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 발치에도, 고인돌 굄돌 밑에도 봄기운이 파릇파릇하다. 이른 봄, 돌과 함께 하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돌은 지구상에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의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모양도 무늬도 세월 그 자체의 모습이다. 돌이 생명을 만나면서부터 우리에게 그것은 살아숨쉬는 존재로 다가온다. 돌속에 삶이 있고, 문화·역사가 있다. 돌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전남 화순은 돌과 관련된 볼거리가 많은 고장. 돌에 스민 세월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돌탑·돌부처 전시장 운주사
화순군 도암면 도초리의 고찰 운주사는 하나의 커다란 인공 돌밭이다. 골짜기 전체가 돌탑·돌부처 전시장이다.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각양각색의 탑과 크고 작은 돌부처 행렬이 이어진다.
신라말 도선국사(827~898)가 하루 낮밤에 걸쳐 각각 1000기의 탑과 부처를 만들어 세웠다는 전설이 깃든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천불·천탑 기록이 있지만, 지금은 돌부처 70기와 돌탑 18기가 남아 있다. 1942년까지도 돌부처가 213기나 됐다고 한다. 고려말에 만든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
크기·모양이 천차만별인 이들 석조물로 경내 분위기는 여느 절과 사뭇 다르다. 석조물 제작공장을 방불케 한다. 크기가 수십㎝에서부터 10m에 이르는 돌부처들은 좌대를 갖춰 앉은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바위에 기대 선 모습이다. 불균형한 어색한 몸체와 투박하고 밋밋한 얼굴 등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멋과 서민적인 친근함이 배어나온다. ‘와불 뵈러 가는 길’ 팻말을 따라 산기슭을 오르면 길이 12m의 누워있는 돌부처 한쌍을 만날 수 있다. 도선국사가 와불을 만들어 일으켜 세울 무렵 동자승이 닭울음 소리를 내는 바람에 누운 채로 있게 됐다고 한다. 불상을 세우면 태평성대가 이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돌탑의 양식은 더 변화무쌍하다. 원반형이나 구형인 옥개석이 특이하고, 바위 위에 터를 잡은 모습도 이채롭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모습에 1층과 중간층 탑신 폭이 거의 같은, 탑 모양도 그렇다. 뛰어난 석조예술가의 다채로운 추상적 실험작품을 보는 듯하다. 산기슭에 방치된 듯 놓인 이른바 칠성바위는 일곱개의 원판형 석조물. 원판형 석탑을 쌓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놓인 자리가 북두칠성의 별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9층석탑·석조불감·원형다층석탑 등은 보물이다. 입장료 1300원. 한시간 남짓이면 둘러볼 수 있다.
●수천년 침묵 떠받친 고인돌 무리
춘양면 대신리와 도곡면 효산리의 산골 산책은 더 아득한 시간여행을 떠나는 여정이다. 수천년 시간을 떠받치고 있는, 선사시대 무덤인 고인돌 590여기(고인돌 추정 300여기 포함)가 산기슭과 논밭에 흩어져 있다. 북방식(탁자식)과 달리 대개 작은 굄돌로 지탱되는 남방식(바둑판식·덮개돌식)이어서 조형미는 덜하지만, 하부구조(석실)를 갖춘 것들이 많아 무덤으로서의 실감은 더하다. 대신리 지동마을 앞 논 한가운데엔 최근 발굴된 16기의 고인돌 무리가 있어, 덮개돌과 석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나온 돌칼·화살촉·토기 등은 목포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지역. 전세계 고인돌 10만기의 절반에 가까운 4만여기가 국내에 있다고 한다. 대신리·효산리 고인돌 무리는 2000년 12월 강화·고창 고인돌 무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국내 고인돌들은 기원전 10세기부터 1000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호숫가로 달려간 육식공룡 발자국
더 아스라한 시간을 건너뛰려면 북면 서유리 화순온천 옆으로 간다. 전남 내륙지역에선 처음 발견된 중생대 백악기(1억년전) 육식공룡의 발자국들이다. 경사진 바위면에서 수십m를 걸어나간 발자국 행렬을 비롯해 곳곳에서 공룡 발자국들을 찾아볼 수 있다. 화순군청 문화관광과 (061)370-1224.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나들목을 나와 순환도로와 15·22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화순으로 간다. 옥과나들목을 나와 29번 국도 타고 가도 된다. 고인돌 무리는 화순읍에서 29번 국도 따라 20분 거리. 운주사는 고인돌 유적지에서 나와 818번 지방도 타고 다시 20여분 거리.
<묵을곳>= 화순에는 도곡온천과 화순온천이 있다. 온천에 깨끗한 모텔·호텔들이 있어, 묵으며 온천을 즐기는 게 좋겠다. (지역번호 061) 도곡미송온천호텔(375-9800) 4만원, 도곡온천호텔(375-0008) 8만3000원(6000원짜리 온천권 2장 제공). 금호화순리조트(370-5000) 예약때 평일 6만6800원, 주말 8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