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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설립 90주년을 맞이하여 선교 및 묵주기도 바치기 * 예비자 1인 1명 인도하기 (목표 : 90명 이상) * 묵주기도 90만단 바치기
◐ 견진성사 신청 안내 * 일시 : 2018. 5. 6(주일) 교중미사 * 집전 :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 신청 : 사무실
◐ 초 찾아가십시오. * 제대초 및 미사주 총 182구좌 봉헌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성지가지 회수 안내 * 2월 11일(주일)까지 성당으로 가져다 주시기 바랍니다.
◐ 설 합동위령미사 신청 안내 * 조상들을 위한 미사예물은 사무실로 미리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설 연휴 미사시간 안내
◐ 본당 제 단체 연령별 재정비 * 분류된 연령대에 속하는 분들은 모두 해당 회에 회원으로 자동 소속이 된다.
◐ 대구대교구 생명사랑 장려금 지원 <셋째이상 신자 자녀> * 출산 지원 : 출생일기준 1년이내 신청 * 출산 장려금 : 100만원 * 학자금 지원 : 입학년도 3월 1일 ~ 31일까지 신청 * 학자금 지원금 : 고등학교 입학 100만원, 대학교 입학 200만원 * 문의 및 신청 : 사무실
◐ 미카엘 성경 대학 학생 모집 (내용 : 현수막 참조)
◐ 설 맞이 떡국 떡 주문 및 두부 판매 합니다. * 주문처 : 제대회 010-9501-2552 * 두부 판매(1모 3,000원) : 2,10(토)~11(일) 미사 전,후 | |||||||||||||||||||||||||||||||||||||||||||||
사목표어 “기본에 충실한 신앙으로 기쁨의 삶을 살자.” |
하느님과 트윗 (22) 왜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받았는가?
문 : 그리스도인은 왜 로마인에게 박해를 받았나요. 답 : 로마 황제들은 그리스도인이 늘어나는 것을 위협으로 느꼈으며 자신들을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였다. 그리스도교가 퍼져 나가던 때 로마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늘 편한 것은 아니었다. 64년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 불을 질러 많은 부분을 파괴했다고 비난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황제가 불을 놓았다는 소문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였다.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치세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했다. 몇 년 동안 통치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자 데키우스 황제는 황제의 권한을 확대하고자 했다. 황제와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했고, 수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죽임을 당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의 후계자인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은 범죄이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을 처형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었다. 가장 격렬한 박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때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를 억압하는 여러 칙령을 내렸는데, 교회는 폐쇄됐고, 그리스도교 서적은 압수당했다. 주교들은 고발됐으며 집회는 금지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은 갈레리우스 황제(305~311년)도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을 강하게 억압했다. 하지만 그는 박해가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죽기 직전 다른 전략을 택한다. 311년 4월 30일, 그는 관용령을 발표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과 제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박해에도 교회가 계속 성장했다는 점이다. 하느님이 교회를 인도하시고 성령의 도움으로 교회를 보호하셨기에 교회는 파괴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답 : 콘스탄티누스 황제(306~337년)는 312년 10월 28일 서로마 제국의 패권을 장악한다. 결전에 앞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꿈에서 십자가를 봤는데 그 십자가에는 “이 표시로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자신이 거둔 승리가 그리스도 덕분이었다고 믿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게 됐고, 빼앗겼던 재산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은 거리낌 없이 신앙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수도 많이 증가하였다. 로마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과 예루살렘의 주님 무덤 성당 같은 대성전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계승자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었다.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칙령으로 니케아 공의회가 정한 신경의 진리를 확언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선언으로, 드디어 가톨릭 신앙이 로마 국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갈등으로 로마 제국은 통일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로마 제국은 다시 동과 서로 갈라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제국의 동방과 서방 사이에 차이가 많이 나가됨으로써 교회의 일치가 약화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
◉ 성전을 깨끗이 (토요일 오전에 청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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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우리들의 정성
◉ 전례봉사자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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