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운 그림
황 윤 호
내 육신이
하얀 침상에 누워 있다
창문 너머 4분의 1
만큼이나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하나님은
왜 이리 인색하실까?
다 보여 주면 안 돼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화선지에
더 큰 하늘과 산과 들을 그려 보면
어른이 된
아들과 딸도 그려진다.
눈에 티끌이 되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도
눈을 뜬다.
침통한 표정으로 흰옷 입 은
의사가 서 있다
눈을 무겁게 깔고
나의 화선지에
추억이 된 아름다웠던 일들을 그려 보자
2 붓으로 마음 씻으며
황 윤 호
연적 방울 물에 마음 담가
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저어 중봉길로 마음 씻자
쓰고 쓰는 글자는 자취 없는 그림자라
한점 일 획 안 남아도 괜찮으련만.
마음 씻기 중봉길은 멀고도 먼 길이라
서산에 해를
삼천 번을 넘겨도
마음 씻지 다 못해
이제 서서히
나도
서산을 넘고 있구나.
3. 빈 장 독
황 윤 호
한때는
군고구마 같은 된장 맛에.
옆집 아줌마도 찾아와
사랑도 받았건만
세월 속에서 밀려난 늙은 독.
빈 독이 된 지도 오래다
거미줄도 첫 건만
오월이면
감꽂 한두 잎 떨어져 오고
가을이면
단풍 서너 잎쯤은 날라 온다
겨울이면
소슬바람이라도 스쳐 가고
쓸쓸히 외로이
세월 위에 잠자고 있구나.
4.인동초
황윤호
사시 푸른 댓잎 닮자고
언덕바지에 그물 같은 넝쿨 덮고
푸른 잎 변할세라
겨울바람에 바들바들 떨며
모질게 살아
꽃 피는 봄 맞으니
헌 갓 쓴 허수아비
인 동 초 석 자 이름 던져 주고
꽃잎 속에 품은
향기 달라하며
벌,나비 찾아와
품은 꿀 내놓으라고
울며불며 매어 달린다.
강 건너 시집간
순덕이 누님도 그렇게 살았을까.
5. 동상의 말씀
황윤호
탐방 버스 타고
내 이름 박 경리 석 자를 따 머리글로 지으며
온 그대들이여
내 여기 앞뜰에서
선체로 돌이 되어
그대들을 반기어 맞이하노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게 나
빛바랜 원고지에 오묘한 향기와
오월의 무성한 풀 향기의 어울림은
재 격일 걸세
쌓인 책더미에 서
들려 오는
내 숱한 말 들도 들리는가?
내가 부른 건지
그대들이 찾아온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남긴 자취를 눈여겨
잘 보았다면
그대들에게 드리는
나의 귀중한 선물이 될 것이외다.
떠나기 전
선체로 돌이 된 내 앞에서
내 숨 소리를 들으며
기념 촬영이나 하고
모두
잘 가시게나.
6. 네 것과 내 것
황윤호
하늘과 땅 강과 산.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
네가 본 것은 너의 것이고
내가 본 것은 나의 것이다.
해 뜨면 가지고 놀다
밤이면 감추고
내일이면 또 가지고 논다.
어느 날
그것들 고이 품고 영원히
하얀 허공 속으로
살아질 날도 오고 말겠지
그때도 넌 너의 것을
그렇게 사랑하며 살겠지
나도 그것들을 사랑하며 살았다네.
7.시티투어
황 윤 호
오월의 끝자락.
네 마음
내 마음 모아 행복 만들자고
네 시간 내 시간 모아 즐김. 만들자고
너도 타고 나도 타고
너 즐겁고 내 기쁜 것이
이름하여 도시관광의 행복
함께 하루 살기 만들었으니
마주함도 즐거움이고
같이 보는 것도 행복 이려니
듣는 것도 기쁨 되어
남는 것은 추억이요
세월은 그리움이 되리라.
8. 국화핀 아침
황 윤 호
국화가 핀 아침.
간밤에 칠흑 같은 어둠 속.
너의 잉태를 위해
하늘의 별들은 밤새도록 쏟아부었다.
오늘 아침
너는 어젯밤 진통도 잊은 체
인고의 물방울 머금고
헤맑은 얼굴로
노란 웃음 짓고 있구나
하늘은 너를 위해
장막을 걷어 버리고
찬란한 아침 햇살은 축복하는 듯
너의 자태가 아름답구나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버릴 너를 위해
세상은 너를 품고
아름다운 기도를 할 것이다.
9, 남천강
황윤호
듬성듬성 놓인
남천 강 돌다리 그 사이로
냇물은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흐른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도 많아
낮과 밤을 매양 조잘조잘 이고
흘러갈까?
큰 물줄기
금호강 만나러 흘러갈거나
기다림에 지친
흰 왜가리 긴 목을 뼜고
엷게 펴 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물오리는 평온을 누리는데
둔치엔
노란 유채꽃이
봄을 반긴다.
10.매화꽃 피는 마을
황 윤 호
동지섣달 북풍 설한 겪은
매화는 이월 설상에 꽃피웠구나
섬진강 굽이굽이 물새가 울고
윤슬 받아 매화꽃 아름답게 피어나는
사람 사는 마을을 만들었던가!
덜 피어난 봉오리에 가슴 조이며
청매화 홍매화 만개를 다투는데
벌,나비 훨훨 날아 봄노래 부르는
매화나무 그늘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니
감칠맛 나는 재첩국 한그릇 먹고 싶구나!.
11,길옆 민들레
황 윤 호
겨울 눈,비바람 견디며
모질게도 살아왔다.
혹시나 머리 위를 밟고
쿵쿵거리며 지나갈까?
온몸을 눌러 짜는 시달림에
떠나 버리고 싶다
그래도
내가 날라와 선택한 자리
운명이라 해두자
가뭄에 물 말라 펄떡이는
미꾸라지 신세는 아닐지라도
화투장에 우주 영감이라도 와 준다면
가냘프게라도 꽃 피워
바람에
띄워 보내련만.
또 한 번
기다리며 모질게 살기로 마음먹자
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황윤호 글 11편
소우주
추천 0
조회 6
24.09.09 18:5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