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잔잔한 파도소리와 드넓은 수평선을 감상하면 어지럽던 마음도 점차 정리가 되는데요. 수국공원과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등 아름다운 장소를 배경으로 파도와 섬과 친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걷고 또 걸어도 바다가 보이는 전남 신안군 비금도·도초도의 사진 스폿, 함께 가면 좋은 여행지, '도초도·비금도 여행 가는 길' 등을 카레부부의 주말 여행기에서 확인해 보세요!
파도와 섬이 친구가 돼 주는 곳
그곳에서 나를 만나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도초도 여행
신안군 도초면 발매리 언덕 위 전통 초가집은 영화 ‘자산어보’의 배경이 된 곳이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했고 10년 넘게 회사를 다니며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왔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안정적인 길 위에서 만족하며 머물러 있었다. 가끔 창밖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몸이 심하게 아프고 나니 당장 내일이라도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그래서 나는 비포장도로로 내려왔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마음을 정하고 나니 겨우 맨발로 땅을 밟을 용기가 생겼다. 가고 싶은 곳, 아무도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걷고 또 걸어도 바다가 보이는 곳,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섬과 나만이 존재하는 곳. 바로 전남 신안군 비금도와 도초도다.
섬 안에 피어난 작은 꽃, 수국공원
이번 여행은 남편 없이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신안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사촌들이 있어 어렵지 않게 여행지를 정할 수 있었다. 2019년 신안군에 국내 최초로 성인을 위한 섬마을인생학교가 개교했다. 어른이 길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장소를 마련해주는 학교라고 한다. 그 학교 옆에는 수국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수국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물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귀여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수국은 초여름에 아름답게 피어나는데 겨울에 도착하니 수국 대신 애기동백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여름의 수국공원에는 200만 송이의 수국이 가득 피어난다고 한다. 초여름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겨울의 빨간 애기동백도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작은 동산을 따라 빼곡하게 난 동백길을 오르면 파란색 지붕을 가진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신안은 컬러마케팅을 도입해 섬과 마을마다 테마컬러를 정하고 있다고 한다. 경관색채 행정을 통해 각 마을이 가진 특성과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어 마을이 한층 생기 넘쳐 보였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나 홀로 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옆에 ‘나팔 부는 소녀상’이 나를 맞이해줬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자산어보’ 영화 촬영지
초가집 왼편으로는 문바위, 아편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신안군 도초면 발매리의 언덕 위, 바다를 배경으로 지어진 이 전통 초가집은 2021년 4월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의 촬영 세트장이다. 마치 이 섬에 원래 있던 주인처럼 당당히 도초도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조선 순조 14년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을 떠나 섬 청년 창대와 연을 맺으며 근해의 수산물을 채집해 수산·동식물 사전을 만든 것이 바로 ‘자산어보’다.
전통식 서까래와 방과 방 사이로 건너편 우이도가 시원하게 보이는 장면이 마치 액자처럼 느껴진다. 이 초가집은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또 신비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아마도 자연을 해치지 않고 주변 경관, 그리고 바다와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인 것 같다. 초가집 왼편으로 문바위, 아편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바닷가 길을 따라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지만 길이 험해지기 때문에 운동화나 등산화 신기를 추천한다.
바다와 나, 시목해수욕장
신안군 도초면 시목해수욕장은 드넓은 모래사장이 얇고 잔잔한 파도를 품는 아름다운 바닷가다. 반달 모양으로 펼쳐진 백사장 뒤로 소나무와 수림대 숲길이 울창하게 조성돼 있다. 산으로 둥글게 둘러싸인 해안선이 마치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 시목해변은 결이 고운 모래에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바닷가 뒤쪽에는 3만 3058㎡(1만 평) 규모의 청소년야영장이 있어 캠핑하기에 좋다. 여름에는 시목해수욕장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며 쉬다가 바닷가로 달려가 시원하게 해수욕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집에서 멀리 떠나 사람이 많이 없는 섬으로 들어오니 어지럽던 마음이 점차 나아졌다. ‘한국에 이렇게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에는 나와 바다만이 존재했다. 바다가 들려주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미움도 슬픔도 버리고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이 없는 나를 포용해줬다. 마음이 풀릴 때까지 걸어봤지만 바닷가는 끝나지 않았다. 그 시간은 행복했고 한편으로는 쓸쓸했다. 두고 온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떠나보라고 등을 밀어준 사람,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을 그가 생각나 작은 조개들을 주워서 모래밭에 이름을 새겨줬다. 나와 바다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니 이제는 그의 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카레부부가 추천하는 사진스폿
수국공원, 섬마을인생학교 돌담
주차장을 통해 수국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섬마을인생학교와 수국공원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풍성한 수국, 귀여운 너구리와 토끼, 살아 움직이듯 생생한 고양이 벽화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보자.
‘자산어보’ 오두막
언덕 위 바다를 배경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자산어보’ 촬영지는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뷰 맛집, 인증샷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멀리 보이는 깊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액자에 담긴 듯한 인생샷을 남겨보자.
함께 여행하면 좋은 곳
이세돌바둑기념관
이세돌바둑기념관. 자료 신안군
신안군 비금도는 알파고(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를 이긴 유일한 인간 ‘이세돌’의 고향이다. 신안군은 이세돌 기사를 기리기 위해 이세돌바둑기념관과 기념비를 설립했다. 또한 신안의 대표 인물인 이세돌 기사를 키워낸 어머니를 그린 벽화가 수국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그려져 있다. 도초도에서 서남문대교를 통해 비금도로 가면 이세돌바둑기념관에 갈 수 있다.
인생의 쉼터, 섬마을인생학교
인생의 쉼터, 섬마을인생학교. 자료 신안군
인생학교는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성인과 청년, 남녀노소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숙형 학교다. 신안군 관계자는 “섬마을인생학교는 잠시 좌절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는 인생의 쉼터 같은 곳”이라고 밝혔다. ‘인생은 내내 성장기이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를 모토로 아름다운 섬에서 쉬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행복을 위한 에너지를 담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도초도·비금도’여행 가는 길
쾌속선
①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도초도 가기
② 목포 북항선착장에서 도초도 가기
③ 신안 암태도 남강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산(비금)으로 들어가기 *배를 탈 때는 신분증 필수 지참
목포항에서 출발해 차를 싣고 가는 일반선은 2시간, 쾌속선은 50분이 소요된다.
비금도와 도초도 섬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어 자동차로 이동이 가능하고 두 섬을 왕복하는 버스도 있다. 차가 없는 경우 비금도의 택시회사(비금택시 061-275-5166)가 각 관광사와 연계를 맺어 코스별로 관광객 투어를 돕고 있다.
시목해수욕장
시목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2.5㎞, 너비 100m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1996년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에 다리가 개통돼 비금도와 같은 생활권이 됐다. 서쪽 해안절벽을 따라 용굴과 문바위·솥바위 등이 있으며 주변에 만년사·우이도 등의 관광지가 있다. 목포항에서 도초도행 배를 타고 가면 된다.
‘자산어보’ 촬영 세트장
내비게이션에 정보가 안 나올 경우 ‘발매리’를 검색한 뒤 ‘자산어보’ 촬영장 표지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면 언덕 위 초가집이 보인다. 초가집 근처까지 운전해서 올라가기에 길이 좁고 험하기 때문에 아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걸어 올라갈 것을 추천한다.
글·사진 조유리 작가
여행작가이자 인스타그램(@curryuri) 팔로워 19만 8000명을 보유한 인스타 셀럽.
남편인 코미디언 김재우와 함께 ‘카레부부’로 불린다.
저서로 <카레부부의 주말여행 버킷리스트>(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