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대사까지 외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왜? 읽은 만화를 읽고 또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모르는 이야기들을 가슴설레면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아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서 읽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캐릭터에 몰입이 되거나 만화가 표현하고자하는 내용에 더욱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만화가 이렇지는 않아요. 작가가 신이 내린 영감을 받았다고 뿐이 말할 수 없는 그런 만화들이 있어요. 그런 만화중 제일 즐겨 보는건 바나나피쉬입니다.
바나나피쉬는 수십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감동이 있습니다. 그 감동의 원천은 무얼까 생각해 보았어요. 아이큐 200, 동물적 반사신경, 범접하기 힘든 꽃미남인 카리스마 가득한 주인공 애쉬.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무척 불행합니다. 애쉬는 뛰어난 외모로 어린시절에 성적착취를 당하고 그에게 친절을 가지고 접근했던 모두에게 받은 상처를 안고 스트리트 보이로 살고 있습니다. 충분히 몰입할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물론 아이큐나 외모같은 초인적인 그의 모습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에 공감이 가지요. 그런 그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보통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지요. 아무에게도, 또 무엇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생존에만 매달리던 그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다가옵니다. 그가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생기지요.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에이지입니다. 에이지는 평범하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다정함이 있습니다. 이 둘의 정신적 교감과 애쉬의 기적같은 인생이 바나나피쉬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전 바나나피쉬를 지탱하는 두 개의 매력중 정신적 교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몰까요? 제가 현실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감정외적인 문제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에선 별로 타격을 안받습니다. 물론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판단과 정리도 빠르고요. 그러나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이나 공허함 같은 불가해한 감정은 참아내기 힘들어요. 육체적인 고달픔이나 다른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잘 참아내는 편인데 그러나 알 수 없는 공허함을 해소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무한테도 자신을 내 맡기기 힘들었던 애쉬가 그와 동등한(물론 능력이 아니라 인격으로) 존재로 모든 영혼을 내 맡길 수 있는 에이지에 대한 감정은 어떠한 종류의 사랑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전 사랑이라던지 인류애 같은걸 그리 신봉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 감정은 사악하지만 일종의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불쌍하고 안되보이는 착한 마음을 지니신 분들이 있지요. 그런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나 그런 감정 자체에서 얻는 자기 위안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극도의 훈련을 쌓아 성인의 반열에 이르신 분들도 존재하지요. 그러나 저같은 노말한 일반인에겐 그런 성인의 말씀은 그리 와 닿지가 않는 법이랍니다.
남녀간의 사랑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성끼리 끌린다는건 사회적이고 생물적인 본능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 기저에 깔려있는건 역시 인간이라면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를 치유해줄 구원자를 갈구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Michael Bolton의Soul Provider가 생각나네요.) 한밤중에 갑자기 미친듯한 외로움을 느껴본적이 있나요? 저의 사고방식으로는 오밤중에 외롭다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던가 SOS를 치는 것은 용납이 안됩니다. 자기극기적인 천성이던지 남성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사회화당한 것이 틀림없지요. 그러나 당시 사귀던 이성의 목소리로 위로도 받고 그런 감정을 상대에게 토로할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생활인이라는 측면에선 상대에게 원하는 것들이 있지요. 좋은 요리 솜씨라던지 조근조근한 목소리나 대화가능한 교양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역시 궁극적으로 원하고 있는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그런 공허함을 어루만져줄 그런 손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런 치유의 손길을 뻗었을 때 당사자에겐 사랑의 손길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면 그건 정말 상상하기도 힘들만치 괴로운 일이지요. 일반적인 사교에 관한 접근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불행할까요?
애쉬의 그런 정신적인 관계에 대한 서투름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런 서투른 정신적 교감이라는 면에서 이것도 일종의 러브환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오이로 회자되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면 네 멋대로 해라=죽음 전제로 하고 시작하는 사랑. 바나나 피쉬=안되는걸 알면서도 어쩔수가 없는 감정. 이런식으로 등치가 이루어 지지 않을 까요? 그래서 바나나피쉬가 좋습니다. 왜냐면 저는 어쩔 수 있는게 대부분이니까요. 안타깝게도 말이에요.
첫댓글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여태 안 읽어봤다는.. 헤헷~.. 언제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