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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10
씬1. 낙랑국, 양포나루 최리 있는 곳/왕자실 있는 곳 (낮)
최리와 모하소, 동고비, 배 앞에 서있다.
왕자실, 뒤로 처져 류지·하호개와 이야기를 나눈다.
마조, 최리를 배웅하고 있고.
최리 : 알지(?止)·묵방(?防)·민봉(敏峰)·은포(隱浦) 고구려에 닿은 국경선 네 곳은, 단 일각도 눈을 떼선 안된다.
마조 : 눈꺼풀 한 번 덮지 않고 살피겠습니다.
최리 : 무휼은 칡범 같은 인간이다. 기회다 싶으면 덤벼들어 물고, 상대가 죽기 전엔 결코 박은 이빨을 빼지 않는.
마조 : (자기 목을 만지며) 이 목은 내줘도, 무휼에게 국경선 목책은 내주지 않겠습니다.
최리 : 부탁한다. (마조의 등을 두드려준다)
모하소 : (왕자실을 배에 타라고 부르는) 아우님.
왕자실 : 먼저 타세요. 라희 걱정이 돼서요, 당부 좀 하구요.
최리와 모하소, 동고비, 배에 오르고.
마조를 비롯한 청해헌 군사들, 최리에게 예를 표한다. “다녀오십시오!! 장군!!” 인사한다.
씬2. 동, 왕자실 있는 곳
왕자실, 류지·하호개와 이야기를 나눈다.
부달의 지휘 아래, 군장한 영호장원의 군사들 일사분란하게 배에 오른다.
하호개 : 우리 애들 데리고 저희도 가야 합니다! (영호장원 군사들을 보며) 보세요, 저놈들.
보름달 문어 겨 나오듯, 대가리 디밀고 꾸역꾸역 올라가는 거.
왕자실 : .. (본다)
류지 : 저희가 모실 수 있도록, 마님께서 대장군에게 부탁을..
왕자실 : 그대들이 다 탄대도, 하늘의 뜻이 오라버니에게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
하호개 : 마님!
왕자실 : 하늘을 믿고.. (남편의 뒷모습을 한번 보고) 장군의 운명을 믿어보게.
류지 : .. (본다)
왕자실 : 영호장원을 잘 지켜보게. 내 언니 모양혜는, 그리 쉬운 여자가 아니니.
류지 : 하늘을 믿고, 우리 주군을 믿고, 마님을 또한 믿겠습니다.
왕자실 : ..(잠시 생각하다) 만에 하나, 우리가 살아오지 못한다면..라희를 부탁하네. 그 아일 매시달로 데려가 후일을 도모하게.
류지 : 라희 아가씬, 우리 장군님에 유일한 핏줄. 목숨으로 지키겠습니다.
씬3. 낙랑국, 진양궁 모양혜 있는 방
모양혜, 도찰과 함께 낙랑국 지도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찰 : 최리에 군사 삼천은 이미 (지도에 표시를 하며) 여기, 증지 두 곳. 여기, 탄열현 두 곳. 고구려 쪽 우리 국경에 나가있고.
성안에는 삼백만 있습니다.
모양혜 :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영호장원으로 내려갈 테니. 그대는 여기서, 청해헌 것들을 지켜보다
발소리만 달라져도 뚜드려 잡아야 해.
도찰 : 영호장원을 부탁드립니다.
모양혜 : (일어나려다) 부달 장수에게 내 글은 전했나?
도찰 : 전하긴 했지만.. 왕자실 마님은 폐하에 하나뿐인 누이동생입니다.
모양혜 : (자리에 다시 앉고, 도찰을 빤히 보다) 도찰. 그댄 뭘 위해 죽을 수 있나?
도찰 : (뜬금없지만) 그야.. 자식놈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고.. 폐하를 위해서도.. 신의나 대의도 충분히 죽을 명분이 되고..
모양혜 : 흐흥. (피식- 웃고) 사내란 원래, 있는 척하기 좋아하는 족속이라. 신의.. 대의..
그런 한그릇 밥하고도 못 바꿀 일에도 죽을 수 있지만. 여잔 달라.
도찰 : (본다)
모양혜 : 제 몸으로 낳은 자식. 몸 섞고 사는 남편. 그들을 위해서만 죽을 수 있지.
지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사내보다 독해지는 게야.
도찰 : 무슨 말씀이신지..
모양혜 : 난 알지. 자실이가 어떤 여잔지. 폐하 발끝에 매달려, 최리를 살려 달라 울고·불고,
그이 마음 물렁하게 만들어 놓고, 등에다 비수를 꽂겠지.
도찰 : 마님!
모양혜 : 최리를 없애려면, 반드시 자실이년부터 쳐야 하네.
씬4. 배, 왕굉의 선실 안
부달, 비단조각에 쓰인 모양혜의 편지를 읽고 있다. 편지를 눈 가까이 붙였다·뗐다 하면서.
(인서트) 모양혜의 편지.
紫實不復生而至樂浪之地 陛下不覺 不至東牟縣 必殺之 沈海之 刺之 汝自選之 不愍紫實
古則夫達將帥衛護 英豪莊園之女 今則崔理之婦 生之則陛下之負
부달 : 왜 이리 모르는 글자가 많아졌나.. 전쟁터 다니느라 다 까먹어 그런가.
문 열리고, 왕굉 들어와 그 모습을 본다.
왕굉 : 칼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안 쓰고 놀리면 녹 쓰는게 당연하지. 줘 봐. 내, 읽어줄테니.
부달 : (잠시 당황하고) 폐하께선 뭐 저 보다 실력이 낫습니까?
왕굉 : (짐짓, 버럭) 이놈아, 너 보다야 낫지! (웃으며, 손 내민다) 인 내봐.
부달 : (꾸겨서 주머니에 넣고, 일어난다)
왕굉 : 뭐길래?
부달 : 부퉁이가 낙양 가면 지 선물 사오라고 쭈욱- 적은 거예요. 아들놈이란게 계집애처럼 웬 선물타령인지.
왕굉 : 그게 다 자식 키우는 재미지.
부달 : 최리 동탤 살피고 오겠습니다. (문 쪽으로)
씬5. 망망대해
최리와 왕굉을 실은 배가 떠가고 있다.
씬6. 배, 일각
왕자실, 갑판에 서서 생각에 잠긴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부달, 한쪽에 서서 그런 왕자실을 본다. 부달,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다시 한 번 한눈에 훑어보고, 왕자실에게 시선 준다.
(모양혜의 소리) : 두 번 다시, 자실이가 살아서 낙랑땅을 밟아선 안될 것이야.
부달, 주위를 살펴보다 왕자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왕자실 : (인기척에 돌아본다)
부달 : .. (긴장한 표정으로 왕자실을 바라본다)
왕자실 : ..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며, 미소 짓는다) 바람 쐬러 나왔는가?
부달 : .. 예..
(모양혜의 소리) : 폐하께서 눈치 채지 못하게, 동모현 도착하기 전에 해결하게. 바다에 밀어 넣든. 칼을 쓰든.
왕자실 : ..
부달, 왕자실에게로 한걸음 더 다가온다.
왕자실, 살피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왕자실,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잡는.
왕자실 : 뱃멀미가 나네. 큰 배라 괜찮을 줄 알았더니.. (화사하게 웃으며) 그러고 보니 혼인 전에,
가끔 부달 그대가 날 배에 태워주곤 했는데. (웃는)
부달 : (자기도 모르게) 그때가 좋았죠~ 아가씨 얼굴 한번 볼라고, 열구현 사내놈들이 나루터까지 쭈욱- 따라붙어서
저한테 쥐어 터지곤 했는데.
왕자실 : 호호~ 그랬던 것 같기도 해. (웃지만, 긴장하는)
부달 : 진짜 그때 마님 끝내주셨죠~ 상사병 나서 죽겠다고, 마차 앞에 들눕는 놈이 없나~ 흐흐~ (웃다가 문득)
(모양혜의 소리) : 마음 약해져서는 안되네. 예전에는 부달 장수가 모시던 영호장원의 귀한 아가씨였으나,
지금은 최리에 부인일 뿐. 살려두면 폐하께 짐이 되네.
부달 : .. (표정 굳어지는)
왕자실 : .. (긴장하는) 아~ 그러고 보면, 그대가 자맥질 해 전복 건져다 배 위에서 썰어주곤 했었는데.
언제 또 그런 날이 올까 몰라. (웃는)
부달 : .. 그랬었나요.. (다가간다)
왕자실 : .. (식은땀이 난다)
(치소의 소리) : 마님~ 중부인 마님. 여기 계셨네요~
왕자실, 그 소리에 반색을 하고 “치소야!” 부르며 돌아본다.
부달 : ! (치소를 본다)
치소 : 마님~ 생강편 가져왔어요. (작은 접시에 생강 썰어 말린 것을 가져온다)
왕자실 : (생강을 하나 집어 부달의 입에 넣어주며) 뱃멀미엔 생강이 좋다는군. 하나 씹어두게. (치소에게) 가자.
왕자실, 재빨리 치소와 함께 갑판을 벗어난다.
부달 : (그 모습 보며, 입에 물려진 생강편을 빼서 보며) 기회가.. 또 오겠지. 동모현까진 뱃길이 머니.
(생강을 다시 입에 넣고 씹는다)
씬7. 배, 일각
왕자실, 식은땀을 비단손수건으로 닦는다.
치소 : 바람끝이 찬데.. 웬, 땀을..
왕자실 : (혼잣말) 짐작 보다 시간이 빠를 것 같구나..
치소 : (못 알아듣고) 예?
왕자실 : 서둘러 차를 달여야겠다.
씬8. 배, 왕자실의 선실 안
치소, 숯불화로에 주전자를 얹어 물을 끓이고 있다. 옆의 나무통에 물이 담겨져 있다. 나무바가지도 떠 있고.
치소 : 불낸다고, 떽떽 거리면서 숯불을 안줄라 그러는 거 있죠. 우리 주인 나으리 알길 그지 발싸개루 아는지..체! 아니꼬워서..
왕자실, 주전자 뚜껑을 열고 차 잎을 한 움큼 넣는다.
치소 : 왜 그리 많이 넣으세요? 써서, 어떻게 드실라구요.
왕자실 : 차가 아니라, 약이다. 약이 입에 쓴 건 당연한 일.
왕자실, 긴장한 얼굴로 차주전자를 화로에서 내린다.
씬9. 배, 모하소의 선실 안
최리와 모하소, 다탁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리 : (놀라) 자명이가!! 우리 딸이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
모하소 : 뱃사람들이 봤답니다. 삿갓배가 작은바우섬 지나는걸..
최리 : 그래서 날 따라 나선게군.
모하소 : 동고비가 알아보니, 동모현·요동군·신소도국으로 물길이 닿는다고.
최리 : (망설이다가) 작은바우섬까진 이백리길이지만.. 거기서 동모현까진 팔백리 길이 넘는다. 겨울에, 갓난쟁이가 가긴..
모하소 : 여보.
최리 : 당신이 또다시 아파할까봐..
모하소 : 희망 없이 사는 것 보단, 아픈게 낫습니다. 몸을 살리는 건 밥인지 모르지만, 사람에 마음을 살게 하는 건 희망입니다.
최리 : ..
모하소 : 기쁘지 않으십니까? 자명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최리 : 잊고 살았다, 그동안. (모하소의 손을 잡고) 미안하구나..
모하소 : .. (섭섭하지만) 잊으실 만큼.. 긴 세월이지요.
씬10. 동, 모하소의 선실 앞
왕자실과, 소반에 찻주전자와 잔을 들고 걸어오는 치소.
씬11. 배, 모하소의 선실 안/선실 앞
최리 : 아비에 정과 어미에 정이 달라 그런 게지. (모하소를 보며) 자명일 찾아주마.
왕자실 : ..? (자명이라는 소릴 들은 것 같다. 멈춰 서서 귀 기울이는)
(최리의 소리) : 약속하마.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자명일 찾아 모하소 네 품에 돌려주마.
왕자실 : !!
최리 : 그렇지! 내 딸에게 고래 잡는 법을 가르쳐야겠군.
모하소 : (살짝- 흘기며) 계집아입니다.
최리 : 계집아이면 어떤가. 다음대 월해청원에 주인인 것을.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내 아버님. 내가 하는 가업을 자명이가 잇는 게 당연하지.
왕자실 : !
모하소 : 우리에겐 라희가 있어요. 라희가 첫짼데.. 가업이야 데릴사윌 들여 라희가 잇게 해야죠.
최리 : 첫부인에 소생이 가업을 잇는 걸세.
왕자실 : .. (눈꼬리가 파르르-떨린다)
(동고비의 소리) : 중부인 마님. 예서 뭘 하시옵니까?
왕자실, 돌아보면. 동고비가 양의 위(胃)로 만든 탕파(湯婆/일종의 유담뽀)를 들고 서있다.
치소 : 우리 마님이 귀한 차를 끓이셔서. 대부인 마님이랑 함께 드시려고..
동고비 : ..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왕자실을 본다)
왕자실 : 문이나 열어라.
씬12. 배, 모하소의 선실 안
왕자실,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고. (모하소의 것은 안따른다)
동고비, 탕파를 양털수건으로 감싸 모하소의 무릎에 놓아주며.
동고비 : 해 지믄 아직 많이 추운데.. 마님 방에 들일 꺼래두, 투석간 밖으룬 화롤 못 내준대요..
모하소 : (탕파를 만지며) 됐다, 이걸로. 불조심 해야지.
왕자실 : 흥.. 그게 불하고 무슨 상관이게요. 권력을 누가 쥔 줄 아니, 아부를 하느라 그런게지요.
모하소 : 아부는 무슨.. 화로 하나 가지고, 아우님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군.
왕자실 : 아부가 별건가요? 어디 줄서야 되나 눈치 봐서, 그 밑에 엎드리는게 아부지.
이젠 배 밑창서 숯불 피우는 것들까지도 오라버니한테 줄을 서는군요.
모하소 : (동고비와 치소를 보다) 나가 있거라.
동고비/치소 : 예, 대부인 마님.
동고비와 치소, 최리에게 절하고 밖으로.
최리 : (왕자실에게) 그리 권력이 좋으면, 자네가 왕노릇 하게.
왕자실 : (찻잔을 최리에게 주며) 라희가 있질 않습니까, 제 대신.
최리 : 권력에 욕심 없다 그토록 말했건만.. (고개를 젓는다)
왕자실 : 그럼 뭐에 욕심이 있나요?
최리 : 적어도 왕위보다는 더 큰 것에 있다.
왕자실 : .. (보다가) 몽정찹니다. 드세요.
최리 : .. (모하소 앞에 잔이 없다. 왕자실을 본다)
왕자실 : 형님까지 마실 필욘 없을 것 같군요.
모하소 : 천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건데.. 당신 드세요.
최리 : 나눠 마시지. (반 마시고, 모하소에게 잔 밀어준다)
왕자실, 어쩔 수 없이 잔을 하나 더 뒤집어, 주전자를 기울여 최리와 모하소에게 각각 한잔씩 따라 준다.
최리 : 좀 쓰군. 됐네.
왕자실 :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귀한 것입니다. 반드시 석 잔은 드셔야 합니다. 누가 압니까? 이 차가 당신을 살릴지. (미소)
최리 : .. (왕자실 눈을 보다, 잔 들어 마신다)
씬13. 동모현, 내빈관(來賓館) 마당
차차숭의 희희낙락 기예단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호곡,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유릉, 대청 위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일품, 천을 감고 반대편에서 천을 잡고 뛰는 자명에게로 달려간다.
일품 : 뛰어!!
자명 : 응!! (힘이 잔뜩 들어간 표정으로 다닥- 거리고 뛰기 시작한다)
일품, 자명의 허리를 안고 하늘로 올라간다.
자명, 일품에게 허리를 안겨 하늘을 나는데, 팔에 감은 천이 흘러내린다.
일품 : 조심해!!
자명 : 괜찮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을 놓친다)
묘리, “으으...” 하며 눈을 가리고.
차차숭과 미추, 아찔한 표정이다.
일품 : 뿌쿠야!!!
일품, 천을 풀고 뛰어내린다.
일품, 그물망에 내려선다. (혹시나 싶어, 안전그물망을 설치해뒀다)
그물망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명. 일품, 자명을 잡는다.
자명 : (웃는) 괜찮다니까.
일품 :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일품, 자명을 허리에 끼고 그물망의 끝을 잡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땅으로 내려선다.
미추 : (소소에게) 준비해.
소소 : 네~ (자명을 보며) 짤릴 줄 알았다~ (혀를 날름 한다)
차차숭 : (호곡에게 다가가서) 대인. 아일 바꾸겠습니다.
호곡 : (본다)
차차숭 : 뿌쿠가 맘에 드시면, 항아리차기나. 칼받기로 돌리죠. 공중곡옌 초짜가 할 수 있는 기예가 아니라서..
호곡 : 그냥 가라.
차차숭 : 이대로라면 오늘 공연은 꽝-입니다요. 낙랑국 대왕마마 앞에서 하는 큰 공연인데, 망쳐서야..
호곡 : (뿌쿠를 보며) 저 멍청한 걸로 그냥 가라 했다.
차차숭 : ..
차차숭, 뒤돌아서 속바지를 내리고 허리춤에 매단 주머니를 꺼낸다.
차차숭, 호곡에게 받은 엄지손톱만한데서 조금 잘라낸 금덩이를 만져보고.. 한숨 쉬고.. 만져보고.. 어쩔 수 없어서 내민다.
차차숭 : 공연준비 땜에 이것저것 사느라 쪼끔 짤라 썼습니다.
호곡 : 내가 줄 때는 (뿌쿠의 머리를 가리키며) 저 계집애, 머리통만했다.
차차숭 : (기겁을 하며) 대인!!!
호곡 : 아닌가.. (차차숭의 머리를 보며) 니 놈 대굴통만 했나.
차차숭 : 하아.. (한숨을 내쉬고) 그물은 치겠습니다. 까딱하믄 애가 죽습니다.
호곡 : 죽고·사는 거야 니들 사정이고. 난 말이다. 땅 짚고 헤엄치라, 귀한 금뎅이 준거 아니다.
하품 나는 재주 부릴 생각 말고 제대로 해. 그물은 없다.
차차숭 : ..
호곡, 일품에게 팔에 천 감고 조금씩 푸는 법을 배우는 자명을 본다.
(인서트) 호곡의 상상
일품과 자명, 천상지희를 한다.
최리와 왕굉, 류지, 하호개, 도찰과 부달 등이 앉아 있다.
호곡, 자명을 향해 기름 먹인 불화살을 쏜다.
자명, 불화살을 맞고 땅으로 떨어진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최리와 왕굉, 불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
호곡, 소리를 지른다.
호곡 : 왕굉!! 최리!! 내 약속하지 않았느냐!! 반드시 살아남아, 너희 두 놈 목을 내 손으로 따주겠다고!!
(현실)
호곡,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호곡 : 흐흐.. (웃기 시작하다,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하하하-
기예를 하던 아이들, 모두 호곡을 바라본다.
차차숭, 불안한 표정으로 그런 호곡을 본다.
씬14. 동, 차차숭 있는 곳
차차숭과 미추, 내빈관 옆 건물로 돌아가서 이야기 나눈다.
멀리 앞마당에 호곡이 보인다.
미추 : .. 이상하네. 뭣 땜에 뿌쿨 못세워 저러지..
차차숭 : 글쎄다.
미추 : 혹시 말야, 혹시.. (잔뜩 찌푸리며 머리 쥐어짜는)
차차숭 : (본다)
미추 : 뿌쿠가 말야. 애기 때, 가슴에 뒤꽂이 꽂구, 죽다 살았잖아. 그거랑 저 다리 션찮은 인간이랑 뭔... 관계있는 거 아닐까?
차차숭 : 찜찜킨 한데... 어떻게 뿌쿠를 알구?
미추 : 아님 납득이 안되잖애. 낙랑국 임금 온다구. 중요한 공연이라면서 뿌득뿌득, 천두 못 푸는 뿌쿨 세우라는게..
차차숭 : .. (인상 쓴 채, 갸웃갸웃)
일품, 자명을 데리고 온다.
일품 : 부르셨어요?
차차숭 : 오늘 공연에 그물은 못친다.
일품 : (깜짝 놀라서) 그럼 뿌쿠 못 올려요!! 그물두 없이 어떻게 앨!
차차숭 : 나두 뿌쿠 올리기 싫거든!
일품 : 단장님!!
자명 : 오빠아. (잡고) 괜찮아, 난.
일품 :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그물이 있을 때랑 없을 때랑, 같은 줄 알아?
아직도 난 그물이 없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단 말이다.
자명 : 어떻게 그럼! 아버지·엄마가 우리 버렸잖아! 굶어 죽잖구, 기예 팔어 밥 먹구 살려믄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손님들이 그물 치는 거 싫어하잖아!
일품 : 소소로 바꿔 주세요.
차차숭 : 바꿀 수 있음 벌써 바꿨지!
자명 : 오빠랑 짝지해. 천상지희 하는 거 내가 하고파 하는 거니까. 다쳐도 원망 안해요, 단장님.
미추 : 그야 지금 맘이지.. 똥투깐 드갈 때, 나올 때가 왜 다른데.. (크게 숨 쉬고) 원망 안하는 건 좋은데.. 조심해, 조심.
자명 : 알았어요~
미추 : 아우.. 왜 이렇게 가슴이 쿵닥쿵닥거리구. (이마를 훔치고) 식은땀이 삐질삐질나는지.
당최 죽겠네, 불안하구... 뭔 일 터지믄 어쩌나..
자명 : (미추의 손을 잡아준다) 잘 할꺼라니까요~ 믿어봐요, 아줌마~ 나 한 번, 응? (활짝-웃는다)
씬15. 배 (밤)
불을 밝힌 배가 칠흑 같은 밤바다를 지나간다.
씬16. 배, 왕자실의 선실 안 (밤)
왕자실, 몽정차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숯불화로 위에, 계속해서 차주전자가 끓는다.
왕자실 : (한 주전자를 전부 큰 사발에 따라 마시고) 더. 더 다오.
치소 : 배 터져요, 마님. 물고기두 아니구. 벌써 세 주전자 째에요.
왕자실 : 내가 죽고 사는게, 여기 달렸다.
치소 : .. (차주전자를 들고 온다)
왕자실 : (받아서 사발에 따르고) 넌 투석간 가서, 내가 미리 실어 놓은 계당주(桂當酒)를 내달라 해라. 오라버니와 마실 거라고.
씬17. 배, 왕굉의 선실 안 (밤)
왕굉과 부달 앉아 있다. 바둑판과 돌이 놓여 있다.
부달 : 이렇게 기석(碁石/바둑알)을 (손으로 쓸어 바닥에 떨어트리면) 떨어트리시면,
이 놈이 뒤에 서있다 바로 (비수를 뽑아) 최리에 목에 박겠습니다.
왕굉 : ..
부달 : 최리를 부를까요?
왕굉 : .. (눈 감고 생각한다)
부달 : 폐하!
왕굉 : (눈 뜨고) 데려오라.
씬18. 배, 모하소의 선실 안 (밤)
최리와 모하소, 부달의 전언을 듣고 있다.
최리 : 그래? 위기(圍碁) 한 판 하자고?
부달 : 예.
최리 : 그러지. (모하소에게) 먼저 자요. 장군이나 나나 맞수라, 지금 두기 시작하면 몇 판이 될지 모르니.
모하소 : 나으리. 잠시만요. (반짇고리에서 비단으로 감싼 보를 꺼내 내민다. 보, 비단수실로 매듭이 지어졌다)
대장군께 전해주세요.
최리 : ? (본다)
모하소 : 지난번 고구려왕이 보낸 면복으로 인해, 마음 상하셨기에. 소첩이 수를 놓아보았는데..
최리 : (미소) 내, 형님께 전해드리지. (받으려는)
부달 : .. (본다)
(플래시) 10부 씬43
(모양혜의 소리) : 반드시 최리를.. 아시죠? 여의치 않으면, 자실이.. 모하소도 함께요.
부달 : 함께 가시죠.
모하소 : (본다)
부달 : 대부인 마님이 정성껏 준비한 것이니, 직접 드리면 더 기뻐하시겠죠.
씬19. 배, 복도 (밤)
최리와 모하소, 부달을 따라 걸어온다.
치소, 계당주 주전자를 들고 오다 본다.
치소, 한 쪽으로 물러나 읍하고.
씬20. 배, 왕자실의 선실 안 (밤)
왕자실, 옷을 갈아입고 있다.
치소, 계당주 주전자를 들고 들어온다.
치소 : 왕굉 대장군께서 우리 주인 나으릴 부르셨나 봐요. (계당주 주전자를 다탁 위에 얹는다)
왕자실 : 이런!! 사방 조용해지는 건시나 되면 부를 줄 알았더니.. 해지자마자, 급하기도 하군.
왕자실, 품에서 백두옹이 담긴 주머니를 꺼내 술주전자 뚜껑을 열고 붓는다.
치소 : (기겁을 한다) 마님!! 백두옹을!! 독을 왜 거따가!!
왕자실 : (입을 틀어막는다, 작고 엄하게) 조용해라!
치소 : .. (입 막힌 채, 고개를 끄덕이는)
왕자실 : (손 떼고) 너는 여기서 꼼짝 말고 있다가 (반짇고리에서 작은 곡식주머니를 꺼내 다탁 위에 던진다)
그걸로 죽을 끓여 오너라.
치소 : (주머니를 열어본다) 이건.. 또 뭔가요, 마님?
왕자실 : 밀 빻은 가루다.
치소 : (킁킁, 냄새 맞아 보다, 조심스럽게 찍어 맛본다) ..
왕자실, 은숟가락을 집어 술을 휘젓는다.
왕자실, 술주전자에서 은숟가락을 꺼내면 색이 까맣게 변해있다.
치소, 두려운 듯 그 모습을 본다.
왕자실 : (뚜껑 닫고) 잊지마라. 술시다. 죽을 쑤워. 묽게, 덩어리 없이 내려와야 한다. 알았느냐?
치소 : .. (넋 나간 듯, 고개를 끄덕인다)
왕자실 : (치소의 어깨를 잡고, 눈 맞추며) 지금부턴 네게 달렸다. 니가 정신을 차리면, 우리 모두 살고.
정신을 못차리면.. 나도, 우리 장군도.. 청해헌 식솔들 모두가 죽는다.
치소 : 마님.. 이 년, 무섭습니다. 너무 너무 무섭습니다..
왕자실 : (손 놓고) 나도 그렇다.
왕자실, 술주전자 손잡이를 든다. (Dis)
씬21. 배, 왕굉의 선실 앞 (밤)
왕자실, 계당주 주전자를 들고 걸어온다.
선실 앞을 부달의 부관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부관1 : (인사하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셨습니다.
왕자실 : 내가 아무나 더냐! 왕굉 대장군의 하나뿐인 여동생. 영호장원에 왕자실이다! 건방진 것. (밀친다)
씬22. 배, 왕굉의 선실 안 (밤)
욍굉과 최리, 모하소, 부달이 있다.
왕굉, 모하소가 선물로 준 흰색 비단 단의(?衣/면복 안에 받쳐 입는 옷. 두루마기 형태)를 보고 있다.
단의에 황금색 비단실로 ‘樂浪之王’ 이라고 수가 놓여 있다.
왕굉 : 멋집니다.
모하소 : 솜씨는 자실아우만 못하지만.. 정성은 담았습니다. (간곡한) 저희는 비록 매시달로 내려가,
폐하에 치세 아래 살 복이 없으나, 분명코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왕이 되시리라 믿사옵니다.
왕굉 : (진심으로 감동한) 고맙소..
최리 : (왕굉을 보며) 고구려만 잘 살피시면 됩니다. 젊어 무휼은 칼 밖에 몰랐지만.
이제는 늙고·노회해, 신생 낙랑국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댑니다.
왕굉 : (표정 굳어지는) 고래잡이 갈 사람이, 별 걱정을 다하는군.
문 열리고, 왕자실 계당주 주전자를 들고 들어온다.
왕굉 : (본다) 어, 자실아. (당황하는) 어쩐 일이냐?
왕자실 : 광무제 유수와 만나면, 오라버니 이젠 한나라에서도 인정하는 낙랑국에 왕이 되는데. 축하 술 한 잔 없어 되겠어요?
왕자실, 다탁 위에 계당주 주전자를 놓고. 단의의 ‘樂浪之王’ 모하소의 수를 본다.
왕자실 : 낙랑에 왕.. (왕굉을 본다) 형님껜 옷을 받으셨으니, 제겐 술 한 잔 받으세요~
(다탁 위에 술잔을 빼서, 술을 따라 왕굉에게 내민다)
씬23. 배, 식품 저장고 (밤)
쌓아놓은 쌀가마니 중, 하나에서 단도가 삐쭉-나오고, 가마니가 찢어진다.
라희, 툭- 굴러 나온다.
라희 : 아후!! 숨 막혀!! (가슴 두드리며, 기침한다) 죽는 줄 알았네~
누가 뭐, 자기들끼리만 낙양 구경하게 둘 줄 알구~ 흥! (헤쭉- 웃는다)
씬24. 배, 왕굉의 선실 안 (밤)
왕자실, 왕굉에게 술을 권한다.
왕자실 : 자요~ 오라버니.
왕굉과 부달, 의심스러운 듯 바라본다.
최리와 모하소, 눈치 채지 못하고 보고.
왕자실 : 동생이 올리는 잔입니다~ 어서요~
왕굉 : (내키지 않지만) 으응.. (받으려는)
부달 : 안됩니다!
부달, 잔을 막으려다 왕자실의 잔을 쳐 떨어트린다.
왕자실 : 감히, 어디라고!! 여동생이 친정오라비에게 술 한 잔 못올리는가!
부달 : 이놈은... 그저.. 거기, 그 술.. 냄새가 요상해서..
왕자실 : 귀하디귀한 계피에 당귀를 넣어 빚은 것이다. 그러니 향이 있을 수밖에. 왜? 내가 독이라도 풀었을 성 싶은가?
(빙그레- 웃는)
부달 : 독이라기보다는..
왕자실 : 쯧. (혀 차고, 다시 다탁 위에 술잔을 들어 따라 왕굉에게) 자요.
왕굉 : .. (망설이는)
왕자실 : 오라버니도 이 술에 독 들었을까 겁나시나요?
왕굉 : 넣었느냐?
왕자실 : 넣었다면 어쩌시렵니까?
왕굉 : !
최리 : 듣자듣자 하니, 못하는 소리가 없군. 이리 주오.
최리, 왕자실이 왕굉에게 내민 잔을 낚아채,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왕자실, 긴장해서 그 모습을 본다.
최리, 술잔을 다탁 위에 내려놓는다.
왕자실 : (잔을 집어 술을 따라, 왕굉에게 내민다) 자요.
왕굉 : .. (망설이는)
왕자실 : (모하소를 본다) 제가 미리 간을 보니, 차고·달고·향기롭습니다. 형님 한잔 하시렵니까?
모하소 : (왕굉이 의심하는 것을 안다. 왕굉에게) 목이 마르던 참이옵니다. 제가 먼저 한잔 하겠습니다.
모하소, 왕자실에게 잔을 받아 마시고 소매춤에서 비단손수건을 꺼내 입술 닿은 곳을 닦아 내려 놓는다.
모하소 : 맛있네. 자실아운 정말이지 뭐든 솜씨가 좋아.
왕자실 : 고맙습니다. (잔에 다시 술을 따른다)
왕굉 : (부달에게) 부달은 그만 나가있으라.
부달 : 페하!
왕굉 : 이왕지사 잠 못 들 밤. 우리 네 사람 오붓이 한잔 할테니 나가봐.
부달 : .. (왕굉을 본다)
왕굉 : 걱정마라. 아직 밤은 시작도 안했고, 동모현까진 멀다. 때 되면 부를 테니 밥이라도 먹고 쉬어라.
부달 : 예.. 폐하.
부달,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나간다.
씬25. 동, 왕굉의 선실 앞 (밤)
부달, 나와서 부관들을 본다.
부달 : (나지막이) 최리에 칼은 확실히 빼앗았는가?
부관1 : 배에 오르기 전에 받아뒀습니다.
부달 : .. 저녁밥 먹고 있으라신다. 가자. (선실을 한번 돌아보고 간다)
씬26. 동, 왕굉의 선실 안 (밤)
왕굉, 왕자실이 권하는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킨다.
왕자실 : ..
왕자실, 다시 철철 넘치도록 잔에 술을 따른다.
왕굉 : .. (단숨에 들이킨다)
왕자실 : .. (다시 잔을 따라 내민다) 한잔 더 드세요. 축하주니 석 잔은 드셔야죠.
왕굉 : (받아서 입가로 가져가다, 잔을 자신의 앞에 내려놓고) 내게 할 말이 뭐냐?
왕자실 : 저이를 죽이렵니까?
최리/모하소 : (놀라서, 동시에) 부인!!/아우님!!
왕자실 : (OL) 함께 목숨 걸고 유헌과 싸운 세월이 몇 해이고. 한 솥에 밥 지어 먹고,
손마디 얼어붙는 추위에 돌무더기 베고 잔 세월이 얼맙니까? 꼭, 내 남편을 죽여야 합니까?
왕굉 : .. (가만 보다, 벌떡 일어나서 서성거린다)
왕자실 : 말해보세요, 오라버니.
왕굉 : 그래. 원래 나란 놈, 이거 숨기고. 저거 숨기고. 감추고는 못사는 인간이다.
사내대장부가 계집처럼 그리 살아서야 되겠느냐?
왕자실 : (본다)
왕굉 : 우리 어디 한번 패 다 뒤집어 놓고 속 시원히 털어보자. (자리에 앉고) 자실이 넌, 네 남편이 왕이 되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왕자실 : ..
왕굉 : 한낱 고래잡이 사내에 부인으로 살 수 있겠느냐? (쏘는 듯한 눈빛으로 본다)
왕자실 : (눈빛이 흔들린다) 잘 모르겠어요..지금은.
최리 : 형님 여동생은 모르겠으나, 이 몸은 왕이 되지 않겠다 했습니다. 이쯤에서 그만하시지요.
왕굉 : 본심 숨기지 말자했네.
최리 : 해도 될 말·안 해도 될 말. 가리잖고, 입 밖에 다 내놓는게 사내대장붑니까?
(고개 젓는다) 상대가 감당치 못할 얘기들을 끄집어 내놓는 건. 솔직한게 아니라, 잔인한 겁니다. 경솔한 거예요.
왕굉 : .. (본다)
최리 : 형님도 그만하시고. (왕자실을 본다) 자네도 그만하게.
왕굉 : .. (술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간다)
왕자실 : .. (긴장해서 본다)
왕굉, 왕자실의 눈을 본다. 왕자실의 눈빛이 흔들린다.
왕굉 : .. (의심쩍다. 잔을 왕자실에게 내밀며) 자실아, 너도 한잔 해라.
왕자실 : .. (긴장해서 이마에 밴 땀방울이 뚝, 떨어진다)
왕굉 : (그 모습을 봤다) !! 부달!! (부르며 잔을 내려놓고 일어나는데)
왕자실 : (잔을 들어 단숨에 마신다)
왕굉 : (본다)
왕자실 : 이제 내 물음에 답해보세요, 오라버니.
왕굉 : (의심 풀고, 자리에 앉는다)
왕자실 : 내 남편을 죽이고까지 왕이 되고 싶은가요?
왕굉 : 고생을 같이 나누던 사이는 호강을 나누지 못하는 법이다.
최리 : ... (눈을 감는다)
모하소 : .. (최리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놓는다)
욍굉 : 내가 설사 그를 살려도. 모양혜와 영호장원 가신들이 (최리를 보며) 자넬 그냥 두지 않을 것이네.
권력이란 원래 나눌 수 없는게 아니던가..
최리 : 흐흥.. 목이 필요하면 언제든 가져가십시오. 이러고 배에 태울 것까지 없었는데 말입니다.
(씁쓸히 웃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하소에게) 그만 방으로 가세.
모하소 : 예.. (일어나는데 어지럽다)
최리 : 정담은 왕씨 오누이끼리 나누게 하고. 우린 비켜줍시다. (손 내민다)
모하소 : 예..
모하소, 최리의 손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입가에 피가 한줄기 흐른다.
모하소, 바닥에 쓰러진다.
최리 : 부인!!
최리, 모하소를 안아 올리려는데 그 역시, 어지럼증과 함께 정신을 잃는다. 바닥에 쓰러지는 최리.
왕굉 : !! (놀라서 보다, 왕자실을 본다) 너..무슨 짓을!
왕자실 : (싸늘하다) 권력은 나누지 못한다셨죠? 오라버니, 난 고래 잡는 사내에 아내론 못살아요.
왕굉 : (비틀거리며 일어나, 좌대에서 검을 꺼낸다) 독이냐...?
왕자실 : 오라버니 몸집에 세 잔은 마셔야 하는데.. 셈을 잘못했어요. 쓴맛 돌아 혹여 눈치 챌까 너무 약하게 풀었군요.
욍굉 : (검을 겨눈다) 니가 미쳤구나! 다 죽자는 거냐? 나, 최리. 모하소에 너까지! 다 죽잔 거야!
왕자실 : 죽지는... 죽고.. 싶지는... 않아..요..
왕자실, 그대로 쓰러진다.
왕굉, 바라보다 비틀거리며 침상 옆, 작은 다탁에 놓인 물병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다.
물병을 잡기 전에, 왕굉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혼절한다.
씬27. 낙랑국, 영호장원 모양혜의 방 (밤)
모양혜, 침상에 누워 뒤척뒤척 잠이 안오는지 벌떡 일어난다.
모양혜 : 하아! 답답해.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가는 건데.
모양혜, 발을 신발에 꿴다.
씬28. 영호장원, 마당 (밤)
모양혜, 등잔불을 여기저기 밝혀 놓고 기도를 하고 있다.
모양혜, 상에 덜렁 술- 한잔이 놓여 있다.
모양혜 : 천지간에 영험한 기운은 이 모양혜에 간청을 들어, 내 남편 왕굉을 도우소소. (하늘의 달을 본다) 술시가 다 됐겠구만.
지금쯤이믄 다 끝났겠지? 한·둘이 간 것도 아니고. 아무리 최리가 칼 잘 쓰고. 자실이년 영악해도, 별 탈 없겠지.
왕홀, 걸어와서 보면 모양혜가 술을 꿀꺽- 하고 마신다.
왕홀 : 뭐하세요, 형수님?
모양혜 : (사발 내려놓고) 기도한다.
왕홀 : 술 드시는 거 아니구요?
모양혜 : 술은 무슨. 달보고 기도하고, 별보고 기도하고 하는구만. (왕홀을 보며) 홀아. 내가 뭐 하나 물을테니 거짓말하면 안된다.
왕홀 : 뭔데요, 무섭게..
모양혜 : 너, 니 누나하고 형님하고 둘 중 누구 편이냐?
왕홀 : 그게 뭐에요. 유치하게.
모양혜 : 유치하든 말든, 대답해. 자실이 편이냐? 우리 장군님 편이냐?
왕홀 : ..
모양혜 : 대답하라니!
왕홀 : 자실이 누님은.. 나한텐 어머니 같구. 형님은 아버지 같은데, 어떻게 대답을 해요.
모양혜 : 이 자식·이 자식!! 이러니 키워줘두 소용없단 거야! 내가 니 에미지, 자실이가 에미냐!
똥 싸 뭉개던 때부터, 입혀줘, 씻겨줘! 내 손으루 다 했는데! 자실이가 뭘 했다구!
시동생이래두 자식처럼 길러났더니 이 배은망덕한 놈!!!
모양혜, 왕홀의 등이며 이마를 마구 쥐어박는다.
씬29. 배, 왕자실의 선실 안 (밤)
(소리) 술시를 알리는 뿔소리.
치소, 숯불 화로에 죽을 쑤고 있다. 나무숟가락으로 죽을 젓다가 뿔 소리 들리면, 문 쪽 본다.
왕자실/(소리) : 잊지 마라. 술시다. 죽을 묽게 쑤어 와야 한다. 네가 정신을 차리면 우리 모두 살고. 정신 못차리면 모두 죽는다.
치소, 대야에 찬물을 조금 따른 다음 베보자기에 죽을 붓고, 손으로 주물러 덩어리를 풀기 시작한다.
씬30. 배, 선실 복도 일각 (밤)
라희, 걸어온다.
라희 : 엄만 어딨는 거야! 동고비두 안뵈구. (발을 멈춘다) 왜 속이 메스껍지. 웈!! (멀미가 치솟자, 입을 손으로 막는다)
라희, 문득 맞은편에서 오는 치소를 본다.
라희 : ! 왕자실 마나님한테 걸리믄 난 죽었어. (숨는다)
치소, 소반에 미음 농도의 죽을 담은 사발을 얹고 걸어온다.
라희, 숨어서 보다 치소 사라지면 나온다.
라희 : .. (고개 빼꼼히 내밀고, 치소의 뒷모습을 보는)
씬31. 배, 왕굉의 선실 안 (밤)
치소, 소반을 들고 들어선다.
치소, 쓰러져 있는 왕굉·최리·모하소를 차례로 보다가 왕자실을 발견한다.
치소 : 마님!! 중부인 마님!!!
치소, 소반을 다탁 위에 놓고 왕자실의 머리를 안는다.
치소 : 중부인 마님!! (왕자실의 등을 두드린다)
왕자실 : 헉! (거친 숨을 토하며, 깨어나는)
치소 : 어찌 된 일이세요!
왕자실 : ..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몽정차가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신선들 약이라더니, 과연 효험이 있구나..
왕자실,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왕굉을 본다. 왕자실, 그 옆에 앉아 왕굉의 목 경동맥을 짚어본다. 아직 뛰고 있다.
왕자실 : (치소에게) 이리. 오라버니부터 침상으로 모시자.
왕자실과 치소, 쓰러져 있는 왕굉을 부축해 일으킨다. (Dis)
씬32. 동, 왕굉의 선실 안 (시간경과)
왕굉, 침상에 누워 흩어진 숨을 내뱉고 있다.
치소,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고. 왕자실, 왕굉을 물끄러미 보다 손을 뻗어 왕굉의 이마를 만져보려 한다.
왕자실 : .. (그래도 오라비라 갈등이 생긴다)
왕자실, 손을 거두고 돌아선다.
왕자실, 다탁으로 가 모하소의 비단손수건을 집어 들고 죽사발에 담근다.
왕자실, 풀 먹인 비단손수건을 꼭 짜서 침상으로 간다.
치소, 의아하게 그 모습을 본다.
왕자실, 침상에 걸터앉아 비단손수건을 펴고는 왕굉의 얼굴에 덮는다.
치소 : 마님!!!
씬33. 동, 욍굉의 선실 앞 (밤)
라희, 걸어온다. 선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본다.
라희 : ! 엄마·아버지 방인가 보다~ 깜짝 놀래켜 줘야지~
라희, 장난기를 얼굴에 가득 담고 살금살금 다가와 문을 소리 나지 않게 조금 연다.
씬34. 배, 왕굉의 선실 안/선실 앞 (밤)
라희, “엄마~” 부르려다 놀라 굳어지는.
라희의 시선으로 보이는 방안의 풍경. 왕자실, 왕굉의 얼굴에 손수건을 덮고 몸을 누르고 있다.
왕굉, 숨이 막힌다. 손발을 마구 휘두른다.
치소, 얼어붙은 듯 그 모습을 바라본다.
왕자실 : 뭐하느냐!! 얼른 오라버닐 잡지 않고!!
치소 : ..
왕자실 : 치소야!! 얼른 올라앉아라!!
치소 : ..
왕자실의 고함소리에 최리와 모하소가 깨어난다.
최리, 무겁게 눈을 뜬다. 흐릿한 시선 속에 왕자실의 모습이 흔들려 보인다.
최리 : !!
모하소, “으음..” 신음을 흘리며 깨어난다. 눈을 깜빡인다. 방안의 풍경이 뿌옇게 드러난다.
모하소 : !
왕굉의 몸부림에 왕자실, 배에 주먹을 맞는다. 왕자실, 숨이 “컥!” 막힌다.
왕자실 : (돌아보며) 날 도와다오!! 날 돕지 않으면 너도·나도 다 죽는다!!
치소 : ..
왕자실 : (급하다)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야!! 어서! 어서, 치소야!!
치소 : 그 약조, 잊으심 안됩니다.
치소, 왕자실에게로 다가가 침상에 앉는다.
라희의 눈동자가 커진다.
모하소 : !!
(모하소의 소리) : 안돼!! 자실아우, 그러면 안되네!! 아무리 배 달라도 자네 오라버니가 아닌가!!
어떻게 한 아버님 피를 이은 동기간을!! 자실아우!!!
모하소, 입을 달싹- 거리지만 목이 열리지 않는다. 모하소의 시선에 그저 왕자실의 등이 보일 뿐이다.
모하소 : .. (낙루하며 최리를 본다)
최리 : ..
씬35. 최리의 상상 (밤)
최리,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최리, 다탁의 모서리를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침상으로 간다.
최리 : 형님!!! 비키지 못하나!
최리, 왕자실을 왕굉에게서 뜯어내 바닥에 밀어 버린다.
최리, 왕굉의 얼굴에 덮은 비단수건을 떼어낸다.
최리 : 형님!! 괜찮으십니까!!
왕굉 : (숨을 헉- 내쉰다)
씬36. 왕굉의 선실 안 (밤/현실)
최리,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배로 힘겹게 바닥을 밀며 침상 쪽으로 한치쯤 기어간다.
최리, “안..된다..” 웅얼거리며, 힘겹게 침상을 향해 손을 뻗는다.
허공을 움켜쥐던 왕굉의 손이 툭, 떨어진다.
최리 : ! ... (모하소를 바라본다)
모하소 : .. (눈물만 흘린다)
치소 : (왕자실에게) ... 돌아가셨네요. (수건을 집어 들고, 침상에서 내려간다)
왕자실 : ..
왕자실, 왕굉의 부릅뜬 두 눈을 본다.
왕자실,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어 눈을 감긴다.
왕자실 : 호호호~ 호호호호~
왕자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왕자실, 아무리 독한 계집이라도 오라비를 죽였다. 최책감에 제 정신이 아니다.
치소 : 마님... 왜 이러세요...
왕자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는데, 입에서는 웃음이 멈추지를 않는다.
왕자실 : 호호호~ 호호호~
최리와 모하소, 왕자실의 등을 볼 뿐이라 그녀의 눈물을 보지 못한다.
최리 : ! (이를 깨문다)
모하소 : .. (누운채 손을 뻗어 최리의 손을 잡아준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라희, 바닥에 주저앉는다.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선실이 떠나가라 웃는 왕자실. (Dis)
씬37. 고구려, 국내성 창공 (다음날/낮)
고구려, 국내성 위로 매가 발에 헝겊을 달고 날아온다.
씬38. 고구려, 국내성 일각
내시장과 호위무사들 있다.
매의 발에 매인 천을 푸는 내시장.
씬39. 고구려, 국내성 대무신왕 집무실
대무신왕, 내시장이 올린 세작의 글을 보고 있다.
우나루와 을두지, 추발소 등이 있다.
대무신왕 : ! (충격 받는)
추발소 : 폐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대무신왕 : (다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쳐, 천을 놓는다) 왕굉에게 따라 붙은 세작에 전언이다.
을두지 : (조심스럽게 집어와 펴 본다) !
을두지, 세작이 쓴 글을 보는.
(인서트) 王宏死 其屍至東牟縣
우나루 : (을두지에게) 좌보. 뭔 전언이길래..
을두지 : (한탄하는) 왕굉이.. 죽었답니다. 시체가 돼서, 동모현에 내렸다는군요.
우나루 : (화들짝- 놀라) 왜요!! 왕 된다고 기고만장, 광무제 만나러 가더니 갑자기 죽긴 왜 죽어!
(생각하다) 뭔... 병인가? 사람이 팔자가 갑자기 좋아지면, 그러구 떨컥, 가는 수도 있다던데.. 안그렇소?
을두지 : ..
우나루 : 아니, 그게. 전쟁터로·전쟁터로 전전하구 살던 인간이, 갑자기 비단이불에 맛난 것 처먹고 팔자가 늘어지니까..
(생각하다) 거, 최리가 손을 썼나?
대무신왕 : 제가회의를 소집한다. 급히 오나부 수장들을 불러라.
씬40. 고구려, 외곽
파오가 쳐져 있다.
송매설수, 시녀장과 함께 송옥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말을 탄 송옥구가 호위무사들과 함께 나타난다.
송옥구, 말을 멈추고 시종의 등을 밟고 내려선다.
송매설수 : .. (냉랭한 시선으로 본다)
송옥구 : 여기까지 마중 오셨습니까. (읍한다)
씬41. 고구려, 외곽 파오 안
송매설수와 송옥구, 다탁 앞에 앉아 있다.
시녀장, 김이 오르는 차를 두 사람 앞에 놓아준다.
시녀장 : 몸을 녹이소서.
송옥구 : (송매설수에게) 드시지요.
송매설수 : ..
송옥구 : 양덕아. (눈짓으로 시녀장에게 나가 있으라는)
시녀장, 파오 밖으로 나간다.
송옥구 : 아직도 애비에게 섭섭한 마음, 풀지 못하셨습니까?
송매설수 : 한번 깨진 그릇이 붙지 않듯, 한번 깨진 신뢰도 마찬가집니다. 부모자식간인들 다르겠습니까.
송옥구 : .. (미소)
송매설수 : 아바님을 믿지 못합니다.
송옥구 : 나를 믿지 못함은, 아비로서냐? 비류나부에 수장으로서냐?
송매설수 : 아바님이 아무리 비류나부 사만 백성의 수장이라 해도,
어느 누가 피도·살도 안 섞인 백성들 때문에, 자식을 희생시킨 답니까!
송옥구 : 섭섭하다·기쁘다·밉다·좋다. 나도 그런 사소한 기분을 느끼며 살고 싶구나.
아직 네가 살만하구나, 매설수야. 그런 감정이 살아있으니. (웃는)
송매설수 : (기가 막힌) 뭐라구요?
송옥구 : 네 운명이다, 이 송옥구에 딸로 태어난. 견디고 참아라.
지금은 너도·나도 부모자식에 사소한 도리보다, 비류나부가 더 급하니.
송매설수 : 아바님!
송옥구 : (표정 차갑게) 대충 짐작은 한다만, 때도 아닌데 제가회읠 하자는 이유가 뭐냐? 무휼이 뭘 생각하고 있는 거냐?
송매설수 : 왕굉이 죽었답니다.
송옥구 : 십년을 공들이더니, 무휼이 놈이 한 방 먹었군.
송매설수 : 최리가 왕이 되겠지요.
송옥구 : 흐흠.. 전쟁을 하잔 얘기군.
씬42.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후원
대무신왕, 직접 호동에게 검을 가르치려 한다.
우나루와 여랑이 배석하고 있다.
대무신왕 : 검을 잡아라. (검을 던진다)
호동 : (받고)
여랑 : 오라버니가 직접, 호동을 가르치시려구요?
대무신왕 : (우나루를 본다) 검은 네 단계를 거쳐야 완성된다 했나?
우나루 : 그랬죠.
여랑 : 유연한 검. 힘에 검. 잔인한 검. 피를 즐기는 검.
우나루 : 역시! 우리 공주마만 똑똑 하십니다~
여랑 : 놀리구 있어. (흘기고)
대무신왕 : 호동아, 네 말대로 면복을 최리에게 보냈다. 하지만 왕굉 손에 최리가 죽지 않고, 최리 손에 왕굉이 죽었다.
호동 : 직접 최리가 죽였습니까?
대무신왕 : 중요치 않다. 최리 손에 목이 떨어졌든. 병으로 죽었든. 왕에겐 과정이 필요 없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다.
호동 : (본다)
대무신왕 : 왕굉은 졌고, 최리는 이겼다. 네가 결과를 제대로 집지 못해 우리 고구려가 난처하게 됐다.
호동 : 죄송합니다.
대무신왕 : 이 애비, 이제 호동 네게 잔인한 검을 가르치려 한다.
여랑 : 아직 그런 검을 배우기엔 호동이 어립니다.
대무신왕 : 전쟁이다.
호동 : (놀라) 아바마마!
대무신왕 : 최리와 전쟁을 해야 하니, 너는 전쟁터에 필요한 검을 배워야 한다. 거기엔, 의리도 없고·예의도 없고.
오직, 죽느냐·사느냐만 있다. 오너라!!
대무신왕, 검으로 호동을 내리친다.
호동, 대무신왕의 느닷없는 공격에 검을 놓친다.
대무신왕, 다시 빠르게 공격한다.
호동, 공중제비로 날아올라 놓친 검을 잡고 대무신왕을 공격한다.
씬43. 고구려, 외곽 파오 안
송매설수,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송매설수 : 전쟁..
송옥구 : .. (차를 마신다)
송매설수 : 비류나부는 어떻게 할 건가요?
송옥구 : 막아야 한다.
송매설수 : 그일 누가 막을 수 있다구요.
송옥구 : 고구려가 전쟁을 벌이면, 벌일수록.. 비류나분 죽고, 계루부(桂婁部)는 산다.
결국 오나부는 다 죽고. 무휼과 왕실만이 살아남겠지.
송매설수 : ..
송옥구 : 무휼이 왜 그렇게, 미친놈처럼 전쟁질을 하는 줄 아느냐?
송매설수 : 그야, 우리 고구려가 척박해서지요. 땅을 넓히지 않으면 무슨 수로 백성을 먹일 수 있겠어요.
송옥구 : 겉만 알고, 속은 모르는 소리.
송매설수 : (본다)
송옥구 : 전쟁을 하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무휼은 고구려에 강력한 단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오나부를 자신에 발 아래 두려는 것이다.
송매설수 : ..
송옥구 : 오나부에 군사들은 이리저리 전쟁터로 끌려 다니다 죽어나고. 결국, 무휼의 군사들만이 남게 되겠지.
송매설수 : ..
송옥구 : 전쟁은 안된다. 무슨일이 있어도 무휼이 놈을 막아야만 한다. (송매설수의 손을 잡는다) 애비가 미워도, 수지련이 미워도.
매설수야.. 우린 비류나부라는 한 뿌리에 열린 가지다. 알겠느냐?
송매설수 : 후우.. (한숨을 쉰다)
씬44. 고구려, 국내성 강국전
대무신왕과 호동, 송옥구를 비롯한 오나부의 수장들. 을두지, 우나루, 추발소를 비롯한 대신들 모여 있다.
송매설수와 송수지련, 뒤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
송옥구 : 불가합니다!
타호태 : 연나부 역시, 반댑니다!
우나루 : 지금이 기횝니다. 욍굉은 죽었고, 최리 놈은 동모현에 붙잡혀 있습니다.
아직 패수 녹지 않았으니, 단숨에 얼음 밟고 달려갈 수 있습니다!
송옥구 : 알지·묵방·민봉·은포에만 최리에 정예군 삼천이 있네.
우나루 : 우리 고구려 군사가, 삼천을 못 깹니까! 왕굉 휘하 놈들하고, 최리 휘하 놈들이 지들끼리 치고받을 때, 쓸어버리면 됩니다.
송옥구 : 대장군 말대로 아니 되면? 그 둘이 힘을 합해 고구려부터 치자 들면?
대무신왕 : 내, 직접 출정하겠다.
타호태 : 대왕께서요!
송옥구 : .. (본다)
대무신왕 :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를 못 믿는가!!
타호태 : 이미 살아서도 대무신이라 불리는 폐하십니다. 폐하께서 친히 나가시겠다면.. (하는데)
송옥구 : (말 끊고, OL) 정히 그러시다면, 연나부와 계루부를 데리고 가십시오. 비류나부는 이번 전쟁에선 빠지겠습니다.
대무신왕 : 비류나부는 고구려가 아니란 말인가!! 비류나부는 이 무휼에 신하가 아니란 말인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친다)
씬45.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의 침소
송매설수와 수지련, 들어온다.
아미와 술이, “왕비마마..”하며 읍하고, 자리를 비킨다.
수지련 : 큰아바님께선 너무 하십니다.
송매설수 : (자리에 앉는)
수지련 : (자리에 앉는) 어찌 군사를 안준답니까? 왕에 장인이 저러하면, 어느 나부가 폐하의 명을 듣겠습니까?
송매설수 : 니가 그러고도 왕비마마, 소릴 듣느냐?
수지련 : (화난) 무슨 말씀이!
송매설수 : (OL) 후원에 후궁들은 색기만 있으면 되겠지. 왕비란 그런 게 아니다.
요염함, 총기. 그 위에 정치를 읽는 눈이 있어야 한다.
수지련 : (본다)
송매설수 : 왜냐구? 왕이 전쟁에 나가 죽고 나면. 아들은 어린데.. 정적들은 왕관을 뺏겠다 난리를 치니까.
그때, 남편을 대신해, 아들이 자랄 때까지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까.
수지련 : 흥! 이러니 언니가 그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겁니다. 여자가 왜 그리 빳빳하고 딱딱합니까.
송매설수 : 나도 수지련 네가 이리 멍청한 것이 좋다.
수지련 : 언니!!
송매설수 : 당분간 밉든·곱든. 너와 나는 손을 맞춰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해.
수지련 :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송매설수 : 비류나부라는 뿌리가 썩으면, 수지련 너나·나나.. 함께 말라죽을 테니까.
수지련 : .. (송매설수를 본다)
송매설수 : .. (단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씬46. 낙랑국, 영호장원 외곽
도찰, 박차를 가하며 말을 달려온다. 그 뒤로 영호장원의 호위무사들.
씬47. 낙랑국, 영호장원 마당
도찰, 말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온다.
왕홀, 엉성하게 모양혜에게 검을 배우고 있다.
왕홀 : 어. 언제 내려 오셨어요?
도찰 : (급하다. 흘깃 보고) 마님!! 대부인 마님!!
모양혜 : (땀을 딱으며) 어째서 허락없이 궁을 비우고?
도찰 : ..
모양혜 : 청해헌 것들이 무슨 수작이라도?
도찰 : ..
모양혜 : .. 무슨..일인가? (불길한)
도찰 : (땅에 부복한다)
모양혜 : 무슨 일인가!!
도찰 : 폐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모양혜 : !!
왕홀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양혜,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왕홀 : 형수님!!
모양혜 : 왕자실... 왕자실... 자실이 네 이년!!
모양혜, 들고 있던 칼을 날린다.
칼이 나무둥치에 퍽- 박혀 떨린다. (Dis)
씬48. 동모현, 내빈관 라희의 숙소
라희, 일시적 자폐 상태다.
동고비, 그런 라희를 돌보고 있다.
라희, 이마를 침상 기둥에 쿵,쿵 찍고- 있다. 휑-하니 풀어진 시선으로 기둥에 계속해서 이마를 쿵쿵, 박는.
동고비 : (손바닥으로 기둥 닫는 부분을 감싸, 라희가 자신의 손바닥을 박게 하며) 아가씨.. 다쳐요.
왜 이러시는지 말을 해보세요, 말을..
왕자실, 들어온다.
동고비 : (일어난다) 아가씨가 왜 이러시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왕자실 : 라희야.. (본다)
라희 : .. (쿵쿵- 이마만 찧는)
왕자실 : (동고비에게) 나가 있어.
동고비 : .. (나간다)
왕자실, 동고비가 나가면 라희에게 다가온다.
왕자실 : 이러지 마라..
라희 : .. (쿵쿵-)
왕자실 : (침상에 앉아, 라희의 어깨를 잡는다) 그래, 이 에미 네게 못보일껄 보였다. 그렇지만 라희야,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야..
죽을 것인가? 죽일 것인가...? 이 에미, 널.. 살리고.. 네 아버질 살려야 했다.
라희 : (쿵쿵- 이마만 찧는다)
씬49. 동모현, 내빈관 마당 일각
차차숭, 수레에 공연에 필요해 가져왔던 물건을 단원들과 함께 싸고 있다.
미추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배에서 급살을 맞는 건 또 뭐람.
소소 : 그러게 말에요. 공연이라두 보구 죽지.
자명 : .. (입을 쭉- 빼물고 짐 챙기는)
묘리 : (자명에게) 넌 잘 됐지, 뭐. 낙랑국 왕이 안죽었음, 니가 천상지희하다 떨어져 다쳤을텐데. 안그래?
자명 : (차차숭에게) 단장님, 우리 공연은 영영- 안해요?
차차숭 : 내가 아냐, 니가 아냐? 대금 돌려 달란 소리나 안했음 싶구만.. 에헤이.. 재수가 옴을 붙네.
모하소 들어온다.
자명, 항아리 기예에 쓰이는 항아리를 수레에 싣다가 모하소를 본다.
모하소 : 얘야.
자명 : (모하소를 본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와.. 이쁘다.
모하소 : (슬프게 웃고) 예쁘긴 네가 더 예쁘구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
자명 : (코를 닦고) 뭔 일이세요?
모하소 : 기예 하는 분을 만나러 왔다.
자명 : 여기, 우리 전부 다 기예 하는데요.
미추 : 공연은 취소됐는데... 뭔 일이지.
차차숭 : 무슨 일이신지요? 마님.
모하소 : 내 딸을 위해, 기옐 보여줄 수 없겠는가?
자명 : 천상지희해두 되요?
모하소 : 그게 뭔진 모르겠다만.. 어른이 돌아가셔서, 떠들썩하게.. 크게 할 수는 없지만.
아픈 내 딸을 위해.. 작게나마, 해 지면 공연을 해다오.
모하소, 자명을 보며 미소 짓는다.
씬50. 동모현, 내빈관 빈청 안 (밤)
옥관에 왕굉이 담겨 있다.
부달과 부관들, 왕굉의 관에 얼음을 붓는다.
씬51. 동, 내빈관 빈청 앞 (밤)
왕자실, 망설이며 서있다.
부달과 부관들, 나오다가 왕자실을 본다.
부달 : ! (표정 굳는)
왕자실 : 오라버니 빈솔 지키러 왔다.
부달 : 그냥 가십시오! (허리에 단 칼에 손을 가져간다)
왕자실 : .. (무시하고 계단을 오른다)
부달 : .. (칼을 조금 뽑다가, 포기한다)
씬52. 동, 내빈관 빈청 안 (밤)
왕자실, 옥관 속에 왕굉을 본다.
왕자실 : (자리에 앉아, 왕굉의 얼굴을 만져본다) 차가워라.. 오라버니 춥죠?
왕굉 : ..
왕자실 : 내 꼴은 보기도 싫죠? 차라리 내 목부터 베지 그러셨어요?
왕굉 : ..
왕자실 : .. (왕굉의 얼굴이며,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내가 이러지 않았으면, 지금 이리 누워있는 건... 내 남편 최리였겠죠.
(손 떼고) 정치란.. 그런 거잖아요. 한 사람이 죽어줘야.. 한 사람이 사는 것...
왕굉 : ..
왕자실 : 오라버니가.. 욕심이 너무 많았어요.. 왜,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요.
왕자실, 왕굉을 생각한다.
(인서트) 9부 씬31/10부 씬21
왕굉 : (왕자실에게 웃으며) 마중 나온 게냐?
왕굉, 왕자실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왕굉 : (웃으며) 자실아. 짐 꾸린다 번잡하겠구나.
왕자실 : (관을 두 손으로 아프게 잡는다) 용서해요... 용서하세요..
왕자실, 눈물이 흘러나온다. 왕자실, 혈육을 죽인 고통에 몸이 꼬부라진다.
왕자실 : 오라버니.. 오라버니!!!
왕자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왕굉을 부르며 운다.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