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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12권 25일
우주의 근본
- 세계일보 전국조사위원 대회 때 하신 말씀 -
날짜 : 1992. 11. 23(월)
장소 : 한국 국제연수원
우주 운동의 시원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얘기할 것은 운동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이 우주가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주체 대상이 먼저냐 하는 것을 가려 놓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이것을 전부 가려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막연한 결론밖에 안 나옵니다. 그런 막연한 결론은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우주의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직선 상에서는 운동을 못 합니다. 양 점을 연결한 것이 직선이기 때문에 직선 상에서는 조화가 불가능합니다. 3점에서부터 창조의 조화가 시작됩니다. 3점에서부터 포물선을 통해 가지고 원형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운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미는 데서부터 시작되겠어요, 잡아당기는 데서부터 시작되겠어요?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주의 근본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운동은 미는 데서부터입니다. 어떤 게 쉬우냐? 미는 게 쉽습니다. 당기는 것은 이중의 힘이 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모순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나로부터 투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는 것이고, 이것은 받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받고 싶어요, 주고 싶어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원리에는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수작용에서 ‘줄 수(授)’가 먼저예요, ‘받을 수(受)’가 먼저예요?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줘요,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줘요? 부모가 주지요? 이것을 볼 때, 존재의 기원이 되는 그분으로부터 주는 일이 시작되어서 작용이 연결되었다는 논리를 인정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파이프가 있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할 때, 하나님이 파이프를 통해서 자꾸 주고 잊어버리고 주고 잊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계속 그렇게 주시다 보면 꽉 차 가지고 돌아 들어옵니다. 자꾸 무한히 주고 잊어버리려고 하시면 어떻게 되느냐? 나중에는 여기까지 와서 하나님 자신을 밀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작용을 함으로 말미암아 작은 존재로부터 큰 존재가 시작되었다는 논리는 정상적입니다.
작은 것에 투입하고 또 투입하면 자꾸 커지지요? 마찬가지로, 이 우주가 어떻게 커졌느냐 하는 문제는 보태 줄 수 있는 작용이 계속됨으로써 확대된 존재로 전개되었다는 데서 풀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에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느냐? 돈을 투입하고 잊어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니까 돈은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지식의 대왕마마입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지식의 왕입니다. 그리고 권력의 주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권적인 소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외로우시겠어요, 기쁘시겠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문 총재는 혼자 있으면 외롭겠어요, 기쁘겠어요? 외롭습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기뻐요? 외롭지요? 왜 외로워요? 남자가 혼자 살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홀아비가 되면 불쌍하다고 그러지요? 또, 여자가 암만 미인이라도 과부가 되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 집이 암만 훌륭하고 뭐 어떻더라도 혼자 있으면 불쌍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요? 사랑의 상대를 못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39-58)
우주 존속의 공식
왜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냐? 사랑의 상대는 온 우주가 보호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상대와 완전히 주고받는 데는 천운과 모든 운이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구요. 여러분, 병이 나면 아프지요? 의사한테 찾아가서 “의사 선생님, 병이 나면 왜 아픕니까” 하고 물어 보라구요! “아프긴 왜 아파, 병이 났으니 아프지” 이럴 것입니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이것은 근본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병이 나면 왜 아프냐?
이 우주의 환경권 내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 환경을 주체와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으면 보호받게 되어 있습니다. 천운이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보더라도 핵을 중심삼고 부체(副體)가 있습니다. 그거 왜 그래요? 그게 우주 존속의 공식입니다.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못 쓰게 되니까 우주 전체의 힘, 천운이 냅다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사지백체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어느 하나가 없어졌다고 하면, 천운이 그 불합격자를 몰아냅니다. 우주의 공법에 의해 완전히 하나되어 있는 것을 보호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해당 안 되니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 밀어내는 힘이 아픔으로 나타납니다. 제3의 힘이 밀어내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왜 아들딸의 가슴이 아프고, 왜 그들이 통곡을 해요? 그걸 무엇으로 설명할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주체와 대상으로 완전히 주고받을 때는 우주의 보호를 받지만 하나가 없어지면 원칙에 불합격자가 되니까 자체적으로 제거되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어 말하면, 사업할 때 둘이 하나되면 흥한다고 합니다. 왜 흥해요?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흥하게 됩니다. 유교의 도리 가운데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가화(家和)는 왜 만사성(萬事成)이에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여덟 식구면 여덟 식구가 완전히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균형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여덟 식구의 운을 보호할 수 있는 천운이 가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사랑을 원하십니다. 사랑을 원하는데, 어떠한 사랑을 원하시느냐? 여러분, 약혼 당시에 자기의 상대가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요?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누구를 닮아서 그래요? 누구를 닮았겠어요? 근본을 닮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결국은 하나님도 그렇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원형이정(元亨利貞)입니다. 천도지상(天道之常)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됩니다. 그렇게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면 어떻게 하셔야 되느냐? 하나님이 갖고 있는 것을 백 퍼센트만 투입하시면 하나님과 같은 것밖에 안 됩니다. 천만 배 이상 낫기를 바라기 때문에 백 퍼센트 투입하고 천만 번이라도 투입해서 잊어버리시면 하나님보다 나은 상대의 기준이 영원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239-60)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생의 논리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해서 영생의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영생의 논리가 그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다 보면 점점점 더 큰 사랑의 상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생의 논리가 이루어집니다.
참사랑이란 것이 무엇이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는 어떤 부모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부모입니다. “내가 대학에 보냈으니까, 내가 늙으면 봉양해야 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해 가지고 그것을 수첩에 기록해서 계산서를 미리 준비하는 부모는 거짓부모입니다. 그런 부모는 이상적인 효자를 대할 수 없습니다.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국자는 뭐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논밭을 다 팔고 생명만 남았어도 그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뼈다귀까지 팔아서라도 나라를 위해서 또 투입하고 싶은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래요?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식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형제 중의 참형제는 어떤 형제냐? 하나님이 하는 것과 같이 닮아 가려고 하는 형제입니다. 어떤 남편이 참남편이고, 어떤 아내가 참아내이고, 어떤 아들딸이 참아들딸이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위하고 잊어버리고 또 위하려고 하는 아들딸이 참아들딸입니다. 여기에서 참이 성립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참된 남편과 참된 아내의 정의를 알았지요?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반성해 봐요! 아저씨들, 아주머니들에 대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려 봤어요? 어디 갔다 오면 웃옷을 안 벗겨 준다고 타령하고 무슨 준비를 안 했다고 타령했지요? 아내가 종이에요? 종같이 그래야 되니까 얼마나 불쌍한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있으면 무한한 가치의 상대가 됩니다.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상대인데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어요? 그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원론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알았으니 자기의 부인한테 가서 오늘부터 3년 동안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들어오자마자 인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은 투입하고 절대 작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공기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서 최저의 저기압이 되면 최고의 고기압이 생깁니다. 그러면 고기압이 저기압권을 찾아가요, 저기압이 고기압권을 찾아가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갑니다.
하늘을 대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찾아오시게 되는 것이요, 나라를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나라님이 찾아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그분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위해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239-62)
남자와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철학에서 제일 처음에 문제가 되는 것이 “인간이 무엇이냐?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세계의 인류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두 사람의 문제만 해결하면 천하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 문제, 사회 문제, 나라 문제, 세계 문제, 영계의 지옥 문제와 천국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내용만 공식에 맞게끔 전부 다 부합되면 모든 것이 궤도를 따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자기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사고입니다.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면 시집을 가지 말아야 됩니다. 또, 남자가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자라는 말은 남자를 선유조건으로 하는 것입니다. 또, 남자라는 말도 여자를 선유조건으로 인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해가 안 되거든 이렇게 생각해 보라구요. “바른쪽이다” 하게 될 때는 왼쪽을 먼저 인정하고 하는 말이지요? 위라고 하는 것은 아래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앞이라는 말은 뒤를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거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남자라는 말은 여자를 두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라는 말도 남자를 두고 하는 것이지 여자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남자들은 어때요? 남자들, 자기가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시간이 일년에 몇 시간이나 돼요? 남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시간이 일년에 몇 시간이 되는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을 생각하면 부끄럽지요?
여자들에게 물어 볼게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사는 시간이 일년에 몇 시간이나 돼요? 365일 다 그래야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되느냐? 싸움을 하겠어요? 싸움을 하라고 붙여 줘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론적인 근거가 그렇습니다. 천리와 배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하니까 문제가 벌어지고, 파괴가 벌어지고, 고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하나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되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시집 장가를 갑니다. 하나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됩니다. 사랑의 결합처가 어디라구요? 여러분이 결혼생활을 하는 목적이 그것 아니에요? 결합처가 뭐예요? 남자는 여자의 것을 차지해야 되고, 여자는 남자의 것을 차지해야 됩니다. 여자의 모든 것은 남자가 주인입니다.
남자들, 바람을 많이 피웠지요? 그게 자기 것이 아닙니다. 철칙입니다. 이게 문 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여기에 위배되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거 좋아요, 나빠요? 청년들은 어때요? 남자 여자가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면 좋아요, 나빠요? 좋지요?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1대 선조로부터 만고의 후손들까지 변함이 없는 답이요, 공식입니다. 인간은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철학으로 보면 칸셉(concept;개념)과 실재의 문제가 있는데 칸셉이 먼저냐, 실재가 먼저냐 할 때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사랑이 칸셉이에요, 실재예요? 사랑이 보여요?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사랑을 봤어요? 이것은 칸셉입니다. 실재는 뭐냐? 둘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무엇에 의해서 하나되느냐? 사랑에 의해서 하나됩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라는 관념이 먼저예요, 실재가 먼저예요? 사랑 때문에 사람이 생겨났어요, 사람 때문에 사랑이 생겨났어요? 사랑 때문에 남녀가 생겨났지요? 칸셉과 실재의 문제는 생활철학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인간 자체에 있어서 칸셉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부터 남자 여자가 생겨났다는 논리를 세워야지 남자 여자 때문에 사랑이 생겨났다는 그런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239-64)
우주 존속의 기원
그러면 여기서 진화론이 문제입니다. 칸셉이 먼저냐, 실재가 먼저냐? 보라구요! 이 세상천지를 바라보게 될 때 전부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 세계에는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이 있고, 식물 세계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고, 동물 세계에는 수놈과 암놈이 있고, 인간 세계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어서 전부 다 쌍쌍입니다. 그것은 뭐냐?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전부 그렇다는 것입니다. 곤충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뜰에 있는 잔디를 들춰보면 요만한 곤충도 전부 다 쌍쌍입니다. 요즘에는 세균도 쌍쌍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메바와 세균을 볼 때 아메바가 먼저냐, 세균이 먼저냐가 문제입니다. 사랑이 먼저냐, 개념이 먼저냐 할 때 사랑이 나중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진화론을 인정한다면 아메바부터 사람까지 수천 단계를 넘어와야 됩니다. 아메바에는 상대가 없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대응적인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존속을 못 합니다. 전기도 양극이 있으면, 반드시 상대적인 대응극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아메바가 생겨나기 전에 수놈 암놈의 개념이 먼저 있었겠어요, 아메바가 먼저 있었겠어요? 답변해 봐요! 수놈 암놈의 개념이 진화가 출발된 아메바보다 먼저였어요, 나중이었어요? 어떤 거예요? 그것을 나중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주 존속의 기원은 수놈 암놈의 개념인데, 여기서부터 연결되어 가지고 세균과 같은 소존재로부터 확대되어 아메바가 되었다고 하면 아메바는 중간 존재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의 개념 가운데 사랑이 제3자 플러스를 용허하느냐? 제4자 마이너스를 용허하느냐? 절대로 용허하지 않습니다. 시집 장가를 가서 첫날밤에 “엄마, 우리 방에 들어와서 같이 자요” 하는 여자가 있어요?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해서 결혼 첫날밤에 “아버지, 우리 방에 같이 있어요” 하는 아들이 있어요?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아버지도 미친 사람이고, 어머니도 미친 사람이고, 아들딸도 미친 녀석들입니다. 사랑이란 단 둘이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플러스와 플러스끼리는 반발하고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끼리는 반발한다는 논리가 전기원론입니다. 흐린 날 번개가 칠 때 수억 볼트의 전기가 나타나는데 그게 한꺼번에 확 나타나겠어요, 하나 하나 합쳐져서 나타나겠어요? 답변해 봐요! 이런 근본문제부터 전부 다 정리해 놓아야 됩니다. 우주의 존속은 하나가 있고 난 후에 둘이 있게 되고, 둘이 있고 난 후에 셋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의 출발을 못 하는 것입니다. (239-66)
사랑은 제3자의 개입을 원치 않는다
플러스도 플러스끼리 합하고, 마이너스도 마이너스하고 합합니다. 그렇게 합한다는 논리를 들어 보라구요! 우주의 원칙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상대를 결정할 때는 천운이 보호합니다. 상대가 될 때는 누가 건드리지 못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합해져 있는데, 여기에 제3의 플러스가 오면 마이너스가 이리 붙는 게 침해받기 때문에 반작용으로 추방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대가 결정되고 나면 우주력과 천운이 보호하기 때문에 거기에 제3자가 들어오는 것은 파괴적인 작용이니까 반작용이 일어납니다. 대응관계, 작용과 반작용의 논리가 여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반작용은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총각이 장가가기 전에는 총각들끼리 합해요, 반발해요? 플러스 플러스끼리 합합니다. 총각들끼리 송아지새끼들같이 동네를 휩쓸고 다닙니다. 장가가기 전에 총각들끼리 합해요, 나누어져요? 합합니다. 여자들은 어때요? 합하는 것은 같은 논리입니다. 그러나 처녀 총각이 플러스 마이너스로 딱 하나되어 있는데, 다른 플러스나 마이너스가 오면 반발합니다. 자기의 친구들 가운데 자기보다 미남인 친구가 처녀 총각이 둘만 있는 자리에 끼여든다고 할 때는 어때요? 왜 왔느냐고 하면서 쳐 버린다구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종의 기원은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서 결속되어 태어납니다. 제3자는 불가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억천만의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입니다. 풀잎을 보면 다 같지요? 풀잎의 뼈다귀를 보면 전부 다 같습니다. 그렇다고 종자가 전부 다 같아요? 줄기와 잎사귀가 다 같습니다. 잎사귀가 크고 작을 뿐이지 모양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한 종류예요?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사람의 뼈다귀가 비슷하다고 해서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미친 녀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처리해 놓아야 됩니다.
사랑은 제3자의 개입을 원치 않습니다. 그거 원하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자기 여편네를 누가 빼앗아가도 좋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진화론을 해결해야 됩니다. 진화론이 문제입니다. 진화론의 칸셉과 실재는 공산주의가 문제로 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요, 양심이 보여요, 사랑이 보여요?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은 이것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 가지 귀중한 것이 하나님, 양심, 사랑입니다. 양심이 있는 것은 다 알지요? 양심이 없다는 사람 있어요? 사랑이 없다는 사람 있어요? 그러나 눈에는 안 보입니다. 안 보이니까 어떻게 해요? 어디나 들어갈 수 있고, 어디나 하나될 수 있습니다. 보이면 들어갈 수 있어요? 보이지 않으니까 세포 속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만은 그 누가 제지하지 못합니다. 참사랑은 우주가 제지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하셨느냐? 하나님은 외로운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생각했느냐 하면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하셨느냐? 아들딸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에게 상대가 필요하고 아들딸이 필요하지요? 누구를 닮아서 그래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이 다 있더라도 사랑의 상대가 없으면 외로우신 것입니다. 사랑의 아들딸이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최고의 가치를 가진 상대로 지어진 것이 아담 해와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을 지으셨다구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습니다. 논리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생각하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내 아들은 이래야 되겠다. 내 딸은 이래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창조하면서 “내 아들은 완성하면 이래야 된다. 내 딸은 완성하면 이래야 한다”는 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하기 시작하셨다는 논리는 타당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아들딸이 그래야 된다는 기준이 있었고 그 아들딸이 커서 싸우면 안되겠으니까 형제가 되어 가지고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관, 하나님의 마음속에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인 형제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시조는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을 대하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은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아들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고, 딸의 자리도 하나밖에 없고, 형제의 자리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형제의 사랑을 지녀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아들의 사랑에 형제의 사랑을 플러스해서 더 커 올라가는 것입니다. (239-68)
인간의 욕망은 중심의 자리를 찾아간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나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남자는 남자의 갈 길을 가고, 여자는 여자의 갈 길을 가야 됩니다. 아들로서 완성될 길을 가야 되고, 딸로서 완성될 길을 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남매로서 완성될 길을 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로서 완성될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느냐? 이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평균화된 것입니다. 이상의 자리는 중심자리입니다. 백 사람이 있으면 백 사람이 바라는 이상형이 중심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중심 된 존재가 되려고 하지요? 또, 위에 있으려고 합니다. 위에 있다고 할 때, 그 위는 중심을 연장한 종적인 위를 말합니다. 밑창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중심자리를 찾아 나가는데, 그 중심자리는 어디냐? 그 중심자리는 우(右)에서 연장한 최고의 자리요, 좌(左)를 연장한 최고의 자리입니다. 전(前)과 후(後)가 같고, 이 좌(左)와 우(右)가 같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는 이 한 점밖에 없습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이상적으로 보시는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라는 것은 두 자리에서 만나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래야 이론이 맞습니다. 그것까지 다시 찾아야 됩니다. 사랑의 상대를 찾아 나가기 위한 길을 하나님이 창조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어때야 된다는 하나님의 칸셉이 있습니다. 아들딸은 어때야 되고, 형제는 어때야 되고, 신랑 신부는 어때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는 어때야 된다는 입장이 전부 다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태가 자라는 기준을 맞춰 가지고 서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아들이 내려오면 이렇게 내려와서 맨 나중에 여기에 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여기도 올라가서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완성되었다고 할 때, 하나님이 아들은 어때야 된다고 마음으로 바라셨던 아들에 대한 구상과 소망은 어디에 와서 하나되느냐? 성숙한 남자 앞에 다 모입니다. 여기는 자녀로부터 플러스 형제, 플러스 부부, 플러스 부모가 될 수 있는 모든 소성이 열매 맺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상대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완성되었다고 할 때는 내적인 아들로서 완성되고 외적인 아들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결실적인 존재가 성숙한 남녀입니다. 여기에는 아들딸이 들어가고, 형제가 들어가고, 부부가 들어가고, 미래의 부모를 중심삼은 어머니 아버지가 들어갑니다.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출발했으니까 어머니 아버지로 돌아갈 수 있는 기준을 따라서 전부 다 결실됩니다.
여기에 온 남자들이 학박사라고 하지만, 그 학박사가 무슨 소용이냐 이거예요. 권력을 가지면 뭘 하고, 돈을 가지면 뭘 해요? 사랑이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사병이 난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 사람에게 돈이 필요해요, 지식이 필요해요, 권력이 필요해요?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상사병은 사랑하는 사람의 침이라도 갖다 먹이고 오줌이라도 갖다 먹이면 낫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모든 것을 가졌어도 사랑이 없으면 외롭습니다. 안팎의 내용은 갖추었어도 하나님과 똑같이 외로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239-70)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당시의 기원
처녀 총각이 커서 시집 장가를 안 가면 죄입니다. 천리의 대도를 위반하는 범죄자입니다. 미국에서는 호모섹슈얼이니 레즈비언이니 해 가지고 남자끼리 살고 여자끼리 사는데, 그게 천지에 맞는 일이에요? 여자의 생리기관이 남자 때문에 생긴 것인데 자기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그것의 주인은 여자입니다. 부인이 안내해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자기가 들어가는 것은 천도를 어기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을 엇바꿔서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키(key)를 다른 주인이 갖고 있게 하셨습니다. 사고가 안 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해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문 총재의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게 맞으면 그렇게 살아야 되겠어요, 그렇게 살지 말아야 되겠어요?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오늘부터 그렇게 살 거예요? “아! 문총재가 이런 얘기를 하는데, 듣고 보니 사실이 그렇구나” 하면서 깨닫고 “오늘부터라도 문 총재의 가르침대로 살아 가지고 내 아내와 아들딸도 전부 다 교육받게끔 약속하겠소” 할 수 있어요, 없어요? 그것은 자유입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주인의 대접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약탈자입니다. 도둑이 뭐예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쓰는 게 도둑놈입니다. 경고합니다. 이 말을 듣고 천년 만년 일족이 그대로 살게 될 때, 그 족속은 천하를 치리하는 왕족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축복해 가지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가슴이 누구의 것이에요? 여자의 것이에요? 아기의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궁둥이가 누구 때문에 커요? 자기 때문에 큰 거예요? 아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몸은 아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남편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아기를 품는다는 것, 아기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를 중심삼고 상대적인 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대이상을 어디에 맞추느냐? 제일 이상의 자리에 맞추어야 되는데, 이것이 종적인 기준 앞에 횡적인 기준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먼저 서고, 형제가 서고, 자녀가 서고, 부부가 서고, 부모가 서서 여기까지 오게 됩니다. 그것이 자녀 완성의 실체입니다.
그 다음이 형제 완성의 실체입니다. 이게 한 점입니다. 그 다음이 부부 완성의 실체의 자리이고, 여기에서 올라온 곳이 부모 완성의 기준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딸 완성의 실체에서 형제 완성의 실체가 되고, 그 다음에 부부 완성의 실체가 되고, 부모 완성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되면 이것이 내려옴으로 말미암아 이것도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이것도 여기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적으로 전부 다 통하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여기로 올라갔으니까 자녀의 기준, 형제의 기준, 부부의 기준, 부모의 기준이 되어 영육이 완성한 실체로 확 폭발되는 것입니다. 그게 참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90각도는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당시의 기원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영육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9-72)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을 완성한 자리
이렇게 되고 보니까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생각하셨던 모든 것이 영과 육의 합일체로서 나타났다 이겁니다. 그렇게 해서 영적으로 보나 육적으로 보나 하나님이 이상으로 구상하셨던 본체, 대상적인 실체가 완결되었습니다. 그 말은 뭐냐? 이것은 하나님을 대신한 완전한 사랑의 주체 앞에 대상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하나님같이 제2창조를 할 수 있는 창조주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분 앞에 주어지는 것이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이 얼마나 귀한지 알겠어요? 아들딸을 내세우고 갈 때는 천하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모시고 가는 데 있어서도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알고 보니까 이게 천리요, 우주의 근본입니다.
하나된 자리에서는 할머니의 집에 손자며느리가 들어가도 무사통과되고, 아버지의 집에 며느리가 들어가도 무사통과됩니다. 다 같다는 것입니다. 막히는 게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집에 가도 막히는 게 없이 다 무사통과입니다. 다 내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하나되면, 그렇게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가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기반이 가정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는 종적인 관계였습니다. 종적으로 1대와 2대였습니다. 그런데 3대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3대를 세우려다가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남편과 아내, 아들딸을 중심삼고 완성된 가정이 지상의 표본이 됩니다. 이 점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판도를 가진 지상 위의 왕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천국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담의 자리는 여기에 내려오지요? 하나님의 자리는 조상이니까 첫번의 자리에 오는 것이고, 그 아들은 세 번째의 자리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하여 하나된 것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은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을 완성한 자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왕권이고, 이것이 지상의 왕권입니다. 아담 해와는 지상의 왕이요, 왕후였습니다. 이 두 세계를 이어받아서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종횡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후손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은 지금까지 비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사탄이 점령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을 사탄이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망치고, 지상나라를 망치고, 미래세계를 망쳐서 3세계의 왕권을 망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으로 돌아가려면 4대 심정권의 완성실체가 되어 가지고 3대 왕권을 가진 사랑의 왕자 왕녀의 기준에서 황족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원형이정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이것을 표준한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의 낙제꽝, 형제의 낙제꽝, 부부의 낙제꽝, 부모의 낙제꽝들에게는 왕권이 없고 나라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하늘나라를 잃어버렸고 땅 위의 조국을 잃어버렸습니다. 미래의 왕권이 없이 악마의 소굴에서 사라지던 포로병들이었습니다. 고아들이었습니다. 고아를 위로하려면 부모가 필요하고, 포로병을 해방하려면 선한 나랏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와 구세주의 이념입니다.
이것을 확대한 것이 나라입니다. 나랏님은 세계를 위해서 이와 같은 개념을 세워야 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하나님의 구상 가운데 결실된 그 나라의 대표이기 때문에 모든 가정들의 왕 같은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 사모님은 그의 상대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부부는 4대 심정의 왕국 위에 3대 왕권을 우주 가운데 수립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은 그냥 그대로 천국과 통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이 생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 타락하지 않은 가치를 찾아서 이 땅 위에 태어난 우리 몸에서부터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안 받으면 안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지 않으면 참부모의 가정과 구세의 이념을 중심삼고 천지의 자유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축복이 필요합니다. (239-74)
황족의 사랑을 지니고 가야 할 조국이 천국
여러분! 축복을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이런 가정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알고 보니까 기가 찹니다. 영계로부터 죽을 고비를 다 해서 찾아보니 내 밑창에 딱 깔고 앉아 있더라구요!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심은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고 물어 보면, “왕이 되면 좋겠다” 하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무엇이 되면 좋아요? 왕이 되고 왕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그것은 만국의 공통적인 답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봐도 왕이 되고 왕후가 싶다고 하고, 손자들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봐도 왕자와 왕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원래가 그렇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달성할 수 없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을 달성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길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문 총재가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까딱없이 지금까지 지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은 처음 듣지요? 4대 심정권과 3대 왕권을 복귀해 가지고 황족의 사랑을 지니고 가야 할 조국이 천국입니다. 죽어 보라구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여기에 다 걸립니다.
그때 가서 “문 총재의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지 말고 빨리 결정해 가지고 축복을 받아요! 그것이 제일 빠른 해결방법입니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세계의 모든 문제, 하늘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탄은 존재세계에서 추방당하고 죄악도 전부 다 없어집니다. 이런 가정윤리를 중심삼고 학교나 사회나 행정부처나 어디나 할 것 없이 살아야 됩니다. 행정부처의 책임자들은 부부의 대신이요, 어머니 아버지의 대신입니다.
남자 여자가 화합해 가지고 하늘나라의 잃어버린 가정을 찾아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할아버지를 하나님의 대신으로 모셔야 됩니다.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는 50억 인류의 가정을 중심삼은 왕입니다. 그 아들딸은 미래의 왕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천세 만세에 그 도리를 남기고 가는 세계가 지상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는 가정을 편성하기 바랍니다. 이런 것이 남북통일을 통하여 세계 만민을 해방할 수 있는 기원이 되니까 만국 해방과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전진할지어다, 아멘! (23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