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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방영된 드라마 ‘아들과 딸’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아들은 귀하게 대접받고 딸은 늘 뒤로 밀려나던 모습은 당시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남아선호사상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여러 번 출산하는 일이 흔했고,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에게 더 많은 기대와 사랑이 쏠리던 시대였다.
얼마 전 딸아이의 동창 단체 대화방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가 딸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축하한다" "너무 부럽다" "딸이 최고다"라는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고 한다. 반면 아들이라는 소식에는 축하는 있었지만 분위기는 한결 조용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어느새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이 아들보다 딸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시대가 부모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예전에는 아들을 집안의 기둥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딸을 든든한 평생의 벗이자 부모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펴 줄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대의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도 함께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들의 눈부신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교육과 경제, 정치와 문화는 물론 과학과 군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이 여성이라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제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함께 이끌어 가는 당당한 주체가 되었다.
여성들의 뛰어난 공감 능력과 언어 능력, 관계 형성 능력 등은 여러 통계 자료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물론 능력은 성별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여성들의 잠재력이 사회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에도 뛰어난 여성들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재능은 시대의 벽 앞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은 유교적 질서 속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를 이루었고, 여성에게는 배움과 사회 활동의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허난설헌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시재를 보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다. 불행한 결혼 생활과 자식의 죽음 속에서 삶을 마감한 뒤에야 그의 문학적 가치는 세상에 알려졌다.
신사임당 역시 뛰어난 화가이자 시인이었지만 오랫동안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이름에 가려져 자신의 예술적 업적은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빙허각 이 씨 또한 ‘규합총서’를 남기며 생활 과학과 여성 교육에 큰 업적을 남겼지만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 시대 여성들에게 남성과 같은 교육의 기회와 사회 참여의 길이 열려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해졌을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 많은 여성들의 눈물과 재능이 묻혀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시대는 변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당당히 경쟁하며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남성과 여성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는 아니다. 한쪽이 앞서고 다른 한쪽이 뒤따르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장점을 지닌 존재이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책임감과 어머니의 따뜻함은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때로는 어머니가 더 강인하고, 때로는 아버지가 더 섬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우열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아들과 딸 역시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하는 가족이다.
건강한 가정은 서로를 존중하는 남녀가 함께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런 가정들이 모일 때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사회가 모여 품격 있는 국가를 이룬다.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드라마 「아들과 딸」이 차별의 시대를 이야기했다면, 오늘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는 공존의 시대다. 이제는 아들이냐 딸이냐를 묻기보다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성별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시대의 모습도, 사람들의 생각도,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나 끝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들이라는 이름보다, 딸이라는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바로 '내 아이'​라는 이름이다.
하지만 사랑은 거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 아이를 사랑하듯 지구상의 모든 어린이를 사랑할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해지고 건강한 미래가 열릴 것이다. 모든 아이는 한 가정의 자녀이기 전에 우리가 함께 품고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다. ‘내 아이’를 넘어 ‘우리 모두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