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여 전 가을 부터 작년 가을까지 창원에 내려가 있을 때 일이다.
부임초기 거의 매일 술을 주식으로 하다시피 살았었다.
기다리는 이 없고 간섭하는 사람 없는 노마크의 이른바 창총!
창원은 우리나라 굴지의 기계공단으로 대기업 임직원들이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와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런 한시적 홀아비(?)들을 '창원총각' 줄여서 '창총'이라 부르고 있다.
어쨌던 몇 달을 그렇게 허구헌 날 술,술,술...
이러다 정말 폐인이 되겠다 싶어 퇴근 후 회화학원을 다녔는데(단지 술 적게 먹으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그것도 완벽한 주피(?)수단은 못돼었다.
좀 지나고 부터는 학원 마치고 또 술을 먹게되고...
저녁반이어서 원생이 대부분 직장인이라 새로운 술친구가 또 생기고...
늦게 시동을 거니 귀가 시간은 더욱 늦어지고...
그렇게 1년 넘게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하루는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데 십자수 가게가 보였다.
문득 탤런트 최모씨의 십자수 관련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가정적이고 자상하며 섬세하고... 너무 멋있다... 어쩌구 저쩌구...
당시 난 남자가 무슨 할일이 그렇게 없어 쪼그리고 앉아 그 짓을 할꼬?
그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남자 망신 다 시키네... 하며 괜시리 흥분했었다.
그때가 아마 지금과 같은 12월 초순경이었는데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작은 딸아이 생일(12/14)도 있고 해서 무슨선물을 준비할까 내심 고민하던 중이라
십자수액자를 하나씩 사다줄까 생각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여자들만 몇 몇이 있는 가게에서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주뼛거리니 점원이 다가와서
"아저씨 뭐 하시게요?"
"아니 저...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하려는데 이런 거(?) 사다주면 좋아할라나요?"
"그럼요... 아저씨... 요즘 애들이 십자수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멋쟁이 아빠시네요."
"이런 건 직접 수를 놓아 선물해야 의미가 있지 남이 만든 걸 선물하면... 글쎄요?"
"물론 직접 수를 놓아 선물하면 더 좋겠지만 아저씨 연세에... 좀 그렇고... 근데요.. 아저씨
탤런트 최xx 오빠 있잖아요? 그 오빠 십자수 해서 인기캡이잖아요?"
"(근데 이 아가씨가 말끝 마다 아저씨..아저씨.. 누구는 몇 살 차이도 안나는데 오빠.. 오빠..
듣는 아저씨 정말 성질나네..) 나도 그럼 직접 수를 놓겠소. 흠... 재료나 주시오."
"요기 요거 있잖아요... 열쇠고리에 다는 건데... 아저씨 같은 초보가 하시기에 적당할 것 같네요."
"흠... 내 아무리 초보지만 대장부가 그리 쬐끄만 놈으로... 저 놈으로 주시오."
"예에..저것도 보기 보다 힘드실텐데..하시다 힘들면 바꾸시더라도 그럼 일단 한 번 해보셔요 아저씨."
그 날 부터 술자리를 피하고 십자수에 전념 5일 만에 아래 두 놈을 완성했다.
표구를 맡기러 가게에 들렀더니 그 점원 아가씨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바느질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며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나를 띄운다..
다 상술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첫작품1
첫작품2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니 아빠가 한 거 맞느냐며 너무 좋아한다.
"근데 아빠... 엄마 건 없어? 엄마생일도 얼마 안 남았잖아..."
끙... 날 아예 잡아 잡숴라... 이 놈들도 점원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고 날 밤 까며 만들었는데....또?
2호 작품
그리하여 집에 다녀오자 마자 다시 작업에 돌입 두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납기(?)에 맞추려고 표구도 못하고 원단만 가져다 줬는데도....
모처럼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아내는 남대문시장 까지 가서 이쁜액자를 구한다고 난리치고...
주인이 물어 보지도 않는데
"이거 누가 했게요?"
제눈에 안경이지 남이 보면 뭐 대단한 거라구...평소 말없고 내성적인 아내가 그 주책까지 부리고...
그런데 이 놈도 이듬해 봄에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아래 마지막 작품이 납품(?)되는 날 거실에서 아이 방으로 좌벽(?)되고 말았다.
3호 마지막 작품
이듬해 그러니까 작년 2월 하순에 다가올 5월달 결혼기념일 선물을 생각하다
또 다시 십자수를 놓게 된다.
술 먹느라 용돈도 궁한 '창총'이 거금을 마련할 길도 없고...
2호 작품의 반응(?)도 괜찮아 또 다시 몸으로 떼우기로 한 것이다..
예의 가게에 들렀더니 점원이 알아본다.
"아가씨 저번 등대는 말이야... 울긋불긋한 것이 촌스럽고 그렇던데... 뭐 좀 고상한 도안 없어요?"
"-------"
"이거 뭐요? 콰이강의 다린가? 이거 괜찮겠구만... 이걸로 재료 준비해 줘요."
"아저씨!!! 이건 요... 고~~난도 스티치거든요!!! "
이건 숫제 비아냥대는 것처럼 하며 난색을 표한다.
"스티치고 스케치고 하면 하는거지..."
아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안 복사본과 실이며(실패도 샀다) 원단 그리고 바늘도 서너개나
넣어준다.
그런데 왠실이 그렇게 많던지... 비슷한 색깔의 실 종류가 수없이 많았다.
그때 그 아가씨의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작품의 크기는 A4 용지 만한데 가로 120칸 세로 100칸이다.
그러니 총 칸수는 120*100 = 12,000 칸이다.
거기다 크로스스티치(박음질)까지 더하면 도대체 몇 땀인가?
나중에 생각해 봐도 정말 대단했다.
대략 15,000 땀이라 하면 10초에 한 땀씩 수를 놓는다해도 총 150,000초...
한 시간 3,600초로 나누면 41.7시간...
하루에 두 시간씩하면 한 달이면 끝낼 수 있겠지.
그런데 단순히 산술적인 시간으로 계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계속적으로 십자수를 놓는것도 아니고 틈틈이 하다보니
그 많은 종류의 실도 헷갈리고... 급기야 실패에다 견출지 까지 붙이고...
워낙 유사색으로 하다보니 그게 그 것같고... 도안에다 칼라펜으로 표시해가며 하는데...
도안 카피본이 너덜해져서 3번이나 새로 복사해오고...
정말이지 그 아가씨 말을 듣지 않은 걸 밤 마다 후회했다.
중간에 몇번이고 그만둘까 생각도 해봤으나 이미 시작한 거 끝은 봐야지 하며
정말 전심전력을 다했다.
집에 가지 않는 주에 낚시를 가서 낚시터에서 하기도하고...
시간만 나면 십자수에 매달렸는데도 결국은 납기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표구하는 시간 까지 해서 2주일을 늦게 아내에게 전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추려고 하다보니 다소 거친 부분도 있고 내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받아 든 아내는 너무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내는 작품자체 보다도 이 십자수를 놓으며 밤이면 밤마다 자신을 생각하며 놓았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처럼 보여서 좀 찔리기도 했지만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로 부터 상당기간 약효가 있었는데.... 지금은 약빨이 다 떨어져서 고전하고 있다.ㅠㅠ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십자수를 놓는 동안 술도 많이 자제하게 되었고...
거의 무념무상의 경지도 맛보았다.(눈이 몽롱해지고 그랬으니... ㅋㅋ)
혹시 동짓달 기나긴 밤 송곳으로 허벅지 찔러야 되는 상황에 계시거나
무념무상에 빠져보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십자수에 한번 도전해보시라.
다만 눈이 나빠지고 성질이 더러워 지는 것에 본인은 절대 책임질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카페 게시글
모놀가족 이야기
'창총'의 思婦曲-십자수 이야기
뮈토스
추천 0
조회 180
04.12.04 18:50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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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푸하하하~~~ 세 여자에게 구여움 많이 받으셨겠군요~~~ 뮈토스님에게 이런 자상함이...? 내도 마,, 낭군으로부터 지극정성, 이런 선물 받고잡다~~
ㅎㅎ... 낸 울 애기 달랑쉬한테 바랄 수 없는기다... 남의 남편이 아내랑 아이들 기쁘게 해줬다는 것만도 대한민국 만세다! 한국의 남편 만세다!!!
뮈토스 님!! 1호 작품 아주 멋있습니다.[다만 눈이 나빠지고 성질이 더러워 지는 것에 본인은 절대 책임질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를 "취소"하신다면 [무념무상에 빠져보시고 싶은 분]이 되어 보겠습니다. 뮈토스 님! 年末에 많이 빠쁘시죠? 가족분 모두 늘 행복하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대단하신 형님!
어쨌거나 대단한 뮈토스님!!!!. 작품들이 만만치가 않네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은 신문의 일면을 장식해야 하는 기사문 아닌가요? 아마도 400년쯤 뒤면 2000년대 초기의 '특이한 思婦曲'으로 문헌에 기록으로 남지 않을까요? ^^ 눈이 나빠지는' 인정하겠는데 '성질이 더러워 지는' 것보단 오히려 마음 수양이 되는 편 아니던가요? 뮈토스님 행복하세요.^^*
남편들의 기를 팍팍 죽게 하시는 뮈토스님,정말 멋있습니다...못하는것은 뭐가 있더라?..생각 안남..ㅎㅎ
일찌기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완벽 하신줄은 미처 몰랐네요.전 발가락도 못따라 가겠는디요.
말이필요없네요...ㅎㅎ 남편분들 오늘부터 당장 십자수 열풍이 부는건 아니겠죠?? 여자인 저두 눈아프고 어깨아프단 핑계로 해볼 엄두도 못냈는데..대단하시네요!!
ㅎㅎ 십자수로는 저보다 선배시군요 작품으로보나 시간으로보나 ㅎㅎ 저는 아예 뮈토스님처럼 큰건 엄두도 못내고 찌끄만것만 하는데 ㅎㅎ 정말 정신수양을 하는건지 스트레스를 도리어 받는건지 모르겠던데 ^^ 하여간 뮈토스님께 열렬한 박수를 보냅니다 ^^
제가 이래서 모놀님들을 조아라 한다니까요....딱 제맘에 드네요...저 요즘 머리 복잡했는데.. 덕분에 몇땀하고 던져놓았던 바늘 잡을랍니다..1년 넘었는데....ㅎㅎㅎ
시상에나 만상에나 이런 재주까정.................뮈토스님 같은분들 땜시 세상 남자들이 피곤하당께요~~~~가만있자...방앗간은 도대체 머시엿 !!
대단해요..뮈토스님 누가 이런일을 벌일거라고 상사이나 하겠슈~^^; 근디 정말 눈 많이 피곤해질터인디요~전 집을 7채 수놓다가 포기했는디..5채하고 나니까 더이상 하기 싫어지더라구요~끙끙끙~!!
딱딱하고 자로 잰 듯 한 이미지였는데... 참 멋지세요. 이미지 변신!!!
와아~~..정말 정말..대단하시네요~..존경 존경..그 마음으로 행복해졌을 가족들의 행복한 미소들이 보이는듯하네요~..와아..정말 뮈토스님은 연구 대상이예요~..ㅎㅎ..창총이여도 다 같은 창총은 아니다!!..ㅎㅎ
짝짝짝~ 뮈토스님의 열정에 감탄,감탄!!!
뮈토스님은 못하는게 뭐여요? 대단한 남편! 아빠! 십자수 가게 차리셔도 손님이 아주 많을듯하네요 ㅎㅎㅎㅎㅎ
뮈토스형님 십자수 이야기 넘 재미있네요...지는 엄두도 못내는 일인데...ㅎㅎㅎ
와하.. 뮈토스님 대단하시네요. 존경스러워요. 전 열쇠고리 하나 만드는것도 실밥 터지고 장난 아닌데.. 가족분들의 사랑이 넘쳐나겠어요.
저는 3번 작품만 사진으로 봤었는데...다른게 더 있었네요..놀라워라..뮈토스님....여자인 쉬운거만 찾아서 하는데..존경..^^
너무 멋져요..뮈토스님의 재주는 무궁무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