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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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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에 보내진 손도끼의 의미 찾았다! 2013년 월간조선 5월호 기사내용은 김대중 시대의 국정원이 5.18에 대한 발설을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고 경계했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5.18은 북한 소행“, 김덕홍은 밝히자, 황장엽은 입 닫자 5.18에 대한 TV 토론이 활성화 되었던 2013년, 황장엽을 가장 먼저 만났다는 전 월간조선 김용삼 기자가, 2013년 월간조선 5월호에서, 1998년 월간조선 7월호에서 강제 삭제당했다는 내용 을 아래와 같이 털어놨다. “그 때 두 사람과 인터뷰 중 김덕홍씨가 ‘여기 남한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되겠다’면서 ‘조선노동당 대남 부서가 있는데 그 부서에 소속되어 있던 상당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 내 친구들이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광주민주화운동 후에 훈장을 탔다고 축하 술을 마시면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황장엽 선생이 김덕홍씨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동생!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해‘ 하면서 말리자 김덕홍씨는 ’형님, 우리가 이런 얘기하러 여기(남한)온 거 아닙니까, 왜 저를 말리십니까. 형님도 다 아시면서 왜 얘기를 못하게 하시는 겁니까‘ 하면서 실랑이를 벌였죠.” 김덕홍씨가 5.18 광주와 관련해 발언한 그 부분은 결국 기사에서 빠졌다. 두 사람과 김기자의 인터뷰는 경호를 이유로 참석한 국정원 직원들이 바로 칸막이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광주 부분은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니 기사화되면 정말 큰일 난다”면서 국정원이 강력하게 보도 자제 협조 요청을 해오는 바람에 기사 작성 과졍에서 빠진 것이다. 1998년 월간조선 7월호에서 빠진 것이다. 손도끼 우송 사건 2010년 11월 어느 날 황장엽에 소포가 배달됐다. 손도끼와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황장엽의 얼굴사진이었다. 메시지는 “그 입을 다물라” 북한이 가장 비밀로 지켜야 할 사실에 대해 입을 열지 말라는 초강력 메시지였을 것이다. 이런 협박은 당시 황장엽이 북한을 비방하는 말들을 자주 했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당시 황장엽씨는 5.18을 토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서 자유롭게 활동했다. 반면 김덕홍씨는 5.18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한 바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삼엄한 경비 속에 갇혀 있다. 꽁꽁 갇혀있는 김덕홍에 대해서는 염려가 놓이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황장엽은 언제 망령이 나 5.18을 토설할지 모를 일이었다. 5.18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황장엽을 위탁관리하고 있었을 것. 김덕홍은 한때 미국을 방문하려고 애를 썼지만 정부는 그에게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 반면 황장엽은 미국을 구경하고 죽었다. 북한은 남한 김대중 정부에 자유롭게 다니는 황장엽이 언제 5.18을 말할지 모르니 각별히 신경 쓰라 엄명을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빨갱이 임동원이 수장으로 있던 국정원은 황장엽을 적당히 관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황장엽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이는 황장엽이 단단한 누군가에게 위탁됐고, 위탁을 맡은 그 사람이 자연스런 모습으로 위장하여 위탁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다. “5.18의 비밀만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단단하게 주의를 주었을지 모를 일이다. 2015.6.25. 지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