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寺 : 분산 중턱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가락국 건국(42년) 6년 뒤인 48년 허황옥의 오빠 보옥 장유화상이
파사탑과 불서, 차를 갖고 왔다는 기록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 아도보다 324년 먼저 불교가 왔다. 충열왕이 여기와 차나무를 보고 장군차로 명했고, 영의정을 지낸 하륜이 지은 금강사 불훼루기에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 중기에 중수했다고 했으며, 조선중기 대학자 서거정은 옛조상 능은 깊어 적적하고/ 장군차 나무 늙어 풀들이 무성하다/ 가야의 옛날 문물 남아 있네/ 푱요히 절 주인의 염불소리 은은하다/는 시를 남겼다
돌아본 분산성
구지봉
구산동 백운대 고분 : 4기가 확인되고 발굴된 2기는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식분)으로 둘레석, 부장석곽, 딸린무덤 을 갖추고 있으며, 처음 시신을 넣은 뒤 2회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어졌다. 무덤에서는 금동제 장식품을 비롯하여 토기, 철기 등 유물이 촐토되었다. 6세기 말 가야왕족 또는 신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