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부지의 내가 태어났지.
이름은 오렌지, 녹색 외투를 입은 알맹이.
그린란드 산(産)이며
무서운 것들의 자식이지.
그 자리에서 섭취되어야 하지만
배를 오래 타서 상하기 십상이지.
머리에 백색 화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지.
전자레인지, 믹서, 세탁기
도는 것들이 내 친구들로 정해졌지.
그들은 미용업에 종사하지.
업주는 내 애인이지.
업자들은 내 애인을 둥글고 푸른 기계라 부르지.
그는 정말 잘 돌지. 나에 관한 한
파마에 관한 한 누구보다 오랜 경험과 독특한 기술을 가졌지.
교제가 시작되면
전기 지짐 냄새와 함께
친구들의 기계적인 기능이 나를 가꾸기 시작하지.
내 친구들의 공통점은 내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지.
돌고 싶은데 돌려주지 않는 것.
나 몰라라 자기들끼리 돌아가는 것.
전자레인지 밖에서 나는 썩은 돼지고기가 되지.
믹서 밖에서 나는 딱딱한 육즙이 되지.
세탁기 밖에서 나는 찢어진 걸레가 되지.
업자들은 나를 애인에게 데려다 주지.
업주는 말하지.
이만하면 버려도 되겠군.
나는 내 애인을 한 번밖에 못 보지.
결코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 것.
모두 내 애인이지.
둥글고 푸른 기계 위를 둥글고 푸른 기계들이 돌아다니지.
미용은 짜고 가꾸는 전기 고문이지.
내 성격이 꼬불꼬불해지지.
무서운 것들이 나의 외투를 벗기지.
그들은 내게 말하지.
아름다운 곳에선 살 수 없어.
어서 아름답지 않은 곳으로 가지 못해!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지.
나는 상한 알몸으로 제자리에서 돌지.
백색 화관이 백색 화관으로 변하지.
내 마음의 위도는 만성의 현기증이지.
돌아도 도는 게 아니지.
내 표피는 금세 녹색의 외투로 변하지.
그들은 무섭게 도는 파마 전문가지.
생면부지의 나를 만들지.
이름은 오렌지. 녹색 외투를 입은 알맹이.
누구든 나를 알아보지.
나는 애인이 많지.
나를 안아주는 대신
그들은 내 성격의 특허를 얻지.
- 『나는 맛있다』(랜덤하우스 刊) 1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