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 장벽을 뚫고 기적을 이룩한 Helen Keller 를 흠모하며> 3.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것, 가장 소중한 것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볼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지 못하는 것이 끔찍한 일이라고 말한다. 산보갔다온 친구들에게 뭐 봤냐고 물으면 그들의 대답이, ‘뭐, 별로’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실망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수 없고 손으로 만질수 없고 단지 가슴에서 심장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눈으로 보여지는 사물은 일시적이고 눈으로 보여질 수 없는 것들이 영원한 것임을 아는 것이 자신에게 깊은 위로가 된다고 말한다. 헬렌 켈러는 사는데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력과 청력을 잃었지만 대신 그녀의 손끝의 촉각과 후각이 놀라울만큼 예민하고 발달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바로 눈이요 귀의 구실을 대신해주었다. 말년에 살었던 Connecticut 주의 자택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가장자리로 꽃밭이 잘 가꾸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그집 정원사가 보살펴 주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꽃을 지극히 사랑한 헬렌 켈러의 손이 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끝은 꽃과 잡초를 구별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꽃밭에 꽃을 색깔에 맞추어 심어두기까지 했다. 색깔에 따라 꽃의 결과 향기가 다른 것을 그녀의 촉감과 후각이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봄날 어느 집의 정원에 초대 받았을 때 활짝 핀 흰 라이락 꽃 앞에 와서 “What a lovely white lilac ! “ 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볼수없는 헬렌이 어떻게 흰 라이락인지를 알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녀는 라이락의 흰꽃과 자색꽃의 향기가 다름을 일러주었다. 헬렌이 음악회에도 갔다. 듣지 못하는 그녀는 손끝으로 나무의자에 닿는 음의 진동을 감지해 선율을 들을 수 있었다. 베토벤의 9번 합창의 선율을 박자를 맞추며 즐겼으며 모차르트등 클라식 작곡가들의 곡을 구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20세기 최대의 테너가수인 이태리의 ‘카루소’(Enrico Caruso) 의 특별 배려로 헬렌켈러는 카루소의 입과 목에 손을 대고 그의 명창을 들을 수 있었다. 문학과 미술을 특히 좋아한 헬렌 켈러가 이태리를 방문해 미술관 당국의 호의로 유명한 미술작품과 특히 조각품들을 직접
만져 볼 수 있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조각품들을 어루만지며 감상한 헬렌이 알고 있는 것이 안내를 맡은 전문 미술 평론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문학속에 심취해 무한한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 그녀의 마음과 기억의 창고에는 그녀가 점자로 읽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들어마신 모든 아름다움과 기쁨이 살아서 넘실거리고 있었으니 그녀는 마음은 풍요로웠다.4. 그녀의 신념과 후세에 남긴 유훈 그녀는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긴 것은 지난 후에도 결코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속에 남아 우리 인격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What we have once enjoyed we can never lose. All that we love deeply becomes a part of us.)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손을 잡고 과수원의 과일나무들을 돌며 가장 잘익은 포도송이를 따주며 좋아하는 딸의 모습을 기뻐하던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헬렌이 태어나서 처음 큰 슬픔에 빠진 것이 그녀가 16살때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나 멀리 북쪽에 가 있을 때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을 때였다. 그녀가 점자 성경책을 얼마나 열심히 여러 차례 읽었는지 좋아하는 구절들의 점자가 다 벗겨져 버릴 정도였다. 그녀는 성경에서 신의 경륜과 사랑을 깨닫고 역사와 과학과 천문학까지 배웠다고 말한다. 헬렌 켈러는 세상의 선악간의 쟁투에 대한 남다른 비법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마귀와 악과 싸우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고 있는데 만약 사람들이 그 많은 정력을 같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소비한다면 마귀는 할 일이 없어 지루함속에 죽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헬렌 켈러는 단지 신체 불구자를 위한 복지 증진 사업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1900년 대 초까지 여성 참정권이 없었던 미국의 여권 운동에도 가담했다. 그녀는 영국의 소설가이며 문명비평가인 H. G. Wells 의 사회주의 이념에 동조해 1910년대 20년대에와서 착취당하는 근로자편에 서는 좌경 색채까지 띄워 미국 FBI가 파일을 만들 정도였다. 이 같은 헬렌 켈러의 사상과 이념때문에 부유한 후원자들이 지원을 끊고 초청 강연청탁도 뜸해져 헬렌 켈러와 설리반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하는 수 없이 순회 유랑극단 (Vaudeville show)에 끼어 출연도 해야했다. 그러나 지칠줄 모르는 헬렌켈러는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세계의 시민에게 희망과 사랑과 용기로 난관과 곤경을 뛰어 넘을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준 숭고한 인간 승리자이다. 그녀는 1968년 6월 1일 만 88세 생일을 26일 앞두고 평화로운 잠속의 운명을 한다. 평소 그녀는 죽음은 단지 한 방에서 옆방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자신에게 다른 점은 새로운 방에 가서는 자신이 볼수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통 농아자(聾啞者)는 듣지를 못함으로 말도 할 수 없는 법인데 헬렌 켈라는 손으로 상대방 성대와 입술에 대고 음성의 의미를 찾아내 말할수 있어서 상대방과 대화를 할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불어등 수개의 외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으니 그녀와 동연배인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인 Einstein (1879 – 1955)이 그녀를 가르켜 20세기 기적이라고 말한 것이 결코 과장된 허사(虛辭)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2차대전을 승리로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Eisenhower(1890 – 1969) 장군이 제대후 공화당후보로 나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첫 백악관 방문자가된 헬렌 켈라가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입술을 만지고 있는 사진을 기억하고 있다. 유난히 입이 큰 아이젠하워에게 던진 그녀의 첫말은 “You have a wonderful smile” 이였다.
5. Anne Sullivan 선생과 함께 50년을, 1887년 스무한살의 처녀선생으로 일곱살의 헬렌 켈러집에 온 이후 설리반 선생은 1936년 70세로 사망하기까지 근 50년간을 헬렌 켈러와 동거동락을 한다. 헬렌의 모든 것은 설리반 선생의 것이기도 했다. 설리반 없는 헬렌 켈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설리반은 스승으로 친구로 비서로 동역자로 자문으로 헬렌켈러와 삶을 포개며 살았다. 헬렌켈러는 설리반선생이 자기에게 왔을 때 비로서 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이 사랑과 기쁨과 의미를 풍겨주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자기의 진정한 삶과 생명이 설리반선생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설리반 선생은 떼버릴수 없는 하나였다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최선의 것은 선생의 것으로 돌렸다. 자신에게 잠재해 있던 재능과 용기와 기쁨이 선생의 사랑하는 손길로 깨우쳐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부 14권의 책을 써낸 헬렌켈러의 집필 작업을 돕다가 너무 힘겨워 보조로 청년 한 사람을 두었는데 그 청년이 어찌 어찌해서 30대 후반의 연상의 설리반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결혼은 곧 깨어지고 설리반은 다시 헬렌 켈러곁으로 온다. 후에 헬렌 켈러는 설리반 스승을 추도하는 책 (My Teacher)을 썼고 허리우드의 오스카 영화상에서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을 다룬 영화가 더큐멘터리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거리에서 풍기는 냄새로 어느 거리임을 알아내고 집에서 풍겨나오는 커피 냄새만 맡아도 커피의 종류와 무슨 불로 끓였는지 까지 알아 맞춘 헬렌 켈러,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의 진동으로 그 사람의 성격까지 알아 마쳤으니 진정 슈퍼휴맨이다. 그녀는 인류에게 영감의 빛을 비쳐주는 사랑과 신념의 영원한 횃불이 될것이다. (끝)