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통 그 12 (여자-그 오묘한 우리들의 반쪽-만남-1 )

[고제홍]

                         성장 통 그 12 ( 첫 사랑 그-1)

 그날도 K군과 국화빵집에 들렀다.  만두를 시켜 놓고 무심히 고개를 돌리니 한쪽 구석에 그녀가 혼자서 국화빵을 먹고 있었다. 괜스레 심장이 쿵덕쿵덕 거렸다. 나는 K군 몰래 겹 눈질로 그녀를 훔쳐보았다. 그녀는 나를 약간 등진 채 국화빵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그때, 시켜 둔 만두가 나왔다.

 “뜨거운 것은  빨리 먹어야 해”

 K군은 어느새 만두 한 알을 입안에 던져 넣었다. 우리가 가면 주인아저씨가 만두 한 개를 덤으로 하여 열한 개를 주었는데 언제나 여섯 개는 K군의 차지였다. 뜨거운 것은 빨리 먹는 버릇이 있다나? 열개 나오면 6대 4 였는데 사정을 헤아린 아저씨의 배려로 그래도 다섯 개는 내 차지였다.

 ‘그래, 마음 놓고 니 다 먹어라!’

 나의 모든 촉수는 만두보다 거미줄처럼 그녀를 촘촘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그 당시 군청 옆 골목에 보건소가 있었다. 그 곳에 내 외사촌 형이 원무과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돈이 필요하면 보건소를 기웃거렸는데 그날도 그 앞을 지나다 군자금을 충당하기위해 들렀다. 휘휘 둘러봤으나 형은 보이지 않았다. 딱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형이 나타날 때까지 어슬렁거리다가 옥근삼타를 하러 화장실에 들렀다. 수포를 발사하는데 안쪽에서 승강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가만히 귀를 기우려 보니 상황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옷에 실례를 한 것 같고 손녀딸이 새 옷을 가라 입히려고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와 이러 노? 내버려 도라”

 “아유 냄새야. 가만있어 봐요!”

 “야가, 미쳤나! 나매 옷은 와 뱃기노? ”

 “할매, 착하지... 내 말 자알 들으면 맛있는 것 사주-지!”

 할머니는 치매 끼가 있는 데다 고집스러워 보였다. 그런데도 손녀는 여 낙낙히 어릿 방귀를 뀌면서 할머니를 어르고 달래며 뜻을 이루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궁금해 졌다. 병 든 할머니를 위해 효성을 다하는 그녀가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소변을 보는 척 시간을 누며 기다렸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둘의 모습이 드러났다. 할머니는 못내 마뜩찮은 표정이고 내 또래의 앳된 소녀는 나를 보자 눈을 찡긋거리며

 “할매, 이-쁘지요?”

 했다. 나는 엉겁결에 그걸 후딱 집어넣으며

 “신수가 훤 하네요.”

 열고나게 대답했다. 그녀는 손녀가 아니고 간호사였다.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눈 주위에 기미가 살짝 끼었으나 눈은 총명하게 반짝이며 항상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매혹적인 눈이었다. 

 “할매, 봐-요. 이-쁘 다잖아.” 

 그 눈이 고맙다는 듯이 나에게 한 번 더 찰칵 윙크를 보냈다.

  ‘탕-!’

 그녀의 눈총이 나의 심장을 뚫었다. 아-,나는 일순 앞이 캄캄해지고  다리의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부나비가 거미줄에 걸려 파드드득 거리듯 나는그녀의 마법에 걸려 옴짝달싹 할 수 없없다.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난생 처음으로 이상한 흡인력에 망연자실했다.

 내가 그녀에 대한 반추에 여념이 없을 때 주인아저씨의 볼멘 목소리가 들렸다

 “말만한 처녀가 지갑을 두고 왔다니! 그것도 다 먹고 나서. 나 참 기가 막혀.”

 나는 순간 그녀가 감내하기 어려운 위기에 빠진 것을 재빨리 간파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게 상처로 남을 것이다. 주인에게 사정하는 그녀의 귀뿌리가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어리둥절 하는 아저씨에게 대신 셈을 치렀다. 주머니에 현금이 있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미안해서......, 여기 있으소. 내 금방 다녀올게요.”

 그녀는 나한테 더 면구스러워했다.

 “아이시더. 우리도 금방 가니 더.”

 “그럼 어떻 하니껴?”

 “보건소에 있지요? 내, 다 아니 더. 더러 가니까 그때 보시 더.”

 나는 그녀와 대화할 둔덕이 생겨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럼 내일이라도 당장 오이소!”

 그녀는 조그마한 체구도 주체하지 못해 몸 둘 바 몰라 하다가 가게를 빠져 나갔다.

 “짜식,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다더니?”

 K군의 타박을 들으며 우리도 빵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 후로 보건소에 갈 수가 없었다. 흡사 빌려준 돈을 받으러 온 것 같은 오해를 살 가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군자금 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은 감수 하겠는데 그녀를 가까이 지켜 볼 수 없는 것이 낭패였다. 전에는 군자금 핑계로 보건소에 들러 그녀 몰래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 했었다. 꼿꼿한 자세로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파문처럼 걷는 부드러움,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살핏한 보조개에 담아 절제하다가 아이들 앞에서는 더 어린애 같은 그녀. 환자와 희, 노, 애, 락을 같이 나누는 그녀의 진정성이 내게 물결처럼 잔잔히 밀려와 가슴을 촉촉이 젖게 하고,  간혹 무심히 내 곁을 스치고 지나 갈 때면 풋풋한 보릿대의 싱그러운 내음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러면 나는 오금이 저려 숨죽인 배추마냥 아랫도리가 후둘 거렸다.

 “너 요새 좀 요상타? 총알 장전하면 팽하더니!”

 물주께서 빈정대면 그제야 아쉽게 보건소를 나서곤했다.

                                             성장 통 그 12 (첫 사랑 -3)

 그녀는 벌써 한달이 다 가도록 틈만 나면 군청 앞 마당을 살폈다. 빵집에서 대신 값을 치러준 이름도 모르는 그 남학생이 기다려졌다. 구면인 것 같기도 한 것은 평소 마음에 자리한 탓일가? 그녀의 손에는 땀에 베인 지페 몇장이 돌돌 말려 손아귀에 갇혀 있었다.

 그때 역전 쪽에서 그 남학생이 휘적휘적 걸어 오고 있지 않는가. 숨이 막히게 반가웠다. 나이답잖게 삼베옷을 곱게 떨쳐 입고 턱은 한껏 치켜 올린체 뒷굼치가 땅에 닿을동말동 가벼운 걸음으로 보건소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가슴 한쪽에 불길이 일었다.그 날을 상기하니 얼굴까지 달아 올랐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뛰쳐 나가려다 그냥 기다리기로했다. 내가 왜 이러지! 그녀는 잽싸게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남학생은 의외로 조그마한 아이와  반대 방향인 골목 쪽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학생은 보건소 쪽을 잠시 보더니 혼자서 쪽문을 밀고 들어갔다. 저기는 공터인데? 그녀는 쪽문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거의 한시간이 지나도 쪽문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불안해 졌다. 그 때 쪽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사복 차림의 청년들이 어그적 어그적 기어 나왔다. 그런데 서 너 명은 업혀 나오고 나머지 사람들도 다리를 절거나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남학생은 무리 중에 없었다. 날씨가 어느새 어두어둑 해왔다.  일순 그녀는 뒷목이 빳빳해졌다.  쏜살 같이  골목길로 달렸다.

 거기 공터 안에 남학생이 동짓날 개구리처럼 뻗어 있었다. 몸 전체가 피로 범벅이고 무의식적인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허벅지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속치마를 어금니로 찢어 지혈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이 남자는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굴복 하지는 않는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여 초원에 누워 있었다. 이제 곧 저승사자가 나타나 나를 실어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뜰 수도 손발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허나 의식은 새벽 이슬처럼 투명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으나 운명에 저항하고 싶었다. 그때 초원 끝자락에서 한줄기 흰빛이 달무리처럼 생성 되드니 그 터널 속에서 하얀 모시옷을 곱게 차려 입은 소녀가 나에게로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리고는 나의 뺨을 토닥거렸다. 나도 용을 썼다. 그러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녀가 손을 길게 늘려 뜨려 연못의 연잎을 따 거기 고인 물을 내 얼굴에 붓고 입을 축여 주었다. 심연의  자아가 ‘생명수야, 마셔, 마셔!’ 나를 부추겼다.

 겨우 눈을 뜨니 짙은 안개 너머에서 소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렇게 짧은 편안함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무(無)! 영혼이 몸을 벗을 때 이런 기분일까? 육신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내 영혼만 새파란 불덩어리가 되어 영혼의 빙점 상태에서 무중력에 떠 있는, 그냥 허(虛)!  엄격히 말하면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정신이 드니껴?”

 그녀였다. 그녀가 어떻게? 나는 기억의 저편으로 나래를 폈다.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그녀의 손길이 내 몸에 닿았다. 순간 삭신이 으스러지듯 고통이 엄습하며 내가 누워 있는 연유가 회오리처럼 떠올랐다.

 이미 날은 사위가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그녀의 부축을 받아 앞뒤 가리지도 못하고 그녀의 자취방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하루 낮 이틀 밤을 혼수상태에서 헤맸다.

 이틀 후 새벽, 심한 갈증에 눈이 떠졌다. 동쪽으로 난 봉창이 희붐하게 방안을 겨우 구별하게 했다. 나는 내 행색을 보고 아연실색을 했다. 알몸에 여기저기 거의 전신을 반창고나 붕대로 감겨있는 와중에,  내 남자 만은 우람하고 뻣뻣하게 부풀어 올라 거기를  베수건 한 장으로 겨우 가려 외기둥 천막을 치고 있었다.  문 쪽에는 조그만 여자가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한 모금 마시고 이 낯선 환경에 대해 실타래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희붐한 새벽이 밝아오듯 서서히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래 이미 엎질러 진 물 아닌가? 나는 우선 갈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두리번거리니 흰 사발 대접이 달덩이처럼 머리맡에 떠올랐다. 손을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몸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내 비명 소리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팔딱 일어나  달려들었다.

 “정신 드니껴? 내가 누군지 아겠니껴?”

 그녀는 따발총처럼 따따 거렸다. 내가 겨우 고개를 끄덕거렸다.

 “됀니더. 나는 머리를 다쳤을 까봐 뒤기 걱정 했니더. 몸이야 튼튼하이께 금방 털고 일어나겠지 뭐.”

 그녀는 나에게 물을 먹여 주었다.

 이런 기괴한 동거가 중간 소집 날까지 이루어 졌다. 그녀의 자취방은  군청 북쪽 옥정동 일본식 집 문간방이었는데 용케도 출입문이 따로 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8월 더위에 숨어 지내자니 문을 열수도 없어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헌신적이었다. 여름휴가를 냈다면서 내가 거의 운신을 못한 5일간, 얼음덩이를 사다가 들통에 담아 식힌 물에 베수건을 적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내 몸의 전신을 닦아 더위도 쫓아내고 몸의 열도 낮추었다. 그리고 꼭 하루 2번씩 거즈를 갈고 치료를 하고 실밥도 조금씩 뽑아 나갔다. 밤이면 오강을 받혀 주고 한사코 밥을 떠 먹였다. 나는 그저 가만히 누워 사육당하는 기분이었고 그녀가 내 몸을 닦을 때 마다  매번 민망스러웠다. 내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불끈불끈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정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젊음이 충혈대어 타 오르는 횃불인데 그녀가 아리까리하게 볼까봐 못내 눈치가 보여 사타구니에 끼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모르는 척 입귀를 살짝 달아매며 볼우물을 팠다.

 내가 5일 되던 날 밤,

 “정말 고맙니더. 그만 가 볼랍니다.”

 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거세게 손사래를 쳤다.

 “안 돼니더. 큰일 나니더. 집에는 방학이라 친구와 여행 간다고 쪽지 보냈으니 그런 데로 됐고, 이 더위에 덧나면 큰일이시더.”

 내가 나를 봐도 부어오르고, 찢어지고, 시퍼렇게 멍들어 꼬락서니가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얼굴은 아직도 잘 익은 찐방이었다. 게다가 세대나 부러진 갈비뼈는 운신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뽑아 냈다.

 젊음은 그래서 좋은가보다. 날이 흐르자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5일간 환자와 간호사 사이였지만 서로 한방에서 밤낮을 뒹굴며 남의 눈이 두려워 소곤소곤 나눈 둘만의 이야기들이 공범 의식을 키워 몇 년이란 세월을 뛰어 넘어 친구가 되어 버렸다.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우리는 어느새 서로 말도 편하게 나누며 키드득 거렸다.

 그녀의 고향은 안동 남후 면인데 부모는 봉화군에 산다고 했다. 아버지가 화토를 좋아해 가산을 다 털어 먹고 이제 작심을 하고 봉화에서 송이 밭을 일구고 있단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보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놀이터 삼아 놀던 집 앞 밭 데기를 잃었을 때라고 했다. 봄이면 밭의 둔덕에 3그루의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고는 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 보니 아래 동네 아저씨가 밭을 갈고 있었다. 이상해서 물으니 ‘아버지한테 물어봐라’ 했다. 부리나케 집에 뛰어오니 어머니는 마당에 퍼질러 앉아있고 아버지는 연신 담배 만 빨고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속성 간호조무사 자격을 받아 보건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내는 지금이 좋아. 정식 간호사 자격을 따 아픈 사람들을 진정으로 돌보고 싶어!”

 그녀는 그러면서 나를 보고 계면쩍어했다.

 날이 지나자 부러진 세대의 갈빗대는 여전했으나 부기도 빠지고 견딜만했다.

 그때부터 우리 둘은 기가 살아 시시덕거렸다. 나이도 같아 친구가 되었다가 오누이로 그리고 연인이 되기도 했다. 둘이 식성이 비슷해 밥을 자주 비벼 먹었는데, 같이 비벼 먹으면 싸운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먹다가는 중간에 금을 그어 놓고 밥을 나누었다. 그러면 서로 많다고 앙앙거리고, 어떨 땐 적다고 앙앙거리고, 그러다 서로 밀고 당기다 비빔밥 그릇이 천장에 날아오르기도 했다. 그러면 서로 토라져 소 닭 쳐다보듯 하다 내가 아프다고 살짝 엄살을 떨면 그녀는 사색이 되어 내가 아파하는 곳에 호호했다.

 5일이 지나자 그녀는 내가 한 치의 불편도 없이 지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놓고 출근하였다. 그러나 삼시 세끼는 꼭꼭 직접 와서 챙겨 주었다. 나는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기다림을  배웠고 그리움은 깊은 샘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항상 솟아올라 그 바닥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혼자 있기가 무료해 그녀의 책상을 뒤지니 <도스도예프스키의 미성년> 과 <에밀 졸라>의 소설집이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시간을 죽였다. 남은 시간은 ‘미성년’의 순수파 ‘아르카지’와 대화를 나누고,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 과 ‘데르미날’의 비참한 광부들의 삶에 대해 고뇌하기도 했다.

 그녀가 돌아오면 금방 활기가 돌았다. 밖에 소리가 새지 않도록 쏙닥쏙닥 거리며 장난거리에 빠져 들었다. 눈싸움하기, 웃겨도 안 웃기, 간지려도 오래 참기,  말 이어가기,  숨 오래 참기, 발가락으로 가위, 바위, 보하기,  사다리 해서 벌칙 데로 하기.  낄낄거리다 삐지고, 헤헤거리다 토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새벽이 다 되어서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아 주면 나는 막내둥이 기질을 어금니를 물고 억누르면서 잠들었다.

 중간 소집 전날, 우리는 헤어져야했다. 갈비뼈는 아직 결리었으나 이빨도 자리를 잡은 것 같고 얼굴만 보아서는 거의 멀쩡했다. 나는 그동안 러닝셔츠 바람이었는데 그녀가 새 내의와 삼베옷을 거의 원상 복구하여 내밀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내 등을 밀더니

 “자, 도령님. 출타하시는데 목욕재계 하셔야죠?”

 그녀는 내 러닝셔츠를 벗기고 팬티까지 벗기려고 했다. 그녀의 장난기였지만 나는 기겁을 하며 팬티를 움켜쥐었다.

 “새롭게 내외는? 눈 감아도 훤한데..... ”

 “그래도.....”

 “얼씨구!  자, 들통에 앉아. 그럼 등은 내가 밀어 줄게”

 “그래, 앞은 내가한다?”

 “어쭈구리! 팔다리가 이제 좀 성한가?”

 그녀는 내 등에 비누칠을 하며 말했다.

 “이틀 동안 의식 불명이 길래 얼마나 떨리던지! 그런데 너 남자가 잠수함 잠망경처럼  불끈 솟아  뚤멍뚤멍 하는거 있지. 내가 간호사 아이가. 어느 정도 안심이 데대. 그래, 그 송이를 툭툭 치며 너 주인도 너처럼 벌떡 일어나게 해라. 기도 했지! 히히히......”

 “징글맞기는! 흉측스러웠지?”

 “웬거, 이-뻣어!”

 그녀는 얼굴이 달아 오른 나를 헬끔 거리며 말했다.

 “송이 철에 봉화 가면 부모님이 송이를 상, 중, 하로 선별한다고. 등급에 따라 값이 하늘과 땅이야. 그런데 너 송이는 상품에 속하던데?”

 “여자가 ....."

 "못하는 소리 없다 이거가?”

 그녀는 깔깔거리다 갑자기 정색을 했다.

 “내년 여름에는 포항 바닷가로 놀러 갈래?  바다 구경을 한번도 못했어. 오늘 같은 날 바다에 몸을 풍덩 담갔으면......”

 “그래, 가자. 이 번에 진 빚을 내년에 꼭 갚아 주꾸마.”

 “그것보다, 발령을 아예 바닷가로 받는 게 어떠신지?”

 “조오치!”

 “싸움쟁이가 아-들은 옳게 가르칠 나나?”

 나는 둘만 있어도 지겹지 않고 얼마든지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되새김질하며 촉촉이 젖어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자취방을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한참을 걸어 와  뒤돌아 보니 그녀가 어스름 속에 잠겨 손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쥐어준 흰 베수건을 펼쳐 보았다. 서미진, 옥색 이름 석자가 어둠 속에서도 꼼지락 거렸다.

 "진아!"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영원히 그녀로부터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가슴에  똬리를 틀었고 그녀는운명처럼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내 어깨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나를 보내며 다음과 같이 생각 했단다.

 '남자다운 너를 가슴에 품을 수는 있어도 가두기는 어렵겠구나' 

[반석 이영석]

아름다운 청춘의 싱그러움이 무척 감동적이고. 삶의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멋지게 표현한 글솜씨가 참 부럽네요.

[금종 김종규]

송이가 상품이라서 제법 값나가겠는걸...

[김종화]

국화빵 인연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게 하였다. 상처 투성이 10일간 간호가 너무나도 많은 추억을 낳게 하였구나. 희한한 드라마다. "그리움은 깊은 샘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항상 솟아올라 그 바닥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 표현들이 유모어와 위뜨가 철철 넘처난다. <만남2는 없나>

[희재 전병문]

훌륭한 작품이군요.단편 소설 잘 보았네.역시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