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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XE-u4WanMI&t=1s
President Truman 1949 Inauguration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미국 제33·34대 대통령
Harry S. Truman’s inauguration speech was delivered on January 20, 1949, at the start of his second term as the 33rd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n his speech, he outlined his vision for a peaceful and prosperous world, based on the principles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cooperation. He also declared his opposition to communism, which he called a false philosophy that enslaves people and threatens freedom. He proposed four points to achieve his goals:
First, to support the United Nations and other international organizations that promote peace and security.
Second, to continue the economic recovery programs that helped Europe and other regions after World War II.
Third, to strengthen the defense of freedom-loving nations against aggression and subversion.
Fourth, to launch a new program of technical assistance and development for the underdeveloped areas of the world.
His speech was widely praised as a bold and visionary statement of American leadership and values. It also marked the first time that a president used the term “underdeveloped areas” to refer to the poor regions of the world that needed help. His fourth point became known as the Point Four Program, which later evolved into 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한미 동맹 70주년,
1+1입니다.
우리 후세들 영원하라!
'Sea of Japan'을 'East Sea'로 수정
알지도 모르는 세계 꼴등 빈국, 북괴 남침에 3만명 이상이 산화한 미국의 국민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미국 헤리 S. 투루먼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호의삼조(好意三條)라는 말을 아시는가?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미국 제33·34대 대통령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졸 출신이다.
어릴 때 '트루먼'은 육군 사관학교에 가고 싶어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 꿈을 펼치지 못했다고 한다.
학벌도 없고 집안 배경도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그가 가졌던 직업 역시 변변찮았다.
기차역에서 검표원을 하기도 하고, 조그마한 상점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잘되지 않아서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러한 평범한 사람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트루먼'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예비해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용기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혔을 때
약한 자의 편을 드는 정의로운 용기가 '트루먼'에게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원해서 입대했다.
원래 '트루먼'은 지독한 근시 때문에 군복무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 육군 신체검사에서 시각검사 판을 통째로 외워서 통과한 후 포병장교가 되어 열심히 싸웠으며 대위까지 승진하였다.
용감하고 서민적이고 그리고 아주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 바로 '트루먼'이다.
1944년의 정·부통령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고 1945년 4월, '얄타' 회담 직후 '루스벨트'가 뇌일혈로
별세하자 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지도력을 검증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처리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보고를 받고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했다.
생각해보면 '트루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마지막 사건을 장식
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48년 재선에서 '트루먼'의 재선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대통령 선거날 자신의 패배를 예상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아침에 일어나자 박빙의 차이로
당선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한국전쟁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있던 사람이 '맥아더' 장군이었다.
'트루먼'은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는데도 못 갔지만 '맥아더'는 육사 출신일 뿐만 아니라 수석 졸업생이기도
했다.
이 천재 장군이 얼마나 교만하게
굴었는지 '트루먼' 대통령이
꽤 고생했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과의 대립관계속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내하지만 결국 인천 상륙작전
이후 확전(擴戰) 하려는 '맥아더'를 해임하기도 했다.
또 '트루먼'과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당시 남한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다.
이승만은 조선의 왕족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인재다.
굉장히 곧고 또 오만한 성격이다. 다 망해가는 나라를 미국이 구해줬음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절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백악관에서 회담하다가도 '트루먼' 대통령을 향해서 “이런 고약한 사람이 있느냐?”면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받아 가면서도 한국을 도와준 사람이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트루먼'은 두 번에 걸쳐
한국을 도와주었다.
첫째는 한국전쟁에
파병한 것이다.
미국 시각으로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밤 아홉 시에 잠자리에 들려던 '트루먼'에게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런
보고를 받을 때 정치적인
계산을 할 것이다.
이 전쟁이 본인의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트루먼'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단 10초 만에 한국 전쟁에 미군 참전을 결정했다.
계산할 줄 모르는 농부처럼 '트루먼'의 생각은 한가지였다. 나쁜 놈들이 쳐들어왔으니 물리쳐야 한다는 단순
논리였다.
바로 그 용기있는
결정이 한국을 살렸다.
그 순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골 출신의 '트루먼'을 대통령으로 세우셨다.
두 번째로 '트루먼'은 한국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졌을 때 영국 '에틀리' 수상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에 배치된
병력을 유럽으로
철수시키자고 제안했다.
영국의 제안에 미국의 주요한 인물들이 찬성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
대사를 지낸 '조셉 케네디'다.
그는 공개적으로 한국
포기론을 주장했다.
명문가 출신에 정치 감각이 뛰어난 자들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골 출신으로 의리를 중요시하는 '트루먼'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한국을 도왔다.
“우리는 한국에 머물
것이고 싸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는 어떻게든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을 버린다면 한국인들은 모두
살해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편에서
용감히 싸웠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연합군의 철수를
거절하고 의리있게 행동했다.
'트루먼'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1차, 2차 대전
때에도 하지 않았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그는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고 그걸 가지고
한국에 쏟아 부었다.
국방 예산을 올리고
중국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엄청난 돈이 투입되고 5만 명이 넘는 미군이 목숨을 잃고 10만 명 이상이 다친 후에야
전쟁이 멈췄다.
우리나라 역사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미국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성장할 수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세계사와 우리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미국의 도움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들도 이제는 바로
알고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당시 '트루먼'은 한국전에
막대한 물자와 군인을 투입한
것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트루먼'에 대한 평가는
더욱 좋아졌다.
공산화 위기에 놓인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이후 계속해서 성장해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국을 독단적으로 도와준
'트루먼'의 평가도 더욱 높아졌다.
강대국 대통령이라기에는 약점이 많고 학벌도 부족했으며 출신 배경도 좋지 않았던 '트루먼',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시간이 갈수록 높게 평가
받는 인물중 한사람이 되었다.
그는 한반도를 파멸의 위협에서
구해낸 숨은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세계에서는 그의 타고난 우직함과 순박함이 약점으로 작용했을지 몰라도, 그러했기에
오히려 한국을 전쟁에서 구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음을
기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끈기있게 실천했다.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를 받고 10초 만에 한국 참전을 결정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
엄청난 돈 투입, 5만 명이 넘는
전사자(戰死者), 10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전쟁에서도
한국을 포기하고 연합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끝까지 지켜준 분.
많은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자기 나라에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국방 예산을 올려 전비(戰費)를 조달해준
대통령.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미국의 감사를 잊지 말자!
한미동맹강화는 당연하다!
호의삼조(好意三條)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세 가지 조건을 잘 지켜야 상대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나 또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때 이러한 세 조건을 호의삼조라 부르니
원조(願條)와
시조(時條) 그리고
은조(隱條)가 그 것이다.
첫째, 원조(願條)는
상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으로
목이 마른 사람에겐 물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줘야 하는 이치와 같다.
둘째, 시조(時條)는
도움의 타이밍으로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해 많이 도와줄 수 없어
좀 더 넉넉해지면 도와주려고 미루다 보면 이미 상대는 죽고 없어
내 도움이 필요없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도움이란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으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때를 놓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은조(隱條)는
다른 사람이 모르게 은밀히 도와주는 것을 얘기한다.
불교에 삼무보시란 말이 있다.
남에게 무엇을 주는 보시를 할 때는
준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고,
주고 받은 물건도 없다는 마음으로 도와줘야 올바른 보시라는 뜻이다.
기독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이 성경에 쓰여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도 자존심 때문에 공개적인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도움을 줄 때 남이 모르게 은밀히 도와주는 은조야 말로 호의삼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누군가를 도와 줄 일이 있다면
주고도 욕을 듣지 않도록 호의삼조를 잘 지켜야 한다.
호의삼조(好意三條)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호의(好意)를 베풀 때는 세 가지 조건(條件)을 지켜야
상대방(相對方)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도와주는 나 또한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다.
1. 원조(願條)다.
상대가 절실하게 원(願)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가려운 대를 긁어줘야 시원할 것 아닌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주며
병든 사람은 치료시키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배우게 하는 이치(理致)다.
2. 시조(時條)다.
상대방이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해 많이 도와줄 수 없다고 좀 더 넉넉해지면 도와주려고
뒤로 미루다 보면 이미 상대는 죽고 없어 내 도움이 필요 없는 상태가 있지 않던가?
도움이란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를 놓치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3. 은조(隱條)다.
도와주되 다른 사람이 모르게 은밀(隱密)히 도와주어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도와주어야 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도 자존심(自尊心) 때문에 공개적인 도움을 거절하는 때도 있다.
도와줄 때 남이 모르게 은밀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내 영혼아! 오늘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호의(好意)를 베풀 일이 있거든 도와 주고도 욕을 먹지 않도록 하라.
상대방이 꼭 필요로 한 것으로 도와주라. 상대방이 진심(眞心)으로 고마워하며 나 자신도 보람을 느끼게 하라.”
재경구구회 SJKang강석정 동문이 단톡방에 올린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