구 작업에 손을 보탠다. 반면 누군가는 그마저도 정치적 계산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분명하다. 재난 앞에서 국민을 둘로 나누지 않는 사회. 피해자의 정치적 선택을 묻지 않는 사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회.
그것이 선진 국민의 시각이다.
국가가 긴급재난지역을 선포하는 순간, 그 지역은 더 이상 '남의 지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한 부분이고,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 할 우리의 이웃이다. 오늘은 그들이 물에 잠겼지만 내일은 우리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것은 집도, 도로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다. 어느 지역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으며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가를 따지는 것은 지극히 지엽적이고 졸렬한 태도다. 재난 앞에는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다. 모두 ‘우리’다. 진정한 선진국은 경제 규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선진화될 때,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