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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투어후기(kayaktour episodeof the weekend) 스크랩 비단강 300리종주 카약투어 - 2 (곰나루에서 강경까지)
봉공진 추천 0 조회 145 08.09.09 17:51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2008. 9. 6(토). 투어 이틀째.

 

오늘은 이곳 곰나루에서 부여를 거쳐 강경까지 약 60키로의 먼거리를 패들링해야 합니다.

풍하님이 좀 일찍 출발하면 가능하다고해서 6시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를 하였습니다.

 

간밤엔 피곤한데도 잠이 쉽게오지 않아(평소 2, 3시에 자는 습관이 있어..)

이리뒤척 저리뒤척...앉았다 일어났다...

빗방울 소리만 들리면 큰비가 아닐지 마음 졸이고(플라이가 없어)...마침내는 텐트바닦에 깔았던

은박지깔개를 지붕에 덮고 새벽녁에야 곤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8시경, 마음도 상쾌하게 곰나루를 출발하여 강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카메라를 배낭에서 꺼내 놓지않고 출발을 하여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점심때까지의 사진은 나중에 풍하님의 사진을 받아 올리겠습니다. 

 

바로 천안-논산고속도로가 통하는 다리의 교각근처에 다달았습니다.

물살이 좀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구간을 통하여 그나마 가장 흐름이 좋았던 유일한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 공주비행장(레져용 경비행기)이 있어 비행기 한대가 강물을 따라 우리 머리위로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왼편 산 밑으로는 강을 따라서 부여까지 닿는 '백제큰길'이 나있습니다.

전에는 없었던 새 길인데 한 2,3년전에 자전거로 달린적이 있지요.

 

점심도 해 먹고, 가다가 마시기에는 물이 좀 부족하여 강근처의 가게를 찾았습니다만

가게도 별로 없고 배를 대기에 마땅치 않아 계속 내려 갔습니다.

결국은 20키로가 넘게 내려와 '왕진교'근처에 다달아서야 겨우 물을 구할수 있었습니다.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사먹자 했는데 아쉽게도 아이심은 물건너가고... 

 

점심을 먹자한 '백마강교'를 향하여 부지런히 노를 저었습니다.

햇?은 뜨겁고....팔과 어깨는 뻐근하고....

휴우.....

 

왼편으로 물길이 꺽어지는 곳 건너편 산꼭대기로 날렵한 정자 하나가 올라 앉았습니다.

'천정대'입니다.

그리고 저멀리 백마강교가 보입니다.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도 보이고....

풍하님이 먼저 앞서가서 다리의 교각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교각둘레에 공사장표시 테이프를 둘러 쳐놓았고 한쪽에선 포크레인이 덜덜거리고...

바로 저만치에서 인부 한사람이 다가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가랍니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잠간 쉬다갈텐데 우리가 공사에 방해가 되는것도 아니고 위험한 지역도 아닌데 뭘그리 야박하게 구느냐?'고

목소리를 높여 대꾸를 했더니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점심은 늘 라면에 햇반을 말아 먹습니다.

점심뿐만이 아니고 풍하님은 식사때마다 '으...음 맛있다...정말 맛있다.'하면서

정말로 복스럽게 식사를 아주 잘하십니다.

그에 비하면 난 아주 조금 그것도  마지못해 약 먹듯 하지요.

 

점심을 먹고는 쉬지않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낙화암 아래에서 쉬면서 아이심도 사먹으려고....

낙화암에 도착하니 막 황포돗배를 모방한 유람선 한대가 관광객을 태우고 출발하고 있었는데

일본사람들인지 안내방송이 일본말이었습니다.

이지역, 공주와 부여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옵니다.

일본의 고대 '아스까'문화의 원류가 바로 이곳 공주, 부여이기 때문이지요.

 

낙화암아래의 황포돗배....그 중앙의 아래부분에 풍하님이 뵌다.

 

낙화암하면 누구나 삼천궁녀가 떠 오릅니다.

나당연합군에 백제가 멸망되던날 삼천 궁녀외에도 수 많은 여염집 아녀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래 1929년, 삼천궁녀의 원혼을 달래주려고 낙화암 곡대기에 '백화정'이라는 정자를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순절한 삼천궁녀를 강물에 떨어진 수많은 '꽃잎'에 비유한 것이지요.

 

 

이곳 강의 이름 '백마강'의 유래는 잘 아시겠지요?

소정방이 용으로 변신한 의자왕을 잡을때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썼다해서 이름 지워진....

 

낙화암아래 유람선 선착장에서 배에 탄채 아이심도 먹고 유람선 선장님께 부탁하여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둘이만 다니니 같이 찍은 사진이 거의 없어서입니다. 

 낙화암아래의 풍하님....고란사의 지붕이 힐끔 보이는군요.

 

고란사하면 또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그렇습니다....'고란초'입니다.

고사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역대 왕에게 고란사의 샘물을 올릴때 물위에 띄어 고란사샘물임을 증명했다는...

아참...!

이 고란초는 전에 투어갔던 당진 대호방조제의 '도비도휴양지' 뒷편 바닷가 절벽에도 집단으로 서식합니다.

지금도 잘 살아있으려나....?

 

부여에 가보시면 길이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넓직넓직하고....반듯반듯하고....근래까지 도시계획을 전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일제가 이곳에 '신궁'을 지으려고 계획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드이 이곳이 400년간 지속되었던 화려했던 고대 일본 '아스까'문화의 원류이기 때문입니다.

아스까문화는 한반도에서 나라를 세운 '온조'백제의 동생 '비류'가 일본으로 건너가 시작되었지요. 

길도 잘 내고...군데군데에는 전국에서 잘생긴 향나무들도 골라서 가져다 심어 놓고...

 

햇빛이 뜨거워 중간 중간 티셔츠를 물에 적셔서 입었습니다. 

백제대교를 지났습니다.

예전에 이고장 출신 정치인 '김종필'씨가  놓아 준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이곳을 여행했을때는  이다리가 없어 나룻배를 타고 이곳 '규암'나루를 건넜습니다.

몇해전 자전거여행때 들린 이곳의 오래된 밥집에서 한복입고 나룻배타고 강을 건너는 사진을 본일이 있어

주인과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한참하기도 했었지요.

 

규암나루터, 지금의 백제대교 왼편에는 '자온대'라는 커다란 바위가 강가에 있습니다.

의자왕시절, 신하들이 미리 바위밑에 불을 피워 바위를 따듯하게 한 다음

왕을 모시고 나와 바위위에 앉아 놀면서 '천지신명이 임금님의 성은에 감동하여 바위를 데워놓았다'고 아첨을 했다는...

그래서 이름이 스스로 더워졌다는 '자온대'입니다.

 

이곳, 규암에서는 옛부터 잉어와 장어가 유명했습니다.

매운탕도 좋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초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것을 더 좋아하여

한동안 이 지방의 '디스토마' 감염율은 30%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30%라면 여자와 갖난애들 빼고는 모두 걸린 셈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 커다랗게 새로 건설된 다리밑 그늘에서 좀 쉬었습니다.

다리의 오른쪽은 '구룡평야'입니다.

전에는 물이 불면 상습적으로 범람하던 갈대밭이었는데 제방을 쌓고 커다란 평야로 변모했습니다.

충청남도에선 논산 다음으로 넓은 평야라 합니다.

  

휴식을 마친후 약1시간 정도 더 내려가 '복고리'근처에서 쉬었습니다.  

 

 

 복고리근처의 강변에서...

 

점점 팔과 어깨가 무거워 천근만근 같습니다.

목뒤의 어깨쭉지 부근은 근육이 딴딴하게 뭉쳐 만지면 아픕니다.

현북리, 봉정리를 지나 멀리 강경이 보일때까지 한 10키로 정도는 정말 지옥같았습니다.

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요.

풍하님은 어둡기전에 강경에 린딩해야 된다고 걱정을 하고...

햇빛에 연신 모자를 물에 적셔서 눌러 쓰고 젖먹던 힘까지 다 내어 패들을 저었습니다.

 

황혼빛이 엷게 들 무렵, 멀리 강경의 시가지 모습이 보였습니다.

힘이 좀 솟는것 같았습니다.

풍하님도 다소 마음이 놓이는듯 속력을 줄이고 저와 함께 페이스를 맞춰 

여유있게 얘기를 나눠가며 강경으로 들어 섰습니다.

 

 강경포구(지금은 체육공원)로 접근하시는 풍하님...

바위산위의 전망대도 보이고 배 모양을 한 젓갈전시관(위는 흰색 아래는 붉은색)도 보입니다.

오른쪽의 다리는 황산대교입니다.

 

 

 지는해를 배경으로 강경포구에서...

 

 

 역시 풍하님

 

랜딩을 하니 바로 체육공원의 잔듸밭입니다.

배는 그자리에 조금 더 올려놓고, 잔듸밭에 텐트를 치고 사우나를 다녀와서 밥을 먹으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물어 물어 ?아간 사우나에서 더운물에 몸을 담그니 좀 살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다시 밥집을 찾았습니다.

 

이곳 강경에서 젓갈백반을 제일 잘 한다는 '달봉가든'...이름은 좀 그렇지요?

오기 며칠전에 전화로 '배를 타고 찾아갈텐데 강에서 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강둑 넘어 바로 있다고....

 

찾아간 밥집은 체육공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지만 이미 불을 끄고 문을 닫았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전화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니 자리에 앉으랍니다.

차려나온 젓갈백반은 괜찮았습니다. 젓갈만 무려 14가지...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이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었지만...  듣고나면 잊어버리니....

제 입맛에는 갈치속젓과 대구아가미젓이 가장 나았습니다.

풍하님은 연신 '야...맛있다 맛있다'하며 밥을 3공기나 드셨습니다.

반주에 건배도 배 놓지 않았지요. 

 달봉가든의 젓갈정식(14가지 맛갈스런 젓갈이 나옵니다)...최근 논산시에서 인정해준 대표음식점이지요.

 이 밥을 먹으려고 60키로나 패들링을 해 왔습니다.

 

  

 젓갈정식에 건배....

 

 

밥을 3그릇이나 비우고 포만감에 야릇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풍하님.

 

오늘날의 강경이야 아주 보잘것없는 강가의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엔 아주 번성했던 곳이었지요.

조선시대에는 평양, 대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시장에 꼽힐정도로 큰 장이 있었습니다.

이 일대는 물론이고 멀리 중국의 무역선들도 이곳에서 닻을 내렸으니까요.

더우기 1890년에 군산이 개항한뒤 군산항에 부려지는 물자의 80%가 이곳 강경을 통해 전국으로 흘러 나갔습니다. 

그래 1931년 논산군에서 최초로 읍으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인천과 서울과의 모습이었지요.

이것은 해방이 될때까지 지속되다가,  경부선 철도운송의 활성화와 도로교통 발달등과 더불어

포구에 모래가 쌓싸이면서 배가 드나들기 어려워져 점차 쇠락해져 갔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논산경찰서와 법원 그리고 강경상고등이 남아 옛날의 번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돌아와 풍하님은 바로 골아 떨어졌고

나는 팔과 어깨가 아파 파스를 꺼내들고  농구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을 찾아가 붙혀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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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9.09 18:09

    첫댓글 전편에 이어 자세한 설명과 함께...잘 읽었습니다. 힘든 투어 막바지엔 ' 이 걸 또 할까?' 하지만 또...하지요..^^

  • 08.09.09 18:15

    젓갈이 먹음직스럽습니다...^^봉공진님의 기행문을 읽으면 과거의 기행문집도 저리가라할 정도입니다...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특성...넘 감동적입니다...부러버요!^^

  • 08.09.10 16:19

    천안논산고속도로 공사중일때,교각건설로 물막히 한 곳을 카약을 지고 건너간 기억이, 공주금강은 강안자동차도로로 랜딩할 장소가 적당치않아 강건너 곰나루 커다란 나무있던 곳에서 출발하여 백제교건너우측(규암)으로 올라 매점에 카약맡기고, 택시,시외버스타고 공주로 가서 차를 가지고 왔던 회상에 , 물흐름이 느린 중간구간에 얕은 하상모래지대를 통과한 기억도...

  • 08.09.10 16:33

    다음구간은 강경지나고웅포 나포까지로 잡아놨었는데 아직도 미완이고,년전에 웅포,나포,금강철새조망대,금강하구뚝까지 자동차로 갔다가 군산초입에서 꽃게장 백반만 먹고 왔어요, 봉공진님 화이팅,풍하도...

  • 08.09.10 16:31

    봉선생님의 역사와 추억이 살아있는 이야기가 너무 좋습니다. 사람들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후기를 쓰는 것이 너무 좋은 자기의 소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남들과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이 궁금하내요..... 젓갈정식, 침이 꿀떡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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