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강남 영풍문고에서 있었던 이해인 수녀님의 사인회에 다녀온 후기를 쓴다는 게 이렇게 늦어 버렸습니다.
밤비 형아가 급한 숙제가 있다고 컴퓨터를 독점하고 앉았거든요(물론 그러고서도 축구 보러 나오고 뭐 먹으러 나오고, 그 얌체같은 짓은 다 했지만... 규탄한다!!).그래서인지 수녀님께서 먼저 반가웠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셨군요.
야옹이 언니랑 12시에 만나 취화선을 보았어요.과연 거장다운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이었지요. 그 곳에 등장하는 그림들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 그 배경이 되는 풍광들은 어떠했겠어요.예상과 달리 지루하지도 않고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도 많았어요.이건 나중 얘긴데 수녀님을 만나 영화를 좋아하시나고 묻자 집으로를 최근에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덧붙여 어제 지인들과 취화선을 보러 가셨는데 "수녀가 보기엔 너무 야하더군"하시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셨어요.^^
그리고 파스타와 그라탕으로 점심을 먹고 내려가 보니 긴 줄이 사인회장 앞에 서 있고 해인 수녀님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책을 사서 들추어 보며 차례를 기다리는데 줄은 줄어들 생각을 않고, 앞에 가서 보고 오신 밤비 엄마의 얘기에 따르면 사인을 하실 때 마다 하나하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시고 스티커를 붙여 주시고 누가 재촉을 해도 "왜 그러세요. 내 맘대로 할거야"하시며 공을 들이신다는 거예요. 야옹이 언니와 저는 우리를 과연 알아 보실까 조마조마 하며 기다리는데 마침내 우리 차례! "밤비 누나 김병희"라고 적은 종이를 내밀자 마자 "아! 밤비 누나!"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잡으셨어요. 저희가 세 명 밖에 못왔다고 미안해 했지만 수녀님은 연신 반가워 하시며 gochon 이모 안부며 미즈님은 안 오셨나 하며 이름을 줄줄 외셨어요. 게다가 가방을 꺼내어 뭐 더 줄게 없나 찾으시며 챙기시는 통에 다른 사람들의 시샘에 어린 눈총^^;을 받기도 했지요. 야옹이 언니랑 수녀님과 사진을 찍고 물러 났는데요 그냥 가기가 아쉬워 백화점에서 맛있는 조각 케익을 사서 사인회가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뒷풀이 자리가 조그만 커피숍에서 있었는데 책을 출판한 샘터 사장님과 직원들, 민들레의 영토라는 카페 회원님들 그리고 수녀님 친구분이 참석하셨어요. 마침 다가오는 7일이 수녀님 생신이라고 해서 생일 파티를 해 드리는 자리가 되었답니다. 하얗고 커다란 너무나 예쁜 케익에 촛불 3개를 켜고 수녀님 영육간의 건강을 기원했어요.
그리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수녀님은 보기보다 터프하시던 걸요.^^("나도 예전엔 안 그랬는데 그러지 않으면 이 험한 세상 못 해쳐나가"하시더군요) 수녀님을 책에서만 뵙다가 실제로 뵈니 생각보다 참 가까이 느껴졌고 소탈하신 성품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을 챙기시는 마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시는 순명의 자세,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볼 수 있었답니다.
집에 와서는 새 책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을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수녀님과 가까워져서 그런지 책 내용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진짜 뭉클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그 세심함에 감탄하게도 됩니다. 여리신 듯해도 심지가 있고 때로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준엄한 충고를 주십니다.
수녀님을 만나고 나서 마음이 한결 맑아지고 깨끗한 물에 헹구어진 느낌입니다(이 표현은 어린 시절 수녀님 시 속에서 발견하고 좋아했던 겁니다).장황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평생을 한결같이 꽃처럼 흰구름처럼 바다처럼 살아오신 분을 마주한 감동을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 같아요.
때로 수녀님의 글을 읽으면 나와 다른 세상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살고 있다는 이질감이 확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 이질감을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지 않고 냉담하게 등돌릴 때가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많이 감화되었다고 할까요? 제 냉소적 태도와 냉담한 마음의 문을 촉촉히 적시는 글과 말씀...
헤~ 점점 쓰기가 힘들어 지는군요.
아뭏든 해인 수녀님, 뵙게 되어 너무 행복했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